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작게 감탄한 효신이 제 앞에 서 있는 열여섯의 소년을 쭉 훑었다. 소년의 표정에 궁금증이 서렸다. 아저씨, 누구세요? 손목을 붙잡힌 소년은 제가 누군지 모르는 듯 했다. 가슴팍에 붙어있는 명찰로 시선을 옮긴 효신이 작게 이홍빈.. 하고 중얼거렸다. 너, 모델해볼래? 눈을 깜빡이며 차가운 인상의 효신을 경계하던 홍빈에, 효신이 처음으로 눈을 접어 환하게 웃어주었다. 스물여덟의 효신과 열여섯의 홍빈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효신X홍빈] 나비의 겨울4 by. 진라면 나, 나 잘 했어요? 땀에 젖어 아이라인이 약간 번진 상태로 제게 달려온 열여덟의 어린 소년을 끌어안은 효신이 등을 토닥였다. 여직 흥분감과 긴장에 어깨를 떠는 홍빈의 모습이 안쓰러워 홍빈을 안은 효신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아이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며 몇 번이고 잘 했다고, 최고였다고 진심을 다해 달래고 나서야 어깨의 떨림이 멎어들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효신의 지인의 런웨이. 꽤나 큰 기대를 받는 제 지인의 런웨이에 어리버리한 신인을 세운다니 말이 되냐며 만류하던 주변의 걱정을 뒤엎고 홍빈은 기대했던 것 보다, 또 그 누구보다 잘 해주었다. 홍빈은 타고났다. 얼마 전 런웨이를 위해 염색한 홍빈의 와인색 머리를 손 안에서 흐트려놓던 효신이 그의 어깨에 가만히 얼굴을 올려놓았다. 맛 있는 거, 먹으러갈까? 응, 뭐 먹을건데요? 일단 메이크업부터 지우고 와. 제 말에 화장실로 달려갔다가 다시 와서는 거울 앞에 놓인 클렌징크림을 챙겨가는 모습에 효신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여튼, 못 말려. 이거 돈까스 아니에요? 슈니첼이라니까, 돈까스랑 조금 달라. 그러니까 그 슈니첼이, 우리 말로 돈까스인거죠. 종알종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붉은 입술에 작게 썬 고기를 물려주니 그제야 조용해진 홍빈에 효신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오면 먹어야한다는 슈니첼과 자허토르테. 송아지 고기를 얇게 편 후에 그 위에 밀가루, 계란, 빵가루 등을 입혀 튀긴 후에 레몬즙을 뿌려 샐러드와 함께 먹는 슈니첼은 우리나라의 돈까스와 비슷한 모양새이고, 비슷한 맛이다. 식당의 넓은 테라스에 있는 자리는 케른트너 거리의 풍경을 한 눈에 보여주었고, 홍빈은 이 곳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북적북적한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꽤나 평화로운 분위기의 도로가 예쁘다, 또한 편안하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에 빨개진 코를 문지르던 홍빈이 다 비운 슈니첼 접시를 밀어내고 자허토르테 접시를 끌어당긴다. 두 장의 퍽퍽하지 않은 초코케이크 안에 살구잼이 들어있고, 보기만 해도 단 내가 풍겨오는 초콜릿 아이싱이 덮여있는 자허토르테. 그 옆에 수북히 쌓인 생크림까지 포크로 떠 얹은 후에야 자허토르테를 작게 잘라 입에 넣는 홍빈의 모습에 효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단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모습이 아직도 아이같다. 몽글몽글한 김이 풍겨 올라오는 아메리카노를 한 입 머금은 효신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볼에 생크림이 묻은 것도 알아채지 못 한 채로 먹기에만 정신이 팔린 홍빈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맛있어? 응, 이거 짱이에요. 먹어볼래요? 은색의 포크 위에 자리한, 살구잼이 삐져나온 초코케이크 위로 하얀 생크림이 가득하다. 생각만 해도 달 것 같은 모양새에 효신이 엄지로 홍빈의 볼에 묻은 생크림을 쓸어내 혀로 훑어낸다. 달아, 짧은 한 마디에 귀까지 빨개진 홍빈이 작은 조각을 제 입에 밀어넣곤 애써 남은 조각을 입 안에 꾸역꾸역 밀어넣는데에 집중한다. 깔끔히 비워낸 접시를 바라보던 효신이 홍빈을 일으킨 후에 자연스럽게 두터운 제 겉옷을 홍빈의 어깨에 걸쳐준다. 여기 되게 이쁘다, 그렇죠? 응, 이쁘네. 한참을 걷다가 케른트너 거리 끝쪽에 자리한 거대한 슈테판 성당을 보고는 정신이 팔려 뛰어간 홍빈은 묘하게 들떠있었다. 어느새 노을이 져 붉게 변한 하늘을 보던 효신이 한적한 성당 내부를 들쑤시고 다니는 홍빈의 뒷모습을 보며 느릿한 걸음으로 그를 쫓았다. 빨리 와요, 뒤를 돌아 효신과 눈을 맞추며 뒤로 걷던 홍빈이 발이 꼬여 비틀거린다. 홍빈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를 단단하게 안아 받친 효신이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홍빈을 보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숨 넘어갈 듯 웃어댄다. 웃지마요, 민망해. 투덜거리는 홍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 효신이 눈을 접어 웃는다. 강아지같아, 그를 보며 강아지를 떠올려낸 홍빈이 무언가 나른한 기분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붉게 하늘을 물들인 노을도, 약간은 추운 느낌의 선선한 바람도, 아무도 없는 성당의 모습도, 웃고있는 효신도, 그와 눈을 맞추고 있는 홍빈도 그 순간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홍빈에게 효신이 얼굴을 가까이 한다. 코가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거리. 곧 그를 부르는, 성당 안에 울리는 목소리에 홍빈은 멍한 기분으로 효신을 마주했다. 빈아. 나른하고 평온한 분위기에,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듯한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효신의 이목구비에 홍빈은 아무 대답조차 하지 못 하고 느릿느릿, 조심스레 숨만 내쉬었다. 홍빈아. 으응, 듣고있어요. 여기가 왜 유명한지 알아? 뜬금없는 효신의 질문에 홍빈이 눈을 깜빡인다. 아니요, 작게 웅얼대는 목소리에 효신이 고개를 틀어 홍빈의 입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가 떼어낸다. 붉어진 볼을 부여잡는 홍빈의 손을 끌어내린 효신이 여전히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홍빈과 눈을 맞춘다.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여기서 했어. 와.. 진짜요? 우리가 음악은 아니지만, 나름 예술하는 사람들이니까. 모차르트처럼 여기서 영원의 약속을 하고 싶어, 빈아. 너랑. 효신의 목소리는 굵다. 굵고 낮으면서도 미성이다. 또 허스키하다. 묘한 목소리는 사람을 아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코 끝을 스치는 달큰한 그의 체향 역시 그랬다. 효신의 목을 끌어안는 홍빈에 효신이 그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가져다댔다. 진득하고 질척한 키스가 아닌 가만히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는 키스. 입술을 떼어낸 효신이 홍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강아지 같은 특유의 미소를 보였다. 바람이 불어와 홍빈과 효신의 머리가 날리고, 달큰한 효신의 체향이 다시금 홍빈의 코를 간질였다. 감싸안고 있던 효신의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춘 홍빈이, 제 허리를 끌어안는 효신의 팔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우리도 벚꽃축제 가면 안돼요? 뉴스에 나오는 벚꽃축제 소식을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다가 제게 묻는 홍빈에 효신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벚꽃축제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꼭 효신과 가고 싶다고 했다. 붕대가 둘둘 감긴 홍빈의 발목을 내려다보던 효신이 고개를 저었다. 며칠 전 런웨이에서 사고가 있었다. 무대 설치를 담당하는 사람의 부주의로 무대 일부가 내려앉았고 하필 그 곳에 홍빈이 있었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아찔해져 효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부드러운 카펫에 한쪽 무릎을 꿇은 효신이 쇼파에 앉아있는 홍빈의 발목을 잡고 붕대를 풀러냈다. 무대가 무너지면서 발목에 나무 파편이 박혔다. 운 좋게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당분간은 잘 걷지 못 할 것이라고 했다. 피딱지가 져있는 발목을 소독약을 묻힌 솜으로 꼼꼼히 닦아낸 효신이 약을 발라주고 다시 붕대를 꼼꼼히 감는다. 진짜 안 가요? 응. 난 가고 싶은데. 발목 아프잖아. 효신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홍빈의 발목에 감긴 붕대 위로 입을 맞추며 홍빈을 올려다본다. 공부에 치이고 연습과 모델 활동에 치이고, 이제 조금 쉴 만하니 발목이 크게 다쳐 잘 걷지도 못 해서 그 흔한 데이트 한 번 잘 못 했다. 하지만 홍빈의 상처가 덧 날까 걱정이 되어 효신은 저를 애원의 눈길로 쳐다보는 홍빈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내 절뚝거리는 발을 이끌고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홍빈에 효신이 한숨을 쉬며 티비를 바라보았다. 거의 끝나가는 벚꽃축제 현장을 보여주는 뉴스 화면. 떨어진 벚꽃잎이 아스팔트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 작게 탄식한 효신이 쇼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겉옷과 차키를 집어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제 다리가 아픈 건 알지만 단호히 가지 않겠다는 효신의 말에 섭섭해서 괜한 투정을 부리려 방으로 들어와 누워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으응,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홍빈의 머리카락이며 몸으로부터 분홍색의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진다. 온 몸을 덮고 있는 건 이불이 아닌 군데군데가 갈색으로 변한 분홍색의 벚꽃잎이었다. 은은한 벚꽃향이 제 온 몸에서 나고 있었다. 기분좋게 웃으면서 벚꽃잎을 손 안에 가득 담아 머리 위로 날렸다. 제 머리며 몸에 다시 떨어지는 벚꽃잎들은 뉴스에서 보던 모양보다 아름다웠다. 나무도 없고 예쁜 하늘도 없지만, 저만을 위해 만들어준 하얀색의 방과 제가 좋아하는 청록색의 베개가 놓인 하얀 침대 위로 떨어지는, 제 하나뿐인 사람이 놓아준 벚꽃잎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몇 번이고 벚꽃잎을 머리위로 날리던 홍빈이 발을 절뚝이며 방 밖으로 나섰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벚꽃잎들을 갈색 머리카락이나 옷 위로 붙이고 방 문 앞에 서서 저를 보고있는 홍빈을 보던 효신이 웃으면서 쇼파에서 일어나 팔을 벌렸다. 이리와, 빈아. 천천히. 그 말을 듣고 절뚝절뚝,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효신에게 다가간 홍빈이 목을 끌어안았다. 홍빈의 허리를 손으로 받쳐 안은 효신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벚꽃향을 가득 담은 채 제게 안긴 홍빈에, 벚꽃축제로 유명한 천안까지 차를 몰고 내려가 바닥에 떨어진 최대한 깨끗한 벚꽃잎들을 쇼핑백 두개 가득 쓸어모은 후에, 깨끗히 씻어내고 자고있는 그의 머리에 뿌려진 수고가 모두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홍빈이 환하게 웃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벚꽃잎을 담으러 돌아다니느라 퉁퉁 부은 발을 실내화 안으로 숨기며 효신이 홍빈의 앞머리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그러니까 빈에서 일어난 첫 런웨이 끝난 것부터 고백까지는 홍빈이가 열여덟, 대장님이 서른에 일어난 일이고 벚꽃은 홍빈이가 스물, 대장님이 서른 둘일 때 일어난 일이에용. 과거를 쓰게 된 이유가 제 사심을 채우기 위해서도 있지만..ㅎㅎ 그냥 이렇게 행복했던 때를 써야 좀 더 몰입도 되실 것 같고, 홍빈이의 해맑해맑한 모습과 대장님이 홍빈이를 이만큼 좋아한다! 이런 것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글 안에서 잘 보였을지 모르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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