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녀는 필경 이 나라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검은 머리칼을 곱게 올리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얌전히 앉아있던 무녀는 분명 그리 말했다. 한참을 제정신이 아닌 양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던 그녀의 눈에서는 광기로 보이는 빛이 번들거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멈추었다.
저 무녀가 지금 누구 앞이라고 저리도 불경한 말을 한단 말이야.
이날은 평화롭기 그지없던 유월국의 경사였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조용하던 저잣거리도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공주님의 탄신이라. 별다른 사건 없이 소소하게 살아가던 유월의 사람들에게 황녀의 탄생은 다시 없을 큰 축제였다. 황제 부부의 금슬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황손의 소식을 들을 수 없던 것이 벌써 여러 해였던 터라 모두 황실의 안위를 근심하는 중이었으니. 비록 황자는 아니었지만 보위에 오를 황족 하나 마땅하지 않던 유월에서는 황녀의 탄신을 탐탁하게 여길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황후의 나이 탓에 근심이 컸던 황제도 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늦은 나이에 자식을 품에 안는다는 것이 꽤나 탄복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고했소, 황후. 내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군그래. 이리도 어여쁜 딸아이를 안겨주다니.”
“이 모든 것이 다 폐하의 은덕 덕분 아니겠습니까.”
유월의 황제는 이 순간만큼은 황제의 자리를 잠시 잊고 그저 지아비이자 아버지가 되었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을 미소로 지켜보던 내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 전통대로 무녀를 올려 축사를 듣고 공주마마의 탄신을 축하하는 연회를 여는 것이 마땅하다 사료 되옵니다.”
“오, 그래. 짐이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군. 신수청(*유월의 궁중 무속 전담 기관)의 무녀를 들이라.”
유월은 예로부터 황자나 황녀가 태어나면 무녀에게 예언을 올리게 하고 축하연을 여는 전통이 있었다. 말로는 예언이라 하나 무녀들이 눈치껏 누구보다 영민하게 자라실 것이다, 라거나 성군이 되실 거다, 따위의 축사를 올리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지극히 예외인 것 투성이였던 이날을 제외하고.
신수청의 국무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녀의 탄신을 경하 드리기 위해 황궁을 찾았다. 매무새를 단정히 가다듬고서 내관의 안내를 따라 황후전으로 향한 그녀는 미리 생각한 축사를 몇 번이고 입안에서 되뇌는 중이었다. 어렵사리 얻은 귀한 공주님이니 만전을 기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국무의 정신은 보에 싸인 공주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아득해지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옥죄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이미 제 자신을 놓쳐버린 무녀는 삽시간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주는 누구라도 감탄해 마지않을 절세가인으로 성장하겠지만 그녀의 존재는 이 나라의 큰 재앙으로 다가온다. 황궁이 불타고 유월의 수도는 폐허가 되며 온 나라의 백성이 탄식하며 울부짖는다. 무녀의 눈에는 타들어 가는 황궁의 붉은 아지랑이가 비치고 귀에는 고통 섞인 비명이 메아리쳤다.
비명소리에 귀가 먹먹하던 그녀는 그때서야 제 입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목소리를 담는 입은 제 것이었으나 손톱으로 긁듯 소름 끼치는 그 소리는 제 것이 아니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나라가 머지않아 망국의 길을 걷겠구나, 필시 재앙이 닥칠 게로구나, 확신하며 심장이 빠르게 뛸 뿐이었다.
“황녀는 필경 이 나라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무녀는 황후전 안에서 축사를 기다리던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예언을 남긴 후 고요 속에 한동안 꼿꼿이 앉아있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제 몸에 들어온 과도한 신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녀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넓은 공간에 냉기만이 감돌았다. 계절은 여름이었지만, 더위 따위는 그 끔찍한 차가움을 이길 수 없었으므로. 가여운 황후는 손을 파르르 떨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황제는 잠시 후 이성을 되찾고서 가감 없이 불쾌함을 드러냈다.
“당장 저 무녀를 내 눈앞에 띄지 않게 하라! 오늘 이후로 이 일을 입에 담는 자는 엄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황제의 지엄하신 호령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으나 바람보다 빠른 것이 소문이라 했던가. 어렵게 얻은 귀하디귀한 황녀가 재앙이라니, 이런 망측하고도 기묘한 소문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황궁 안은 물론 도성 안의 사람들은 공주가 유월에 재앙을 몰고 온다더라, 국무가 한 말이니 -물론 이후로 그녀는 신수청에서 쫓겨나 산에서 여생을 보냈다- 틀림없이 확실한 예언이라더라 하는 말들을 암암리에 전하곤 했다.
이는 황제와 황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곧 모두가 알고 있는 지침 같은 것이 되었다. 특히나 황궁 안에서는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수다를 즐기는 궁인들 사이에서 와전되어 공주의 눈을 마주 보면 저주를 받는다든지 공주가 황제가 되면 나라가 피로 물들 것이라든지 하는 소문들이 궁 안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공주가 고작 돌이 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敵國의 皇后 一
“유모.”
“예, 공주 아기씨. 명할 것이 있으십니까.”
“유모가 여태 내게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어, 그렇지?”
“예?”
뜻밖의 질문에 나이가 지긋한 여인의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이제 막 열 살이 된 황녀는 은청궁이라는 저만의 아름다운 처소도, 많은 재물과 정원도 가지고 있었으나 황궁 밖을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은청궁 밖을 나가는 것도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황제는 공주의 주위에 유모와 은청궁 소속 궁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공주 또래의 어린 나인들은 물론 황제와 황후 외의 황족도 공주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철저히 격리된 삶이었다.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의 황녀는 왜 아버지가 제 주변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지, 벗과 어울리라고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황실 사람들의 탄신 축하연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도 참석만 할 수 있을 뿐 누구와 사사로이 만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그마저도 빨리 처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황녀가 그런 것들로 토라질 때마다 유모가 아기씨께서는 장차 군주가 되실 분이라 보호하시는 것이다, 아기씨는 남들과 함부로 어울려서는 안 되는 귀한 분이다, 하면서 달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어제부로 황녀는, 뭔가 심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는 날이 유난히 좋았고 궁에서 날이 좋다는 것은 궁인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만은 아니었다. 황족께서는 그저 뱃놀이나 하는 날이겠지만 그들은 밥이 떨어져도 바로 주워 먹을 수 있을 만큼 깨끗한 궁을 대대적으로 치워야 했으니까. 황녀의 유모 역할을 하는 김상궁은 특히 깔끔한 성정으로 뭐든 대충 지나가는 법이 없어 궁인들은 저들끼리 우는소리를 했다.
그렇게 은청궁의 모두가 바닥과 장의 먼지를 주시하고 있을 때 황녀는 혼자 마루에 앉아 발 장난을 치고 있었다. 호박색 눈을 가진 고양이가 눈에 들기 전까진.
“아, 예뻐라. 어디서 들어온 게야?”
작고 포동포동한 손이 그 노란 등을 쓰다듬으려 하자 고양이는 몸을 뒤로 빼더니 유유히 궁을 벗어났다. 마치 이 작은 공간의 바깥은 어떤 세계인지 알려주겠다는 것 같은 유연하고 요염한 움직임이었다.
어린 황녀는 그 또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유혹에 약했다. 그러니 나중에 유모에게 혼나는 것보단 당장 눈앞의 예쁜 고양이가 우선인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난히 체구도 자그마했던 공주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고양이를 따라 은청궁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참을 홀린 듯 가던 공주는 주변을 신기하다는 낯으로 두리번거리느라 고양이를 놓치고 나서야 제가 꽤 멀리까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유모가 없어진 걸 알아채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
작은 발을 한 번 굴리고서 왔던 길로 돌아가려던 황녀의 눈길을 다시금 사로잡은 것은, 이번엔 고양이가 아니라 제 또래의 어린 나인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광경이었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나인 하나는 짤깍짤깍 손뼉을 쳐대는 다른 나인들을 잡기 위해 소리 나는 곳으로 손을 뻗어댔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햇볕에 탔는지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아이들의 얼굴은 조그마한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황녀는 연꽃처럼 말갛고 하얀 제 얼굴보다도 저들의 얼굴이 더 해사하다고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공주의 눈에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고 부러웠고 더없이 행복해 보였을 뿐이었다.
여차저차 궁으로 돌아와서는 공주가 잘못되기라도 했을까 봐 마음을 졸였던 유모에게 꾸중과 함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잔소리를 들었다. 언제든 끝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공주는 곧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다. 그러나 잠이 들지는 않았다.
유모나 양친께서는 분명 내가 귀한 사람이라 벗을 함부로 사귀어선 안 된다고 하셨는데, 왜 그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을까. 그렇게 되고 싶었던 걸까.
작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 봐도 답은 하나였다.
그 아이들이 저보다 낫다는 것. 자신이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말은 모두 당장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이었다는 것.
총명한 황녀는 밤사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지금 유모에게 확답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모의 미묘한 표정을 보아하니 제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기씨.”
“지금 아바마마께 청을 올리러 가야겠다. 옷을 준비해다오.”
이미 무언가 알고서 확신하는듯한 황녀의 얼굴에 유모는 뭐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황제의 허락 없이 마냥 공주를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폐하께서 윤허하셔야 나가실 수 있습니다, 아기씨.”
“지금 당장 가서 아바마마께 여쭐 것이 있다. 유모는 아바마마가 아닌 내 사람이 아니었느냐. 입을 옷을 준비하거라.”
단 한 번도 떼쓴 적이 없던 순한 공주의 처음 보는 단호한 태도에 유모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고 올 일이다 여겼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제 주인은 많이 자랐고 영민하다고 생각한 유모는 포기했는지 단전에서부터 끌려 올라온 것 같은 한숨을 내쉬고서 나인들에게 마마의 옷을 가져오라 일렀다.
다홍색 치마에 노란 상의를 덧대어 입은 황녀는 궁인 몇 명과 유모를 대동하고 총총걸음으로 은청궁을 지나 황제의 처소로 향했다. 작은 발이 손톱만큼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움직이는 게, 꽤나 귀여웠다.
“아바마마께 고하게.”
“하오나 마마,”
“얼른.”
처음 있는 일에 당황한 것이 역력해 보이는 내관은 마지못해 목소리를 낸다.
“폐하, 공주마마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 들라.”
황제는 황녀가 왜 허락 없이 예까지 왔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굳이 왜 허락 없이 은청궁을 벗어났느냐고 타박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최근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제 딸은 많이 자랐고 또래보다 훨씬 총명한 아이였다. 그리고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때는 본인의 행동에 한 치의 그릇됨이 없음을 확신할 때였다.
필시 그 이유일 테지. 안 올 것 같았던 날이 오긴 오는군.
“아바마마. 드릴 말씀이 있어 명을 어기고 찾아뵈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일단 앉거라.”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조그마한 아이는 용서해 달라, 라고 하긴 하였으나 마냥 제 잘못인 것처럼 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맑고 흐트러짐 없는 눈빛은 아비를 탓하는 듯하여 황제는 그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흐릿한 형상조차 보기 힘들었다.
“... 할 말이 무엇이냐.”
“무릇 군자는 여러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식견을 넓힌다고 배웠습니다. 제게 장차 군주가 될 거라 하셨지요. 아바마마께서는 소녀가 차기 황제가 될 몸이기에 보호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허나, 군주는 강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여 이 나라 백성을 지켜야 하는 것이 군주의 도리 아닙니까. 아바마마의 말씀은 모순입니다. 소녀가 백성을 안을 수 있는 황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바마마께서 도와주세요.
제게 하시는 모든 과보호를 멈춰주십시오. 이것이... 제 청입니다.”
황제는 저를 바라보는 눈빛을 받아내다 곧 고개를 숙이며 이마를 짚었다.
“네가 약하다 생각해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가 나약하기 때문에 널 숨기려고 했던 것이다.”
“...”
황제가 하는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황녀가 의문을 띤 표정을 했다. 황제는 굵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황녀의 말대로 그녀는 황제로 커야 했다. 안채에서 수를 놓는 반가의 여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아이다. 언제까지고 품 안의 자식으로,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황제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허나 아직은 어린아이기에 제 저주를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겨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딸이 받을 상처가 두려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예언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신이었다. 꽤 자주 황궁이 불타고 황후가 죽는 악몽에 시달리는 그는 저도 모르게 문득 무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불쾌한 공기가 그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다.
“아바마마...?”
딸의 목소리가 근심에 잠식되는 그를 깨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을 보고 있자니 불안한 공기가 옅어지는 듯싶다가도 끈질기게 그의 곁에 머물렀다.
황제의 머릿속에서 작열하는 황궁의 불길은 사그라들었지만 꺼지지는 않았다. 그는 한참을 짓누르던 관자놀이에서 손가락을 떼어내고 결심을 한 듯싶은 눈으로 딸을 내려다보았다.
“청을 들어주마. 공주에게 어울릴 만한 벗을 만들어 줄 테니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해라. 허나 항상 몸가짐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그에 대한 책임과 대가가 따르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 아니 그러하냐, 공주.”
“예, 명심하겠습니다!”
동그란 눈을 빛내는 황녀는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그 나이 때 아이였다. 황녀는 통통한 두 뺨이 살짝 상기된 채 제 처소로 돌아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풀대는 그녀의 다홍빛 옷자락에 따라 붙었다 .
/
“그래서, 설화국의 일은 어찌 되었는가.”
“설화의 현 황제가 화비라는 여인을 들인 뒤로 십 년이 넘도록 국정을 소홀히 하고 있어 신속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합니다.”
“큰일이군. 유월에 거의 유일한 교류나 다름없는 곳이거늘.... 백성들에게 해가 미치지 않도록 설화와 접하는 국경에 조금 더 만전을 기하라고 정율 장군에게 일러주게. 혹여 동요할 수 있으니 병사들에게 구태여 자세한 것은 알리지 말라고 전하고.”
“예, 폐하.”
설화는 유월과 국경이 맞닿은 이웃 나라였다. 유월은 남으로는 바다를, 북으로는 설화와 접한 반도국이어서 설화 외에 이렇다 할 외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본디 유월에서는 매년 한 번씩 설화에 조공을 바쳤는데 그것은 그저 형식적인 관계로, 교류의 한 방법일 뿐 유월이 설화의 속국은 아니었다. 유월은 사신들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그 대가로 설화의 물품 및 발달한 기술을 들여올 수 있었으므로 조공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지도 않았다. 물론 설화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대국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설화의 입장에서는 전혀 위협이 되지도, 그리 유리한 지리적 입지를 가진 것도 아닌 유월을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었을 뿐.
그리 강했던 설화인데. 태학사와 독대 중인 유월의 황제는 지금 내부부터 썩어 들어가는 망국의 징조를 보고 있었다.
소안(笑安)이라.
소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흰 가루 형태의 약이 그 징조의 시발점이었다.
어디서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타국의 황제인 자신은 물론이고 설화의 황제는 계집의 치마폭에 놀아난 지 오래되었기에 그가 알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십여 년 전쯤 조강지처를 독수공방하게 하고 화씨 집안의 여자를 들인 설화국 황제는 허수아비 군주였다. 전장을 휩쓸던 용맹함은 더 이상 그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최근 세간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긴 하였지.
‘설화국의 남쪽에 살아있는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다지 뭔가!’
‘우리 국경과 제일 맞닿아 있는 곳 말인가?’
‘그럼, 거기가 아니면 어디겠나. 도저히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몰골이라 하던데. 끔찍하기가 아주 귀신보다 더하다더군.’
‘어휴 난 무서워서 이제 설화 쪽은 보지도 못하겠어.’
살아있는 시체. 어불성설도 그런 어불성설이 없었다.
오랜만의 잠행에 나섰던 황제는 저잣거리에서 들은 흥미롭고 섬뜩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설화의 남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자들이 있는데,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나. 지나쳐 가는 괴담으로 넘어가기에는 지난번 설화에 사신으로 갔던 몇몇 대신들이 전했던 소문도 있고 하여 찜찜한 마음에 태학사에게 국경으로 가서 진상을 알아보기를 명했었다.
태학사는 곧바로 친우이자 국경을 지키는 유월 최고 무신, 정 율 장군에게 찾아갔고 장군 역시 소문이 사실인 것 같다며 걱정스러워했다. 본디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였으니 처음엔 그저 술에 취한 자들이겠거니 했으나 뭔가 심히 잘못된 것 같은 낌새에 황제께 알리려던 참이었다고.
말로 듣는 것보다 한 번 상황을 보는 게 낫겠다 싶었던 태학사는 몰래 국경에 걸쳐지다시피 있는 마을로 향했다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저것이 진정 살아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 근방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은 아무것도 담지 않은 듯 비어있고 입은 볼썽사납게 벌어진 행색이 남루한 자들이었다. 더 둘러보았을 때는 꽤나 높으신 집안 도련님인 것 같은 자도 다를 바 없는 꼴을 하고 있었다. 즉시 귀국한 태학사는 황제에게 제가 본 것을 보고하고 황명대로 몰래 설화에 사람을 보내 조사하게 했다.
알아본 바로, 그들을 파멸로 이끈 것이 소안이라는 마약이었다. 그 이상은 알기 어려웠지만, 유월도 약의 손아귀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공주에게 마약으로 물든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지. 황제는 그리 생각했다. 여러모로 걱정할 것이 많은 황제는 제 습관대로 착실히 관자놀이에 손을 댔다.
설화의 일도 근심이 큰데, 공주의 벗은 또 누가 적합할까. 인상을 쓴 자신이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태학사와 눈이 마주친 그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자네에게 아주 참하고 영민한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찬이십니다. 아직은 그저 어린애나 다름없지요.”
“그래, 아들이 올해 몇 살이나 되었는가.”
“이제 막 지학(*15세)이 되었사옵니다.”
“음... 벗이 되는 데 나이 차는 그리 중요치 않지. 왜, 옛 선인들도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황제의 말에 태학사의 시선이 놀란 듯 옥안을 향했다. 설마 저 말씀은.
“내일부터 자네 아들을 황궁으로 들게 하게. 내 그 아이를 우리 공주의 동무로 두고 싶군. 아이가 괜찮다고만 하면 말일세.”
“하오나 폐하, 소신의 아들은 아직 궁중 예법을 익히지 못했사옵니다.”
“그것이야 후에 찬찬히 익혀도 상관없는 일이지. 그렇잖아도 자네 아들을 꼭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어. 공주 앞에서 그 빌어먹을 예언 얘기만 하지 말라고 미리 언질을 해주게. 부탁하네.”
“...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 많이 부담스럽다 싶으면 다른 동무를 한 명쯤 더 데려와도 괜찮다고 말해주게. 그러고 보니 아들 이름도 채 묻질 않았군. 이름이 무엇인가.”
“석진이라 합니다.”
정갈하고 긴 손가락이 옷고름을 야무지게 여몄다.
몸종 아이에게 하늘색 겉옷을 챙기라 일러준 후 말에 오른 석진은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다. 대충 보기에는 더없이 차분해 보였으나 심장 소리가 옆의 아이에게 들리진 않을까 걱정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은 이 나라의 유일한 황위 계승자였으니까. 엊저녁에 갑작스러운 입궁 소식을 들은 석진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밤새 주의해야 할 부분을 익혔다.
궁인들과 황실 사람을 제외하고 처음 말을 섞어보는 사람이 될 테니 황녀를 배려할 것,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궁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을 것, 그리고 황녀에 대한 소문은 입에 올리지도 말 것.
뭐, 다 어렵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런데 사내아이와 벗으로 지내도 정말 괜찮으신가. 나랑 노는 건 재미없으실 텐데.
얼마나 믿을 만한 신하가 적었으면 아들뿐인 제 아버지에게 그런 부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석진은 그 손을 내치기가 어려웠다. 물론 거절했어도 되었을 일이지만 아버지를 곤란하게 해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그 황녀가 어떤 사람인지, 꽤 궁금하기도 하고.
근데 이렇게까지 긴장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호석이더러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나. 지금은 국경에 있으니 예까지 오는 건 번거로울 것 같긴 하다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석진은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황궁 문 앞에 다다라 있었다. 말을 매어놓고 앞에서 기다리던 궁녀의 안내를 받으며 공주의 처소로 향했다. 석진의 생각보다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궁이었다. 그럼에도 처음 보는 것들이 신기한 석진은 맑고 예쁜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빴다.
너무 신기한 거 티 내면 공주께서 흉보시려나.
"..."
그까지 생각이 닿자 귀가 조금 붉어진 석진은 곧 점잖게 두 손을 꼭 모으고 가만히 궁녀의 뒤를 따랐다.
“아기씨, 곧 태학사 댁의 도련님이 오신다 합니다. 얼른 일어나서 채비를 하셔야지요.”
가만히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띄었다.
아, 망했다...
분명 어젯밤에 친구가 생기면 어떻게 말을 걸지, 나보다 5살이나 연상인 도련님과는 뭘 하고 놀아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유모 말대로 일찍 잠들었어야...
이런 속적삼 바람으로 벗을 맞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황녀는 다급하게 이부자리에서 벗어났다. 다행히도 노련한 궁녀들은 손이 아주 빨랐고, 동시에 야무졌다.
얌전히 궁인들의 손길을 받고 간단하게 단장을 마친 황녀는 그제야 한시름 놓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마마, 태학사 김선중 대감 댁 석진 도련님 드십니다.”
“드, 들어오세요.”
하.... 바보같이 말을 더듬고 난리람.
입술을 꼭 깨문 황녀는 곧 얌전하게 들어온 석진과 서로 눈길이 닿았다.
질긴 인연의 첫 만남이었다.
***
“폐하, 이는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적자이신 2황자님을 차기 황제로 지정하심이,”
“시끄럽군. 차기 황제를 지정하는 일은 마땅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유월의 정전보다 열 배는 크고 화려해 보이는 곳을 의복을 갖춘 신료들이 메우고 있었다. 가히 천자의 자리라 할 사치스럽고 높은 용좌에는 설화의 황제, 전장을 휩쓸던 피의 군주가 거슬린다는 듯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온몸으로 귀찮음과 거만함을 드러내는 그의 얼굴은 이미 죽은 사람인 양 핏기가 없고 두 눈은 움푹 패어 눈 밑으로 그늘이 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2 황자를 황제로 지정해야 한다는 신하를 노려보는 노기 섞인 눈빛만큼은 이십여 년 전 전장에서처럼 형형히 빛났다.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명한다. 짐의 사후 황제의 자리에 오를 황자는, 1황자 정훈이 될 것이다. 이후로 또다시 황위 계승을 문제 삼는 자는 역모로 간주하고, 반역죄로 그 책임을 묻는다. 알아들었는가?”
황제는 금빛 자수가 수놓인 옷자락을 소리 나게 쓸며 자리를 벗어났다. 자리에 서 있는 신료들의 표정은 모두 싸늘하게 식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1황자 정훈은 황제의 그릇이 아니었다. 술상 앞에서 1 황자는 늘 가장 많이 오르는 안주였다. 그는 황제와 화귀비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으나 귀비의 뒷배가 든든했던 탓에 거만했고 난폭했고 행동거지가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만큼이나 가벼웠다.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궁인은 바로 죽여 버렸고 배다른 동생인 2황자에 대한 열등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 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다니.
신료들은 설화가 드디어 망국의 길을 걷는구나, 생각했다.
다만 화씨 성을 가졌거나 그들에게 줄을 댄 자들만이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내렸다. 기분이 좋은 것을 애써 점잖게 숨기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화귀비가 황제의 모후가 된다면.
지금도 충분히 화씨 일파가 정계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판에 황제까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게 된다? 1 황자는 정치에 한 톨의 관심도 없는 위인이니 설화는 화씨의 손바닥 위인 셈이었다.
차기 황후까지 화씨 여자를 들인다면 금상첨화겠군. 2 황자만 없었다면 더 깔끔했는데 말이야.
속으로 그리 생각하던 화귀비의 오라비는 곧 간사한 눈매를 치켜 올리며 2 황자 정국을 어떻게 더 나락으로 떨어트릴까, 오직 그것을 생각했다.
“황자님.”
지민이 짐짓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정국을 응시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폐하께서 1 황자를 차기 황제로 명했다 합니다. 지금이라도,”
“너답지 않게 조급하구나.”
“...”
“거사일수록 때에 맞추어야 한다지 않더냐. 오히려 그자가 황위에 오르고 나면, 일이 훨씬 쉬워지겠지.”
지민은 10년이 넘도록 곁에서 정국을 보필했으나 종종 그의 생각을 도통 알 수 없는 일이 잦았다. 제 주인은 매사에 담담했고 흥분하는 일이 없었으며 놀랍도록 타인의 말과 행동에 무관심이었다. 지민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호위로 두고 벗이라 칭할 정도였지만.
그는 이 시국에서도 그저 차분한 정국이 마냥 신기했다.
보통의 황자였다면 유일한 적자인 자신이 아비로부터 외면당했다는 것에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아니면 하다못해 무정한 아비를 찾아가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서라도 설득해보려 했을 거다.
반면, 정국은 설화의 앞날이 어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인 양 제 처소에 편히 앉아 책장을 넘겼다.
물끄러미 정국의 유려한 손 넘김을 보던 지민은 화씨 일파가 곧 정국을 해치려 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국만한 눈엣가시도 없을 거였다.
새삼 제 검의 자루를 손으로 꽉 쥐었다. 하잘것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검으로써 황자를 지키는 것뿐이니 검에 집착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결연한 다짐을 하거나 긴장할 때면 나오는 지민의 습관이었다. 안 보는 척 은근히 지민을 관찰하던 정국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귀여운 놈. 괜찮대도 그러네.
/
열 살이던 어린 황녀는 스무 살의 여인으로 성장했다. 이제 그녀는 저 혼자만의 세계에서 갇혀 사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황제가 되기 위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벗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도 둘이나 생겼고 무엇보다, 예언에 대한 소문도 알고 있었다.
처음 알게 된 건 열두 살 무렵이었다. 황제의 바람대로 황녀는 석진을 잘 따랐고 석진도 황녀를 막내 누이처럼 예뻐했다.
석진이 호석 얘기를 자주 해주자 자신도 호석과 벗이 되고 싶다 하는 탓에 그 무렵에는 호석도 은청궁에 자주 드나들었다. 보통은 셋이서 책을 읽거나 뱃놀이를 하거나 풀밭에 누워서 각자의 미래에 대해 종알거리곤 했는데 그날따라 황녀는 숨바꼭질이 하고 싶었다. 일전에 어린 나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저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석진에게 마냥 애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되었던 황녀는 해보자고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뒤통수를 보고 대충 눈치를 챈 호석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아마 황녀는 제 소문을 좀 더 후에 알았을 것이다.
“공주 마마께서 한시도 도련님들을 놔주질 않으시니 우리가 한번 말 걸어 볼 기회조차 없잖아.”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 디딤돌 뒤에 작은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던 황녀는 저를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궁녀들이 입는 의복의 치맛자락과 신발이 보였다.
은청궁 궁인들의 목소리는 아닌데...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들이었다. 숨바꼭질을 하느라 다른 궁으로 도망가 있었으니 제 소속 궁녀들은 아닌 모양이다 생각한 황녀가 다리가 저릿해 오는 것이 느껴져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공주 마마가 그리 붙어있지만 않으셨어도 인사나 한번 드려 보는 건데.”
“궁녀 신분으로 무슨 그런 불경한 말을 하니, 너도 참.”
“아니~ 그렇잖니.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니시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척하시는 거 얄밉잖아.”
“그건 그렇다만....”
다른 궁녀들은 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순간 제가 너무 도련님들에게 의지했던가 하는 생각이 든 황녀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황제가 될 사람이 이래서야.
설마 제 연정을 들킨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워진 황녀는 불안함에 손톱을 살짝 깨물었다. 헌데 궁녀들이 도련님들에게 관심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는데. 그녀들로부터 좋지 않은 오해 거리가 생길 수 있고, 그 오해가 자신은 물론이고 석진과 호석에게까지 해를 입힐 수 있으니 당분간은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황녀의 귀에 한 궁녀의 낮게 깐 목소리가 들어왔다.
“근데 너희 그거 들었어? 화란 언니가 그러는데, 공주 마마랑 눈 마주친 날 악몽을 꿨다지 뭐야.”
“허어, 그럼 그 소문이 진짜인 거야?”
“무슨 소문인데?”
“아, 넌 지방에서 와서 잘 모르는구나. 유명하잖아, 공주님 탄신 때 예언. 황녀가 유월을 망하게 할 거라고.”
뭐?
황녀는 숨을 참았다. 너무 놀랐는지 입을 틀어막은 작은 손이 안쓰럽게도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유월을 망하게 한다고? 내 나라를? 내 손으로?
전혀 생각지 못한 대화 내용에 어지러움이 물씬 이는 것 같았다. 공주의 상태를 알 리 없는 궁녀들은 망설임 없이 계속해서 그들이 아는 소문들을 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쨌든 공주 마마랑 눈을 제대로 마주치면 저주에 걸린대. 근데 도련님들이 멀쩡하신 걸 봐서 그건 아닌 것 같던데.”
“모르지. 황제가 되시면 궁에 피바람이 분다는데, 그 후에 저주가 발현되는 걸지도. 애초에 여자 몸으로 황제가 된다는 것부터가 같잖은,”
“이 무슨 불충한 소립니까.”
그들의 대화를 가로막은 건 호석이었다. 저 낯선 목소리들 사이에서 공주가 유일하게 아는 목소리.
괜히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낀 황녀는 혼자 숨어 있어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궁녀들은 호석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만 꼼지락댔다.
한 궁녀는 벌을 받겠구나 생각했고, 다른 궁녀는 쫓겨나겠구나 생각했고, 마지막 궁녀는 호석과의 첫 만남이 이따위인 것을 탄식했다.
궁녀들을 내려다보는 호석의 얼굴은 황녀가 이제껏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늘 보는 사람까지 따스해지도록 웃어주거나, 간혹 놀림을 당할 때는 입꼬리를 내린 채 순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의 아버지처럼 싸늘한 냉기가 그를 감쌌다. 아니, 사실은 감싼 게 아니라 호석으로부터 새어 나온 냉기인 것 같다. 물론 황녀는 줄곧 숨어 있어 호석의 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화났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뱉은 말에 죄를 물을 수 있음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도, 도련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번 만, 한번 만 용서해주시면...”
“글쎄요. 말을 가벼이 하는 자들은 그 버릇 개 못 준다던데. 내가 어찌하면 좋을까.”
이제 궁녀들은 잡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자신들이 한 말은 분명 상궁에게 몇 대만 맞고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그 햇살 같던 도련님이 저렇게 무서우실 줄이야.
아랫것들인 자기들에게마저 존대를 하고 있기는 하나 매일 혼 내시는 상궁 마마님보다도 몇 갑절은 더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는 그가 최고 무인 집안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상궁에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아님 폐하께 드려야 하나.... 앞으로 뭘 하실지 들어보고 결정해 볼까요?”
“ㅇ, 예? 아, 다시는 이같이 불경한 말을 입에 담지 않겠습니다! 송구합니다, 도련님...”
“저, 저도요.”
대답이 탐탁지 않은 듯 눈빛이 더 사나워진 호석이 그녀들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그게 다예요?"
“예?”
“끝까지 공주께 용서를 구한단 말은 안 하시네. 기대도 안 했지만. 가 보세요. 될 수 있는 한 앞으로 공주마마 눈에 띄지 마시고. 아, 귀에도 들리지 마시고.”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게 있던 궁녀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부리나케 사라졌다. 공주는 호석이 가면 자신도 여기서 나가야지 생각하며 소매로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았다.
“이제 갔으니 나오세요.”
호석은 이미 숨은 곳을 알고 있었던 듯 공주가 숨은 댓돌 앞에 쭈그려 앉았다.
“어, 어떻게 알고...”
“그게 숨은 겁니까. 전장에서 그렇게 숨었다가는 제일 먼저 들키실걸요?”
눈가가 불그스름한데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으니 보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호석은 아무렇지 않게 예의 그 따뜻한 표정으로 돌아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눈물을 모른 척해주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황녀라고 자존심은 지켜주는 겐가.
“고마워요.”
“뭐, 벗으로서가 아니라 충신으로서 한 것이니 고마워하실 것 없습니다. 석진 형님 기다리실 텐데 그만 돌아갈까요?”
칭찬을 들은 게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인 호석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양 본래 알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황녀는 제 눈물 자국을 보이지 않으려 호석의 뒤에 꼭 붙어서 총총걸음을 옮겼다.
흰옷을 입은 호석의 뒷모습이 그날따라 더 크게 느껴지던 그녀는 혹 나중에 호위무사를 두게 된다면 호석더러 부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호석은 그녀의 검술과 궁술 스승이기도 했으니 -제 몸 하나 보호하는 수준으로 배웠지만. 물론 그마저도 서툴렀다.- 별말 없이 해주리라 생각하면서.
숨바꼭질하자더니 정말로 사라져 버린 둘을 찾던 석진은 후에 호석으로부터 공주마마가 다 알게 되셨다는 걸 전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알게 해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알 때 아시더라도 조금 준비가 된 상태에서, 너무 놀라지는 않게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려고 했는데...
석진은 도리어 본인이 울상이었다.
황제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던 소문을 알게 된 것치고는 꽤 밝게 생활하던 공주는 가끔씩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이를 놓칠 리 없는 석진은 정원이 꽃이 만개했더라며 혹 저와 구경하러 가지 않겠느냐 물었고 황녀는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 도련님이랑 꽃구경이라니,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공주 마마, 소식은 들었습니다.”
연못가에 다다른 석진이 먼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황녀는 살짝 놀랐다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나라를 망하게 할 황녀라서, 석진 도련님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아니, 정말로 내가 유월을 망하게 하면 어쩌지.
또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잘 우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날 이후로 눈물이 많아진 기분이었다.
그리 생각하면 또 우울해지는 것이, 악순환이다.
“공주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잘 압니다.”
뜻밖의 말에 황녀는 고개를 들고 석진을 올려다보았다. 저를 싫어할 거라 겁먹었던 게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그는 더없이 다정하고 포근한 눈빛으로 황녀를 눈에 담았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할지 몰라도, 소신은 마마가 이 나라를 망하게 할 황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제가 이래 봬도 나름 촉망받는 인재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말을 잇는 석진에 황녀도 짐짓 웃어 보였다.
“하지만 다들 예언대로 될 거라는데....”
“다들 공주를 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제가 유모님 다음으로 공주를 제일 잘 알잖아요, 그렇죠? 그 사람들이에요, 저예요."
"..."
"응? 빨리."
“....도련님이요.”
숨결이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하면서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건드리는 석진에 황녀는 손이 닿았던 뺨이 붉게 달아올라 시선을 피했다. 화끈거리는 게 꼭 불에 덴 것 같으면서도, 아프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말끝을 뭉뚱그리며 대답하는 황녀가 귀여운 듯 작은 뒤통수를 한 손으로 쓰다듬은 석진은 좀 전보다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혹여 예언이 사실이라 해도 저는 마마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있어 드릴 테니 오늘부터는 잠도 푹 잘 주무세요.”
... 잠을 못 자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황녀는 가끔은 석진이 유모만큼이나 잔소리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가 하는 잔소리는 왜인지 귀찮지 않았다.
그래, 예언이 그러면 뭐 어때. 내가 그런 황제가 되지 않으면 되는 거지. 휘둘리지 않으면 돼.
황녀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나 그녀도, 석진도, 모두가 그 예언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바가 있었다. 예언은 그녀가 황제가 되고 난 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황녀가’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말한 것이지.
/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응? 아무것도.”
호석의 물음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녀린 고개가 느직하게 저어진다.
하얀 손가락은 검은 머리칼 사이에 숨었다 어깨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 곧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가 바람에 날리듯 찰랑인다.
스무 살의 황녀는 어릴 때의 귀여운 모습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떡처럼 말랑했던 볼살이 쏙 빠져서 그녀의 얼굴선을 오롯이 드러냈고,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는 가히 황실의 것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의 바람대로 호석을 호위무사로 두었고 황제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감수했다. 간혹 누가 저 가녀리고 작은 여인을 더러 황제라 하겠느냐 하는 소리를 들어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것은 자신은 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달라고 하는 외침이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에 못마땅하게 보던 여론도 곧 조금씩 그녀에게로 돌아섰다. 그 변화는 황녀가 더욱 용기를 가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좋은 방향으로의 반복이었다.
도련님과 호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그러고 보니 석진을 못 본 지도 벌써 열흘 째였다.
아버지와 함께 설화에 갔다고는 들었는데. 언제쯤 오시려나.
“석진 형님 생각하시죠?”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공주님 얼굴만 봐도 알 것 같은데요. 제 눈은 속일 생각 안 하시는 게 좋을걸요- 제가 마마를 하루 이틀 봅니까.”
황녀는 확 달아오른 얼굴을 돌렸다. 공연히 창밖을 보는 척 했지만 안타깝게도 문은 닫혀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람. 혹시 도련님도 눈치채신 것은 아닐까.
“형님은 아직 모르시는 것 같으니까 마음 놓으세요. 그 형님도 이런 데는 영 물러서.”
.... 호석 앞에서는 도통 뭘 숨길 수가 없다.
제가 그렇게 쉽게 속이 보이는 사람인가 싶어진 황녀는 표정을 숨기는 연습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마마, 석진 도련님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응? 드, 드시라 하게. 아니 잠깐만 기다리시라 하게!”
갑작스러운 김 상궁의 목소리에 다급하게 협탁 위의 거울을 들어 제 말간 얼굴을 확인한 황녀는 어디 이상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화장이라도 조금 하고 있을걸.
별다른 화장이 필요치도 않은 얼굴이었지만 석진 앞에서는 뭐든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석진이 웬만한 여인들보다도 훨씬 고와서 그런 건지, 제 작은 흠까지 다 비춰질 듯이 청아한 눈 때문인지.
“마마, 오랜만에 뵙습니다.”
“응... 설화에서 여행이 예정보다 길어진 모양이네요?”
단정하게 들어 온 석진은 미소와 함께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했지만 황녀는 그냥 석진을 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먼저 말하지 않는 것에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오랜만에 형님도 오시고 했으니까 셋이서 회포나 풀까요?”
“누가 보면 몇 달은 안 온 줄 알겠다.”
장난스럽게 웃는 석진의 대답에 그녀는 그 열흘이 열 달 같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아바마마께 인정을 받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혹 나와 군신도 벗도 아닌 다른 의미로 함께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봐야지. 그저 속으로 다짐하며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주먹을 쥘 뿐이었다.
/
밖이 소란스러웠다. 감았던 눈을 조용히 뜬 정국의 몸에 새벽의 푸른빛이 스며들었다.
어젯밤, 설화의 피의 군주가 눈을 감았다. 감긴 그 움푹한 눈은 영영 뜨이질 않았다.
차기 황제가 확정되자마자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병환이 깊었다고는 하나 너무 눈에 보이는 처사가 아닙니까, 귀비.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 이제는 황제의 모후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아들이자 황자로서 제 아비의 장례에 참석은 해야 할 것이니 정국은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었다.
정국이 아비에게 갖는 감정은 애증, 딱 그 정도였다. ‘애증’은 정국에게 있어 아버지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화귀비를 들이기 전의 제 아비는 나름대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설화를 더욱 강대국으로 만들었고, 영토를 확장했고, 성정이 사납기는 했어도 정치를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함은 없었다고 했다.
허나 귀비를 들이고 총애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틀어졌다. 귀비와 그 아들 1황자 외에는 모든 것을 귀찮아했고 그 귀찮음의 대상에서 황후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등 떠밀린 합방에서 저를 얻은 후로는 의무를 다한 듯 황후전에 단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정국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항상 사무치게 외롭고 처연했다. 자신은 날 때부터 가졌던지라 그 외로움이 버틸만했는데(사실 외로움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국은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에 무뎌졌고, 어머니 역시 반쯤 포기한 듯 따라 무뎌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뎌지듯 무너졌다.
그녀는 여인으로서의 삶을 무너지듯 내려놓고 오직 황후로서 살았다. 정국에겐 늘, 어미는 황자가 행복하면 그뿐이란다, 할 따름이었다.
“황자님. 지금 나오셔야 합니다.”
지민의 목소리였다.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던 정국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에 비친 지민의 그림자가 보였다.
밤을 새운 모양이군. 하긴, 그 성격에 갑작스러운 승하 소식을 들었으면 또 밤잠 못 이뤘겠지.
문을 열고 지민의 의례적인 인사를 받은 후, 두 사람은 황자궁을 나섰다. 아직 날은 푸르스름했고 코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새벽 공기는 차갑고도 생생했다.
“안 피곤한가?”
“일하는 중인데 피곤하면 어쩝니까. 지금 같은 시국에.”
“그건 또 그렇지.”
“.... 괜찮으십니까?”
“뭐가.”
“폐하가 승하하신 것 말입니다.”
지민의 진지한 눈빛을 가만히 받아내던 정국은 태연하게 마저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아비 노릇 안 하신 건 잘 알지 않나. 그러게, 환후를 염려하는 자들인지 사후를 염려하는 자들인지 구분하라 말씀을 드렸건만. 결국 결과는 이리 될 것을.”
정국은 말을 마치자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따라 걷던 지민은 의아하게 바라보다 정국이 멍하게 바라보는 곳을 보고서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아....”
“황제의 마지막 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하구나.”
황궁의 가장 큰 뜰에서 준비되는 장례는 천자의 것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촐했다.
황금빛의 용포를 불태우고 시신을 큰 관에 넣었다. 주위의 그 누구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신료들은 물론이고 귀비도, 황자들도, 하물며 황후까지. 누구 하나 울어줄 이 없는 장례식이었다.
남은 것은 오직 불길과 연기,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해서 도리어 볼품없어 보이는 관짝 뿐.
+
수험생 탄소 여러분 수능은 무사히 치르셨나요?? 결과에 상관 없이 다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실 저도 고삼 때는 수능 망해서 인생도 망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허허...간혹 혐생이 짜증나게 하지만 그래도 행복해여..(순도 100% 진심임)
저도 그렇게 막 오래 살진 않았지만 살다보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내 행복,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 글을 읽으시는 수험생 여러분, 오늘 대단히 고생 하셨구 이제 편하게 푹 쉬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 하셨으면 좋겠어여ㅎㅎ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