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새하얀 날개에 소복소복 내리던 눈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나비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날갯짓을 했지만, 그를 지켜보며 나비와 닮은 새하얀 결정체를 내리던 하늘은 나비의 몸부림을, 아름다운 춤사위라 생각하고 더 많은 눈을 내려주었고, 나비는 하늘을 원망하며 죽어갔어요. 당신은, 내게 하늘과도 같아요. 알아 들어요? [효신X홍빈] 나비의 겨울2 by. 진라면 없다, 없어졌다. 깔끔하게 세팅되어있던 다갈색의 머리가 잔뜩 흐트러진 것도 모르고 다급하게 제 가방을 넓은 탈의실 바닥에 털어낸 홍빈의 손길이 분주하다. 자잘한 물건들을 바닥에 펼쳐놓던 홍빈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고개를 푹 떨궜다. 이거 찾아? 하지만 곧, 귓전을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야했다. 어느 새 들어온 효신이 탈의실 문에 기대어 홍빈이 그토록 찾던 A4 용지 두 장을 팔랑이며 흔든다. 아, 탄식을 한 홍빈이 손을 뻗었다. 효신이 표정을 굳혔다. 효신의 손에 잡혀있는 종이의 끝 부분이 잔뜩 구겨져 있다. 그것만 보아도, 효신이 얼마나 화를 눌러참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줘요, 그거. 하, 짧은 웃음소리엔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홍빈이 빤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본래 날카로운 얼굴은 웃는 순간 순하게 변한다. 제 앞에 있는 남자가 제게 웃어주기만 해서, 이처럼 표정을 굳히고 있는 모습이 익숙치가 않다. 노래를 하고싶어. 제 한 마디에 원식이 뚝딱 만들어냈던 노래가, 음표들이, 효신의 손 안에서 가차없이 구겨졌다. 바스락바스락 구겨지는 소리가 귓전에서 들리는 것 같아 홍빈이 멍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잔뜩 구겨진 악보를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효신이 홍빈의 앞으로 다가온다. 옷이 구겨졌잖아. 머리도 엉망이 되고. 아이를 달래듯 홍빈의 손을 잡아끌어 일으킨 효신이 홍빈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앞머리를 세워 드러난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춘 효신이 홍빈을 제 품에 당겨 안았다. 힘없이 효신의 허리를 끌어안은 홍빈이 눈을 꼭 감았다. 노래하는 것이 좋다. 효신에게 구속 당하는 것이 싫다. 하지만 효신이 좋다, 그래서 홍빈은 자신의 꿈을 버렸다. 그 결과값은 너무도 컸지만, 말이다. 중요한 촬영이야. 알고 있어요. 늘 얘기하잖아, 넌 타고났어. 그것도.. 알아요. 이 촬영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에 홍빈은 여덟페이지나 실리게 된다. 물론 효신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쨌든 홍빈은 그 만큼 모델로서 성장했다. 그래서 더욱 이 촬영이 하기 싫었다. 모델로서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지면, 다시는 노래할 기회조차 오지 않을까봐. 홍빈씨, 촬영 시작할게요. 잠긴 문을 똑똑 두드리며 말하는 막내 어시스트의 말에 효신이 홍빈을 떨어트려 놓고 짧게 입을 맞췄다. 곧 나른한 표정으로 문을 연 효신이, 막내 어시스트를 내려다 보았다. 홍빈씨 머리랑 옷 좀 다듬고 촬영 시작해요. 부드럽지만 힘 있는 말에 코디들이 분주하게 들어와 홍빈에게 고데기며 파우더를 들이밀고 자켓을 벗겨가 예쁘게 펴고 있다. 효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에 세상을 좌우하고, 그가 입고나온, 그가 디자인한 옷들이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홍빈을 부러워했다. 단 한 번의 만남의 효신의 몸과 마음, 사랑과 존중을 모두 손 안에 쥔 운 좋은 아이. 깊은 한숨을 내쉰 홍빈이 거울 속의 저와 눈을 맞췄다. 깜빡깜빡. 피곤해 보이는 거울 속의 홍빈이 눈을 깜빡였다. 곧 핸드폰을 집어든 홍빈이 카톡친구창에 떠 있는 이름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제 머리를 세팅하기에 바쁜 코디들의 눈치를 보던 홍빈이, 대화창을 켜 터치패드를 꾹꾹 정성스레 눌러낸다. 전송버튼 위에서 망설이던 홍빈이 전송버튼을 누르고, 대화창을 나가버렸다. 화장품이 가득한 테이블에 핸드폰을 내려놓은 홍빈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와르르, 쏟아지며 엉망이 되어버린 파우더며 립글로즈 따위의 화장품들 사이에는 홍빈의 핸드폰이 섞여있었다. 엉망이 된 모습으로 흥분하여 가빠오는 숨을 정리하는 효신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딜 간다고 했다고? 화,화장실요. 겁을 집어먹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코디에 효신이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뒷통수를 팽팽하게 당겼다가 놓은 커다란 추로 얻어맞은 기분이다. 화장실을 간다던 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파우더로 범벅이 된 홍빈의 핸드폰을 집어들어 뽀얀 파우더를 손으로 털어낸 효신이 홍빈의 핸드폰 홀드를 풀어냈다. 배경화면에 자리한 웃고있는 제 모습을 마주하다가 무심코 쓰레기통 쪽으로 고개를 옮겼다. 아까 제가 구겨서 버렸던 악보가 사라져있다. 순간 스치는 생각에 입술을 세게 문 효신이 원식의 번호를 찾아냈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공항이요. 옆에, 이홍빈 있어?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하니 원식이 대답이 없다. 재차 물으니 그제서야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홍빈이 아까부터 연락 안 되는데. 근데 홍빈이 핸드폰으로 전화했으면, 홍빈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였어요? 아아, 작게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뱉은 효신이 비틀비틀 탈의실 쇼파로 걸어가 주저앉았다. 머리가 띵했다. 형, 형? 들려오는 원식의 목소리에 쇼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효신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웅성웅성거리는 촬영장 속엔 그가 없다. 원식의 곁에도 없고, 간다던 화장실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다. 사라져버린 것일까, 제 곁을 영영 떠나버린 것일까. 어미의 손을 놓친 아이마냥 불안한 눈빛을 한 효신이 잘근거리던 핏기없는 입술에서 몽글몽글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입 안에 가득한 혈향에 미간을 찌푸린 효신이 이내 몸을 일으켰다. 촬영장을 벗어난 효신이 자신의 차에 올라타 잘게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집어 물었다. 단정했던 붉은 색의 머리가 잔뜩 헝크러져 있었다. 담배를 깊이 빨아들인 효신이 집으로 차를 향했다. 집에 있어라, 집에만 있으면 촬영 펑크내고 도망간 것도 용서해줄테니까, 제발 있어라. 몇 번이고 힘없이 중얼거린 효신이 어느새 필터 가까이까지 타버린 담배를 창 밖으로 튕겨내고 새로운 담배를 집어들려 담배곽을 뒤적였으나 잡히는 건 없었다. 신호에 걸려 멈춘 차 안에서 빈 담배곽을 세게 구긴 효신이 잔뜩 구겨진 담배곽을 신경질적으로 조수석에 던져냈다. 힘 없이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은 효신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화려한 의상 그대로 나온 홍빈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더구나 박효신의 총애를 받는 이홍빈이니. 무작정 뛰쳐나와 버스에 올라탄 홍빈이 행여 sns에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진이나 글이라도 올리는 건 아닐까, 사람들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묘하게 두렵고 묘하게 설렜다. 머릿속을 헤집는 효신의 얼굴에 고개를 세게 저었다. 곧 목적지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터덜터덜 버스 계단을 걸어내려온 홍빈을 한 남자가 반긴다. 힘없이 품에 안기는 홍빈의 등을 토닥이던 남자가 시계를 본다. 홍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금방이라도 효신이 이리와, 하며 팔을 벌릴 것 같았다. 고개를 저으며 남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가 자초한 일이다. 후회하지 말자. 속으로 되뇌인 홍빈이 남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던 홍빈이,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모바일로 끼적인 거라 뭔지를 모르겠당.. 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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