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로망, 클리셰
W. 백빠
오세훈; 좆고딩의 반란
" 여기 거스름돈이요. "
"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
오, 씨팔. 개춥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온 몸을 휘감는 쌀쌀한 바람. 허벅지와 종아리 뒤쪽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술까지 진탕 마셨다가 방금 깨서 그런지 머리까지 아프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AM 2:09. …아, 오늘 너무 일찍 들어왔어. 오랜만에 가는 클럽이었는데 두시가 뭐야, 두시가. 적어도 아침 해 뜨는건 보고 와야 되는건데. 빌어먹을 회사, 내일 출근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일찍 들어올 이유가 없는데. 존나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는 진짜 내 타입이 아니야, 그냥 확 때려쳐버릴까?
…아냐, 내가 어떻게 취직한 회산데 그걸 때려쳐. 나같은 소시민은 그딴 짓 못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저 걸음을 재촉했다. 현관문을 지나쳐 엘레베이터에 오르는데, 진하게 풍겨오는 치킨냄새. 킁킁. 와, 치킨냄새 오진다. 집에 가서 치킨이나 시켜먹을까? 근데 올 때까지 언제 기다려? 때마침 배에서 울려오는 꼬르륵 소리. 그래, 대충 멸치볶음에 밥이랑 처먹자.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서둘러 오른쪽 복도로 꺾는데 저 복도 끝, 그러니까 7호인 우리집 문 앞에 왠 남자 하나가 기대 서있다. 키가 멀대 같이 크고 피부가 허연 걸 봐선…
" 오세훈? "
" …. "
빠르게 걸어 가까이 다가가니, 역시나 서있던 남자는 옆집 고딩 오세훈이었다. 스냅백 하나를 대충 눌러쓰고, 팔짱을 낀 채 내 쪽을 심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오세훈. 너는 또 왜 지금까지 안자고 나와선 개구린 표정으로 날 꼬라보고 있냐.
" 너 안자고 여기서 뭐해? "
" 시간이 몇신데 이제 들어와요, 누나. "
얼씨구. 지금 훈계질을 하시겠다? 이노무 어린 쉐끼가 어딜 감히 하늘 같은 누나한테! 귀여운 훈계에 푸흡, 웃었다가도 곧 개정색을 하며 " 늦었다, 들어가서 자라 세훈아. " 하며 훠이훠이, 저리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니가 우리집 현관문에 기대고 있으니 비번 키를 누를 수가 없잖아. 그러나 세훈이는 요지부동.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얼굴로 나를 위에서 아래로 한번 쓱 훑더니 짧디 짧은 내 치마에 양 미간을 팍 찌푸린다.
" 이건 또 무슨 만들다 만 옷이야. 차라리 벗고 다니지? "
" 저기요, 니네 학교 여자애들 교복보단 길거든여? "
" 걔네들한텐 제가 관심이 없고요. "
" …아. 예. 왠만하면 저한테도 관심이 좀 없었으면 좋겠는, "
" 그리고 평일엔 좀 일찍일찍 다녀요, 아침 잠도 많은 주제에 내일은 또 어쩌시려고. "
" 아니, 너야말로 내일 학교는 어쩌시려고 지금까지 안쳐자고 나와선 누나 고나리질이세요. "
" 나 내일 학교 안가요. "
" 뭐? 대체 왜? "
" 재량휴업일. "
…와. 재량휴업일이라니. 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재량휴업일이라하면, 왜 쉬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쉬는 날인 그런 날인거잖아. ...왠지 니가 존나게 부러워진다, 세훈아. 회사에 다니게되면 공휴일에도 쉬기 어렵단다. 근로자의 날 같은건 개나주고 말이야. 부러운 눈빛으로 세훈일 몇 초 가량 바라보다 손을 뻗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다시 한번 훠이훠이, 손짓했다. 알겠으니까 좀 나와봐. 나 집에 좀 들어가자. 그런데 여전히 세훈은 문 앞에서 비켜줄 생각을 않는다. 이런 허벌나게 어린 놈이 누나 말을 왜 이렇게 안들어?
" 야, 니 말대로 누나 내일 출근해야 돼. 나는 너처럼 늦잠 잘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
" 누나 어차피 들어가서 밥 차려 먹을거잖아요. "
" …소오름. 어떻게 알았냐? "
" 잠깐만 들어가지말고 기다려요. "
그제서야 우리집 문 앞에서 비키는 오세훈. 그러더니 바로 옆에 있는 자기 집으로 순식간에 들어가버린다. ...저기, 세훈아? 내가 왜 너를 기다려야하는 건지 누나는 잘 모르겠는데ㅎ 누나는 이만 집에 들어간다? …아냐, 그래도 기다리라고 했는데 들어가버리면 예의가 아니지. 아, 무슨 좆고딩 따위의 말에 예의를 차려? 내가 이렇게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어줄 연식이냐고! 그냥 집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데 오세훈이 금새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오세훈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 헐, 시발. 치킨이다.
" 식을까봐 이불 밑에 깔아놨었어요. "
" …세훈아…. "
엘레베이터에 흐르던 치킨 냄새의 주인공이 너였구나. 누나 오면 주려고 이렇게 기다린거야? 아, 우리 세훈이는 어쩜 이렇게 예쁜 짓만 할까. 응? 순식간에 사르르 풀린 내 표정에 세훈이가 웃으며 묻는다. 그렇게 좋아요? …뭐랄까. 먹을거라면 사족을 못 쓰지, 돼지뇬아ㅋ 란 서브텍스트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렇지만 상관없어. 나 돼지새끼 맞으니까^^ 나는 응! 개좋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훈이 턱 끝으로 우리집 문을 가르킨다.
" 열어요. 들어가서 먹게. "
" …? 설마 너도 같이 먹는거? "
" 내 돈으로 시킨건데 당연하죠. "
" …. "
치킨은 노림수였구나, 오세훈. 어린 주제에 상대방의 약점을 활용할 줄 아는군. …근데 아무리 니가 애새끼 좆고딩 응애응애 애기라지만 너는 열아홉, 그러니까… 한창 들끓을 나이고, 살살 후- 하고 불어만 주면 활활 타오를 나이고, 그런 너와 다 큰 성인 누나가 이 야심한 시각에 한 방에 있으면…. …됐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병신이지.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얼마간 고민하다 아, 얼른요. 보채는 오세훈에 그냥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었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냐.
오세훈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제 집인 양 쇼파에 편히 앉아 치킨을 앞 탁상에 내려놓는다. 그리 작은 집은 아닌데 확실히 덩치 큰 남자애가 집 안에 있으니 거실이 좁아보인다. 왠지 우리집이 새로운 느낌. ...아, 눈 뻑뻑해. 일단 좀 씻든가 해야겠어.
" 야. 나 얼른 씻고 나올테니까 티비 보고있어. 먼저 먹으면 죽여버린다. "
" 옷은 안 갈아입어도 되는데. "
" 참나. 아깐 만들다 만 옷라며? "
" 내 앞에선 괜찮아요. 뭐, 안 입으면 더 좋고. "
" ...미친새끼. 됐고 먼저 먹지나 마라. "
" 그렇게 걱정되면 같이 씻든가. "
" 개소리 자제해라. "
...무슨 열아홉살이 저런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나름 쿨하게 넘기긴 했지만 사실은 심장이 망치에 때려맞은 듯 뎅- 하고 울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나보다 한참 어린 애라지만 외관상으론 징글맞은 성인 남자인 이상, 단 둘이 있는 집에서 그런 야시꾸리한 멘트를 치면 기분이 이상할 수 밖에 없다고! 나는 샤워 후 평소 입는 짧은 반바지 대신 긴 트레이닝 팬츠에 검은색 반팔티를 입었다. 세훈아, 누나는 네 성욕을 자제 시켜주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한단다. 누나의 노력을 알아주길 바라..☆ 스킨과 로션을 마저 바른 후 거실로 나갔는 ...아니, 저 미친새끼가 진짜. 티비를 보며 웃고 있는 오세훈 손에 캔맥주가 들려있다. 너 누나 냉장고 뒤졌니? 너 누나한테 뒤지고 싶니?
" 야, 너 그거 맥주..! "
" 아. 냉장고에 많길래. 먹어도 되죠? "
" 당연히 안되지! 너 아직 열아홉 애새끼거든? 불법이라고! "
" 누나만 조용히 해주면 걸릴 일 없을 것 같은데요. "
물론 오세훈은 지금 날 아무 의미없이 바라보고 있는거겠지만, 난 저 놈의 삼백안 때문에 쫄 때가 많다. 그리고 지금도 좀 쫄았다. ...이미 입댄거 뭐, 한캔 정도야 괜찮겠지? 하긴, 쟤라면 애들끼리 많이 마셨을거야 벌써. 나는 내 자신을 다독이며 바닥에 내려와 앉아있는 세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치킨을 사이에 껴두고 앉은 우리 둘. 그나저나 이 시간에 치킨 먹으면 난 언제 자냐. 내일 버스에서 자야되나. 아, 됐어. 치킨 앞에서 뭔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야. 일단 먹자. 어떻게든 되겠지. …윽. 조온나 맛있겠다.
" 잘 먹을게, 세훈아. "
" 나도 잘 먹을게요, 누나. "
저 말이 어딘가 야하게 들렸다면 나 정말 미친건가. 나는 애써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닭다리를 집어 입에 우겨넣었다. 그런데 세훈이는 먹지도 않고 그저 먹는 나를 흐뭇하게 지켜보기만 한다. 뭔데, 저 아빠미소는..
" 넌 왜 안 먹냐? "
" 누나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서요. "
" 와, 존나 우리 아빠도 안하는 멘트를. "
" 좋으면서. "
" 너 솔직히 말해봐. 우리 아빠 영혼이지? "
" 그건 아닐걸요. 누나 아빠가 누나한테 키스하고 싶진 않을 거 아니에요. "
" …. "
순간 닭다리를 뜯던 내 손길이 우뚝 멈췄다. ....저 새끼 왜 이렇게 작업을 걸어, 오늘따라? 물론 평소에도 평범한 옆집 회사원 누나로 대해준 건 아니지만 오늘따라 옆집_누나랑.avi 마냥 페로몬을 뿌려댄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닭다리를 입에 앙 물으며 무시하고 넘겨버렸다. 세훈은 그런 내 반응에 큭큭, 웃으며 맥주를 홀짝인다. 아, 저 새끼가 맥주 마시니까 나도 마시고 싶잖아.
" 야, 내 것도 가져와. "
" 맥주요? "
고개를 끄덕이자 세훈이 벌떡 일어서 냉장고로 향한다. 근데 내가 앉아있어서 그런가, 새삼스레 오세훈 키 진짜 크다. 키도 크고, 어깨도 떡 벌어져선 얼굴은 더럽게 잘생겼고…. 내가 5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먼저 꼬시는건데. 쩝. 맥주를 가져온 세훈이가 한 캔을 따선 내 앞으로 내민다. 새끼, 기름 때문에 못 따는 거 어떻게 알고. 이럴 땐 예뻐죽겠단 말이지. 맥주를 들곤 시원하게 들이키는데, 세훈이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내게 묻는다.
" 누나, 근데 오늘 클럽 갔다온거에요? "
" 캬아-! 뭐? 아, 엉. "
" 으, 씨발. 생각만해도 싫다. "
" 뭐가? "
" 남자새끼들이 누나 몸 만졌을거잖아요. "
고딩다운 귀여운 질투구만. 아무 말 없이 웃으며 맥주를 입에 가져다댔다. 미안하다, 세훈아. 내가 정말 5년만 어렸어도 널 받아줬을텐데 도저히 8살 차이는 감당 못하겠다. 나 경찰서에 끌려가. 세훈이는 내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웃는게 마음에 안드는지 뾰루퉁한 표정을 하고(사실 뾰루퉁, 이란 깜찍한 말로 표현했지만 인상이 하도 험해서 좀 무서웠다) 말했다.
" 왜 웃어요. 난 빡돌아죽겠는데. "
" 클럽이 무슨 안마방이냐? 만지긴 뭘 만져. "
" 그래도 춤추고 부킹하다보면 만지게 될 거 아니에요. "
" 흠… 아무래도 좀. 정 질투나시면 얼른 나이 드셔서 클럽 오시던가요.너도 누나 만질 기회 줄게."
" 아, 또 말이 무슨 그래요. 누나는 여자가 조신한 맛이 없어. "
" 그게 매력이잖아. "
" 그건 그렇지만. "
세훈이의 대답에 또 한번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 우리 세훈이 왜 이렇게 귀엽니. 애기처럼 대해주는걸 제일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세훈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으이구, 귀여워 죽겠어, 우리 세훈이! 역시 세훈인 내 손을 탁, 쳐내곤 하지마요- 짜증낸다. 그것마저도 귀엽다. 그러다가 세훈이 의심스런 눈길을 한가득 보내며 내게 묻는다.
" 누나, 집엔 남자 몇번이나 데리고 왔어요? "
" 흐응, 몇 번 데리고 왔을 것 같은데? "
" 발랑 까져선 백번도 넘었을 것 같아. "
" ...누나한테 발랑 까져선이 뭐냐? 난 적어도 미자땐 술 안 먹었거든? "
" 아, 여튼. 집에 남자 몇 번 데리고 왔냐고. "
" 못 믿으시겠지만 니가 처음이네요. "
" …진짜요? "
" 응, 세훈이 니가 처음이야. 하읏…. "
" 아, 미친. 누나 도발 하지마요."
갑자기 세훈이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간드러진 신음까지 섞어서 야하게 말해주니 세훈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욕을 내뱉는다. 그 모습에 자지러지듯 웃어버렸다. 나 변태적인 구석이 있나봐. 가끔 이렇게 도발하면 니가 괴로워하는게 난 너무 좋아. 세훈이가 나를 확 째려본다. 뭐, 째려보면 어쩔건데. 세훈이는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그리곤 우리집 냉장고에 들어있던 캔맥주를 싹쓸이해서 가져온다. 미쳤나, 이게. 요즘 클라우드가 얼마나 비싼데!!
" 야, 내쫒기 전에 다시 가져다 놔라. "
" 내가 내일 다시 채워놓을게요. "
" ...참고로 난 클라우드 밖에 안 마신다. "
" 여튼 제일 비싼 것만 마시지, 아주. "
아니, 니가 안 마시면 안 사와도 된다고! 다시 다 가져다 놓으면 사올 필요 없다고! 그러나 세훈은 금새 새 캔맥주 두개를 따서 하나는 제 앞에, 하나는 내 앞에 놓는다. 시원한 새 맥주… 꿀꺽… 남은 맥주를 한 입에 들이키고는 새 맥주캔을 들었다. 딱히 누가 말한 건 아니지만 서로 건배를 짠, 하곤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치킨 한 입. 캬아! 그나저나 고딩과의 맞술이라니, 이거 은근 죄책감 드는구만.
" 너 술은 언제부터 했냐? "
" 중삼때 아빠한테 배웠어요. 누나는 첫... 아니다, 이제 첫 자 들어가는 건 다 기억 안나죠? "
" 뒤진다. 어디서 시조새 취급이야. "
" 그럼 첫사랑은 기억나요? "
" 그러다 맞는다, 세훈아. 나 감성적인 여자라 그런거 못 잊거든? "
" 그럼 첫…… "
" …. "
…? 치킨을 뜯느라 바빴던 정신이 빠딱 차려진다. 고개를 들어 세훈을 쳐다보자 입술을 한번 꾹 물더니, 웃으며 아니에요, 란다. 너 설마 첫 섹스를 물어보려던건 아니었지? 나는 괜히 애꿎은 맥주만 들이켰다. 세훈은 금새 새 캔을 따 내 앞에 놔준다. ...이 새끼 어쩐지 내가 술 마시는 걸 부추기는 것 같단 말이지.
" 야, 혹시 너 나 취하는거 기다려? "
" ...누나는 날 뭘로 보는거에요. "
" 나 맥주론 안 취한다. 이상한 짓 할 생각하지마. "
" 어디까지가 이상한 짓인데? "
" …글쎄, 음… 막 몰래 뽀뽀를 한다든지, 어딜 만진다든지. "
" 그걸 뭘 취할 때까지 기다려요. "
그냥 하면 되지. 세훈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와 입술을 맞댄다. 그리곤 진하게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꾹 찍어낸다. …? 지금 무슨…? 나 지금 눈 뜨고 코 베인 느낌인데, 좀. 상황파악이 느린 내가 멍하니 꿈뻑꿈뻑, 세훈을 바라보자 내 눈에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세훈이 다시금 다가온다. 그리고 이번엔 입술을 좀 더 진득히 물어오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내 뒷통수까지 한 손으로 받친다.
" …우… 으…. "
나 지금 오세훈이랑 키스해? 옆집 애새끼 오세훈이랑? 한쪽 손이 슬금슬금 허리를 지분거린다. 저지하기도 전, 세훈의 혀가 내 입술을 가르고 입 안을 침범한다. 뜨겁고 말캉한 혀가 내 입안을 잔뜩 헤집는다. 치열을 훑고 입천장을 간지럽히고 내 혀를 옭아낸다. 뭔 놈의 고딩이 키스를 이렇게 잘해? 그 와중에도 방황하는 내 손을 잡아 제 어깨 위로 올려준다. 키스 하나만으로도 갈 것 같은 기분. 정신없이 세훈이와 혀를 섞어내다 천천히 떼어지는 입술에 눈을 슬며시 떴다. 네 입과 내 입 사이, 야하게도 은색 실이 길게 늘어졌다 끊어진다. 그제서야 서서히 정신이 머릿 속으로 기어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 지금 뭐한거..니..? 거의 눕듯 한 나와, 내 위를 올라타듯 한 너. 넌 위에서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본다.
" 미, 미쳤어, 진짜.. 오세훈, 야, 빨리 내려와..! "
" 누나 위에서 보니까 진짜 야하게 생겼다. "
" 뭐래, 진짜, 너 안 내려가냐? 저리가, 빨랑!! "
" 누나 내가 입술 안 뗐으면 어쩔 뻔 했어요? 우리 끝까지 갈 뻔했어. "
" …. "
아... 존나 쪽팔리다. 그깟 키스에 정신을 못차려서… 아, 미친, 눕힐때까지 모르고… 것도 애가 먼저 입술을 뗄 때까지 정신이 팔려서…. 민망함에 세훈이를 밀치고 일어서려는데 나보다 조금 더 빨랐던 세훈이 내 두 팔목을 바닥에 결박시킨다. ...이런거 하지마라, 세훈아. 응? 어떻게서든 세훈이의 아래에서 벗어나려 꼼지락 대봤지만 날 완벽히 바닥에 눕혀 꽁꽁 결박시켜버린 덕분에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 야.. 누나 지금 많이 쪽팔리거든? 좀 나와주라, 어? "
" 누나가 내 부탁 들어주면요. "
" 이건 부탁하는 자세가 아니잖아, 세훈아. "
" 그럼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할게요. "
세훈이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온다. 와, 자세 존나 야하다. 니가 날 눕혀선, 두 팔을 옆으로 결박시키곤, 얼굴을 가까이 내려다본다. 시팔, 이 와중에 날 내려다보는 오세훈의 얼굴은 미친듯이 잘생겼다. 젠장, 이런 상황에서도 그딴 생각이나 하다니.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괜히 양심이 찔려, 성질 부리듯 야! 얼른 말해! 재촉하니 세훈이 장난스레 웃으며 내게 속삭이듯 말한다.
" 술은 아빠한테 이미 배웠고, 담배는 안 배울거고. "
" …. "
" 공부는 학교랑 과외로 배우고 있으니까, "
" …. "
" 누나가 여자 좀 알려주세요. "
…이미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뭘 더 알려드려요, 세훈아. 조금 떨려오는 목소리를 진정시켜가며 물었다. 내가 뭘 알려줘야되는데? 그러자 세훈이 반팔티 아래로 드러난 팔 안 쪽 여린 살에 입술을 가져다대더니 그 곳을 혀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야아, 나 거기 예민한 건 어떻게 알고…. 그러다 목까지 입술이 올라와 이젠 귀 언저리까지 침범해온다.
" 그냥, 여자는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
" 야아, 하지마아, 나 귀 민감해, 읏, "
" 어딜, 어떻게, 뭘 해줘야 환장하는지. "
" …아, 간지러워, 세후…응, "
" 누나는 소리도 진짜 야하다. 듣기만해도 설 것 같아요. "
잘근잘근 깨물기도 하고, 쪽 빨기도 하고, 혀로 살살 핥기도 하고, 예민한 성감대만 쏙쏙 골라서 그렇게 괴롭히면 신음이 절로 나, 안 나. 아, 오세훈 서기 전에 아래에서 나와야하는데... 이새끼가 서기라도 하면 큰일나는데...
" 일단 나와봐, 오세훈. 알겠으니까. "
" 뭘 알겠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
" 누나가 여자 제대로 가르켜줄테니까 좀 나와보라고. "
" 지금부터 가르쳐줘봐요. "
....너 어디서 심리경영술 배우니? 사람을 가지고 노는 법, 뭐 이런거 쓰여진 자가계발서라도 읽냐? 나는 날 가만히 내려다보는 세훈을 바라보다 한숨을 짧게 내쉬곤 말했다.
" 누나도 지금 당장 모든 걸 가르쳐주고싶은데, 넌 학교를 안가지만 내일 누나는 출근을 해야하거든? "
" 그래서? "
" 그러니까, 다음에. 응? "
" …. "
성심성의껏 달랜 보람이 있었다. 니가 조금씩 생각을 해보고 있다. ...다행이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겠어. 솔직히 나 좀 당황했어. 여태까지 살면서 너처럼 어리고, 철없고, 겁없고, 돌진하는 고딩은 생애 처음이라서 말이야. 세훈은 조금 뜸을 들였다 다시 입을 열었다.
" 알았어요. 대신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래요. "
" …여기서? "
" 응. 누나 옆에서. "
아니… 뭐,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나보단 니가 더 힘들텐데. 참는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렇지만 난 얼른 이 아래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음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세훈이 순식간에 내 위에서 내려와 날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린다. 놀랄 틈도 없이, 너는 방으로 들어가 날 침대 위로 올려놓곤 옆에 털썩 눕는다. 그리곤 나를 제 품 안에 껴안으면서 묻는다.
" 누나, 안고 자도 되요? "
" ...그건 안기 전에 물어보는거야. "
" 어차피 누나 의사가 중요하진 않았어요. "
조용하고 껌껌한 침실, 다부진 가슴팍에 은근 풍겨오는 오세훈의 살냄새까지. 날 감싸안은 오세훈의 두 팔이 꽤 단단하게 느껴진다. 아, 왜 자꾸 남자로 느껴지는거냐고. 애새끼 좆고딩일뿐인데…! 세훈이는 날 그렇게 품에 안곤, 잘자요- 하고 작게 속삭였다. 너라면 잠이 오겠냐, 지금 무려 여덟살이나 어린 남고딩 품에 안겨있는데? 나는 네 품에 가만히 안겨있다가 나즈막히 널 불렀다.
" 야, 오세훈. "
" 응. "
" 누나 너보다 여덟살이나 많다? "
" …존나게 새로운 사실 알려주시네요. "
" …. "
아니, 혹시 너가 까먹었나 해서…. 네 대답에 난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찾아온 고요함. 나는 가만히 꿈뻑꿈뻑 네 가슴팍을 바라보다가 다시한번 입을 열었다.
" 너 나 진짜로 좋아하냐…? "
" 나 아무 여자랑 키스 안하거든요. "
" 대체 나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건데? "
" 누나 존나 예쁘잖아요. "
" …. "
그래. 내가 뭘 기대해, 너한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은 고타마 싯타르타의 기분이 이랬을까…? 잠이나 자자, 내일 출근은 해야될거 아냐. 양 한마리… 양 두마리… 결국 난 백이십육번째 양이 울타리를 넘어가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열아홉살, 민증에 잉크도 안 말랐을 옆집 고딩 오세훈의 품에서 말이다.
내가 눈을 뜨게 된건, 매일 그랬듯 휴대폰의 듣기 싫은 알람소리가 아닌 창문 틈새로 쨍쨍히 내려쬐는 햇빛 때문이었다. 문득 눈을 번쩍 떴을 땐, 난 여전히 오세훈의 품 안이었고, 내 허리에 다리까지 얹고 자고 있는 오세훈의 얼굴이 눈 앞에 보였다. 눈 감고 있는 얼굴이 곱기도 참 곱다. 그나저나 아직 휴대폰 알람이 안 울렸으면 여섯시 반 전이라는 소린데… 왜 이렇게 햇빛이 쨍쨍하지?
내 허리 위에 얹혀져있는 세훈의 다리를 겨우 떨어트려놓고는 날 감싸안은 팔까지 떼어내려하는데 세훈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날 더 꽉 껴안는다. 결국 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포기하고, 손을 뒤로 뻗어 침대 옆 탁상 위에 있는 시계를 가져와 눈 앞에 보……는…데… 열한시 이십오분…? …씨이바아알…?
" 으아아악!!!!!!! "
" 아, 깜짝이야.. "
" 야, 나와, 좆됐어!!!! 나 출근, 출근!!!!! "
멍한 세훈이를 틈 타 빠르게 품에서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아, 미친, 왜 알람을 못 들었지? 가글을 입에 콸콸 털어넣어 입을 대충 행구고 고양이 세수에, 결국 머리는 감지 못하고 위로 질끈 묶고 나오는 나. 화장대 앞에 앉아 스킨과 로션을 대충 섞어 바르는데 침대에 누워 아직 깨지 않아 노곤한 눈으로 바빠 죽겠는 나를 부른다.
" 누나. "
" 바빠, 나중에- "
" 누나, 회사 안가도 되요.
" 바쁘… 뭐라고? "
꽤나 충격적인 말을 짓껄인 세훈은 잘듯 말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세훈이 손을 들어 까딱까딱, 이리 와보라는 손짓을 한다. 버릇이고 뭐고, 뭔소린가 싶어 급히 세훈에게 다가가자, 제 배게 옆에서 내 휴대폰을 집어든다. ...내 휴대폰이 왜 네 베개 옆에 있냐?
" 아까 아침에 전화왔었어요. 윤대린가. "
" 언제, 몇시에? "
" 몰라, 아홉시 반쯤에. "
" 그래서? "
" 아파서 못간다고 했어. "
전화를 니가 받았단 말이야…? 눈 앞이 컴컴해져온다. 윤대리가 뭐라고 생각했을까. 아침에 지각하길래 전화해보니 왠 남정네가 전화를 받아 오늘 이 여자 아파서 못 갑니다, 라고 했을 때의 윤대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정신이 반 쯤은 램수면 상태로 있는 세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세훈이 내 심각한 얼굴을 한번 보더니 다시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걱정마요, 전화는 안받았으니까. "
" 안 받았어? "
" 응, 문자로 했어. "
서둘러 세훈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와 확인했다. [오늘 아파서 못 갈것 같아요 목소리도 안나와] 라고 보낸 문자에, [알았어, 부장님께 말해놓을게. 푹쉬어] 라고 온 윤대리의 답문. ...아, 십년감수 할 뻔 했네. 탁, 풀린 긴장감과 안도감에 침대에 털썩 앉자 세훈이 내 팔을 확 끌어당겨선 다시 제 품에 꼬옥 껴안는다.
" 이제 더 자요, 누나. "
" …난 다 깼거든? "
내 말을 듣긴 한건지, 오세훈은 다시 눈을 감는다. ...그래도 예쁜 짓 하긴 했네. 내일 부장님한테 눈도장 찍힐게 분명하지만. 으휴, 그러게 왜 어제 얘랑 치킨을 먹어선. ..치킨만 먹었어? 별의 별 일이 다 있었지. 오세훈의 하얀 얼굴을 보며, 어제 네 아래에 깔려 받아내던 네 야한 눈빛을 생각해본다. 이렇게 잘 때랑은 완전 딴판이란 말이지. 이러고 있으면 귀엽기까지한데…. 세훈의 얼굴을 말 없이 보고만 있는데, 세훈이 나를 더 꽉 껴안더니 잠이 좀 깬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 나 어제 부탁한거, 다른 걸로 바꿀래요. "
" 뭘로? "
" 나 여자는 됐고, 누나나 알려줘요. "
" …. "
...그게 뭔 말 데스까..? 여자는 됐고 누나나 알려줘? 무슨 말인지 잠깐 생각해보다, 이해가 되자마자 나도 모르게 푸핫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제 여자를 좀 가르쳐달라고 말할 땐 언제고 이젠 여자 말고 누나를 가르쳐달래. 아, 새끼. 귀엽네. 깜찍한 구석이 있어. 근데 그건 또 어떻게 알려줘야되는거야? 나 나 잘 모르는데.. 차라리 여자를 알려주는게 나은데..
" 근데 나도 나에 대해 잘 몰라. 알려줄 길이 없어. "
" 그럼 내가 알아낼 기회를 좀 주던가요. "
" …어떻게? "
" 오늘 하루종일 나랑 데이트. "
" …. "
" 콜? "
아. 오세훈 너 존나 매력있다. 나이차이 무시하고 싶을만큼. ..진심 내가 이 좆고딩한테 넘어갈 줄은 또 몰랐네. 아아아! 몰라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진짜 경찰서야 가겠어? 난 오세훈의 허리에 손을 둘러 껴 안으며 대답했다.
" 콜. "
앞으로 누나가 많이 예뻐해줄게, 세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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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아 사랑해 커헉... 나중에 된다면 연재하고 싶은 글이에여 세훈이 성격 제 취향 탕탕 ㅇ<-<
+ 암호닉은 따로 안바다영...그치만 나는 니 글을 보러 매번 오는데 나인 걸 좀 알아줘라!!! 하시는 분들은 암호닉 달구 오세영~♡ 기억할게용ㅎㅅㅎ
++ 댓글 달고 포인트 받아가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