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다가도 감히 말하지 못할,
아이돌인 그 애 이야기.
#11. 마지막 주의 첫 날.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대충 방송으로 어떻게 그려낼지도 이야기가 끝났고, 촬영은 마지막 한 번만이 남았다.
메인언니는 승아언니의 의견을 받아들인것도, 안받아들인것도 아닌 것으로 입을 닫게했다.
매 주마다 나와 번갈아 그 팀을 맡게했고, 이후 방송도 해당 촬영 담당 작가가 맡게 했다.
다만 일주일씩 애들을 못본다는게 서운했는지, 다른 팀으로 출근해서는 불만만 늘어놓는다나 뭐라나.
그 이후 조승연과 제법 편해져서, 의미없는 대화들이지만 종종 카메라가 없다면 이야기를 잠깐씩 나누기도 했고,
옹성우와는 장난도 쳤더랬다.
아래는 그 사이 내가 메모장에 해둔 기록이다.
-넷째 주 촬영
옹성우는 지난 주 왜 또 안왔냐고 거짓말쟁이라며 장난을 쳤다. 그리고 여전히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촬영이 편해진건지 누구도 흉내 못 낼 말솜씨로 촬영장을 종종 웃겼다.
방송이 나간다면 제법 예능 쪽에서도 러브콜이 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표현에 솔직한 놈이라서 그런지, 얘도 조승연처럼 티가 나게 나와 함께하는 인터뷰에서는 더 편히 얘기했다.
매 인터뷰 내용을 듣고나면, 작가언니들이 나에게 인터뷰 잘한다며 칭찬해줬다.
내가 잘하는게 아니라 굳이 물어보지않아도 이들이 다 얘기하는거였는데. 히히
이 두 놈은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조승연은 여전히 눈이 자꾸 마주친다.
네 입으로 직접 내가 제일 좋다는 말을 듣고 난 후, 이상한 마음이 생겼다.
괜히 네가 다른 스텝들이랑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게, 내 마음이 막...
나만 보는 메모장인데, 여기다 쓰기도 창피하다.
괜히 계속 나를 제일 좋아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내가 너무 웃겨...ㅋㅋ
스텝들이 유독 조승연을 신경쓰는게 느껴진다.
조승연이 나타나면 스텝들이 다들 모이는게 티가 난다.
역시 될 놈은 다 알아보나봐... 이런 마음도 웃겨. 잘됐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꽁기한 마음이 들고 그래?
그래도 나한테는 조금 다른 얼굴이라 됐다. 흥.
-여섯째 주 촬영
한 주 또 못봤다고 그새 보고싶었다. 너무 반가웠다. 여전히 티는 못냈지만.
조승연이 제일 먼저 연습실로 들어왔다. 준비하던 스텝들이 잠시 나가고, 할일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기다렸다는 듯
나랑 둘이 남겨지자마자 다짜고짜 '잘 지내셨어요?' 했다. 또 심쿵했다....................후 얘는 늘 훅 들어오네.
하지만 내가 아무 말 없이 찍히고 있는 중인 카메라를 가리키자, 슬쩍 그 곳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에잇..! 하고 이어폰을 던지는 척 하길래 같이 웃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처음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굳이 말로 티내지 않아도 내가 찾고있는걸 기가막히게 내 앞에 놓는다.
정수기를 찾고있으면 정수기가 어딨다고 말해주고, 눈으로 젓가락을 찾고있으면 젓가락을 건넸다.
늘 나만 보고 있나 얘는? ㅋㅋ........어휴 증~말.
옹성우가 갑자기 워!하며 나를 놀래켰다. 안그래도 잘 놀라는데 너무 깜짝 놀라 뒤로 나가 떨어졌다.
신나서 가버리는 옹성우는 내가 뭐에 놀란건지 정확히 모르겠지. 영영 몰라야한다.
그 잘생긴 얼굴이 깜빡이도 없이 내 눈 앞에 들이밀어져서 심장 떨어질 뻔 했다는 걸.
이 메모장이 유출되면 어떡하지. 무섭당.
조승연은 초반엔 뒤에만 숨어있어서 늘 찾게만들더니, 이젠 제법 찾지 않아도 선두에 있다.
많이 나서고, 카메라 앞에 잘 보여서 좋다. 안그래도 성공하고 싶다면서 자꾸 남을 더 앞세워주는게 이해가 안갔는데.
착한건지 바보인지 모르겠달까. 아무튼 이제 좀 맘이 놓인다. 어쨌든 뭐라도 나서야 방송에 더 나가지.
애들끼리 수다떨다가, 카메라가 철수하니까 박지훈이 그런다.
이거 촬영 끝나면 저희 못보는거예요? 내가 네. 하자 조승연이 나중에 사적으로 만나고싶다고 했다.
옹성우가 놀러오라고했다. 여길 왜 놀러와요. 하며 나갔더니 옹성우가 작가님 참 한결같으세요. 했다.
문을 닫고 나와서야 참던 웃음을 소리내서 뿜었다.
그냥 이 인연을 방송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아준다는게 고마웠다.
이제 한 번 남은건가. 아쉽다. 이렇게 정 들 줄 몰랐는데.
구구절절 많이도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별 거 안썼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잊혀졌고, 시간이 갈 수록 더 아까웠지만 이미 흐릿해져버렸다.
특별한 것도 없는 일이 뭐 얼마나 기억에 오래 남겠는가.
나름 초중딩 아가들 팀에도 정이 들어서, 그저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도 몰래 사탕 하나씩을 쥐어줬었다.
너희들도 꼭 잘됐으면 좋겠다.
지난 주, 내가 없던 촬영장에서 이 팀은 '데뷔 확정' 타이틀을 얻었다.
기쁜 현장에 함께 할 수 없었다는게 조금은 아쉽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나는 기뻤다.
회사 대표가 계속 고민하던 와중, 어차피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조금이라도 팬들이 생길텐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지도 쌓은 후 방송 종료 즈음 해서 데뷔를 시키려는게 목적이었다. 머리 잘썼네, 싶었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대충의 컨셉과 기본 준비들을 진행하고 있던 상태였더랬다.
그래서 이번주는, 아주 바쁜 한 주가 될 예정이었다.
회사와 같이 논의해서 한 주 내내 준비할 스케줄을 촬영하는 3일로 몰아넣었으니.
"안녕하세요~"
숙소에서는 준비하고 말 것도 없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일어나서 나와야했을거라,
막내를 숙소에 두고 나는 먼저 샵에 와있었다.
오늘은 이들의 회사가 정한 컨셉에 맞을만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보는 날이었다.
이미 애들 도착 전부터 촬영은 진행 중이었기에, 도착한 아이들은 내게 눈짓으로만 아는척을 한 후
자연스럽게 우리가 없는 듯 잘 지나쳤다.
"승연이는 애들에 비해 조금 쎄게 가도 될 것 같은데..."
"좋아요, 센 거."
"염색은 하고싶니? 일단 그냥 물어보는거야."
"아뇨."
"오..하하, 확실해서 좋네. 그럼 지금 머리는 그냥 생머리니까 넘기든.. 음. 기장은 한 이 정도...오케이."
다 좋아요, 네, 네 할 줄 알았는데, 나름 스타일은 확실한가보다.
신기한게, 어떨 때는 다 남들한테 맞추고, 배려를 너무 하면서 피해 안주려하면서
본인 의견은 누구보다 확실하게 직진하며 어필하기도 하고. 예를 들면 내가 제일 좋다고...푸흣. 뭐 그런거.
알 수가 없다. 참 신기한 애다.
"성우는 뭐, 해보고 싶은 스타일 있어?"
"노래 들었을 때, 저는 막 빨간색! 그런게 생각났고, 저도 쎈거! 해보고싶어요."
사실, 나는 누구보다 조승연이 데뷔를 가장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옹성우는 데뷔 확정 얘기에 이후 엎어질 경우 또 실망하지 않으려 덤덤하거나, 덤덤한 척을 하거나 일 줄 알았다.
하지만 옹성우는 무려 눈물까지 보였다고 했다. 데뷔조에 드는 것과 확정은 확실히 달라서일까.
감정표현 투명한 놈 답게, 지금도 누구보다 제일 신나보였다.
"지훈이는,"
"저도 쎈거요! 완전 멋있게요!!!"
"귀여운 건 어때?"
"아앙~ 저 귀여운거 싫어요오!"
"귀여운거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에에엥~ 저 안귀여워요!"
원장쌤을 비롯, 함께있던 보조쌤들 전부 다 웃고 있다.
제일 귀엽게 생긴 애가 에엥~ 하면서 안귀엽다니 누가 안웃을 수 있겠는가.
아, 있다 안 웃는 애. 옹성우는 웃지 않았다.
"뭐 맨날 에에엥~ 하면서 자기 안 귀엽대."
"저 멋있는거 하고싶어요오~"
"해라, 해. 멋있는거 해. 멋있게 하고 에엥~아앙~ 해라."
"혀엉!!"
모두 소리내어 웃고 있다.
늘 그랬지만, 편해지고나서부턴 유독 더 함께 눈 맞추고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 마음이 변해서인가.
조승연도, 옹성우도. 저들끼리의 대화에서 웃다가도 한번씩은 꼭 우리와도 함께 웃었다.
그저 이들이 주인공인 이 이야기에, 늘 나도 함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아이들이었다.
나는 웃으면서도 이런 시간들이 이제 마지막이라는게, 더 이상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는게 괜히 안타까워 마냥 기분 좋게 웃진 못했다.
-
"우와, 완전 연예인같다."
내 속마음을 옆 피디님이 대신 얘기해줬다.
지훈이는 펌을 하고 있다고 했고, 옹성우는 염색 중이었다. 조승연은 살짝 컷을 하고 머릴 넘겨서 제일 일찍 끝났는데,
메이크업도 같이 해서 정말 아이돌같았다.
"헤, 괜찮아요?"
"완전 완전!"
쑥쓰러운 듯 뒷목을 만지며, 조승연은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벌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입에서 '와아-'소리가 작게 튀어나왔다.
와, 진짜.. 화장발이 여자만 있는게 아니야 정말. 정말로. 대박, 우와.
조승연 완전 멋있어.
"어색하네요.."
"와, 진짜. 짱이예요."
"푸하, 짱이예요?"
피디님이 잠시 자릴 비우자, 조승연은 아예 자릴 잡았다.
심지어 피디님이 어디선가 사탕을 가져와 먹고있길래, 어디서 났어요? 한 마디 했을뿐인데 그걸 들었는지 들고 와서는.
평소랑 똑같은데, 얼굴이 좀 달라졌다고 나는 이 아이가 조금 어려워졌다. 눈도 못쳐다보겠다. 와, 뭐야 이런 기분.
"이번 주가 마지막 촬영이죠?"
"네.."
"아쉽네요, 재밌었는데."
"..재밌었어요? 힘들지 않구?"
"전 좋았어요."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예요?"
"...그냥, 여러분들에게 이 시간들이 힘들거나 안좋았던 기억보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잠시 눈을 맞추려 고갤 들었다가도,
와, 얘 눈빛이 원래 이렇게 그윽했나. 역시나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갤 돌린다.
몇 살 어렸더라. 이런 어린애한테 이렇게까지 설레서야. 어후. 나도 얼빠인가봐.
"작가님"
"네?"
"저희는 끝나고 만날 수 없어요?"
"...네?"
뭐야, 이런 얼굴로 그런 말 하지마!
심장이 거의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러다가 인기척이 들리고,
"......"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나는 혼자 벌떡 일어나 마침 있던 책장으로 돌아 책을 고르는 척, 딴짓을 했다.
뭐지....? 지금 나 되게 이상했는데...?
등 뒤가 굉장히 따가웠다. 아직 아무 일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 내 행동에 내 스스로가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등 뒤도 따갑고, 이 적막이 참을 수 없어 살며시 뒤를 돌았다.
"...뭐하세요?"
옹성우였다.
순간 조승연의 볼이 크게 부풀었다가 '푸하하' 소리와 함께 가라앉았다.
진짜.....죽을까..........
그 전에 연습실에서 나도 모르게 웃었던 게 오버랩되는데.
너무 창피했다.
"뭔가 지금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는데, 뭐지?"
"아하하...!! 아 배아파."
하.... 진짜..... 나가 죽어야지...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너무 창피해서 걷는 동안 세게 쥔 주먹으로 머리를 몇 번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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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는 분들, 댓글달아주시는 분들, 모두모두 너무 감사합니다
이번주말 쯤? 올게여
그 때 쯤이면 2막이 시작되겠져? (2막은 개..뿌..ㄹ...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