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HOTEL SOFA
W.이요르
결국 오늘 하루도 열람실에서 보내는구나. 파란만장할 거라고 생각했던 캠퍼스생활은 엄청난 수업량과 까다로운 교수님들 덕분에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버린지 오래였다. 물론 고3시절 어깨를 짓누르던 수험생이란 압박감이 없어진 건 좋지만 이젠 취업이라는 현실이 내 몸을 조여왔다. 수능 점수 발표나고 힌달간이 제일 좋았어. 아무걱정없이 놀기만 했는데. 내가 이렇게 열람실에 죽치고 앉아 레포트만 써 댈 줄 누가 알았겠냐고! 토익이다, 토플이다, 봉사다, 연수다. 해야하는 일들은 쌓여만 가고, 지금까지 해놓은 것들은 아무것도 없고. 변백현 인생 정말 막막하다. 젠장, 겨우겨우 아슬하게 이어가던 레포트도 막혀 써지지도 않았다. 대학생이 되서 늘은거라곤 욕이랑 술밖에 없네, 아, 이 꽃다운 나이에 미팅 한 번 못해보고. 변백현, 너 진짜 불쌍하구나.
"야, 너 다 했어?"
"아니. 막혀서 안써져."
"나도.. 아! 미치겠네. 야, 나 바람 좀 쐬고 올게."
"올 때 커피 한 잔."
"꺼져."
옆에서 열심히 자던 경수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째째한 놈, 그깟 캔커피 얼마나 한다고.. 경수와 알게 된 지는 올해로 4년이 되었다. 생긴건 찌질해보여도 성격은 좋아서 낯을 가리는 내게 먼저 다가와 준 것도 경수였다.벌써 4년이나 지났구나.. 시간 참 빠르네. 아오, 쓰던거나 마저 끝내야지.내가 강교수 수업을 선택한 게 잘못이다.
'똑똑.'
집중해서 회계원리를 파고있던 중 흐름을 깨는 소리에 위를 쳐다봤더니 경수가 두 손에 캔커피를 들고 웃고 있었다.
"야, 어떻게 사람 오는 소리도 못 듣냐?"
"이건 내꺼?"
"어. 너 불쌍해서 주는거야."
마침 목도 말랐기에 경수가 건내주는 캔커피를 받아 따서 한 입 마셨다. 경수도 자리에 앉아 한 모금 마시려던 찰나, 경수의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님아, 매너."
"쏘리."
경수는 핸드폰을 들고 전활 받기 위해 나갔다가 금방 돌아와서는 내게 말했다.
"찬열이. 지금 여기로 온대."
"찬열이? 경영과 대표미남 박찬열!? 걔가 왜 와!?"
"누구 있냐길래, 우리 둘 밖에 없다고 했더니 지금 오겠다던데?"
"야! 나 낯가리는 거 알잖아! 별로 안친해서 불편할 텐데!"
"이번 기회에 친해져봐. 걔 괜찮아."
난 별로 친해지고싶은 마음이 없다고! 너랑 친해지는데도 6개월이 걸렸어 이 자식아!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 너희 친해지면 내가 술 쏠게!"
저딴 말만 지껄인다. 지가 더 신났어, 아주. 아마 박찬열 앞에서 낯가리는 내 모습이 상상되서 그런거겠지. 은근 싸이코라니까. 짜증이 가득 담긴 내 얼굴을 이제서야 눈치챈 건지, 미안하다며 눈웃음을 살살 친다. 그래. 넌 좋은 의도였겠지. 내 성격이 거지같은걸 어쩌겠어. 너도 나같은 친구 만나서 고생이다. 아씨, 근데 박찬열 오면 진짜 어색할텐데. 어쩌지..
"어? 찬열이다."
열람실 안으로 들어온 박찬열을 봤는지 경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박찬열은 그런 경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진짜 아무도 없네."
"어. 완전 편해. 신경 안 써도 되고."
"그렇긴 하겠다."
경수의 말에 대답을 한 찬열이 우리 맞은편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아니, 지금 널리고 널린게 자리인데 왜 여길앉아!? 불편해 죽을 것 같다고! 제발 다른 자리 앉아라, 다른 자리 앉아라.
"아, 안녕. 경수 친구? 난 같은과 박찬열이야. 입학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인사를 하네. 반가워"
어? 어어. 안녕. 온갖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에게 인사를 하는 박찬열의 행동에 당황해 바보처럼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씨! 어어, 안녕, 이 뭐야! 완전 바보같잖아! 변백현, 너 이제 어떡할래! 쟤는 이제 널 아주 우습게 볼거야. 완전 바보로 볼거라고. 아니, 하필 그때 말 거는건 뭐람. 다 박찬열때문이야! ..어? 방금 박찬열이 살짝 인상을 쓴 것 같았는데, 잘못봤나? ..이제 헛것까지 보이는구나.
"자자, 다시 집중해서 이 거지같은 과제를 끝내자고!"
경수는 찬열이 준비를 모두 마치자, 기운 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 할 일이 태산인데 박찬열 생각때문에 시간을 낭비 할 수는 없지. 얼른 끝내고 집가면 그만이야. 빨리빨리 끝내자, 일단 강교수의 회계원리부터!
***
"으아, 피곤해."
"몇시야?"
찬열의 질문에 9시., 라고 말한 경수는 책상에 엎드려누웠다. 나도 손을 풀고 기지개를 피는데. ..젠장. 박찬열과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시선을 피하긴했는데, 아마 엄청 이상했을거다. 대놓고 피했거든.
"경수야. 너 졸린 것 같은데 바람 좀 쐬고 와."
"응. 그래야겠다. 아, 오늘따라 더 피곤하네. 나가는 김에 마실 것 좀 사다줄까?"
"아, 그럼 난 사이다."
백현아, 넌? 박찬열의 특유의 저음이 방금 전의 사건으로 넋놓고 있던 내 귀 울렸다. 어어? 나? 응. 뭐 마실래? 난 그냥 커피.. 오케이. 그럼 나 갔다온다. 내 말에 경수가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잠깐, 경수가 나갔으니까. 지금 여기에 박찬열이랑 나밖에 없는거야? 쟤랑, 나랑? 단 둘이? ..오 마이 갓.
"무슨 생각 해?"
"어? 아, 그냥.."
"내가 불편한가 보네."
"아,아니야. 그냥 신경 쓸일이 있어서."
"그럼 다행이고."
시무룩해진 박찬열의 표정때문에 변명하는 꼴로 급히 말하자, 표정이 좀 밝아졌다. 뭐, 성격이 나쁜 것 같지는 않네. 박찬열이 왜 경영과 대표미남인지 알 것도 같았다. 성격도 괜찮지, 공부도 잘하지, 잘생겼지, 키 크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돈도 많다던데. 타고났구나. 겨우겨우 턱걸이로 들어온 나랑은 다르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박찬열이 대단해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말을 빌리자면 우월한 사회지도층 같은? 난 당연히 서민이고. 더욱 더 박찬열과 멀어진 느낌이였다. 역시 너랑 친해지는 건 무리였어.
"넌 방학하면 뭐할거야?"
"음. 아마 알바하겠지. 등록금도 내야하고, 자격증 학원도 등록해야 하니까."
"알바? 안 힘들어?"
"원래 세상은 다 힘들게 사는거야. 돈 버는게 쉬운줄아나."
박찬열의 질문에 잊고있던 방학에 대해 걱정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신세한탄을 해버렸다. 내 말투가 웃겼는지, 찬열은 푸흐흐, 하고고 웃었다.
"그런말하니까, 늙은이 같아."
"이 정도 생각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다 하거든!"
"정말? 난 처음 듣는데."
네 주위에 있는 사람이 평범하지 않아서 그런거야! 목까지 올라왔던 말을 겨우 참아냈다. 아직 어색한데 여기서 성질까지내면 돌이킬 수 없을거야. 휴, 참자 변백현. 쟨 사회지도층이잖아. 너같이 평범한 서민들의 생각을 알리없어. 그래. 박찬열한테 성질내봤자 아무 도움안된다, 너.
"너 되게 신기하다. 표정이 막 바껴."
..내가 박찬열이랑 또 엮이면 사람이 아니다! 부디 이렇게 얼굴보며 얘기하는게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
"나 이제 가봐야겠다."
"벌써? 아직 경수도 안왔는데. 급하지 않으면 경수보고 가."
넌 아무말없이 네 얼굴이 뜷어져라보고 있는 애랑 같이 있을 수 있겠냐!? 시선을 책으로 돌려 터져나오기 일보직전인 화를 속으로 꾹꾹 참고 있으니, 계속 말 시킬 줄 알았던 박찬열은 이내 자세를 고쳐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냥 훑고 말 줄 알았는데 내 얼굴이 뚫어져라 계속 쳐다봤다. 금방 올 것 같던 경수도 감감무소식이고, 박찬열이 시선을 돌릴 것 같지도 않아. 그냥 집으로 가려고 가방을 싸며 말을 하니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박찬열이었다. 너 때문이잖아, 너. 도서관에 왔으면 공부해야지, 왜 사람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냐고.
"그냥, 집중이 안돼서. 경수 오면 미안하다고 전해줘."
"깜깜한데 그냥 좀 있다 같이가지?"
"아니야, 여기서 가까워. 그럼 열심히 해."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찬열에게 인사를 한 뒤 도서관을 나왔다. 중간에 박찬열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 같았지만, 별 얘기 아니겠거니 하고 잊었다. 몇 계단 안내려와 아래쪽에서 검은 봉투를 들고 느릿느릿 걸어오는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어쭈, 차라리 기어오는게 더 빠르겠네.
"어? 뭐야. 왜 벌써 가?"
"내 말은 뭐로 들은거야. 불편하다니까."
"야, 불편해도 그렇지. 너 사회에 나가서도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람 안만나고 다닐래?"
"아, 몰라. 차라리 다른 사람이면 괜찮겠는데, 쟨 진짜 불편해. 나 간다."
어어? 야! 변백현! 나는 도경수의 외침을 뒤로한채 집으로 향했다.
***
['어제 얼마나 뻘쭘했는 지 아냐!?']
"미안해. 근데 정말 불편해서."
['에효, 내가 너 때문에 진짜. 찬열이가 너 신경쓰더라. 니가 자길 싫어하는 것 같대.']
"박찬열이 나를 신경쓴다고? 내가 뭐라고?"
['걔가 워낙 착하잖아. 야, 길가다 만나면 아는 척 좀 해라.']
"아, 몰라. 끊어."
어제부터 박찬열, 박찬열. 박찬열 추종자 납셨네. 아니, 내가 왜 걔랑 아는 척을 해야하냐고. 그리고 걔가 나한테 신경을 왜 써!?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참나, 걔도 웃기는 놈일세,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 재빨리 경수와의 통화를 끝내고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요즘 읽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데 좀 더 미루다간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서 읽어보지도 못하고 포기할 것 같았다. 생각 난 김에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 시간표를 확인 한 후 도서관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향했다.
"어, 변백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벤치에 앉아 애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박찬열이 보였다. 아, 신이시여. 나는 절망이 담긴 한숨을 쉬고는 걸음을 멈췄다. 도서관 가기는 틀린 것 같았다.
이요르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요르예요 *제가 너무 늦었죠ㅜㅜ 정지가 오늘 늦게서야 풀려서요ㅜㅜ *시간약속 지키지못해서 죄송합니다ㅜㅜ *오피스텔 소파는 매주 수요일 밤 9시 55분 글잡, 블로그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표지주신 엑소플래닛주민 님 감사드려요. *암호닉은 항상 감사하게 받고있어요!! *암호닉은 2화때 한번에 정리해서 올릴게요^^ *글수정 도움주신 홍이언니 고마워요ㅜㅜ!! *오피스텔 소파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댓글 달기 귀찮으시면 추천이라도 눌러주시고 가세요ㅜㅜ 조회수랑 댓글&추천수랑 어마어마하게 차이나서ㅜㅜ 진짜 볼때마다 슬퍼요ㅜㅜ *여러분 부족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