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도경수
10년 전의 당신처럼, 병동의 침대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때처럼,
우리,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수술실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렇다고 해서 도경수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뿜어내는 은은한 빛은 역으로 그 주변을 희슴푸레하게 밝히고 있었으니까.
수술실 안은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다. 종인은 그 향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익숙함이었다. 코를 찌르는 독한 화학약품의 냄새가 아닌 무언가 가볍게 상쾌한, 솔 향이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종인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도경수는 입술을 깨문 채로, 눈마저 질끈 감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온갖 두려움과 나를 향한 분노, 원망, 이제껏 참아왔던 폭풍같은 슬픔의 통로를 질끈 막아버린 채로, 도경수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런 그의 얼 굴을 향해, 내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이 무엇이나 있겠는가.
“..도경수."
그저 그의 이름뿐. 한 글자마다 짓눌린 심장에서 묽은 눈물이 터져나오는, 그의 이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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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수.”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잔잔한 물기가 어린 그 목소리가,
옅은 떨림을 타고 흐른 그 목소리가,
너무너무 보고싶었던 목소리를 닮아서,
그런데도 믿을 수가 없어서.
뜰 수 없는 눈에서는 눈물만 흘렀다.
"흑..윽...김종인, 흑...흐윽, 보고싶어, 김종인...."
감히,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을 뜨면, 허공에는 다시 한 번, 화하게 쏟아지는 노란 불빛뿐일까봐. 그럴까봐.
보고싶어, 김종인.
나는 그 한마디,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당신도, 나와 같았다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우리, 지금보단 괜찮았을까.
대답할 사람이 없는 질문의 끝은, 종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굵직한 눈물이었다. 눈물은 턱에서 아슬하게 매달려 있다가, 제 무게대로 떨어져내렸다. 빠르게 떨어지며 차갑게 식어버린 눈물은 경수의 볼에 떨어졌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그러졌다. 찬 감촉이 볼에 닿는 순간, 경수는 반사적으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
그리고, 눈에 가득 담긴,
나의, 나의,
나의, 김종인..
숨이 막혀왔다.
물덩이 하나가 목구멍을 움켜막은 것처럼, 축축한 숨이 뭉텅이로 뱉어져 나왔다.
숨을 쉴 수 있다 해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나의 10년, 너무 늦게 제자리로 돌아온, 나의 심장.
내 눈 앞의,
너.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합니다. 글 중간에 뜬금없이 죄송해요ㅠ)
먹먹한 침묵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수술실에 사이렌이 울리고 총을 든 의료진이 수술실로 박차고 들어오기 전까지. 종인은 다급하게 수술대와 기구들을 문쪽으로 밀어넣었다. 문 바깥쪽의 센티넬들은 가볍게 문을 열어젖히고 둘에게 다가왔다. 종인은 경수를 일으켜 세우고 등에 업었다. 경수는 얼떨떨한 기분을 지우려고 애썼다.
"김종인. 용케 여기까지 왔네."
"...."
"이걸 본 이상, 살려서 보낼 수는 없지."
"..그래보시던가."
종인의 대꾸가 끝나자마자, 서너마리의 센티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종인은 경수가 누워있던 침대를 발판삼아 높이 뛰어올랐다. 그러나 수술실의 천장에는 붙잡고 매달릴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종인은 어쩔 수 없이 천장에서 내려온 수술등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할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던 수술등은 투둑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장에서 떨어졌다. 종인은 떨어진 부분을 붙잡고 휘둘렀다. 한 명의 센티넬이 얻어맞고 날아갔다. 종인은 칼처럼 그것을 겨누고 상대들과 대치했다. 경수는 온 몸을 바들거리며 밭은 숨을 내쉬었다.
"...도경수."
"....어?"
"..눈 감아."
그 말과 동시에, 종인의 몸이 크게 움직였다. 경수는 반사적으로 눈을 꾹 감았다. 몇 번의 비명소리, 그러다가 이어진 두 번의 발포, 그리고,
"악!!"
짧게 이어진 종인의 비명소리.
"김종인!!!!!"
"괜찮으니까 움직이지마!!!!"
"그치만...!"
"너 여기서 떨어지면...우리 둘 중 하나는 죽어. 그러니까 제발..!"
경수는 종인의 허벅지에서 터져나오는 피를 느꼈다. 종인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고 허벅지로 손을 뻗으려 했지만 상처부위까지 닿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종인은 그 사이 메스를 잡아 센티넬들에게 던지고 있었다. 두 명이 허리에 메스가 꽂힌 채로 쓰러졌다.
"윽...."
종인은 작게 신음했다. 경수는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제발...조금만 더.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뻗었다. 축축한 피가 느껴졌다. 손가락 끝에 피가 살짝 묻어있었다.
"김종인...!"
총을 들고 있던 의사가 이를 갈며 달려들었다. 종인은 한쪽 다리로 다시 뛰어올라 약품이 담긴 선반 위쪽으로 올라갔다. 의사는 깨진 안경 너머로 종인을 노려보며 다시 조준했다. 종인은 으득, 이를 깨며 주변을 살폈다. 멀찍한 곳에 이층으로 연결된 유리창이 있었다.
종인은 심호흡을 했다. 경수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벙긋거렸다. 종인은 뒤로 빙글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등에 업은 경수를 앞으로 돌려 껴안았다.
"후...."
종인은 긴장된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은 경수의 콧날까지, 한 숨에 다가갔다. 경수의 얼굴에 내려앉은 종인의 숨은 그의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를 띄웠다.
"이제, 진짜 눈 감아."
종인은 속삭였다. 그리고 움직였다. 바로 이어진 총 소리. 그보다 더 시끄럽게 고막을 찢는, 유리가 파편으로 변하는 소리.
경수는 눈을 떴다. 시야는 꽤 어두컴컴했다. 모든 것이 변했고, 변하지 않은 것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체온이었다. 종인은 경수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로 앉아있었다. 경수는 어색하게 고개를 들고 눈을 끔뻑거렸다. 어두운 시야에 적응이 되자, 더듬거리며 물었다.
"...여긴 어디야?"
"...지하주차장."
그는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로 숨쉬듯 말했다.
경수는 건조한 입술을 자꾸 핥았다. 종인은 지친 숨을 내쉬었다.
"아..!"
"...왜."
"..너..상처."
"...됐어."
"내가 안 됐어. 이리..."
경수가 종인의 몸을 밀어내며 허벅지에 손을 갖다대려는 순간이었다. 시끄러운 한 무더기의 목소리가 지하주차장에 불쾌한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김종대, 확실하게 말해. 이쪽이 맞아?"
"아, 글쎄 좀 기다려보라니까. 확실하지 않다고."
"씨발, 진짜 빨리 좀 해. 도망가면 너나 우리나 모가지야."
"......여기..."
종대는 강력한 힘을 가진 센티넬은 아니었다. 그 대신에,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다. 종대의 능력은 센티넬이나 가디언이 가진 고유한 체취를 감지해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한 번 인식한 체취는 잊지 않고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 냄새가 구려. 잘 모르겠다고."
"웃기고 있네. 너 저번에 니 냉장고에 있던 소세지 반 먹고 도망간 개새끼까지 찡찡거리면서 찾아냈잖아. 얼른 제대로 해라."
"......"
경수는 본능적으로 숨을 막았다. 흡-하는 순간 뿌옇게 흘려진 체취는 종대의 예민한 감각에 단번에 노출되었다. 종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꺾었다.
"저쪽이야? 저쪽에 있어?"
"아...아니."
"확실하게 말해. 그럼 왜 저쪽을 처다본거야."
"확실하지 않ㅇ..."
"B11 구역으로 이동한다. 둘로 나눠서, 한 팀은 B10 구역 쪽으로, 다른 한 팀은 C11쪽으로 접근해서 포위한다. 이동!"
종대는 입술을 깨물었다.
"김종대, 넌 나와 함께 간다."
씨발. 경쾌한 욕설이 웅웅거렸다.
"...어떻.."
"쉿."
"...."
도경수의 눈은 커지다 못해 눈물까지 그렁그렁했다. 그들의 발소리는 양옆으로 조여 들어왔다. 도경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채 벽에 바싹 붙어있었다.
저벅거리던 발소리가 멎었다. 도경수의 숨 또한 멎었다.
"이쪽이 맞아? 확실해?"
"아까부터 확실하지 않다고 했거든."
종대는 주변을 대충 둘러보며 툴툴거렸다. 소대장은 답답한 마음에 이를 갈며 말했다.
"싱(Xing)을 데려와."
부대 뒤쪽에서 조그마한 소요가 일어났다. 종대는 흘낏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얼굴의 옛된 소년이 주저하며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싱(Xing)은 반군 중국지부와 교류를 맺고 데려온 능력치 센티넬이었다. 종대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14살이라 종대만큼 섬세하지는 않았다.
"싱, 이쪽이 맞나 확인해봐."
"...아...."
"잘못하면 너나 저새끼가 한 방이야."
싱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의 대화를 벽의 울림으로 전해듣던 도경수의 몸은 이제 피도 돌지 않을 것처럼 굳어버렸다.
"이..쪽...."
싱은 한 방향을 짚었다. 종대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경수는 숨을 쉬지 않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그 순간,
종인의 체온이 잔뜩 서린, 커다란 손이 도경수의 입으로 다가갔다. 하얗게 질린 채로 바들거리는 두 꽃잎을 살며시 떼어냈다. 건조하게 갈라진 붉은 입술이 드러났다.
도경수의 눈은 새벽의 풀잎같은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종인의 시선은, 한 번도 그곳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지도 못하면서,
종인의 입술이 경수에게 다가갔다.
"....아.."
경수의 입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종인은 그마저도 한 입에 삼켜버렸다.
자그마하게 벌어진 입속으로 뜨거운 온기 덩어리가 파고들었다. 경수는 흠칫 놀랐다. 종인은 그런 경수의 손을 더듬거리며 찾아내었다.
당신이 한 틈도 흘러나가지 않았으면 해.
종인은 생각했다.
숨이 섞였다. 알싸한 소독약 냄새와 진하고 따뜻한 수증기냄새가 한데 어우러졌다.
"아..아닌 것 같아요. 도경수 치고는 너무 진한데..."
"뭐야..김종대. 진짜야?"
"응. 그렇네. 진하네."
종대는 비식, 미소를 흘렸다.
도경수, 기회 잘 써먹었네.
종인은 살며시 입술을 떼었다. 뭉근한 수증기가 두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아직 멍한 물빛을 띄고 있는 도경수의 눈빛과, 아직 달아올라있는 입술 끝의 온도가,
다시 한번, 입술을 맞대지 않고는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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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십분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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