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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다이어리
시즌 봄.





  5화. 2010년 4월 12일


  벚꽃이 만개한 그 날, 대부분의 뉴스는 벚꽃 축제와, 또한 방송 프로그램은 대부분 봄 노래를 틀어대었다. 그 전 부터, 나 역시 마이 위에 덧대어 입던 후드집업을 벗어내고, 네이비 빛이 감도는 마이를 그대로 입고 등교하곤 했다. 몇몇 코트와 패딩을 입던 아이들도 덥다며 겉옷을 벗어내었고, 차가운 공기의 기세는 이미 누그러져 있었다. 학교 교단에 있는 화분 또는 풀밭에서는 자유롭게 꽃이나 풀들이 자기몸의 색색을 빛내고 있었고, 어느새 핑크빛의 꽃잎이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봄이 왔다.

  버스에 가만히 앉아 창문 밖을 쳐다보니 출발한지 몇시간 만에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수학여행, 네글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가슴을 둥둥 뛰게 만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나무에 핀 벚꽃도, 휘날리고 있는 꽃잎도, 평생 있지도 않던 첫 수학여행에 아주 조금은 설렘을 더해주었다. 여느 있는 아이들과 비스무리 하게 남우현은 친한 남자애들, 그리고 다른반 여자애들을 꼬셔 데려와 맨 뒤에 앉았다. 좋은 날씨, 아이들이 기분이 좋았는지 큰 목소리를 내면서 게임에 열중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 설렜는지 가끔 가다 들어보았던 아이스크림 가게의 이름을 본따 만든 게임을 하면서 큰 웃음소리를 퍼트려 댔다. 나는 조용히, 그 소리를 벗삼아 눈을 감았다. 잠깐 이렇게 눈을 감았다가 뜨면, 단체가 중심인 이 여행에 혼자라는 돋보임을 주지 않기를. 아주 몰래 혼자 돌아다녀도, 나를 알아채지 않기를.

  먼저 버스가 지나가는 경로에 제일 가까이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무어에 의지하듯 창문에 힘차게 기대어 왔는지 한쪽 머리가 눌려있었다. 이렇게 오래까지 잘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아이들이 빠르게 인사를 하면서 내리는 걸 맨 앞에서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아이들이 거의 다 나갔을 즈음, 혼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버스에 있는 세개의 계단을 내려왔다. 관광버스의 특유의 쾌쾌한 냄새와는 다르게 조금은 맑은 공기가 나를 반겼다. 계속 눈을 감고 있느라 몇번 보지 못했던 햇빛이 따사롭게 아이들을 비추고 있었고, 지휘를 맡은 담임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소집했다. 눈 앞에 보이는 펜션은 꽤나 깨끗한 방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체로 예약보다는 어쩐지 여행온 사람들이 잘 쓸거 같은 기분. 아이들은 버스 아랫쪽에 놓아두었던 짐 혹은 캐리어등을 질질 끌면서 숙소로 향했다. 나 역시 무언가 가득 챙겨온 검정색 배낭을 힘겹게 메고, 동그란 안경을 추켜끼며 뒤따라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남우현의 요구 혹은 부탁에 의해 간다고는 했지만, 그 이후에 따로 조를 정하거나 했을 줄은 몰랐다. 다같이 있는 메신져 방에서 정해진 것 같은데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몇 방이냐? 하고 물었을 뿐 나는 그저 조용히 뒤에서 방을 정하는 그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남우현은 자기가 방장이었는지 열쇠를 들고 아이들을 지휘했고, 아이들은 꽤나 남우현을 따라 잘 움직였다. 312호!, 따라와. 하고 말하자. 아이들은 야, 가자. 하며 정말 자연스럽게 남우현을 따라 방으로 향했다. 나는 지나가는 그 아이들을 보며 쭈뼛거리며 숙소 복도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 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누군가 건드렸다.

  ㅡ ...너 뭐해? 안 가?
  ㅡ ........나 어딘지 몰라..

  일명 서점 친구, 호원이었다. 가끔가다 챙겨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또 오늘이네.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배낭 끄트머리를 부여잡은 내 손은 움직임이 그저 바빠졌고, 호원이는 입고 있던 점퍼 주머니를 막 뒤지더니, 곧 캐리어를 열어 자기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뻘쭘히 서 있는 내 앞에서 뭐 하는거지. 조용히 쳐다만 보고 있자 호원이 곧 캐리어에서 하얀빛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종이를 심오하게 쳐다보다가 곧 입을 열었다.

  ㅡ 너 남우현네 방이네, 312호.
  ㅡ ......아, 너, 너는?
  ㅡ 난 김성후네, 데려다 줘?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남우현이 방장이라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자기네 방이라는 것을. 여러 얘기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많이 친해진 줄 알았던 사이에 거리감이 확 느껴지자 순식간에 서운해졌다. 검정빛 배낭을 고쳐메고, 나는 잔뜩 서운함이 베인 목소리로 '내가 갈게, 너도 빨리가' 라는 대답을 내놓은 채 재빨리 걸음을 돌렸다. 호원이는 그래, 하는 답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자기네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혼자, 오른편 벽을 끼고 돌자 여러 방이 보였다. 문 앞에 큼지막히 써져있는 숫자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비교했다. 312. 호.. 312.. 만약에 그 방을 찾아서 혼자서 들어가도 잘 할수 있을까?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빠른 걸음으로 312호 앞에 도착했지만, 차마 벨을 누를수도, 노크를 할 수도, 그리고 무작정 문을 열 수도 없었다. 가만히 복도에 서 있을수만은 없으니, 벨이라도 한번 눌러보려는데, 갑자기 문이 덜컥 열렸다. 그리고 벨을 누르려던 순간이라 깜짝 놀라 손을 재빨리 내렸다. 눈 앞에는, 남우현이 있었다. 여전히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ㅡ .....야!, 너..!

  남우현은 나를 부르다 말고 한 손으로 머리를 받쳐댔다.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표현을 몸으로 표현한 듯 했다. 남우현은 곧 밖으로 한발짝 나온 채, 뒤에 열려있는 문을 한 손으로 닫아버렸다. 내려간 안경을 한번 더 추켜세우고, 남우현이 먼저 높은 언성으로 말을 이었다.

  ㅡ 내가 혼자 싸돌아 다니지 말랬지, 아까 312호 가자고 말한거 못들었어?
  ㅡ ....나는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잖아.

  무작정 화만 내는 모습에 되려 서운해져 비뚤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우현은 곧 한숨을 쉬더니, 아까와는 다르게 잔뜩 낮아진 톤으로 사과했다.

  ㅡ .....앞으로 그냥 따라오라고 하면 와, 반장이니까 내 말만 들어, 알았어?.. 그리고, 안 알려준건 미안하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줄 알았어.
  ㅡ ...괜찮아, 그냥...
  ㅡ 뭐가 괜찮아, 이 멍청아.

  남우현은 곧 내 이마에 오른손을 대고는, 제 머리를 앞으로 기울여 내 이마에 붙인 손을 따라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눈이 급속하게 커졌다. 안 그래도 작은 눈 커지면 못생겼는데, 나는 약간 벌려져 있던 입을 재빠르게 다물고,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있는 남우현의 눈을 피하려 애써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남우현은 조용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가까이서 입을 열었다.

  ㅡ 너 얼굴에 '나 서운해요' 라고 써져있구만, 못생겨가지고..

  나는 그 말에, 가까이 있던 남우현을 팔로 밀쳐내고서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그래, 잘생겨서 좋겠다. 나쁜 새끼.



   **


  숙소 식당에서 먹은 점심식사가 끝나고, 첫 코스는 불국사였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빠르게 밥을 먹고 숙소에서 필요한 것들만 챙긴 채 재빠르게 버스 앞으로 집합했다. 나야, 할것도 없고 달리 챙길거라고는 지갑과 핸드폰, 이어폰 밖에 없으니 조용히 먼저 와서 맨 앞자리에서 앉아있었지만, 쿵쿵 소리를 내며 빠르게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이 보이고, 남우현은 곧바로 나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맨 뒤로 향했다.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또 얼마나 피곤했는지. 가는 30분 동안에도 잠을 이길수는 없었다. 또한, 일어났을 땐, 호원이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내 몸을 밀며, 음, 하고 번쩍 눈을 떴을 때 오른편 창문을 쳐다봤을 땐, 우리 반 아이들이 벌써 다 내린듯 했다. 잠이 덜 깨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호원이의 손을 잡았다. 텀이 큰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내려오고, 몽롱한 정신을 깨기 위해 혼자서 뺨을 때리는데, 호원이가 급작스럽게 내 손을 붙들었다.

  ㅡ 왜 때려, 너 잘못한거 없는데
  ㅡ 음, 아니, 정신, 정신 차리라고..

  아직도 잠겨있는 낮은 톤의 목소리로 대답하자 호원이 미소를 지으며 그럴땐 그냥 기지개를 펴, 하면서 제 팔을 공중으로 쭉 내밀었다. 부르르 떠는것이 호원이도 조금 피곤했던 듯 보였다. 나 역시 호원이를 따라 팔을 공중으로 쭉 내밀었다. 피곤함이 달아나는건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렇게, 선생님이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내부를 설명하다가, 곧 지루해질걸 염려하고,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길 바랬던건지 조를 짜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라는 명령을 주었다. 몇몇 아이들이 짜여있는 조 표를 들고 누군가에게 달려갔고, 나는 멀리서 그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곧 혼자서 또 발을 옮겼다. 어차피 내가 찾을 부분은 아니니까, 조용히 감상했다. 봄이라는 걸 신호라도 보내듯 벚꽃이 발끝에 많이 떨어져 있었고, 곱게 땅 위에 앉은 분홍빛 꽃잎을 망치고 싶지않아 조용히 피하여 앞으로 향했다. 이왕 왔으니 문화재 감상이나 할까, 싶어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돌덩이 처럼 보이는 탑이 하나 눈에 띄었다. 표지판 앞에 써져있는 글귀에 의하면 우리나라 보물 61호, 부터 시작해서 문화재에 대한 여러 설명이 나와있었다.
  와, 보물 61호?, 나라에서 지정한 보물이라는 거구나, 신기해서 표지판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고 있는데, 주머니에 넣어놓은 전화기가 시끄럽게 받아달라며 울려댔다. 나는 곧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내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전화 올 곳이 없는데? 생각했으나, 이호원. 이라는 세글자가 적혀있는 순간 또 혼자 다녔다고 욕먹겠군.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ㅡ 응, 왜?
  ㅡ 너 또 혼자 돌아다니지, 어디야? 너 우리 조래.
  ㅡ 아, 나.. 사리탑 앞에, 미안, 그..
  ㅡ 내가 데리러 갈게, 거기 움직이지 말고 있어.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의 공통점은 제멋대로라는 거였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지 말만 하다 끊어? 나는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표지판과 보물 61호를 번갈아가면서 감상했다. 가족도 없으니 딱히 여행도 가게 되지 않았고, 집에서 하는거라고는 책을 읽거나 가끔 맛있는걸 혼자서 사다먹거나, 가끔 좋은 글을 읽으면 느낌이 와서 조용히 혼자서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작성해보는 것 뿐이었다. 그걸로도 내 인생은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오는 순간, 가끔은 혼자 여행을 다녀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적한 분위기 사이 여러 생각을 머릿속에 띄워놓았는데, 멀리서 호원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순식간에 호원이는 내 앞으로 뛰어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ㅡ 허윽, 야, 아, 힘들어, 너 이제부터 혼자 다니는거 금지, 나랑 단짝 해, 손 잡아.
  ㅡ 아, 미, 미안..

  다리를 구부정하게 서고, 두쪽 손은 무릎에 놓고 고개를 떨군 채 마구 숨을 몰아쉬는 호원이 곧 왼쪽 팔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조용히 손을 잡았다.

  ㅡ 하아, 우리, 그, 간식 지원비, 준데.. 그, 보물 61호 인가? 찾으면, 먼저 찾는 사람이,
  ㅡ ...61호?

  그래, 임마. 호원이의 대답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바로 뒤 있던 아까 유심하게 보던 탑을 가리켰다.

  ㅡ 저거, 저 탑 61호 인데..
  ㅡ 뭐?
  ㅡ 내가 방금 구경하던거, 표지판에.. 보물.. 61호라고..

  진짜? 호원이의 높은 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고, 진짜? 씨발? 야, 진짜? 대박, 마구 감탄사를 내뱉어대며 나를 와락 안았다. 나 역시 뜬금없는 기쁨에 그저 웃으며 호원이와 방방 뛰어대었다. 야, 김성규, 잘했어, 칭찬하는 말이 마구 나오고, 호원이는 안은 품을 푸른 채 내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진짜야? 하고 묻자, 호원이는 그래 임마! 하면서 소리를 쳐댔고, 빠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을 마구 부르는 그 순간에, 난 올해 들어서 가장 환하게 웃었던 것 같다.


   **


  저녁이 끝나고, 숙소에 다같이 모여서 선생님들은 자유시간을 줬다. 몇몇 아이들은 숙소에 있거나, 다른 방에 가서 아이들과 게임을 하고 놀았고, 우리반 남자아이들은 내가 찾은 지원금으로 인하여 다같이 몰래 숨겨온 술을 먹는다고 했다. 덕분에 남우현네 방에는 나와 남우현 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분명히 남우현도 술을 안 마셔 본건 아닐텐데, 나는 조용히 남우현과 반대편으로 멀찍이 떨어진 구석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집중하고 책을 읽으려는데, 남우현이 시끄러운 게임으로 자꾸 내 독서시간을 방해했다. 이어폰이라도 끼고 게임을 하라고. 둘이 있어서 입을 열게 되면 무슨 소리를 할까 고민이 있던 나는 입을 열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게임소리를 두어번 더 키우는 바람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남우현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ㅡ 게임 소리, 줄여.. 집중 안되잖아
  ㅡ 이제야 말 걸어주냐?

  미소를 머금고 핸드폰 화면을 꺼버린 채 바닥에 내려놓고 남우현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세워놓은 무릎에 책을 올려놓으며 얼굴을 가렸다. 일부러 글씨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신경쓰지 않으려 애를 쓰는데, 남우현이 곧 가까이로 다가왔다. 벌떡 서서 아래서 내려다보니, 나는 책 사이에 있던 얼굴을 살짝 들어 남우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남우현이 털썩, 하는 소리를 내며 바로 내 앞에 앉았다. 가만히 나를 쳐다만 보자,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재빨리 말을 생각해내어 남우현한테 말을 걸었다.

  ㅡ ...너는 왜 술마시러 안 가?
  ㅡ 니가 여기 있으니까.
  ㅡ ....?
  ㅡ 넌 나 없으면 안되잖아.

  그저 내가 혼자여서, 남우현이 자신이 있어줘야 된다, 라는식의 어투였겠지만, 순식간에 들키기라도 한거 같아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자신만만한 남우현의 말을 짓밟기라도 하고싶었던 듯 나는 오기로 대답했다.

  ㅡ 나는 혼자 있는거 더 좋아하는거 알고 있잖아, 그냥 가.
  ㅡ 진짜?

  남우현이 조용히 아까마냥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다시 읽던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짜로? 진짜? 하면서 얼굴을 더 들이미는 모습에 결국 나는 보던 책을 닫고 그 책으로 남우현 얼굴을 밀어내었다. 저리 가. 하고 투덜거리며 말하자 아프잖아! 하면서 남우현은 곧 제 볼을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빨리 술마시러 가. 나는 세웠던 무릎을 내려 아빠다리를 한 채 다시 책을 펼쳤다. 그 순간, 후드집업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핸드폰 기본 벨소리가 마구 숙소안을 울려댔다. 또 누구야. 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니 아까 전화와 똑같은 이름이 화면에 적혀있었다. 두번째로 깨달은건 인생에서 처음 사귄 친구 중 한명은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길 좋아한다는 거다.

  ㅡ 응,
  ㅡ 성규야, 니가 일등 공신인데 안와? 여기 피자고 치킨이고 맛있는거 무지많은데, 술 마시라고 안 할테니까 그냥 와, 아깝잖아!

  나는 조용히 알았어. 라는 대답을 끝으로 책을 덮었다. 너 갈거야? 하는 우현이의 물음에 호원이가 오래. 라는 말만을 남기고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


  나오는 순간 따라나오던 남우현은 나도 오랜만에 술이나 마실까? 하며 집업을 챙겨입었고, 반대 건너편에 위치한 301호 김성후네 방으로 향해 문을 열자마자 환호성이 그득히 들려왔다. 간식을 먹게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종종 딸려왔다. 이렇게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건 처음인데, 아, 어. 라며 건조한 대답을 내놓고는 나는 호원이 바로 옆에 위치해 앉았다. 남우현은 이 형님왔다! 라는 말로 내 뒤에 요란하게 등장했고, 남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반장! 반장! 하면서 구호를 외쳐대니 나는 조용히 의기양양하게 술판 가운데에 서있는 남우현을 쳐다만 볼 뿐이었다. 남우현은 곧 반장이라는 걸 티라도 내는듯 잘 먹어라! 하면서 한가운데서 박수를 치더니 곧 내 옆으로 자리했다.
  아, 왜 하필. 앉아서 조용하게 쳐다보니 남우현이 또 조용하게 귀에대고 속삭였다. 역시 내가 옆에 있는편이 좋지? 또 틀린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비뚤게 '아니' 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남우현은 그 예의 예쁜 미소를 지어보인 후 곧 아이들과 술판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난 예전부터 술에 경험이 없었으니, 그저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남우현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러대며 물이라도 마시라며 성을 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럼 물이라도 줘. 그러자 우현이가 가득 담긴 물잔을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조용히 받아들었다. 남자아이들이 반장이 해라! 건배! 하는 외침을 듣고, 옆에 남우현은 2학년 11반 화이팅! 이라며 소리를 쳐댔다. 다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화이팅! 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거의 전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쳐다보다가, 아이들이 컵을 꺾을 즈음, 조용히 술을 마시는 것 처럼 물을 마셨다. 그 순간,

  ㅡ 켁, 으윽.. 야..

  물컵으로 보이는 잔에 가득 담겨있는건 다름아닌 소주였다. 입에 넣자마자 알싸한 쓴 향이 밀려오며 물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나자마자 나는 반도 먹지 못하고 컵을 내려놓았다. 얄미운 남우현은 그런 나를 보고 마구 웃고 있었다. 사람을 엿먹여놓고..

  ㅡ 너.. 진짜 나한테 왜 이래?
  ㅡ 아, 아니 넌 뭔가 놀려먹는 맛이 있어서, 알았어, 미안 미안. 자.

  얼마나 웃었는지 눈꼬리에 걸린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리며 남우현은 바로 옆에 있던 컵을 내밀었다. 나는 작은 눈으로 남우현을 쳐다보다가, 곧 다시 내밀어진 잔을 의심없이 입으로 털어넣었다. 또 쓴맛이 혀를 강타했다. 두 번 속을 줄이야. 나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몇번이고 기침을 해대자 남우현이 당황했는 듯 등을 두드리며 야 괜찮냐? 하고 물었다. 괜히 기집애가 술 마시는 것 같아 나는 오기가 생겨 나머지 술을 마구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타는듯한 쓴 느낌이 목구멍을 쳐대고, 나는 결국 또 다시 기침세례를 퍼부어댔다. 으윽, 하고 숨을 몰아내쉬자 남우현이 초짜라며 날 비웃어댔다. 자기는 몇번 마셔도 괜찮다며, 두 잔 정도를 한꺼번에 털어넣는데, 또 자존심이 상해서 한 잔 더 마시려는 남우현의 잔을 빼앗아 입에 넣었다. 또 머리가 아파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고개를 푹 숙이자 남우현이 내 머리에 꿀밤을 놓으며 어르고 달래듯 말했다. 그만마셔 새꺄,

  ㅡ 우욱, 나, 안 못 마셔.. 진짜로.
  ㅡ 야, 그만해, 사실 나도 이정도 먹으면 힘들어, 임마. 또 쓸데없이 자존심 세울래?

  뭐야, 남우현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다. 자기도 두 잔 마셨다고 얼굴 빨개졌으면서, 나는.. 나는.. 조용히 남우현 어깨에 팔을 놓고 고개를 돌려 벽쪽에 얼굴을 대고 있는데, 너무 급하게 먹은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게 정신을 잠깐 잃은 것 같았다.

  술판이 끝났는지, 눈을 떴을때는 또 둘만 있던 방이었다. 고개쪽에 있는 배게를 느끼고 벌떡 일어나자, 술판이 끝난건 아닌지 텅 빈 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내 오른편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남우현이었다. 그러나, 또 머리가 어지러워 금세 고개를 떨궜다.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남우현이 그제서야, 괜찮냐? 하면서 비틀거리는 내 몸을 두 손으로 받쳤다. 아, 자존심 상해. 마치 달릴게 안달려 있는 듯한 그런 취급 이잖아. 억지로 멀쩡한 척을 하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이라 그런건가. 나는 아, 아, 몰라. 하고서는 결국 남우현이 아빠다리를 한 그 널찍한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제 모르겠어. 남우현이 그런 내 모습을 보다가,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ㅡ 너 술 처음마시지.
  ㅡ 응..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ㅡ 아니 그러게 누가 오기로 마시래? 장난이었는데, 쓸데없이 자존심이 강해.
  ㅡ 응...

  똑같은 대답을 반복적으로 대답했다. 남우현이 실실 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 이후론 머릿속에 들어오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 앞에서 이렇게 망가진 적도 없었고, 생각나는 건 그냥 남우현이 나랑 단 둘이 이 방에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용기가 생겼나.

  ㅡ ..난 사람이 싫어..
  ㅡ 알아,
  ㅡ 근데.. 이상해, 넌 사람이, 아닌거 같아. 그니까, 사람이 아니라구.. 넌.. 그렇지? 그러니까.. 너는 사람이 아니고...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우현이 아까의 웃음소리를 동반하여 물었다.

  ㅡ 내가 사람이 아니면 뭔데?
  ㅡ 너는, 난... 아니,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사람이 아니라서 좋은거야.. 내가.. 그치? 그러니까.. 내가 할 말은, 너가 사람이 아니라서, 난 너가 좋아.. 아니, 근데 만약에, 너가 사람이어도, 그러니까.. 좋아.. 너가 그냥.. 좋아.

  횡설수설, 혀가 꼬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아빠다리에 머리를 부비며, 어리광 부리듯이 말을 이었던 것 뿐이다.
  남우현의 나도 알아, 라는 대답이 들리고, 그대로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 안녕하십니깡

@ 늦어서 죄송해여.. 후아후아 회사에 일이 있어서 지금 매우매우 바쁘네요ㅠㅠ

@ 항상 봐주시는 여러분 사랑해여♡ 다음주 내로 봄 완결시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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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일등 내꾸
9년 전
독자3
헐 나도 알아? 남우현 니가 뭘 알아!!!!!!!!!!!!!!! 뭐야 이게 어떻게 된거죳?.....???? (패닉) 리얼 궁금..ㅠㅠㅠㅠㅠㅠㅠ저 궁금해 죽으라고ㅠㅠㅠㅠㅠㅠㅠ엉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 호원이 성규가 찾았다니까 신나하는 거 귀여워쥬그ㅡ으... 성규 술 마시니까 말 다하고ㅠㅠㅠ이거 나중에 우뜨카려고 8ㅅ8.... 엉엉 ㅇ궁금하면서 진자 걱정돼죽겜ㅅ넼ㅋㅋㅋㅋㅋㅋㅋ 아이 진짜ㅠㅠ 회사에 일이 많으시다니 재촉할 수는 없지만.... 보고 싶다.. 후 왔다갑니다 총총..
9년 전
독자4
우워후 여신자까님 얄루얄루!!!! 후.하. 취중진담 후.하.후.하. 성규 혼자 있는거 좋아한다고 우기면서 호원이랑 우현이가 신경써주니까 내심 좋아하는게 보여서 짱짱 귀여워요! 성규 관심 끌려고 게임 소리 빵빵하게 만든 것도 귀엽고요 엉엉엉엉 얘네 뭔데 이렇게 귀엽대요??? 그리고! 남우현 넌 대체 뭘 안다는 거얏! 빨리빨리 행쇼했으묜 좋겠어요 으엉엉엉
9년 전
독자5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티접속을 했는데 제리님 신알쪽지를 보고 바로 정주행했습니다. 브금도 그렇고 묘하게 힐링되는 분위기가 좋네요. 공부때문에 바빠 한동안 팬픽도 안보고 있었는데 이제 또 매주 기다려서 봐야할듯합니다^^ 전작부터 그랬는데 제리님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은것같아요. 공부에 조금 지쳤었는데 힐링하고 갑니다~
9년 전
비회원144.113
제리!!!!!!!!!!!!!!! 내사랑 ㅠㅠ 오랫동안 인피니트를 떠나있다가 올해 돌아왔는데, 홈을 못찾아서 가장 보고싶었던 제리님 찾을수가 없었어요 ㅜㅜ 인티에 계신거 기억하고 왔는데 8개월전까지도 계신거였나요 ㅜㅜ 제리님 너무 보고싶었어요 내사랑 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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