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태양이 사라져버렸다. 영원히 타오를 것 같던 태양의 불꽃은 순식간에 꺼져버렸고 지구는 혼돈 그 자체로 변했다. 아침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며, 회사원들은 회사에 가는, 그런 분주한 아침이었다. 우현이 옆좌석에 성규를 태우고 막 차를 출발시키려고 했을 때, 바로 그 때 순식간에 지구는 어둠에 휩싸였다. 태양이 사라져버리자 지구는 금방 식어갔고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빵빵거리는 클락션 소리가 온 거리에 울렸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차들은 라이트를 켰으며, 가로등도 켜졌다. 여기저기서 차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대로 차를 운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우현이 성규의 손을 붙잡고 차에서 내렸다. 거리는 아비규환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앙앙 울어대고,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러댔다. 눈치가 빠른 몇몇 사람들은 편의점이나 마트를 털었다. 붙잡은 성규의 손이 떨렸다. 차에 뽀얗게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2012년 8월 16일. 태양이 사라진 첫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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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쳐다보던 우현이 커튼을 쳤다. 밖은 흑백 그 자체라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열대야에 시달리던 밤을 촛불 하나에 의지하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이불을 꺼내 뒤집어써도 추웠다. 집 안에 있어도 입김이 나왔고 음식을 보관할 냉장고도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우현이 죽은 듯 잠만 자는 성규를 쳐다보았다. 기력이 없으니 잠만 잤다. 저러다 죽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깨웠지만 그 작은 눈을 잠깐 부스스 뜨다가 다시 잠들 뿐이었다. 정부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가끔 거리에 들리는 비명소리만이 생존자가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줬다. 우현이 주저앉아 남은 식량을 확인했다. 집에서 밥을 잘 챙겨먹지 않던 둘이라 먹을 것도 없었다. 일주일 동안 과자를 나눠먹으며 버텨냈지만 이제 둘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남은 건 초코파이 세네개와 얼어버린 물밖에 없었다. 혼자라면 그래도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 우현의 눈이 빛났다.
***
성규가 눈을 떴다. 배가 너무 고팠다.
"우현아 나 배고프다."
"…‥."
"우현아 나 배고프다니까."
우현아! 몇번 씩이나 불러도 우현은 고개를 떨구고만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잠들었나? 성규가 이불을 부여잡고 일어나 우현의 앞으로 갔다. 과자는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우현아… 성규의 부름에 그제야 우현이 고개를 들었다.
"다 먹었어. 이제 먹을 거 하나도 없어…."
***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성규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내가 이제 죽는구나. 성규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바싹 말라가는 자신의 몸과, 마른 우현의 등이 있었다. 우현아 나 이제 죽을 것 같아. 성규의 말에 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초콜렛 향이 성규의 코를 찔렀다.
"너… "
"같이 살아남자고 그랬잖아 저번에 형이… 그런데 형."
"씨발새끼…"
"그런건 형 엄마나 할 수 있는 거야."
초코파이를 우물거리던 우현이 웃었다. 텅 빈 눈이었다. 아, 맛있다. 우현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성규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