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다가도 감히 말하지 못할,
아이돌인 그 애 이야기.
#14. 너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방송이 시작한 이후 습관이 생겼다.
아이들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내가 이 부분에서 느꼈던걸 시청자들도 느끼는지. 온갖 사소한 것 하나조차 궁금해져서 찾아보는 일.
방송이 나간 날은 물론이고, 수시로 커뮤니티를 들어가 눈팅하며 공감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가끔은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그리고,
[승연이 보고싶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승연이 지금 뭐할까?]
그런 글을 보다보면, 가끔 내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졌달까.
나는 아는데, 지금 조승연은 안무연습 중이랬는데.
어디에도 감히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가 뭐라도 된 냥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와 아는 사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기분을 느끼는게 매일 매일 신기했다.
"대박...!!!!"
나 혼자 가면 또 애들이랑 몇 마디 못하고 밀어내버릴 것 같아서,
친한 피디님을 데려갔다.
"와, 피디님! 작가니이이임!!!!"
아이돌 대기실도 처음 가 봐.
바글바글, 복작복작 거리는 정신없는 대기실에 들어가도 되나, 무섭던 찰나 문이 열리고 나가려던 박지훈을 마주쳤다.
살이 쪽 빠진 모습으로, 메이크업에 의상에 헤어까지 빡세게 단장한 지훈이는
그 때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아이돌' 이었다.
"와!!!!!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요!!!"
"헤헤, 데뷔하는데 자기 관리는 기본이죠. 에헴."
"대박, 진짜 아이돌같애!!!"
"저 아이돌이예여어~"
대박대박! 거리고있자니, 애들이 누구야?누구야?하며 우르르 몰려든다.
오바 조금 보태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아 작가님, 그 때 저희 싸우던거 방송에 왜 내보내셨어요~"
또 장난스럽게 웃으며 툴툴거리는 옹성우. 마치 어제 헤어진 놈처럼, 반가워하기보단 자연스러웠다.
와, 옹성우. 대박.
"여러분 왜 이렇게 달라졌어요?"
"푸핫, 지금 거의 반하셨는데?"
"아니, 진짜 무슨...! 우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디님과 나는 뒷걸음치다시피 가까이 다가오는 아이들에게서 떨어졌다.
아니... 화장 좀 더 할 걸. 내 얼굴이 너무 창피한데.
"오셨어요?"
조승연이 활짝 웃으며 온다.
무언가를 내민다.
"누나, 아니 작가님. 이거.. 그리고 이건 피디님꺼!"
"와, 이런거 처음 받아봐요..."
싸인 씨디다. 그것도 개인 메세지가 빽빽하게 적힌.
우와, 대박.....
그것보다도, 누나라고 불렀다가 피디님 눈치보고 다시 작가님이라고 한 거 실화인가?
눈치빠른 놈 보소.
"저희 예쁘게 내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 뭘 예쁘게야 싸우는거 다 내보내셨는데."
"싸운것도 예쁘게 나갔던데. 심지어 그거 예전에 끝난 회차 아니냐?"
"아오, 조승연 요즘 모든게 아름답지."
같은 팀이 된 지라 더 편해진 느낌. 여전히 틱틱대면서도 아이들은 내내 웃었다.
1시간도 채 못잤다면서, 피곤한 기색이 없이 밝았다.
오히려 피디님이 애들을 제대로 못 보고 어색해하며 어버버 했다.
"덕분에 저희 팬 분들이 많이 생겨서, 요즘 너무 좋아요."
"에이, 저희가 뭘 했다구요."
워낙 스텝들이 많고 정신이 없어서, 입에 발린 말들만 하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얘들아, 무대 올라가자!!"
"넵!!!"
마침 매니저님이 애들을 호출했고, 애들과 자연스럽게 화이팅을 외치며 작별을 고했다.
보는 눈이 많아 길게 대화 할 순 없을걸 직감적으로 눈치챘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스텝들이 많았고 분위기는 편치 않았음이 그저 또 허무했다.
애들에게 붙어 계속 메이크업을 수정해주시는 분들, 의상을 정비하며 애들이랑 꺄르르 웃는 스텝들.
가만히 받고 몸을 맡긴 아이들. 어딘가 되게 신기하고 어색한 광경이었다.
진짜, 연예인이구나.
"그럼 저희 무대 보러 가요!"
"네? 저희 가도 돼요?"
"아는 피디 있으니까 얘기하고 뒤에서 조용히 보고 갑시다! 여기까지 왔는데."
피디님 덕에 무대 구경도 하네.
음악방송은 한 번도 안해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나 정신없구나.
몰래 스튜디오 뒷문으로 들어가 방해되지 않게 구석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아니, 근데 조승연 되게 밝아졌네요"
"그래요? 원래 촬영 중간쯤부터 밝지 않았나?"
"전 저런 모습 처음봐요, 완전 딴 애 같은데?"
그런가...? 나는 그래도 오늘 정도의 밝은건 제법 본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팬들이 가득 찬 스튜디오에, 팬들에게 손 흔들어주고 웃어주는 애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까부터 조금 딴 세상 같긴 했지만, 이렇게 뒤에서 멀찍이 보고있자니 훨씬 더 다른 세상같았다.
내가 아는 애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저 곳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애들 되게 멋있다... 이제 지나가다 마주치면 말도 못 붙이겠어."
피디님이 내내 입을 쩍 벌리고 무대를 지켜본다.
음악소리에, 팬들 함성과 응원 소리에 묻혀 우리는 딱히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쿵쿵대는 음악에 맞춰 내 심장도 뛰어댔다.
화려한 조명에, 멋있는 표정 연기에, 진짜 심장이 가만 있을 수 없을만 했다.
녹음할 때 들었던, 안무연습할 때 봤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분명 같은건데, 무대 위에선 완전히 달랐다.
저 아이들도, 지금 들리는 노래도. 그냥 다 같은데.
뭐가 변한건지, 내 마음이 변한건가.
왜 이렇게 낯선지 말이다.
무대 녹화가 끝나고, 다시 팬들에게 손 흔들며 무대에서 내려가는 아이들을 멀리서 지켜본다.
아이들이 내려간 백스테이지에서는, 모든 스텝들이 붙어 땀을 닦아주고, 선풍기를 얼굴에 대어주고 부채질을 해준다.
그걸 신경도 안쓰며 몸을 맡긴 채 모니터를 주시하는 아이들은 내 기분을 계속 이상하게 만들었다.
"갈까요?"
"네, 그만 가요."
이상한 기분.
너무 멋있고 대단해서, 내가 쟤랑 안다고? 하며 심장이 콩콩 뛰어대면서도,
뭔가 제대로 아는척 할 수 없고, 이상하게 공허하며 허무한. 상반된 두 감정이 충돌한다.
[누나, 잘 보셨어요?]
-오?..어떻게 알았어요?
[봤어요ㅋㅋㅋㅋ]
-아 진짜??? 어떻게 봤지? 어두워서 안보이잖아요
[누가 봐도 누나였는걸요? 나가시는 것까지 봤어용ㅋㅋㅋ]
그냥, 계속 왔다갔다한다.
한순간에 뭔가 달라져버린 아이들을 보자니, 내 신세가 처량한건가.
아니면, 이 아이랑 멀어지는 걸 직감한 내 마음이 슬픈건가.
그렇게 허무하고 공허하다가도, 이렇게 또 연락을 하자니 그대로인데.
근데 그렇게 무대 위에서 팬들한테 손 흔들어주더니, 구석에 있던 나는 또 언제봤담.
괜한 것에도 의미부여 하게 된다. 나만 보이나, 얘는. 풉.
순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 겁쟁이 쫄보에 소극적일뿐인 나에게 이 인연은 너무 과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