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어] 아저씨, 요즘 수갑이 참 차갑죠?
“아저씨 나랑 만나볼 생각 없어요?”
갓 스물의 청년과. 초등학교 3학년. -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조합이다.
네가 살던 집에 내가 얹혀살고 있었다. 그랬지. 하숙집에 얹혀살 듯 – 나도 한국에 유학을 와. 우리 엄마와 친했던 아줌마네 집에 싸게 할인받아 사는 거랄까. 너는 스무 살의, 한창 청춘의 정점에 서 있었던 나에게. 너는 ‘아저씨’라고. 버릇없게도 새우깡을 씹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말을 내뱉었었는데. 그때의 모습도 어이없게 생각이 나네. 여튼지간에 초등학교 삼 학년의 네가, 단순히 나는 너에게 한국어를 조금 알려줄 뿐이었는데. 점점 나를 향해 마음을 열더니, 그때 다름 아닌 고백을 하던 것이었다. 그때의 너는 밀크 캬라멜을 씹고 있었어. 나는 캬라멜 마끼야또를 근처 스타벅스에서 사온 것까지. 모두 기억이 난다.
그저 어린애가 하는 헛소리였다면 그냥 그때 네가 그랬어 – 하고 장난스럽게 넘겼지. 지금에서 이제 와 이걸 심각하게 짚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헛소리가 아니라, 정말 그 때 이후로. 한 달 간격으로 아저씨 좋아해요 –라는 이딴 소리를 해 대었으니까. 다행히도, 다행히도 너희 부모님은 ‘블레어가 아직 어려서 아저씨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요’라고 나를 아저씨라 칭하면서 받아들여 주셨어. 왜 너희 부모님까지 나를 아저씨로 부르는 건지 기분이 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리고, 또 귀여웠던 너이기에 – 나도 너희 부모님처럼 처음에는. 너의 끊임없는 애정공세를 그저 받아들여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의 끊임없는 애정공세는 어느새, 무섭게도 - ‘하지 않으면 어색한 것’으로 바뀌었더라.
문을 열어본다. 너희 어머니는, 평소처럼 나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난 ‘평소’ 의 일리야가 아니야. 그래, 평소의 일리야 벨라코프가 아니었다.
너희 어머니는 쿠키와 우유를 가져오며 – 웬일로 정장을 다 입으셨냐고. 때마침 블레어도 아침부터 정장을 찾던데, 어디 파티라도 가는 거냐고 내 앞에 그 접시를 내려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대강 허리를 굽히고 인사했을까, 아니라고 손을 절레절레 내저어 오시더라. 으으, 긴장돼. 아무래도 긴장감이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아. 바지 안에 구겨져있는, 이 종이를. 내밀기가 겁이 난다.
때마침 네가 나왔다. - 어어. 엄마 쿠키 구워줬네!. 하고 방긋, 미소를 지으며. 개구장하게 초코칩 쿠키를 주워 먹는다. 너는 쿠키부터 보냐, 내가 이렇게 왔는데. 그저 네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너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너는 쿠키를 네 손에 한 움큼, 집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선 – 어 아저씨다!. 하고, 나에게 곧장 달려와 옆구리에 폭, 붙었다.
너희 어머니는 휘둥그레 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 아니. 저는 남편이 있는데, 라 말끝을 흐려서. 당황했을까. 농담이라고 두어 번 웃으시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더라. 아 뭐야. 깜짝 놀랐다가, 안도한 탓일까 조금 긴장감이 사라진 것 같아. 그나저나 블레어의 장난기는. 블레어네 어머님을 닮은 거였구나. 싶다.
후, 한숨이 나온다. 이제 정말로 말할 타이밍이다. 블레어, 나 용기 내 볼게. 열 살 때부터 시작한 너의 구애를 – 내가 최종적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블레어는 여전히 쿠키를 씹으면서 나와, 그리고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어. 네가 속으로 나를 응원하고 있다고 믿고, 후우. 힘을 내 보려고 한다. 그러니까요 어머니 -
“아드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순간 블레어가 크흡, 하고. 헛기침을 해 와서 깜짝 놀라 바라보니. 아 왜 이리 아저씨 같은 말을 해요 아저씨 –라며. 무릎을 꿇고 깔깔 웃고 있더라. 이게 그렇게 아저씨 같았나. 전형적인 – 정말 전형적인 청혼 멘트잖아. 여, 여기 반지까지 했어요!.라고, 쓰러져있는 블레어의 팔목을 잡아 이내 커플링까지 어머니께 보여주셨는데. 어, 어. 어 – 맞아. 놀라셨겠죠. 그렇죠. 사실 저도 얘를 좋아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진짜로요.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들 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 여차여차해서 사귀게 됐고. 결혼까지 하기로 했네요. 어 - 블레어가 반한 시간요?, 블레어는 열 살 때부터 절 좋아한 거. 아시잖아요. 뭐, 뭐. 제가 반한 시간요? 이거 설명하자면 긴데. 어 우선 어머님, 쓰러지시겠다. 앉기부터 하세요 앉기부터.
십 세.
세상에, 내가 무슨 잘못한 거라도 있을까. 막 라면을 끓여 먹고 있던 나였는데. 혹시나 가스불을 이상하게 만지거나 그랬나. 나도 깜짝 놀라서 바로 후다닥, 달려갔었을 것이다. 일리야 씨 – 일리야 씨.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른 아줌마는 이내 문이 열릴까. 바로 버선발로 집 안으로 – 남자 혼자 사는 그 집안으로. 조심성도 없는 아줌마지. 그대로 들어와서는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말을 속사포로 내뱉더라.
속사포로 내뱉는 것도 내뱉는 거였지만, 헐레벌떡 온 탓에 히끅거리는 숨소리도 섞여 아줌마의 소리를 정말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냥 ‘아줌마,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라는 말 밖에는 아줌마가 하는 소리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저 아줌마를 달랠 수밖에 없었는데. 조금 숨이 멎었을까. 아줌마는, 이내 내 어깨를 잡아오더니. 이 아줌마 왜 이러냐고 – 당황할 차에. 다급히도 말했지.
망할 그 꼬맹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학교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에 가라는 건 가르치지 않는 건가. 동네도 크지 않고, 또 서양인이다 보니 튀는 외모니까, - 거기에다가 한국말도 어눌하니. 분명 길을 잃은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응, 길을 잃은 건 아닐 거야. 만약 길을 잃은 거였으면, 금방 집을 찾아왔겠지. 이 근처에 외국인이 나하고 녀석, 그리고 녀석의 엄마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제발 녀석의 목소리라도 들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들리지가 않았다.
결국 근처 경찰 아저씨를 보았다. 인사를 했다. 여기는 우리가 맡을 테니까, 당신은 저쪽을 둘러봐 달라고 하더라. 뭔가 자기네 일을 떠맡기는 것 같은 오묘한 느낌이 들었었지만. 우선 그런 걸 따질 틈이 없었지. 알았어요, 알았어요. 대강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주고 걸음을 옮겼다.
정말, 머리카락이 온통 흐트러졌다. 바람이 분 게 아닌, 내가 너무나도 빠르게 달려가서. 마치 강한 바람이라도 쐰 마냥 머리도 장난 아니게 흐르러졌어. 한창 녀석을 찾고, 찾고, 찾고. 결국 안 나왔을까. 시간은 벌써 열두시. 두 시간이나 지난 시간에 체념 비스름한 걸 하는데 -
넌 정말 그에 맞춰. 기막힌 타이밍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뭘까. 엄마가 네가 싫어하는 피망이라도 먹이기라도 했니.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와플을 먹지 말라고 했니. 너희 엄마가 그렇게 걱정하시는데 무슨 엄마가 싫어. 다시 한번 – 꼬맹아. 나 일리야 아저씨야.라고 성명을 밝혀주니 너는 – 그때 서럽게 울던 그 꼬맹이는. 내 이름을 밝혀주자 다시 울음소리를 멈추더라. 솔직히 나도 놀랐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응 나한테 항상 경계하던 꼬맹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얘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어쨌든. 꼬맹아 나와봐. 라 이 기세를 몰아 말을 했을까, 정말로. 조그마한 체구의 녀석은 제 머리통부터 차례로 엉금엉금 기어 개 집에서 나왔다.
눈이 퉁퉁 부어있고. 얼굴은 온통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정말이지 – 얼마큼이나 울은 거야. 학교가 한시에 끝났으면. 장장 아홉 시간은 여기서 울은 걸까 - .
“아저씨는 외국인이라 왕따 안 당했어요?”
아, 아아. 설마 이 녀석.
네 딴에선 돌려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로 딱 와 닿았었다. 아, 얘 지금. 애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고 있구나.라고. 녀석의 그 한마디를 듣고 잠시 표정이 좀 관리가 되지 않아서, 미간을 조금 좁혔었을까. 녀석이 다시 아저씨 -라고 부를 때에. 우선, 급히. - 조금 싸이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스크림 가게부터 갔었다.
우선 대답 대신 녀석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녀석은 계속 – 아저씨는 왕따 안 당했냐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중에도,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중에도 물었었지만. 우선 그거나 먹어 대답해 줄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이내 와구와구, 바 아이스크림을 연신 씹어먹더니 말해주세요!.라고 눈을 반짝였다. 확실히, 울음은 멎었네. 네 눈물이 들어간 것 같아 보였으니까 이제 말해줄게. 마음이 가라앉힌 상태에서 하는 대화가 제일 기억에 남는 법이야. 암,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아저씨는 -
“인기가 진짜 많았지”
아저씨는 잘생긴 것도 아니잖아요 –라며 너는 꽤 솔직한 이야기를 해온다. 허,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내가 잘생긴 게 아니라고? 하며 얼굴을 들이미니까. 너는 ‘진짜 웃기게 생겼다아!’ 하고 조막만 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더니 꺄르르 웃어대더라. 야 , 야 잠시만. 잠시만 – 너 지금 방금 전에 사람 잘못 건드린 것 같아.
꺄르르, 웃음을 멈춘 너를 바라보니. 완전히도 네 얼굴에 울음기를 거두었다. 네 얼굴에 울음기가 다 가셨다. 방금 전에 그렇게 대성통곡을 했던 애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 그저 피식, 피식. 웃음기만 네 얼굴 곁에 맴돌았다. 벌써 시간은 새벽 한 시. 너희 어머니는 대충 달래주고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이제 한번, 네 이야기를 들어볼 때가 된 것 같아.
학교 많이 힘드냐 꼬마야 – 넌지시 던지니 너는 대답이 없다. 네 쪽으로 살짝, 눈만 흘겼을까. 너는 꼿꼿이 나를 바라보려 세웠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 흐음, ‘학교’라는 곳이 그렇게도 싫은 것일까. 하긴, 너는 어린 나이에. 그것도 초등학교 3 학년이면 – 저학년이야. 얼마나 어려. 어린 나이에 낯선 한국이란 나라에 와서, 분명 반에도 푸른 눈을 가진 이는 너 밖에 없었을 텐데.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이렇게 어른이 돼서도 외롭고, 또 힘이 드는데. 어린 나이를 가진 너는 얼마나 힘들까.
아무래도 학생들 사이에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듯 보였다. 그러니까 방금 전에 왕따 어쩌고 이야기를 꺼낸 거겠지. 야 꼬마야 –라고 너를 불렀을까 대답이 없어, 꼬마? - 하고. 다시 너를 부르는데 대답이 없고. 또 인마 꼬마야, 야 꼬마 자식아. 하는데도 대답이 없더라. 그리고 한창의 정적. 이어 ‘야 블레어’라고 불렀을까, 너는 – 네에. 라 기어 죽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십 팔세 – 그러고 보니 십 세, 그리고 십 팔세, 우리의 사이에 큰 진전이 있었던 날은 뭐 이리 욕 같을까. 하긴,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수갑을 차도 이상하지 않을 일인데. 이렇게라도 욕을 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 어쨌든 십팔 세의 너. 여전히 나는 너의 윗집에 살고, 십 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어엿이 병원에 취직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일까. 팔 년 만에, 엄청 성장한 너만큼이나 나도 마냥 가만히 있지 않고, 달라졌긴 달라졌다.
그래, 나는 직장인이고. 돈도 잘 벌고. 바빴다. 그리고 잘생기기까지. 여기까지 딱 병원에 놀러온 너에게 말을 해 주었을까. 오랜만에 보는 – 교복을 입은. 너는. 송곳니를 보이며 에에에에 – 하고 입을 떡 벌리더라.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진짜. 솔직히 예전부터 계속 강요하듯 들었던 말이지만 – 아저씨는 잘생긴 사람이 아니야. 내가 훨씬 잘생겼죠.라면서, 이제 의사선생님이라고 불러봐. 선생님이라고.라며 녀석에게 호칭을 바꾸기를 강요했지만, 녀석은 아저씨는 단순히 ‘아저씨’에서 ‘잘난 아저씨’로 바뀌었다고. 참 사람 착잡하게 만드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제 내가 삼십 대를 달려가고 있었으니, 네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큰 반박을 하지 못하는 게 너무 슬퍼.
그래서, 블레어. 왜 왔어.라고 물어보니 너는 그냥 병원 구경 왔어요.라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흠, 하고 어색히 고개만 끄덕였지만. 맞아, 그건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그때. - 그 대답이 그렇게 이상했었어. 내가 예상하는 대답을 해 주길 바랐었건만, 너는 그것만 쏙쏙 피해 무미건조한 대답만을 내게 해 주었다.
요즘, 요즘의 일주일 동안, 너는 내게 팔 년 동안 입에 달고 살던 ‘좋아해요’ ‘아저씨 보러 병원 가고 싶어요’라는 소리는 물론, ‘아저씨 눈 왜 찌푸려요, 내가 너무 빛나서?’ 이런 능글맞은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도 너를 대하는 게 어색해졌단 말이지. 네가 평소처럼 이렇게 다가와서 장난을 걸었다면, 나는 욕을 해 주거나. ‘공부나 해라’같은 고정적인 대답을 해 주었을 텐데. 너에게 넌지시, 요즘은 왜 좋아해 타령을 안 하느냐면서. 장난스럽게 물었을까.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반으로 접으면서 - ‘아저씨 포기하려고요’라는 말을 내게 해 주었지.
마치 그 말이 화살촉으로 변해 심장을 푹, 하고. 쑤시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어. 왜 네가 변하겠다는데.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겠다는데. 왜 이러는지. 무진장, 엄청나게 - 혼란스러웠다.
너는 나의 심장에 화살을 쑤셔 박고서는 아저씨 말고, 이젠 병원 간호사 누나 꼬시러 갈 거라면서 내가 앉아있던 그 진료실을 나와 뽈래뽈래, 도시락을 들고서는 돌아다녔다. 네가 나가느라 열린 문 사이로 네가 간호사에게 – 이거 드세요. 이것도 맛있어요!라며 도시락 반찬을 건네는 그 꼴이 언뜻 보인다. 입술이 절로 깨물렸어, 왜 – 왜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절로 질투가 나더라.
나는 너를 ‘친구’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너는 열 살 때 내가 너에게 건네어줬던 그 손을. ‘친구’가 아닌 ‘연인’의 의미로 잡았다. 그래서, 그 잘못된 것을 너는 열여덟이 되고 나서야 고치려고. 나에게 다시 ‘친구’가 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나는, 하지만 지금 나의 모습은. 영락없이 그것을 거부하려고 하고 있어. 네가 나를 포기했다는데, 기분이 이렇다는 건. 나도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느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기분이 엄청 이상해지더라. 손목이 아려온다.
다시 너를 바라보았다. 간호사에게 이리저리 꼬리치고 다니는 네 모습에 짜증이 났다. 뭔가 마음을 정리하고 보니까, 마음을 정리한 후 너를 바라보니까.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거슬리더라.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너에게 다가갔을까, 너는 내가 다가오는 인기척 하나 못 들키고서는. 막 대사도 – 기가 막히게. ‘누나, 누나 내가 먹여줄까요? 아 – 해봐요 아 - ’라면서. 오히려 제가 입을 벌리고 있었어.
순간 너의 뒤통수를 팍, 손바닥으로 쳐 내었다. 정말 순식간에, 또 순간적으로. 너는 반동에 의해 휘청, 하고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가 버렸나. 몰라,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어. 그냥 이렇게 된 거, 그래 이렇게 된 거. 속이 개운해짐과 동시에 네가 뒤를 돌아보았나, 나는 네 얇은 팔목을 잡았었지.
그냥 이렇게 된 거, 큰일을 벌이련다.
간호사들이 선생님 어디 가느냐는 - 소리를 두어 번 쳐대며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꼬맹이를 대리고 나왔다. 병원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의식이 끊겼다고 해도 최소한의 의식 정도는 남아 있었으니까.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너를 의자에 앉히고, 또 심각한 표정으로 – 블레어. 뭐 하는 짓이냐고. 뭐 하는 짓이냐고 너를 바라보았는데. 너는 개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소만 짓고는. 제가 왜요?라며 오히려 어깨를 으쓱해오더라.
내가 여자를 꼬신다는게 그렇게 잘못됐나요 –라고. 너는 뒤이어 쏘아붙여와서. 응 잘못된 거야.라고 공격적이게 너에게 쏘아붙이니. 너는 왜요, 절 좋아하기라도 하나요? 라고서는 웃음을 흘린다. 이쯤 돼서야 어물쩡하게, 확정이 될 듯 말 듯 한 이 감정을 바로잡아야 하나. 드디어 이때가 왔나. 크흠, 목을 가다듬고. 너를 바라보니. 너는 왜요,라고 웃기만 해. 그래, 너는 내 성격에 고백 같은 거 못 하는 듯 보이겠지만.
그러니까, 평생 나 좀 좋아해 달라고 꼬맹아.
육 년이 지났다. 너와 사귄 지 오 주년이 되는 해 크리스마스에 – 프러포즈를 하고. 너는 ‘아저씨는 어쩜 그렇게 프러포즈도 아저씨같이 하느냐’며 나를 받아주었다. 내가 준비한 반지에 수줍게 손가락을 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참 부끄럽네, 사실 고백과 같이 결혼 신청도. ‘너 나랑 평생같이 살고 싶다며, 나도 같이 살고 싶어! 그러니까 결혼해!’ 뭐 이렇게 된 거지만. 안타깝게 된 것은, 너네 나라도 우리나라도 결혼까지는 힘들다는 것일까. 한국도 마찬가지였고. 겨우 한국에 안착한 우리였건만, 또 새로운 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게. 복잡했지.
그것만 빼면 다 좋았다. 그래서 모든 복잡한 상황에 극복할 수 있게 너와 하나하나, 계획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일자리는 이거로 하고, 맞아 나 친구가 여기에 사는데 그러면 너는 여기서 일을 하고, 그리고 여태껏 벌어뒀던 돈으로 여기에 집을 장만하고. 하나하나, 변수들에 맞추어 준비를 해 가니까. 뭐, 나름 어느 정도 얼추 계획이 완성됐더라. 정말 떠나기만 하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법한 계획이.
하지만 너네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았어야 했어, 제일 중요한 – 장모님에게. 허락을 받았어야 했어.
그래서 ‘아드님을 내게 주세요’같은 이딴 소리를 내뱉었던 것이다. 놀라서 곧 기절할 줄 알았던 블레어의 어머님은 의외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시더라. 아니 무덤덤한 척 하시는 것 일수도 있겠다. 사실 둘이 사귀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자주 일리야 씨네 집에 놀러 가서 자는 블레어가 걱정되어, 민폐는 아닐까 블레어를 대리고 내려오려고, 일리야 씨네 집에 갔었는데. - 낮 뜨거운 소리에 다시 그냥 내려왔단다. 아, 갑자기 민망해져. 그러니까 소리 좀 죽이라니까, - 블레어는 옆에서 그게 왜 자기 잘못이냐며 툴툴거리더라.
우리 아들 잘 부탁드려요.라는 대답을 하는 게 맞는 거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오셔서, 아 예.예. 맞습니다. 하고 넙죽넙죽, 거기에다가 절까지 했나 블레어는 꺄르르, 제 배까지 부여잡으며 진짜 아저씨 같다고 놀리더라. 저놈은 이따가 한 대 맞아야 해. 힐긋, 노려보는 것도 잠시. 블레어네 어머님은 – 혹시. 신혼부부 면. 하루 일분일초가 다 중요한 거 아니냐고. 나가있어야겠네요 –라며 입을 가리고 웃으시더니. 걸음을 총총, 옮겨 장 보러 온다고 나가셔서. 예스, 기회가 왔구나. 바로 녀석을 노려본 후에 볼을 찌익, 늘여트렸다.
아허씨 혜성해여. 라고, 네 발음이 웃기게도 뭉게지더라.
아저씨 그런데 여러 가지 모습이 보고 싶다는 게 더 변태 같아.
이어한 네 말을, 잠시 알아듣지 못 해서. 뭐?라고 물었나 너는 아니에요 -라고 얼버무리더니. 아니 그냥 그 말이 더 변태 같다며 말을 이어해서. 잠시 뭔 소리 하는 거야. 미간만 좁히다가,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 해석하지 말라고. 손을 막 내 저을 때에, 아, 아아, 아. 아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하나밖에 모르는 꼬맹이는 그것마저 밤일에 연관시킨 거구나.
진짜, 이 꼬맹이랑 같이 있다 보면 수갑 차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아. 내가 수갑을 스스로 차는 게 아니라, 이 꼬맹이가 채운다는 게 문제 아닌 문제다.
야 나 수갑 찰 일도 금방일 것 같아.라고 웃음을 흘리니까 너는 - 나를 위해서 그깟 수갑 하나 못 채워줘요?라며 표정을 찡그리더라. 야 임마 수갑 하나 차는 게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내가 범죄자가 되는 건데. 쉽지 않고 또 수습도 힘든 일인데. 그런데. 널 위해선 수갑 하나 정도는, 글쎄. 찰 수 있으려나.
또다시 너는 꺄르르 웃어오더니 입을 벙긋거려서, 이번엔 나도 - 아저씨 같다고?라며 내뱉으니. - 아저씨 같아. 와 - 아저씨 같다고?라는 그 말이 웃기게도 겹쳐서 어우러지더라. 그래 나는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계속 이렇게 아저씨겠지. 오히려 네가 아저씨이면 어색할 것 같아. 그냥 평생 차가운 수갑이나 낄 걱정이나 하며 살아야겠다. - 그래. 그래야겠어.
+
그만죽이고 달달한거좀 쓰려고..<... 쓴 달달한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달달한걸 하도 안써서 그런지 아ㅏ...중간에 끊고 뭔가 변수가 일어나야 할것같은 느낌 -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증사앙님 블맘 님 Sweet Bomb(스윗밤) 님 카푸치눠님 블루님 레어님 팅커벨님!
안..안죽였습니다!! 아무도 안주겼습니다아! (워 - 후)
언제나 쓸대없이 긴 글 보시느라 수고하세요 ㅠㅠㅠㅠ 항상 스크롤이ㅣ...좀 그런 양인것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