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아직 좋았던 날들도 없었잖아요
"..하나만 묻자."
"..뭐?"
종대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멍한,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것 같았다. 대답도 늦고, 호기심에 반뜩거리는 눈빛은 온데없고 흐리멍텅한 눈빛이 허무하게 하늘을 좇았다.
"종인이가 결정한 거, 맞지?"
"..당연하지."
"...그래."
그도, 나도 말이 없었다. 이런 적이 있었던가.
어색한 침묵은 깊은 생각을 하기엔 적절한 공간이었다. 김종인의 결정. 분명한 그의 최선.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듯
너의 최선이 나의 최선이야, 종인아.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두방망이질하는 심장을 잠재우려 애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도, 김종인의 이름을 생각하기만 해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대는 두려운 이 감정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아, 안쓰러웠다.
한 번 말해보지도 못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몇 달.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보고 그를 기다렸던 시간들은 절대 짧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의 나의 행동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되돌아보니 너무도 초라한 것이어서, 나는 스스로를 가여워할 수 밖에 없었다.
너는 왜 그랬어, 왜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보지도 못했어. 좋아한다고, 왜 말을 못했어..
차마 꽃피지도 못하고 한 숨에 죽어버릴 나의 심장이, 나는 미치도록 가여웠다.
김종인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냥..
내가 너무 미웠다.
이제껏 말 한마디, 예쁜 표정 한 번 그의 앞에서 해보지 못한 어리석은 나의 모습이,
아직 제 존재를 여실히 드러내며 뜨겁고 붉은 피를 뿜어내며 숨을 쉬는 나의 날것의 감정의 숨을 앗을 그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내가,
너무 미웠다.
너의 최선이 나의 최선이야
하지만 너의 마음은 나의 것과 다르겠지
종인아,
그들은 너를
다시 못 보고, 다시 이름을 부르지도 못할거라고 했어
..정말이야?
"뭐...?"
종인은 생각했다. 도경수의 목숨값, 그 추상적인 것에 대하여. 형질조차 불분명한 그 '것'은 듣는 것 만으로도 심장을 머리 끝부터 발끝 까지 떨어뜨려 놓았다.
"미안하다. 나도 몰랐어."
"도경수...."
도경수, 나의 도경수.
너의 목숨을 논하는 내 앞의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살아, 있는거야?
종인의 동공은 무차별적으로 흔들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 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손톱을 뜯다가,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작게 발작했다.
농축된 불안감의 발산이었다. 그의 내면 깊숙히 약물로 도취된 무기력함은 그의 다리마저도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김종인!!!!!!!!!!!!!!!"
찬열은 포효하듯 소리쳤다. 종인은 바들거림을 멈추고 찬열을 돌아보았다. 눈동자에는 표출되지 못한 불안감이 너울댔다. 찬열은 불이 튀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다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의 몸을 흔들었다.
"정신차려 김종인!!!!!!!!!!!도경수가 죽어, 죽는다고!!!!!!!!!!"
"....도경수..."
"그래, 도경수!!!!!그러니까 정신차리고, 뭐든 해보라고!!!!!!!!!!!"
"....어떻게...나는, 정말..."
생각해볼 수도 없어.
그의 죽음을
문득, 세상의 그 시끄러운 소리 너머에, 아주 고요한 공기가 흐르는 공간이 떠올랐다. 그 공간에, 도경수가 있었다. 밤늦게 돌아오던 자신을 기다리며 꾸벅이는 모습이, 몸에 난 상처를 보며 울상을 짓던 표정이, 선혈이 낭자한 방에서 고문을 받으며 소리지르는 도경수가, 있었다.
김종인.
부르는 목소리도 있었다.
낮게 울리는 그 고요한 파동은 종인의 무감각한 정신을 부드럽게 일깨웠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온 몸에 새로운 피가 돌았다. 눈가에 홧홧한 열기가 몰렸다.
완연한 각성.
우성 센티넬로서의, 완전한 각성.
"
"...도경수는 어디에 있어."
"반군 산하의 병원이 있어. 거기로 갔을 거다."
찬열은 앞장섰다. 종인은 깨진 유리창을 딛고 올라섰다.
그의 발 밑으로 하늘이 고였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병원 앞에 도착했다. 종인은 병원 건물 뒤쪽으로 이동해 지하주차장 쪽으로 접근할 계획이었다. 수술실은 일층에 있다고 하니, 비상구를 이용하면 될 것 같았다.
"시간이 없어. 어서...!"
찬열의 다급한 말이 끝을 맺지 못한 이유는, 종인의 예민한 청각에 파고든 불쾌한 소리는,
한 무더기의 센티넬.
찬열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짐짓 가볍게 덧붙였다.
"....동지들이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아직도 50m가량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속도로는 일 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종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이 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찬열은 그를 막아섰다.
"...뭐 하는 거냐."
"내가 맡는다. 너는 도경수에게 가."
종인의 표정이 비틀렸다.
"정의로운 척 하지마."
"..기회를 주는거다."
말을 잇는 찬열의 표정은 어쩐지 서글펐다.
"나 같은 꼴이 되지 않을, 기회를 주는거다. 올 때 잡아."
그 순간이었다.
종인의 코 앞에서 경수의 향이 아른거린 것은.
종인은 단순히 그 향을 맡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도경수를 '감각'했다.
찬열은 순식간에 변해버린 그의 눈동자를 알아채곤 종인을 떠밀었다.
"..가라. 심장사혈수술은 십 분도 안 걸려."
종인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도경수에게 달려갔다.
허겁지겁 병원을 들쑤시고 다니는 덩치 큰 센티넬의 존재는 반군의 병원에서도 낯선 것이었다. 종인이 병실을 휘젓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상벨이 울리고 보안요원들이 출동했다. 종인의 애타는 눈길은 병원 이곳저곳에 묻어 흔적을 남겼다. 그가 찾는 단 하나의 이름에는 안타깝게도 흔적이 남지 못했다.
도경수, 도경수.
종인 숨을 쉬듯이 이름을 불렀다.
도경수, 도경수.
가쁜 숨을 쉴 때마다 생각했다.
순간, 종인은 미묘한 체취에 걸음을 멈췄다. 도경수의 체취인듯, 하지만 좀 더 독한, 확신할 순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도경수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종인은 수술중 불빛이 꺼져있는 한 구석진 수술실로 다가갔다.
유리문에 손을 대었다. 찬 기운이 손바닥으로 여과없이 들이닥쳤다.
또한, 파도처럼 들이치는 도경수의 체취.
"...도경수."
수술실의 차가운 침대에 누워있는 경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종대는 경수를 불렀다.
"..왜."
그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발음할 때 마다, 건조한 침을 삼켰다.
"....내가..."
"뭐?"
"...기회를 줄게."
"......"
"지금 쓸래? 아니면,"
"..고마워."
종대는 머뭇거리며 꺼내던 말을 멈췄다. 의아한 얼굴로 경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경수는 힘겹게 웃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결정하는 건 김종인 뿐이야.
종대는 왠지모르게 낙담한 표정이었다. 큰 눈에 물기가 맺힌 것 같기도 했다. 경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알아봤자, 얼마나 더 기억할 수 있을까.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종대는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나이가 지긋한 의사가 손짓을 하자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경직된 걸음걸이로, 그는 수술실을 벗어났다.
경수는 고개를 똑바로 뉘였다. 머리 바로 위에, 둥근 빛을 내뿜는 조명이 있었다.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이, 빛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리는,
차분한 발소리.
왠지 모르게 익숙했던, 보폭이 큰 걸음걸이. 큼직한 걸음 위로 이어지는 길쭉한 다리, 탄탄한 상체, 그리고...
아, 김종인.
다행이다, 너는 나의 마지막이었다.
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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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만낫ㅇ...만났....^^만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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