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쿵덕쿵덕 '
오늘도 2층 방앗간에서 떡을 만드나보다.그 놈의 떡은 더럽게 좋아한다니깐.
' 쿵쿵덕쿵쿵덕 '
고개를 살짝 돌려 곤히 자고 있는 성규의 얼굴을 쳐다봤다. 어쭈, 인간됐다고 눈곱도 꼈네.
우현이 푸스스 웃으며 성규를 꼬옥 안으려다가 위에서 다시 들려오는 쿵덕소리에 한숨을 쉬며 베게로 얼굴을 틀어막았다. 그래,이 소리는 절대 방앗간 떡 찧는 소리가 아니다.
" ……발정난 놈들."
2층 김명수 방이다. 일주일에 두세번,김명수가 조금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저렇게 쿵덕쿵덕거린다. 떡을 치는 건지 아니면 방안에서 줄넘기를 하는건지…
나와 김명수,그리고 짱똥이 자연스럽게 이 집에 얹혀살면서 이런 일이 있을거라고는 감안했지만 저렇게 자주 떡을 만들줄은 몰랐다.
더한건 가끔씩 새벽에 물마시러 거실로 나오면 짱똥네 방에서도 비스무리한 소리가 난다는거다. 그에 비해 지금 내 옆에 누워있는 김성규는,
" …… "
키스에서 조금만 더 할라치면 얼굴이 붉어져서는 후다닥 내빼기일쑤다.
뭐,그렇다고 억지로 할 생각은 없다. 근데 같이 산지도 1년이 넘어가는데 키스 뿐인건,증말,너~무 한거다.
새근새근거리던 김성규가 꼼지락거리더니 앓는 소리를 내며 내 옆구리에 파고든다. 방안은 분명 어두운데 김성규 피부만 뽀얗게 빛나고 있다.
어디서 이런 야시시한 검정나시는 사와가지고는 달빛도 하나 없는 밤인데도 하얀 피부가 훤히 보일 정도다.
이렇게 이쁜데,이렇게 앙증맞은데 용케 참고 있는 내 자신이 난 참 대견스럽다.
벌써 이 집에서 지낸지도 1년이라니,시간 참 빠르다.
장동우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고, 김명수는 배운건 요리인 녀석이 얼굴 하나땜에 꽤 이름있는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있다.(월급이 쥐꼬리만한 건 아니다),
나는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 간신히 들어가 인턴(말은 인턴이지만 온갖 허드렛일)으로 일하고 있다.
김성규 말로는 천상에서 폴앤엠이라는 사람이 한달에 한번씩 돈을 가져다준다고는하지만 성인 남자가 세명이나 늘어난 탓에 생활비가 모자를 것 같아 각자 월급에서 조금씩을 떼어내 생활비에 보탰다. 그리고 각자 어머니들이 자주 반찬들을 보내주셔서 생활비의 부족은 다행히도 없었다.
갈색 머리칼을 잘 정리해주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방안을 꼼꼼히 살폈다. 기다란게 어딨나…. 오예 ! 저기있네.
방 구석에 놓여있는 옷걸이 봉을 잡아들고 조심히 침대위에 올라가 심호흡을 했다.
" …쿵쿵!"
" ………"
" 쿵쿵쿵쿵!!"
옷걸이 봉을 천장에 쿵쿵 쳐대자 쿵덕쿵덕거리는 소리가 금새 잦아들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옷걸이 봉을 홱 구석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김성규는 잘만 잔다.
*
[ 굿모닝~♬ 굿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
" 흐음…"
새벽 6시.
손을 휘적거리며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 알람을 끄고 포근한 이불속에서,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근육이 잡힌 우현의 딱딱한 가슴안에서 몇 번 꼼지락거리다가 한숨을 쉰 성규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일어나지않으면 모두 다 지각이다.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이를 닦은 성규가 잠이 가득한 눈을 비비며 거실 불과 TV,그리고 부엌 불을 켰다.
어제보니까 명수가 술마시고 들어온 것 같던데…검정 나시위에 앞치마를 걸친 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콩나물이 있던가 ? 저번주에 장봐온 것들이 벌써 떨어져간다. 다들 잘먹어서 좋긴한데 너무 잘 먹어서 문제다.
무랑 대파랑 북어는 있는데…콩나물이…어디있지…… 아 ! 저기 있다.
냉장고 서랍 귀퉁이에 숨어있는 콩나물을 꺼내든 성규가 하품을 하며 싱크대에서 아침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명수도 요리를 할 줄 알긴 했지만 거의 양식이라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음식을 성규가 만들었다.
처음엔 소금과 설탕을 구별하지못하는 일이 빈번했지만 이젠 식당 아줌마 뺨칠 정도로 훌쩍 늘었다.
도마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무와 대파를 숭겅숭겅 썰은 뒤 한쪽에 밀어두고 냄비에 물을 받아 대왕멸치들을 넣고 국물을 우려내는 동안 아직 자고있는 애들을 깨워야겠다싶어 제일 먼저 동우와 호원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 동우야 ! 호원아 ! 일어나야지."
" …… "
" …… "
" 얼른 ~ "
" 으아… "
" 동우야…일어나."
턱에 안대를 하고 있는 동우를 일으켜세워 화장실로 밀어넣은 호원이 맛있는 냄새에 허벅지를 긁적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 모기향 사야겠다…죄다 뜯겼어.내 피가 달달한가봐."
" 내 방엔 없던데…좀 있다가 장보러 가서 사야겠다. 그거 냄비 불 좀 봐줘."
" 으응."
2층으로 올라가 명수와 성열의 방문을 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방안 가득 차있는 찝찝한 훈기와 지독한 술냄새에 코를 쥐어막고 창문으로 향한 성규가 어두침침한 색깔의 커튼을 열어재낀뒤 창문을 벌컥 열었다.
" 야,너네 엊그제 청소해준 것 같은데 그새 어질렀네… "
" 흐으…"
도대체 뭘 하길래…
잔뜩 흐트러진 침대 시트와 바닥에 굴러다니는 옷가지들을 본 성규가 한숨을 쉬며 옷들을 주워 빨래통에 넣고 서둘러 명수와 성열을 깨웠다.
" 야,이성열 ! 얼른 일어나.아침이야. 김명수 ! 너도 얼른…"
" ……"
아무것도 걸치지않은 두 몸뚱아리에 헛기침을 하며 들췄던 이불을 다시 덮었다. 그래도 지금 깨우지않으면 시간이 빠듯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명수를 잡아 일으켰다.
" 얼른 씻고 내려와."
" 네에…성열아…일어나…"
" 아씨…꺼져…"
" 꺼지긴 뭘 꺼져,이성열. 얼른 일어나."
" 악 ! "
성열의 맨 등짝을 내려친 성규가 앞치마를 고쳐메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널부러진 우현을 살살 흔들었다.
" 남우현,일어나…"
" …아아…"
눈을 느릿느릿 뜬 우현이 칭얼거리며 성규를 끌어안고 다시 눈을 감았다.
" 아,아침 준비해야해."
" …모닝뽀뽀."
" 입냄새나. 얼른 씻어,일단. 씻고 나면 해줄께. 얼른."
" 참나…"
헤실헤실웃으며 우현을 일으켜세워 엉덩이를 툭툭 쳐주며 화장실까지 밀어놓고나서야 숨을 돌린 성규가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눈을 뜬건지 감은건지 정신없이 꾸벅거리고 있는 동우를 한번 더 깨운 성규가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취사버튼을 누른뒤 싱크대에 기대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완벽한 주부의 일상이다.
*
" 뭐 먹고 싶은거 있어 ? 좀 있다가 장보러 갈껀데…"
" 니가 해주는거면 다 좋아."
" 그짓말…"
넥타이를 매는 우현의 말에 성규가 발그레해진 볼을 긁적이며 우현의 머리에 붙은 먼지를 살짝 떼어냈다.
" 자,이제."
" 이제 뭐 ? "
" 모닝뽀뽀."
" 아아…"
" 얼른. "
" 알았어. 볼 대."
" 뭐 ? 볼 ? "
" 그래,볼. 뽀뽀해달라며."
" 뭔 소리야.난 입술 말한 거였어."
" 난 볼 말한거였는데 ? "
" …너무하네,진짜루.당연히 모닝뽀뽀는 입술…"
쪽쪽쪽.
참새가 모이쪼아먹듯, 재봉틀마냥 우현의 입술에 빠르게 세번 뽀뽀를 한 성규가 이제 됐냐며 방을 나가려고 하자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성규의 팔을 잡은 우현이 성규를 돌아세웠다. 우현이 다시 입술을 가져다대려고 하자 우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꾹 잡아누른다.
" 너 또 늦으려구 그래 ? 갖다와서. "
" 므 ? "
" 갖다와서해준다구. 얼른 갖다와."
" 식었네,식었어."
" 아직 안 식었거든~"
성규가 싱긋 웃으며 방을 나서자 가방을 집어든 우현이 입맛을 다시며 따라나섰다.
*
" 넣어."
" 안돼."
" 넣으라구."
" 안된다니까!"
" 아,그냥 몇개만 더 넣어. "
" 성규가 다섯개 이상 넣지말랬잖아."
" 뭐 어때. 그냥 넣어."
성규가 모기향을 사러간사이 핫바 두개를 집어 카트 깊숙히 쑤셔박은 성열이 휘파람을 불며 시식코너로 향했다. 분명 성규가 잔소리할텐데…
핫바를 뺄까말까하는 호원의 입에 시식용 빵조각을 밀어넣었다.
" 너만 조용히하면 모르니깐 계산대까지만 조용히 하고 있어."
" 애들아,이것 봐봐.짜잔."
" 이게 뭔데 ? 캐…노피 ? "
자랑스럽게 성규가 내민건 야시시한 분홍색 캐노피와 시원한 하늘색의 캐노피 두 개였다.
" 모기장같은거야. 모기향은 냄새도 지독하고 처리도 불편하잖아.침대에 다는거래.집에 가서 이거 달자. "
" 그래,그럼."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리스트들을 하나하나 지운 성규가 카트를 계산대로 밀었다.
" 포인트카드 있으세요 ? "
" 아뇨."
" 현금영수증 해드려요 ? "
" 아뇨,괜찮아요.야. 뭐야,핫바. 왜 일곱개나 넣었어 ? 내가 다섯개 이상으로 넣지말라고 했잖아."
" 거봐."
호원이 혀를 차며 성열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 그냥 사주라~하루에 하나씩,일주일. 딱 맞네."
" 몸에 안 좋다니까.암튼 이번만이야.그대신 제일 무거운 봉투 니가 들어."
" 아씨이…"
" 아,잠시만."
성열이 들고 있는 봉투를 멈춰세운 호원이 봉투를 뒤적거리더니 '이 안에 아이스크림있어'하며 성규것과 자신의 것을 꺼내 씨익 웃더니 유유히 자리를 떴다.
" 진짜 안 도와주냐.이씨…"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호원과 성규의 뒤를 뒤뚱거리며 얼른 뒤쫓아간다.
" 비 올 것 같은데."
일기예보가 틀린건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문 성규가 손을 내밀어 햇빛을 만지작거리더니 중얼거렸다. 날이 갈수록 이 능력도 점점 희미해지긴했지만 어느정도 느낌은 남아있다.
축축하고,무겁고,탁하고…아마 장마비가 한바탕 쏟아질 예정인가보다.
*
맑은 천상의 하늘.
하얀 새가 우아하게 날라다니고 싱그런 나무들은 늘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다.
모두 스타일은 다르지만 하얀 계열의 옷들을 입고 있었고 머리가 길던, 파마를 했던, 얼굴이 못생겼던,몸이 뚱뚱하던간에 그 누구도 신경쓰는사람없이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고 있었고 창조도 그 평화로운 일상에 속해있었다. 커다란 분수대가 놓여진 공원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창조가 자전거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 …… "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가 읽고 있는 저 책은…
" …the Help…"
대충 보니 거의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기는 것 같았다. 자전거를 발로 후진해 벤치로 다가간 창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저기…그거 어디서 났어요 ? "
" 네 ? 아,이거 저기 건너편 가방가게에서 산건데 색상이 참… "
" 아뇨.매고 있는 가방말고, 그 책이요."
" 아,이 책이요 ? 자랑은 아니지만,사실… 성규님이랑 아는 사이거든요."
" 지,진짜요 ? "
" 네.예전에 생관부에 있으실때 무쟈게 잘해주셨는데…암튼 이 책 나오자마자 샀어요. 그것도 세권이나요. 그래야 브로마이드도 주거든요. "
" 오…그러시구나…"
" …… "
" …… "
창조가 갈 생각을 않고 책을 뚫어져라쳐다보자 신경이 쓰였는지 책갈피를 끼워넣고 책을 덮은 남자가 창조에게 물었다.
" 뭐 할말 있으세요 ? "
" 아…아니에요.그냥…저도 그 책,아니 그 작가님 팬이거든요."
" 아,예…."
" 아직 읽진않았지만."
뭐 이런 놈이 다있어.
남자가 눈썹을 꿈틀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 …… "
" 읽,읽을래요 ? "
" 왁!!!!!! 진짜요 ?! "
" 네. 집에 두 권 있어서 그거 읽으면 되요."
" 와,고마워요!!! 몇 달째 못 읽고 있었는데…진짜 고마워요!!!! "
창조가 벤치에 앉아 책을 가슴에 대고 꼭 끌어앉았다. 창조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 남자가 이만 가보겠다며 가방을 고쳐매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가방끈에 'DANIEL'이라는 이름표가 반짝반짝거렸다.
*
번외 끝난거아닙니다 ㅎㅎㅎㅎ
다니엘이 누군지는 아시죠!? 틴탑의 다니엘 맞습니닿ㅎㅎㅎㅎ
다니엘의 출연이 갑작스럽다뇨!!!! 분명 성규가 행운목때문에 천상으로 잠시 올라왔을때 등장했었는데....
아무튼 내일 번외 2편! 8~10시에 뵈요!♥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