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 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소금인형, 류시화』
***
〃도경수, 그만해. 응? 너 이러다 죽어!!!〃
〃…….〃
〃야, 도경수!!!!〃
〃백현아.〃
〃…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대로 포장마차 테이블 위로 머리를 박은 경수의 표정은 묘했다. 울고있지도, 그렇다고 웃고있지도 않았다. 그저 깊은 저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깊이를 가늠 할수 없게 만드는것일뿐.
소금인형 (salt doll)
exobiota 作
죄책감? 그래, 죄책감이였을까. 백현이 아무렇게나 뉘여놓고 간 경수는 그저 작은 단칸방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큰 눈만 천천히 꿈뻑꿈뻑. 종인아. 닿지 못할 부름을 여러차례 처절히 내 뱉어보니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종인아, 종인아.
`나 좀 기억해줘.`
왜 몰랐을까.
***
국문과 2학년인 경수는 교수가 내어준 과제에 머리를 싸매곤 도서관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막막했다. 무슨 초딩, 중딩, 고딩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그 시를 바탕으로 글을 써오래…. 감성 짙은 나이 지긋한 교수의 막연한 과제에 절망하는 경수다. 아아, 이번에 진짜 에이플 받아야 되는데. 한참 앞에 아무것도 놓여지지 않은 채 자신의 머리만 마구 쥐어뜯던 경수가 몸을 일으켜 무숫한 책이 꽃혀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현대시, 현대시…. 그 때 경수의 손에 들어온건 꽤나 얄팍한 책이였다. 류시화? 처음 들어보는 시인인데. 책을 펼쳐 천천히 한 장한장 책장을 넘겨가던 경수의 손이 멈추었다.
사진 한 장과 얇은 종이에는 글씨가 빼곡이 자리잡고 있었다.희미한 사진 속에는 눈에익은 한 남자와, 그리고…. 경수 자신이 있었다. 뭐야 내가 왜 여기에…. 또 이 사람은 누구야. 아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였다. 분명 눈에 익은 사람이긴 했지만 이름 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걸로 봐선 분명히 제가 아는 사람은 아니였다. 희미한 사진 만큼이나 희미하게 자리잡은 글씨를 뒤늦게 발견한 경수. 종인 하트 경수? 종인? 종인…. 지독히 익숙한 이름이였지만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왜인지 모를 가슴떨림만 있을 뿐.
편지를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읽으면 안 될것 같았다. 그저 사진과 편지는 구깃하게 주머니로 밀어넣은 경수는 그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었다. 봐서는 안 될, 건들여서는 안될것을 건드린 양, 죄라도 지은 양 경수는 빠르게 짐을 꾸려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
그날 이후, 경수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종인? 진짜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 도서관에 사진이 꽂혀있었다면 우리 학교 사람이겠네. 바로 급한 걸음을 옮겨 동방으로 향하는 경수다.
〃선배!!!!〃
동방에서 거의 살다싶이 하는 준면을 잘 알고 있는 경수였다. 역시나 동방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선배에게로 달려가 그 옆자리에 털썩 앉는 경수를 준면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 도후배. 우리 도후배가 왠일로 나를 다 찾고?〃
〃선배! 선배 혹시 종인..이란 사람 알아요?〃
경수가 말을 내뱉자마자 꽤나 해사하게 웃고 있던 준면의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너 기억… 나는거야?``네? 무슨 기억이요?` 준면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던 경수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고 빠르게 질문을 바꿨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 김교수님 과제하다가 시집을 찾았는데….〃
그러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뒀던 사진과 편지조각을 꺼내보이는 경수에 더 심각해진 준면의 표정을 경수는 보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마, 경수야.〃
친숙하게 도후배라고 부르는 준면의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나왔다. 왜 그러지?
준면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곤 동방을 빠져나온 경수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 있었다. 그 뒤로도 몇몇 선배들과 동기에게 종인이라는 남자에 대해 물었지만 모두 준면선배와 같은 반응들 뿐이였다. 뭐야 다들…. 아는 것 같은데 왜 다들 숨겨?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나?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벤치에 앉아 사진만 들여다보는 경수의 뒤로 다가와 눈을 가리는 장난을 치는 사람은 한 학년 후배인 태민이였다.
〃뭐해요 선-배.〃
〃어? 태민이야?〃
네. 뒤에 서 있던 태민이 돌아와 경수의 옆에 앉았다. 너 수업없어? 방금 마치고 오는 길이예요.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두사람. 그 때 태민의 서선을 이끈건 역시나 경수의 손에 들린 사진이였다. 잠깐 이 사진 좀 봐도되요 선배? 어? 응, 봐. 급히 경수의 손에서 사진을 채어가는 태민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이거, 이거!! 어디서 났어요?〃
태민의 표정은 꽤 급박해 보였다. `응? 아, 김교수님 과제하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갑자기 그 사진이 떨어지는거야. 근데 그 옆에 있는게 나는 맞는데 그 옆에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 아, 너는 아는거야? 이 사람?` 경수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그저 멍한 표정으로 구깃한 사진을 보는 태민의 눈이 일렁였다.
〃선배.〃
〃응, 왜?〃
〃선배는 선배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선배를 잊으면 어떤 기분일거같아요?〃
〃갑자기 그건 왜?〃
〃…….〃
〃아마 슬프겠지. 아니, 죽고싶을지도 몰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못 알아보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으-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걸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잊었어요.〃
〃응?〃
〃…선배는 종인이한테 지독하게 잔인한 사람이예요.〃
〃갑자기, 그게, 무슨….〃
〃나는 선배한테 묻고싶어요!!!!!〃
거친 숨을 내뱉는 태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여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태민아…. 이상했다. 선배며 동기들이 종인에 대해 묻는 저에게 다들 싸늘한 반응 뿐이였다. 근데 왜 너까지 화를 내는거야.
〃그 전날까지만 해도 하하 호호 웃으면서 서로 사랑한다고, 죽고 못살겠다고 할땐 언제고 그 다음날 바로 걔를 잊어요? 김종인을? 형은 김종인이 쉬웠어요?〃
〃…나 니 말 잘 모르겠어.〃
〃진짜 선배 그 사이에 머리가 어떻게 됐어요? 이해하려고 했어요. 모른 척 하려고 했어요. 김종인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선배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두 사람이 싸운거겠거니. 근데 그렇게 김종인을 내쳐요?〃
〃…태민아. 나 종인이가 누군지…!〃
〃…사랑하는 사람!! 선배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김종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선배라구요. 기억 안나요?〃
***
〃경수야.〃
〃너 또 그러지. 형이라고 안해 김종인?〃
〃경수야.〃
〃…….〃
〃경수야.〃
〃왜.〃
〃사랑해요.〃
〃…….〃
〃형은? 형은 어때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김종인, 김종인 어디있어?〃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제 안에서 잠시 종인을 잃어버렸다. 길을 잃었었나? 눈 앞에 캄캄해지는 기분이였다. 차분했던 경수는 어디로 갔는지 마치 처음 경수를 본 사람이였다면 경수를 정신분열자로 오해할지도 모를만큼 경수는 흥분해 있었다. 태민은 큰 한숨이 터져나왔다.
〃태민아…. 태민아 종인이는? 응?〃
〃선배.〃
〃김종인!!!! 김종인 어디있어 응?〃
〃선배가 아까 말했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잊어버리면 어떨것 같냐는 제 질문에 선배답은 뭐였어요?〃
〃…….〃
〃죽었어요.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종인이만 알겠죠.〃
덤덤하게 말을 내뱉는 태민의 고운 입술이 미워보였다. 아니야, 나 아직 종인이한테 대답도 못했단말이야. 응? 태민아 아니야. 너 내가 미워서 거짓말 하는거야? 종인이가 나한테한 대답 나 못했단 말이야. 사랑한다고 해줄걸 그랬어. 아직 좋아한다고밖에 말 못했단 말이야. 응? 태민아 거짓말 하지말고 종인이 어디있어? 김종인, 김종인. 종인아, 김종인.
태민의 옷깃을 부여잡은 채 무너지는 경수의 입에서는 애타게, 닿지않을, 결코 닿을수 없는 이름만이 흘러나왔다.
***
모든 걸 알게 된 경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김교수님의 과제는 결국 제 점수를 받지못하고 끝이 나버렸다. 감히 죄스러워 펴보지 못한 편지는 3개월이 지난 주말 저녁 종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결국 펼쳐버렸다.
to. 사랑하는 도경수
형, 읽고있어? 읽고있는 그 때는 날씨 어때? 나 지금 우리 자주왔던 카페 테라스에서 이거 쓰고 있는데 진짜 덥다. 형이 여기있었으면 또 덥다고 짜증냈겠지? 안봐도 뻔하다. 오늘은 나 원래 마시던거 말고 형이 맨날 마시던 소이라떼 마시고 있어. 이렇게 단 걸 어떻게 먹나 몰라. 입맛도 애기야.
형, 나 형 조금 미워했었어. 나 모르는 척 하는것도, 아니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형이 미웠어.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해봐도 나 모르겠어. 형이 나 피하는 이유. 내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나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거같고. 진짜 기억속에서 나 잊어버린거야? 근데 미워하려고 그렇게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형. 형이 나 모른척 지나가도, 내가 인사하면 모르는 사람인양 굴어도, 그래도 나 그런 형도 너무 예뻐보여. 미친건가? 도경수한테? 그런건가봐. 미쳤나봐 도경수한테. 형을 미워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형 쫒는 것도 너무 힘들다. 아니, 다 괜찮은데 형한테 잊혀지는게 싫어. 잊지마, 나 좀 기억해줘 형. 경수야. 사랑해. 사랑해요 형. 사랑해 경수야. 형은 어때?
***
경수는 뛰었다. 몇 명 남아있지 않은 도서관에 거친숨을 내뱉으며 들어선 경수에게 이목이 집중이 되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경수는 그 책이 있던 곳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류시화, 류시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책을 찾던 경수의 손이 멈추었다. 진정이 되지않는 손가락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그리곤 눈물자국이 서려있는 그 책장에서 경수의 모든 행동이 멈추었다.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 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무너져 내렸다. 와장창, 깨져버렸다.
설레였던 것은 짧은 시간들에 너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야. 그 아팠던 사랑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야. 혹시 모른다며 남겨두었던 편지가 눈 앞에 펼쳐질때 눈 앞이 흐려지겠지? 그리고 바람 중 하나. 너와 벚꽃을 보는 것이였었지. 한 때에 너를 밀어내려던 나와 네가 바뀌어 버렸나? 하지만 다시는 또 바뀌는 일이 없길 바란다. 네게 더 이상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아침부터 쓰기 시작한건데 괜히 억지눈물내며 쓰고 있어요. 경수는 보다싶이 갑자기 어느 날 기억을 잃어 그것도 다 괜찮은데 종인이에 대한 기억만. 경수 주변사람들은 그저 암묵적인 태도를 내보일뿐이고. 태민에 의해 기억의 스위치에 불이 들어와 다 깨달은 경수는 제일 위에서 보다싶이 거의 죽지못해 사는 상태고. 아, 진짜 내가 왜 적었지. 이걸ㅋ
바다로 내려간
소금 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소금인형, 류시화』
***
〃도경수, 그만해. 응? 너 이러다 죽어!!!〃
〃…….〃
〃야, 도경수!!!!〃
〃백현아.〃
〃…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대로 포장마차 테이블 위로 머리를 박은 경수의 표정은 묘했다. 울고있지도, 그렇다고 웃고있지도 않았다. 그저 깊은 저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깊이를 가늠 할수 없게 만드는것일뿐.
소금인형 (salt doll)
exobiota 作
죄책감? 그래, 죄책감이였을까. 백현이 아무렇게나 뉘여놓고 간 경수는 그저 작은 단칸방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큰 눈만 천천히 꿈뻑꿈뻑. 종인아. 닿지 못할 부름을 여러차례 처절히 내 뱉어보니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종인아, 종인아.
`나 좀 기억해줘.`
왜 몰랐을까.
***
국문과 2학년인 경수는 교수가 내어준 과제에 머리를 싸매곤 도서관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막막했다. 무슨 초딩, 중딩, 고딩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그 시를 바탕으로 글을 써오래…. 감성 짙은 나이 지긋한 교수의 막연한 과제에 절망하는 경수다. 아아, 이번에 진짜 에이플 받아야 되는데. 한참 앞에 아무것도 놓여지지 않은 채 자신의 머리만 마구 쥐어뜯던 경수가 몸을 일으켜 무숫한 책이 꽃혀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현대시, 현대시…. 그 때 경수의 손에 들어온건 꽤나 얄팍한 책이였다. 류시화? 처음 들어보는 시인인데. 책을 펼쳐 천천히 한 장한장 책장을 넘겨가던 경수의 손이 멈추었다.
사진 한 장과 얇은 종이에는 글씨가 빼곡이 자리잡고 있었다.희미한 사진 속에는 눈에익은 한 남자와, 그리고…. 경수 자신이 있었다. 뭐야 내가 왜 여기에…. 또 이 사람은 누구야. 아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였다. 분명 눈에 익은 사람이긴 했지만 이름 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걸로 봐선 분명히 제가 아는 사람은 아니였다. 희미한 사진 만큼이나 희미하게 자리잡은 글씨를 뒤늦게 발견한 경수. 종인 하트 경수? 종인? 종인…. 지독히 익숙한 이름이였지만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왜인지 모를 가슴떨림만 있을 뿐.
편지를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읽으면 안 될것 같았다. 그저 사진과 편지는 구깃하게 주머니로 밀어넣은 경수는 그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었다. 봐서는 안 될, 건들여서는 안될것을 건드린 양, 죄라도 지은 양 경수는 빠르게 짐을 꾸려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
그날 이후, 경수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종인? 진짜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 도서관에 사진이 꽂혀있었다면 우리 학교 사람이겠네. 바로 급한 걸음을 옮겨 동방으로 향하는 경수다.
〃선배!!!!〃
동방에서 거의 살다싶이 하는 준면을 잘 알고 있는 경수였다. 역시나 동방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선배에게로 달려가 그 옆자리에 털썩 앉는 경수를 준면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 도후배. 우리 도후배가 왠일로 나를 다 찾고?〃
〃선배! 선배 혹시 종인..이란 사람 알아요?〃
경수가 말을 내뱉자마자 꽤나 해사하게 웃고 있던 준면의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너 기억… 나는거야?``네? 무슨 기억이요?` 준면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던 경수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고 빠르게 질문을 바꿨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 김교수님 과제하다가 시집을 찾았는데….〃
그러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뒀던 사진과 편지조각을 꺼내보이는 경수에 더 심각해진 준면의 표정을 경수는 보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마, 경수야.〃
친숙하게 도후배라고 부르는 준면의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나왔다. 왜 그러지?
준면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곤 동방을 빠져나온 경수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 있었다. 그 뒤로도 몇몇 선배들과 동기에게 종인이라는 남자에 대해 물었지만 모두 준면선배와 같은 반응들 뿐이였다. 뭐야 다들…. 아는 것 같은데 왜 다들 숨겨?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나?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벤치에 앉아 사진만 들여다보는 경수의 뒤로 다가와 눈을 가리는 장난을 치는 사람은 한 학년 후배인 태민이였다.
〃뭐해요 선-배.〃
〃어? 태민이야?〃
네. 뒤에 서 있던 태민이 돌아와 경수의 옆에 앉았다. 너 수업없어? 방금 마치고 오는 길이예요.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두사람. 그 때 태민의 서선을 이끈건 역시나 경수의 손에 들린 사진이였다. 잠깐 이 사진 좀 봐도되요 선배? 어? 응, 봐. 급히 경수의 손에서 사진을 채어가는 태민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이거, 이거!! 어디서 났어요?〃
태민의 표정은 꽤 급박해 보였다. `응? 아, 김교수님 과제하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갑자기 그 사진이 떨어지는거야. 근데 그 옆에 있는게 나는 맞는데 그 옆에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 아, 너는 아는거야? 이 사람?` 경수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그저 멍한 표정으로 구깃한 사진을 보는 태민의 눈이 일렁였다.
〃선배.〃
〃응, 왜?〃
〃선배는 선배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선배를 잊으면 어떤 기분일거같아요?〃
〃갑자기 그건 왜?〃
〃…….〃
〃아마 슬프겠지. 아니, 죽고싶을지도 몰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못 알아보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으-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걸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잊었어요.〃
〃응?〃
〃…선배는 종인이한테 지독하게 잔인한 사람이예요.〃
〃갑자기, 그게, 무슨….〃
〃나는 선배한테 묻고싶어요!!!!!〃
거친 숨을 내뱉는 태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여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태민아…. 이상했다. 선배며 동기들이 종인에 대해 묻는 저에게 다들 싸늘한 반응 뿐이였다. 근데 왜 너까지 화를 내는거야.
〃그 전날까지만 해도 하하 호호 웃으면서 서로 사랑한다고, 죽고 못살겠다고 할땐 언제고 그 다음날 바로 걔를 잊어요? 김종인을? 형은 김종인이 쉬웠어요?〃
〃…나 니 말 잘 모르겠어.〃
〃진짜 선배 그 사이에 머리가 어떻게 됐어요? 이해하려고 했어요. 모른 척 하려고 했어요. 김종인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선배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두 사람이 싸운거겠거니. 근데 그렇게 김종인을 내쳐요?〃
〃…태민아. 나 종인이가 누군지…!〃
〃…사랑하는 사람!! 선배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김종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선배라구요. 기억 안나요?〃
***
〃경수야.〃
〃너 또 그러지. 형이라고 안해 김종인?〃
〃경수야.〃
〃…….〃
〃경수야.〃
〃왜.〃
〃사랑해요.〃
〃…….〃
〃형은? 형은 어때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김종인, 김종인 어디있어?〃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제 안에서 잠시 종인을 잃어버렸다. 길을 잃었었나? 눈 앞에 캄캄해지는 기분이였다. 차분했던 경수는 어디로 갔는지 마치 처음 경수를 본 사람이였다면 경수를 정신분열자로 오해할지도 모를만큼 경수는 흥분해 있었다. 태민은 큰 한숨이 터져나왔다.
〃태민아…. 태민아 종인이는? 응?〃
〃선배.〃
〃김종인!!!! 김종인 어디있어 응?〃
〃선배가 아까 말했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잊어버리면 어떨것 같냐는 제 질문에 선배답은 뭐였어요?〃
〃…….〃
〃죽었어요.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종인이만 알겠죠.〃
덤덤하게 말을 내뱉는 태민의 고운 입술이 미워보였다. 아니야, 나 아직 종인이한테 대답도 못했단말이야. 응? 태민아 아니야. 너 내가 미워서 거짓말 하는거야? 종인이가 나한테한 대답 나 못했단 말이야. 사랑한다고 해줄걸 그랬어. 아직 좋아한다고밖에 말 못했단 말이야. 응? 태민아 거짓말 하지말고 종인이 어디있어? 김종인, 김종인. 종인아, 김종인.
태민의 옷깃을 부여잡은 채 무너지는 경수의 입에서는 애타게, 닿지않을, 결코 닿을수 없는 이름만이 흘러나왔다.
***
모든 걸 알게 된 경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김교수님의 과제는 결국 제 점수를 받지못하고 끝이 나버렸다. 감히 죄스러워 펴보지 못한 편지는 3개월이 지난 주말 저녁 종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결국 펼쳐버렸다.
to. 사랑하는 도경수
형, 읽고있어? 읽고있는 그 때는 날씨 어때? 나 지금 우리 자주왔던 카페 테라스에서 이거 쓰고 있는데 진짜 덥다. 형이 여기있었으면 또 덥다고 짜증냈겠지? 안봐도 뻔하다. 오늘은 나 원래 마시던거 말고 형이 맨날 마시던 소이라떼 마시고 있어. 이렇게 단 걸 어떻게 먹나 몰라. 입맛도 애기야.
형, 나 형 조금 미워했었어. 나 모르는 척 하는것도, 아니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형이 미웠어.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해봐도 나 모르겠어. 형이 나 피하는 이유. 내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나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거같고. 진짜 기억속에서 나 잊어버린거야? 근데 미워하려고 그렇게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형. 형이 나 모른척 지나가도, 내가 인사하면 모르는 사람인양 굴어도, 그래도 나 그런 형도 너무 예뻐보여. 미친건가? 도경수한테? 그런건가봐. 미쳤나봐 도경수한테. 형을 미워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형 쫒는 것도 너무 힘들다. 아니, 다 괜찮은데 형한테 잊혀지는게 싫어. 잊지마, 나 좀 기억해줘 형. 경수야. 사랑해. 사랑해요 형. 사랑해 경수야. 형은 어때?
***
경수는 뛰었다. 몇 명 남아있지 않은 도서관에 거친숨을 내뱉으며 들어선 경수에게 이목이 집중이 되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경수는 그 책이 있던 곳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류시화, 류시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책을 찾던 경수의 손이 멈추었다. 진정이 되지않는 손가락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그리곤 눈물자국이 서려있는 그 책장에서 경수의 모든 행동이 멈추었다.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 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무너져 내렸다. 와장창, 깨져버렸다.
설레였던 것은 짧은 시간들에 너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야. 그 아팠던 사랑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야. 혹시 모른다며 남겨두었던 편지가 눈 앞에 펼쳐질때 눈 앞이 흐려지겠지? 그리고 바람 중 하나. 너와 벚꽃을 보는 것이였었지. 한 때에 너를 밀어내려던 나와 네가 바뀌어 버렸나? 하지만 다시는 또 바뀌는 일이 없길 바란다. 네게 더 이상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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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E양. 큰 힘이 되요! 선풍기님도 너~무 감사합니ㄷㅏㅠㅠ! 현실눈물님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읽어주셔야 해요! 약속!! |
아침부터 쓰기 시작한건데 괜히 억지눈물내며 쓰고 있어요. 경수는 보다싶이 갑자기 어느 날 기억을 잃어 그것도 다 괜찮은데 종인이에 대한 기억만. 경수 주변사람들은 그저 암묵적인 태도를 내보일뿐이고. 태민에 의해 기억의 스위치에 불이 들어와 다 깨달은 경수는 제일 위에서 보다싶이 거의 죽지못해 사는 상태고. 아, 진짜 내가 왜 적었지. 이걸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