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괜찮아?“
“아저씨이..“
“오늘따라 왜이리 귀여우실까.“
성규가 우현의 가슴에 대고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자 우현이 푸스스 웃으며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해 더 나른해진 탓이었다. 어제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진행된 섹스로 둘은 본의 아니게 힘을 빼야 했고, 성규에 이어 우현도 금새 잠들었다. 지금, 우현이 회사에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어리광을 피우는 성규에 발목이 잡혀 침대에서도 일어나지 못 하는 상태가 되버려 있었다. 하지만, 그게 또 싫지 않은 듯, 우현도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으...“
“많이 아파?“
“아니요오... 오늘은 회사 따라가도 되요? 어젯밤에 된다고 했잖아요.“
우현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다만 선명하게 눈 앞으로 지나가는 어제의 모습이 피곤했다. 더이상,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언제든지 위험은 일어날 수 있었다. 나중을 위해서 순간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그 순간마저 아쉬웠다. 같이 붙어 있는 것도 좋지만, 혹시 몰랐다. 또 나타나, 성규에게 상처를 줄지도.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저가 더 감정을 밀어 붙이고, 소비하고, 머리 좀 더 굴리는 것이 백번이고 나았다. 정말 말 그대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느끼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앞으로는 그래도 충분하니까.
“성규야, 내일, 내일까지만 집에 있자. 성열이나 명수 불러줄게.“
두 마디를 내뱉는 우현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틀림 없었다. 어떤 일이길래 당신을 힘들게 하고, 어떤 상황이길래 당신을 그토록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분명, 저와 관련된 일이겠지만, 우현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을 테니까. 저와 관련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결국, 성규의 입에서 나온건 이유를 묻는 질문이 아닌 한숨을 가장한 어리광이었다.
“힝.. 알았어요오.. 근데, 명수형네 회사 가보면 안 되요? 성열이형 사무소 음... 심심한데...“
“김명수? 그럴, 음, 어, 안 돼, 걔 오늘 바쁘댔어.“
“내일도요?“
“... 물어는 볼게.“
마지못해 긍정적으로 대답한 우현에 성규가 활짝 웃으며 다시 우현에게 안겼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목 뒤로 넘겼던 한 숨이 허탈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명수, 이 새끼를 밧줄로 꽁꽁 묶어야 하나, 왜 자꾸 성규한테 잘 해주고 난리야. 아, 잘 해줘야 하긴 하지만,.. 우씨. 별것 아닌 것 때문에 베베 꼬인 머릿속이 저가 봐도 무척이나 한심스러웠다. 갈 길 잃은 감정들이 얽혀있는 모습들이 퍽이나 우스웠다.
“여기 있어.“
“네? 아저씨는요?“
“밥 하고, 먹고, 회사 가야지.“
“제가 밥할 건데,“
“됬어, 너 허리 아프잖아. 내가 해줄게.“
몇 번을 들어도 우현의 그런 다소 직설적인 말에는 적응이 어려웠다. 물론 저를 걱정해서, 저를 위해서 해주는 말인걸 뻔히 알면서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부끄러움은 온전히 모두 제 몫이었다. 귀가 화끈거려지는게 느껴지는 걸 보니 제 귀가 또 빨갛게 달아올라 있을것이 분명했다. 나만, 괜히 예민해 있는건가.
우현이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자 성규도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자 비로소 허리의 통증이 더 다가왔다. 성규의 입에서 미약하게 앓는 소리가 흐르자 우현이 다시 뒤로 돌아 일어서려는 성규를 눕혔다.
“넌 누워있어. 내가 다 한다고.“
우현은 말 그대로 정말 모든걸 혼자 해냈다. 혼자서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양과 질, 모두 높은 아침을 했고, 침대 헤드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성규를 깨우고, 설거지도 혼자 하였고, 회사 가기 전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하였다. 그 부분에 대해 성규가 매우 미안해하자 끊임없이 달래주는 것도 잊지 않고. 성열의 사무소에 데려다 주기 위해 같이 탑승한 차는 바쁜 도로를 가쁘게 달렸다. 그리고 차 안을 울리는 아침 라디오에는 시청자들이 보내는 사연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 사연씩 나올 때 마다 사연에 대해 주고 받는 대화가 차의 심심한 기류를 모두 사라지게끔 하고 있었다.
“오늘은 몇 시쯤 끝나요?“
“글쎄. 저녁 먹기 전엔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또 성열이 형이랑 같이 저녁 먹는 거에요?“
“음.. 그럴까?“
“네! 명수형도 불러서 어제처럼 넷이 먹어요!“
“그래, 그러자.“
활짝 웃는 성규에 우현이 피식 웃으며 성규의 머리를 헝클었다. 저의 머리를 쓰다 듬는 따뜻한 손길이 기분이 좋아 베시시 웃었다. 여전히 차 안에는 낭랑한 DJ의 목소리가 사연을 읊어주고 있었다.
“네, 다음 사연입니다. 2761님이 보내주셨네요. 어, 아버지신가봐요. 아들아, 아무리 공부가 싫다해도 집으로 들어와라. 공부 너만 하는 거 아니니 너만 힘들다 생각하지 말고, 가출 그만 두고 집으로 들어와라. 에... 공부.. 많이 힘들죠.. 아버지가 많이 엄하신,“
돌연 우현이 라디오 채널을 바꿨다. 오른손으로 주파수를 맞추는 그의 입술은 꽉 깨물어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차 안의 분위기가 확 식어버렸다. 공부로 돌아오라고 하는 사연 속 아버지가 성규의 아버지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가출을 그만두란 말인데, 꼭 성규를 돌려 달라는 말 같았다. 물론 저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은 감정 한 톨도 담기지 않은 문자가 `김성규, 내놔.`를 외치던 어제의 억지스러운 성규의 아버지를 연상시키게 했다. 갑자기 사연이 끊기는 것에 놀란 성규가 우현을 쳐다 보았다. 무언가 억누르는 표정, 어떤 부분이 그의 신경을 건드린걸까. 갑작스럽게 가라 앉은 그가 무서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어제도 그렇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거의 다 왔어.“
우현의 말과는 다르게 차의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지만 성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우현의 어지러운 심정을 더 혼란스럽게 할것 같은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저가 이렇게 하는게 맞는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러고 싶었다. 꽤 달갑지 않는 침묵이 조금 지속된 후에야 어제 본 건물 앞에 차가 멈춰섰다. 푸른 창문으로 둘러 쌓여진 높은 건물이 지금 상황만큼이나 딱딱하게 느껴졌다.
“어딘지 알지? 7층 올라가서,“
“아, 알아요.“
“이따 전화할게.“
“네. 그럼 다녀오세요.“
성규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비틀어 문을 열 때, 우현의 다급한 손이 성규의 팔을 붙잡았다. 다시 성규의 몸을 제 쪽으로 돌린 다음 그대로, 성규의 입술로 돌진했다. 급하게 맞닿은 입술은 주체할 수 없이 뜨거웠다. 평소와 다르게, 전혀 우현같지 않게 급하고, 어딘가 애절했다. 이상한 감정을 애써 무마시키고자 성규는 우현의 목에 두 팔을 감아 몸을 말착시켰다. 그에 우현이 대응하듯 성규의 벌어진 입술 틈새 사이로 혀를 집어넣어 더 격정적으로 부딪쳐왔다. 혀를 내세워 입 안을 훑는 뜨거움이 성규를 더 미치게 했다. 그저 키스뿐이었는데, 주변의 공기는 빠르게 달궈져 갔고, 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그 열락을 더 가미시켰다.
서로에게 정신을 잃어버릴때 즈음, 우현의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성규가 먼저 입을 떼고 우현을 약하게 밀었다. 떨어진 둘 사이로 은사가 길게 이어졌다가 끊어졌다. 약한 성규의 힘에 생각보다 쉽게 물러난 우현이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까맸다.
[둘이 차 안에서 머하냐?ㅋㅋㅋㅋ 창문으로 다 보이거든! 얼른 올라와랔ㅋㅋㅋ - 이성열 09:34 AM]
우현이 성열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 기다린 듯 해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조금만 더 키스했더라면, 차 안에서 일을 치뤘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휴, 제 자신에 대해 어이 없는 한숨을 지긋이 내뱉고, 성규를 다시 쳐다 보았다. 처음엔 놓치기 싫어서, 제 옆에만 두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짧게 이어가려던 키스였는데, 어느새 변질되어 버렸다. 평소엔 귀여움으로 마음 놓고 있다가도 스킨십만 하면 섹시로 갑자기 변해버리는 모습이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성규룰 놓치면 난 끝이라는 성열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말, 틀린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 아저씨.. 저 그럼.. 가도 되죠?“
“어? 어. 이따 전화할게. 조심히 올라가고.“
성규가 빨개진 귀를 은근슬쩍 비추며 차 문을 열었다. 건물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는 뒷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슬쩍 본 손목 시계는 이미 9시 40분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겨 버렸다.
다행히 회사에선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호원이 거의 다 했겠지만은 저가 검토해야할 서류들은 많지 않았다. 조금 여유를 되찾은 것 같아 충전이 완료된 핸드폰을 충전기에서 분리시키고는 핸드폰을 켰다. 켜자마자 보이는 배경화면에 자리 잡은 성규의 사진에 또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하얀 침대 위에서 잠에 취해 있는 사진 속의 하얀 성규가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리라. 성규가 잘 때 몰래 찍은 것이긴 하다만, 너무 예뻐서 가만 둘 수가 없었다. 오후 3시, 서너 시간이 지나면 만날 수 있을 텐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전화라도 해볼까, 싶은 생각에 최근 통화 목록창을 열었다. 이미 목록을 빼곡히 채운건 [성규♥] 였지만, 다 문자를 주고 받은 것뿐이었다.
“남우현, 잠시만 나와봐.“
“왜?“
“니가 잠깐 봐야할 게 있어.“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문을 열고 급히 저를 부른건 다름 아닌 호원이였다. 뭐지, 하는 생각에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벗어 두었던 정장 마이를 껴입었다. 그리고 밖에서 저를 부르며 빠르게 손짓하는 호원을 경보로 쫓아갔다. 테이블 위에 홀로 놓여진 핸드폰의 조명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다.
“어? 뭐야, 아까 있었는데... 어디 갔지?“
“.... 뭐 였는데.“
“아니, 어떤 여자들이 떼거지로 와서는 돈을 빌려 달랬는데.. 어디 갔지?“
“에이, 별거 아니네. 그런건 너가 해.“
“아까는 되게 심각했었어. 아, 진짜, 어쩌자는 거야. 일단 가, 찾으면 전화할게.“
“뭘 찾아. 필요하면 오겠지. 난 간다.“
어이 없는 상황에 우현이 입가에 조소를 띄우고는 발길을 돌려 유유히 걸어갔다. 에잇, 전화나 할걸. 다시 성규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려 손을 집어 넣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심지어 바지 주머니에도 핸드폰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 핸드폰이 있을 때는 오로지 제 사무실 뿐이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현이 제 사무실로 급히 뛰어갔다.
앞머리가 흐뜨러질 정도로 긴 거리를 빠르게 달려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히터 바람이 확 느껴지는 사무실 안의 테이블 위에는 제 핸드폰이 곱게 올려져 있었다. 누가 훔쳐갈 리는 절대 없겠지만은 그냥 간단한 노파심이었다. 물론 핸드폰이 있을 곳은 제 사무실 밖에 없기도 하지만. 성규한테 마저 전화해야지, 그리고 켰던 핸드폰에는 다시 배경화면으로 돌아와 있었다. 분명, 성규 연락처 창을 띄어 놓은 것 같았는데.. 알아서 꺼졌나? 라는 쓸데 없는 생각과 함께 성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아쉽게도 통화 중이였다. 성열이랑 같이 있을테니, 명수랑 통화 중인가? 갑자기 뒷맛이 씁쓸해 왔다. 눈 앞에 놓여진 서류들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일이 하나도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하하... 여러분 참 오랜만이져...ㅋㅋㅋㅋㅋㅋ 제가 뭐라 할 말이 없네여...
음.. 딴 변명은 안하고 저 연애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살 연상...ㅋㅋㅋ (자랑하고 싶었다는 건 안 비밀ㅋㅋㅋ)
뭐 그래서 바빴던 것도 있지만, 다음 편은 내용이 구상이 갔는데 이번 껀 채우기 너무 어려웠어여ㅠㅠㅠㅠ 딱 봐도 보이시잖아여? 오늘 내용 정말 없는거...ㅋㅋㅋ
오늘 연재텀 최고 기록 경신했으니까! 이젠 정말 착실히 쓰도록 할게옄ㅋㅋㅋㅋ 앞으로 한 4-6편 정도 남앗어여!
여전히 암호닉은 받아여~ ㅎㅎ 다다음부턴 안 받겟습니댜...(같이 달려온 분들 성의가 있으니까..ㅎㅎ)
굳밤들 하시고! 빠르게 돌아오도록 할게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