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워더
지금 종인의 상태는 말하자면, 그러니까 약간은 삐쳐있는 상태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종인은 오늘 하루 종일 언제 나와 같이 민석에게 치근덕대려고 가서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평소 같았으면 재깍재깍 왔을 반응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 같으면 뒤에서 껴안을 때부터 부들부들 떨면서 주먹이 날라왔을 텐데 정말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 못된 장난을 칠 수도 있겠지마는, 김종인은 그런 것보다는 장난을 쳤을 때 민석의 반응을 보고 즐기는 놈이라, 오히려 입을 삐죽 내밀고는 약간의 애교와 함께 징징거렸다.
"민석아. 오늘은 안 때리는 거야??응?? 왜 아무 반응도 없어??"
민석의 볼을 쭉 늘어트리며 장난스럽게 하는 반말임에도 민석은 반응이 없었다. 이쯤 되자 종인은 민석이 지금 머리가 이상해졌나,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긴 민석의 평소 행실을 보면 그런 반응이 나올 법도 했다. 스킨십을 하는 것부터, 반말까지 모두 민석이 항상 못마땅해하며 혼내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으으- 민석이 괴로운 신음을 내며 일어났다. 그러면서 종인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어? 너 언제 왔냐, 잘 됐네. 야 여자애한테 선물해 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일선물로."
쿠궁-. 종인은 마치 자신의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였다. 여자에게 선물, 그것도 생일이라니? 아니 그전에 무슨 여자? 민석에게 여자가 있었나? 와 같은 생각이 종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둘이 있던 장소가 민석의 교실인지라, 여느 10대 남자아이들이 그렇듯이 휘파람 소리와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중에서는 종인이 이제 어떡하느냐고 웃으면서 장난을 치는 무리도 있었다. 물론 종인은 주위의 소음이 하나도 안 들리고, 그저 민석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민석이 한마디라도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말이다. 민석을 한 줄기의 빛처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다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오늘 우리 동생 생일이라서 그래. 나 여동생 있는 거 알잖아."
민석이 쓰고 있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민석의 친구들은 김빠진다는 듯이 민석에게 야유를 보냈고, 민석은 그게 뭐 대수냐며 어깨를 들썩였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괜한 기대를 한 너희들 잘못이 아니냐며, 오히려 싫지 않은 짜증을 내었다. 이 와중에 종인은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민석에게 여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평소 자신이 민석에게 죽고 못 산다는 것은, 이학교의 전교생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감히 어떤 여자가 이 김종인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김민석한테 치근댈 수 있느냐는 생각을 하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실실 웃었다. 물론 그런 종인을 민석은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결국, 그렇게 고민하던 민석은 무난하게 케이크와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손수 끓여 주려 이것저것 재료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없으면 안 될 고기도 사고, 김치는 맛있는 게 집에 있어서 뛰어넘고, 고기 하나만 사자니 뭔가 휑해서 평소에 여동생이 좋아하는 과자며 음료수며, 저녁과 함께 먹을 반찬, 예를 들면 비엔나 같은 인스턴트들을 고르고 즐겁게 계산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뒤를 돌았다.
"종인아, 너는 왜 자꾸 쫓아오는 거야?"
종인은 사실 학교를 나와서부터 나름 몰래 민석을 미행하고 있었다. 물론 운동도 했고, 감도 좋은 민석을 속일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종인은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형, 그게 내가 이거 주려고.."
종인이 민석에게 건넨 것은 한 뭉치의 무언가였다. 물론 민석은 그게 뭔지 몰라서 열어보려고 시도를 하였으나, 종인에 의해 곧바로 제지당했다.
"형은 보지 말고, 꼭 동생 줘. 알았지? 형은 진짜로 보면 안 돼. 믿는다?"
종인은 자신이 할 말만을 하고는 그대로 뒤돌아 뛰어갔다. 그 모습이 꼭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주고 뛰어가는 사춘기 소녀처럼 앙증맞았다, 고 하면 자신은 미친놈일까. 종인이 준 이상한 물건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조금 참기로 했다. 어차피 동생 선물이기도 하니까, 주고 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이럴 때만큼은 자신이 다른 남매와는 달리 남매간에 사이가 좋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고 민석은 생각했다.
친구들과 놀다가 늦어진다는 동생을 위해 하나하나 정성스레 준비했다. 저녁은 안 먹고 온다는 말에 준비하려 했던 김치찌개도 부랴부랴 맛있게 끓여놓고. 한국식의 저녁 밥상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케이크도 초와 함께 올려놓고.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해 준비하는 생일상에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생일상을 받고 기뻐할 동생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내 동생, 생일 축하해!!"
문이 열림과 동시에 동생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동생은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생일상 차려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김치찌개가 정말 맛있다고 하는 소리도 하고. 나름 자신이 대견해지는 순간이었다. 불현듯 종인이 동생에게 선물을 주라 한 꾸러미가 생각났다. 그리고 동생은 그 자리에서 그것을 풀어보더니 이내 큰 소리로 책상을 치며 웃었다. 눈물까지 고일 정도로 웃는 동생을 보면서, 옆에서 곁눈질로 그것의 정체를 훔쳐보았다.
"아 진짜 김종인!!!!!!!!!!!!!!!!!!!!!"
있지도 않은 사람을 향해 고함을 지르자 동생이 정말 숨넘어갈 듯이 깔깔댔다. 그 선물의 정체는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민석의 일상생활을 인화한 인화 사진들과 동생을 향한 종인의 편지였다. 분명 동생의 생일을 수소문해서 며칠 전부터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마냥 철없게만 느껴졌던 종인이 조금은 자란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종인과 함께 하다 보면 분명 그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전에, 김종인에게 너 내일 나 좀 보자.라는 문자를 남겨놓고 말이다.
세총러가 왠 카슈냐, 하면 제 존잘님을 위해 축하용 글로 적은것 입니다. 그래서 조금 이상해요..ㅎㅎ 카슈도 많이 안나오고, 해서 나중에 번외를 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생각만요. 구독료는 제가 연재하기전까지는 안하려구요...저번것도 풀수 있으면 풀고 안되면 다시 올릴게요 좋은하루되세요 비루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