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나
"감사합니다!!"
종이 치자 마자 재빠르게 튀어나가려던 발이
뒤에서 와락 안아버린 누군가로 인해 멈춰섰다.
"태형아, 나 지금 바쁘거든?"
인상을 찡그리며 벗어나려 해도
꽉 잡은 두 손이 날 놓아주지 않는다.
"태형아 나 진짜 오늘은.."
"요즘 너 이상해"
"왜"
"나랑 같이 집에도 안가주고"
"..."
"며칠 전부터 어딜 그렇게 가는건데?"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그가 중얼중얼 불만을 토해낸다.
하긴, 초등학교때부터 쭉 같이 등하교했었는데
갑자기 이러는 내가 얘 입장에선 이상하기도 하겠다.
허리츰에 꽉 잡힌 손을 풀어내려하자
더 꽉 잡아오는 손에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 그를 안았다.
"내가 미안, 응?"
"섭섭해"
"왜?"
"몰라, 섭섭해 진짜"
키도 큰게 내게 안겨서 고개를 부비부비 흔들어댄다.
코 찔찔 흘리고 다닐 때부터 봐서 그런가,
아님 돌아가신 태형이 어머님 대신 항상 내가 챙겨줬어서 그런가,
남들한텐 안그러면서 유독 나한테만 어리광이 심한 태형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줬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응?"
"난 기댈 사람이 너밖에 없는데,
넌 아닌 것 같으니까"
"태형아"
"사실 이런 거 말하면서도 불안해.
네가 나 귀찮다고 할까봐"
축 가라앉은 목소리의 그가
그제서야 꽉 잡은 팔을 놓아줬다.
푹 숙인 고개가 안쓰럽다.
"나 아직 어린가봐"
애써 웃으며 작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살짝 젖은 것 같기도 하다.
7시를 향해 가고 있는 시계가 보임에도
발을 땔 수가 없다.
내가 미안하다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가 다시 내게 안겨왔다.
아, 아저씨 보고싶다.
*
"그래서 매일매일 오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아저씨가 건넨 음료수를 매만지며
이리저리 눈치보고 꺼낸 말에
내 생각과는 달리 아저씨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걔가 그렇게 안 생겨서 성격이 엄청 여리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나도 걔한테 많이 의지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걔는 그걸 모르는건지 아님 모르는 척 하는건지.
맨날 섭섭하다, 섭섭하다 할 때마다 괜히 제가 더 섭섭한거 있죠?"
"그래?"
"네, 며칠 전부터 계속 꽁기꽁기하더니
오늘 섭섭한게 터졌나봐요.
울먹이면서 그러는데, 제가 더 울고싶고 막.."
"..."
"휴, 어색해지는건 정말 싫은데"
"..."
"앞으로는 그런 생각 못하게 좀 잘..."
"학생"
바닥을 콩콩차며 혼잣말처럼 뱉은 말에
일일히 대답해주던 아저씨에
네?
하고 돌아서자 또 그 하얀 손으로 콩- 하고 내 머리를 때린다.
"아, 왜요?!"
따끔한 아픔에 이마를 문지르며
아저씨를 노려보자,
가자미 눈을 뜬 아저씨가 날 더 노려본다.
"아저씨도 섭섭해"
"네?"
"갑자기 만나는 시간도 줄여버리고,
딴 남자 얘기나 하지를 않나,
아저씨는 보지도 않고 땅만 보지를 않나."
"..네?"
"웃기게 보일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해줬더니
끝이 없어 너"
"..."
"질투나"
짜증스럽게 벤치에 기댄 아저씨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니, 이 아저씨가 왜 이렇게 솔직해.
내 심장에 무리가게.
"아저씨랑 있을 땐"
"..."
"아저씨한테만 집중하자 응?"
불쑥하고 내밀어진 손에
얼떨결에 손가락을 걸어 약속하자
그제서야 아저씨가 푸시시 웃어버린다.
"아저씨는 힘든 거 없어요?"
붉어진 볼을 숨기려
일부러 화제를 돌리자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아니, 우리 이제 만난지도 꽤 됐는데
맨날 나만 고민 털어놓고 그러는 거 같아서.."
"섭섭해?"
"..조금?"
내 말에 음- 하고 고민하던 아저씨가
눈을 감더니 머리를 글쩍인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말 할 때나 생각할 때 눈감는 게
아저씨 버릇인 것 같다.
"아저씨가 아는 애가 있는데"
"네"
"이제 좀 친해진 것 같아서"
"..."
"아저씨는 걔랑 놀러도 가고 싶고,
새로운 것도 많이 해보고싶거든?"
"네"
"근데 걔는 그게 아닌건지,
아님 눈치가 없는건지.
별 거 할 것도 없는 공원에서 자꾸 만나자 그러네"
"..네?"
공원이면 아저씨랑 내 얘기 같은데..
아닌가?
나 말고도 공원에서 만나는 애 있나..?
뭐지 이거? 끙끙거리며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는 담담하게 눈을 감고있다.
"근데 걔가 또 고3이라
데리고 놀러 가도 되나 싶고,
요즘 공부도 안하고
나 만나러 뛰어나오는 것 같은데
말려야되나싶고"
"..아저씨"
"나중에 잘 돼서 웃는 거 보려면
말려야 될 것 같은데"
"..."
"그러기엔 지금 내가 너를 너무 보고싶고."
"..."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며 아저씨를 바라보자
어느새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가
습관처럼 콩- 하고 내 머리를 때렸다.
"감당도 못할 거면서"
"으..아니..."
아저씨의 눈동자에 버벅거리며
입을 열자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저씨 저 놀러가도 되는데..?
저 막,아 그러니까!
저 놀러가도 돼요!!
성적도 안 떨어지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놀러가요!네?
아저씨 걱정 안되게 할게요, 네?"
"고 3이 잘한다 응?"
"아저씨이.."
"...음"
아저씨 팔을 잡고 칭얼칭얼거리자
나를 내려다 보며 웃던 아저씨가
시계를 보더니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헐, 아저씨 갈거에요?"
"얼른 일어나 10시 다 돼가,
너 통금 10시라며"
"벌써요..?"
"응"
내 교복 자켓을 주어들어
재빠르게 입혀준 아저씨가
내 어깨를 톡톡 치며 잘가라며 인사를 한다.
뭐가 이렇게 빨라 이 아저씨는.
서운해, 서운해.
괜히 서운한 마음에 노려보자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
가방을 주어든 아저씨가 돌아선다.
"아저씨 간다."
헐, 진짜 못됐어.
저러고 진짜 가는 게 어딨어.
꿍얼꿍얼 아저씨 뒷모습만 보며 울상을 짓자
다시 돌아 본 아저씨가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내일 일요일인데 일찍 나올 수 있어?"
"..네?"
"아침 7시 어때?"
"..음, 괜찮아요!"
내일은 보충도 없으니까 뭐,
아침에 아저씨 보고 집에와서 숙제하면 되지.
이제 나도 집에 가려고 가방을 들고 돌아서자
등 뒤로 아저씨가 소리친다.
"내일 놀이동산 갈거니까 예쁘게 하고 와 학생!"
다시 돌아보면 머리를 글쩍이며
가고 있는 아저씨.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베시시 웃으며
나도 돌아섰다.
아 내일 뭐 입고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