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다가도 감히 말하지 못할,
아이돌인 그 애 이야기.
#12. 이게 다 꿈은 아니었을까.
굳이 그 상황을 자세히 쓰고 싶지 않다.
그 사건 이후 찬바람 쌩쌩불던 그녀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내가 있을게. 나랑 있는거 불편하면 가도 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조금만 더 철이 없고 뻔뻔했음, 난 계속 같이 있었을거다.
입 밖으론 낼 수 없지만, 어차피 조승연은 날 더 좋아해. 하며 대놓고 나와 더 친근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거다.
하지만 그건 정말 후배로서 싸우자는거나 다름없다.
여기서 메인언니한테 이르는 것도 웃기고, 어차피 결정권자는 내가 아니었다.
이 하루로 인해 남은 세 달을 더더욱 지옥으로 살기엔, 나도 사회생활을 해야했다.
조승연이 내가 평생 놓치고 싶지 않은 '남자'도 아니고.
단지 그냥,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어떻게 마지막이 이래. 어떻게 마지막까지 인사 하나를 못 하고 헤어져야하지.
"으이이익...! 열받아!!!!!!"
"그만 먹어라잉."
어떻게 됐겠는가. 나는 하필 짐도 녹음실 안엔 없어서 애들 얼굴을 다시 보지도 못한 채 귀가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를 불러내 낮부터 술을 먹고 정확히 저녁 7시밖에 안됐음에도 만취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그동안 눈치 보면서 말 한마디 당당하게 못했는데, 내가 뭐라고 번호 하나 주지도 못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 몇 번이나 민망하게 거절당한 조승연은 뭐가 되고, 그래도 나름 정들었는데, 아무와도 작별 인사마저 못하는건 뭐가 이렇게 잔혹해.
"어휴, 선배들은 다 왜 그모양이냐."
"짜증나 진쯔아......아!"
오랜만에 오바해서 달렸더니 알딸딸하다.
집에 가는 길, 어지러운 와중 SNS 피드를 확인하다가 문득 조승연도 SNS를 할지 궁금해졌다.
검색해본다.
어? 있네.
새삼 아는 얼굴을 이런식으로 보려니 신기한 기분이다.
방송촬영 시기부터는 아무것도 업로드하지 않아보였다. 와, 이런 머리스타일이었을 때도 있네.
하......진짜.....
번호 알려주는게 뭐라고... 그래봤자 연락을 뭐 얼마나 할거라고.
다시 짜증나서 울컥한다. 열받아. 아오!
그러다가 새삼.
"...."
사실 연예인들한테는 DM이 많이 올거라고 생각하지만,
조승연은 뭐, 얼마나 가겠어. 한 번 보내 볼까...?
취해서 그런가.
없던 용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메세지를 쓴다.
[어쩌다보니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끝났네요... 마지막엔 번호라도 줄 수 있을 줄 알았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 잘했다. 칭찬도 당당하게 한 번 해보고 인사라도 하고 헤어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냥, 제가 주기 싫어서 안 준거 아닌거만 알아줬으면 좋겠어서,
볼지 안볼지 알 수도 없는 이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저도 참 웃기네요
보던 안보던, 이렇게 말고는 전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보내요.
저는 그동안 말도 제대로 못해본 상황에서 승연씨를 보면서 알 수 없게도 의지를 많이 했고,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데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저도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늘 까칠한 저에게 먼저 인사도 해주고, 말도 잘 들어줘서 고마웠고, 미안했어요.
저를 싫어해도 괜찮으니, 그저 저는 여러분 모두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제 볼 일 없겠지만 언젠가 보면 반갑게 인사해요, 행복해요!]
택시 안에서 집에 가는 동안 내내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다.
점점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끝까지 썼다. 그리고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정신을 놓고 잠이 들었다.
그랬다.
저렇게 보낸 줄 알고.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메세지를 보낸 줄도 모르고 오후를 다 보냈다.
"악!!!!!!!!!!"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생각이 났다.
메세지를 확인한다.
[어쩌다보니 맞ㅣㄱ막 인사도 못ㅎ라고 끝낫니요ㅠㅠㅠㅠㅠ... 마지막엔 번호라도 줄 수 오ㅓㅅ을줄 알았ㄷㅎ,
그동안 곳ㅅ앵만ㅇㅎ았다, 잘했다. ㅊ잉ㅇㅇ어찬도 당당ㅎ하게 헌번 햏하조고 인사라도 하고 ㅎ헤엊릴수 있을줄알앗어여ㅛㅗ]
.......
..........
이.....게 뭐지?
오타가 났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누가봐도 만취한 진심 개.쪽.팔.린 수준의 흑역사 생성이었다.
속전속결로 메세지 취소를 누르려다,
...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그동안 속이고 솔직하지 못한 행동으로만 지냈던 내가,
창피하고 또 창피하지만, 술을 빌어 처음으로 보인 진심이라는 사실이 그러고 싶지 않게했다.
"...그래, 뭐 볼지 안볼지, 이미 봤을지 어떻게 알아."
못보든, 보든.
그냥 두자.
어차피 다 끝난 마당에, 창피 한 번 당하면 어때.
처음으로 내비친 진심을 삭제하자니, 그러면 앞으로도 보일 일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 촬영이 끝난 이후로 작가들은 전부 한가해졌다.
집에서 쉬며 출근은 일주일에 한 두번 했다.
그렇게 첫방송날이 되었고, 그간 시도 때도 없이 SNS를 확인했지만 아무 답장도 오지 않았다.
봤는데 씹힌건지, 아예 안본건지, SNS 자체를 안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와, 분위기 봐"
메인 언니의 남편분이 하시는 바에서, 스텝들이 모여 첫 방송을 보기로 했다.
전부 뺄 수는 없어서 명당이라는 루프탑을 빼주셨다.
심지어 그냥 TV도 아닌 빔 프로젝트로 거의 영화같은데서만 보던 모습에, 은은한 조명들에, 야경에. 정말 환상적이었다.
"어? 달아."
"네?"
"니 번호 승준이 알려줘도 돼?"
"....승준이요?"
갑자기 아가들 팀에서 함께했던 언니가 그런다.
승준이는 아가들 팀의 제일 맏형이었던 16살 친구다.
"승준이가 왜 제 번호를..."
"글쎄?"
"아니 근데 그게 아니라 연락하고 계셨어요?"
"응."
헐.......
다시금 울컥한다. 나 빼고 다 연락처 주고받고 다 연락하고 지내고 있었던게 분명했다.
아오!!!!!!!!!!!!!! 진짜 나도 줄 걸. 그냥 물어볼 때 줄 걸. 두 번이나 물어봤는데 나만 안주고 그걸..!!!
...아니 근데 승준이가 내 번호를 왜 묻지?
승준이랑은 별 접점도 없었고 얘기를 해본 적도 거의 없다. 그래도 간만에 듣는 이름이라 반갑네.
"어, 시작한다 한다!!!"
첫 방송이 시작됐다. 오늘은 술을 자제하기로 한다.
한 번 실수는 그렇다쳐도, 두 번이나 그런 메세지를 보내기에는 너무 진상인데, 방송 보고 나면 또 울컥해서 보낼 일이 다분했기에.
"어우, 이 팀은 진짜 훌륭하다. 비주얼 봐."
"조승연 화면에 저렇게 잘 나왔어? 대박. 옹성우 봐."
나는 인증샷을 찍겠다며 폰을 들었다. 어, 배터리가 별로 없네..
다른 팀 작가들이 애들을 보며 연신 감탄하고,
나는 이미 데뷔해도 될 만한 조합이긴 하네. 하며 웃었다. 내 모습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데, 괜히 내가 조금 간지러웠다.
그리고,
보고싶었다.
얘들아. 잘 있는거지? 피곤해서 지옥같던 저 때가 그리운 날도 오는구나.
조승연은 화면에서도 계속 어딘가를 힐끗거렸다. 눈알이 데굴데굴 계속 돌아갔다.
저 시선 끝에 내가 있으려나.
그런 날이 올까,
저 때의 내 생각들이 진짜인지 확인 할 수 있는 날이...
바람도 시원하고, 멋진 야경, 맛있는 음식들.
괜히 마음이 간질거리는 기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심각하게 화면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방송이 끝났다.
"아, 너무 재밌는데?"
"지금 커뮤니티 반응도 대박이에요."
"수고하셨습니다!!!"
다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차게 박수쳤다.
뿌듯하고 즐거웠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그 날 나를 그렇게 내쫓은 덕에 마음이 풀린건지, 승아언니도 이제 내게 찬바람 불진 않는다.
방송 끝난 후, 이제 술에 집중하며 서로 지난 날을 회상하느라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술은 겨우 맥주 반 잔 입에 댔는데도 나도 흥이 올라 기분이 좋았다.
[지이잉-]
카톡이 온다.
푸하하 웃으며 슬쩍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 승연이예요 메세지 감사합니다. 이제 확인해서 너무 늦게 연락드려요!]
어......?.....어?????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가 올라온다.
차마 핸드폰을 들 생각도 못하고 벙쪄서 그대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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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어주시는분들 감사해요
이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용..>_<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돌과 연애라도 함 해봤어야하나 (?)
제 소소한 바람은, 그냥 있을법한 얘기를 쓰고싶어서, '글'임에도 답답한 마음 없지않습니다 ^_ㅠ...현실에 있을법하게 답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