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나
"하...후아...."
미칠듯이 땡겨오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시계를 보자
7시를 한참 넘긴채 9시로 달려가고 있는 바늘.
요리조리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괜시리 마음이 울컥한다.
하긴, 2시간이나 지났는데 있을리가 없지.
하필이면 오늘 왜 갑자기 특강이 들어서는...,
"아..진짜..아.."
머리를 마음대로 헝크리고는
벤치에 앉아 두 무릎을 감싸 안았다.
'아저씨 내일 7시에 여기서 또 봐요!
꼭 나와야 돼요!'
내가 약속 잡아놓고 늦는 꼴이라니.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진짜 내 잘못이 아닌데,
갑자기 특강이 들어서...,
어쩔 수 없었는데 진짜...,
"아 짜증..!!!!..나..."
붉어진 눈을 벅벅 닦고
저번과 같이 소리 지르며 벌떡 일어나자,
저번과 같은 동그란 머리통이 또 앞에 놓여있다.
"..아저씨..?"
"왜 또 울먹거려"
"..."
"혼났어?"
"...."
"우리 학생은 왜 자꾸 혼이날까
아저씨 마음 아프게"
나보다 더 인상을 찡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쉰 아저씨가
바지를 털고 일어나 헝크러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씩 웃더니
그래도 늦은건 늦은거니까
라며 하얀 손으로 아프지 않게 콩- 하고 내 머리를 때리고는
내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아저씨 안보고싶었어?"
"..아니요"
"근데 왜 또 울상이야"
"..나는 아저씨가 간줄 알고.."
"만나기로 했는데 왜 가"
"아니.., 내가 많이 늦었잖아요"
손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웅얼대는 내 모습에
푸시시- 하고 바람빠지는 웃음 소리를 낸 아저씨가
으이고, 걱정도 많다. 라고 중얼거리며
벤치에 편히 등을 기대고 피곤한 듯 눈을 감는다.
"아저씨 이름이 뭐에요?"
"..."
"나는 명찰 때문에 이름 다 밝혀졌는데
이러면 억울하잖아요...,
아저씨 이름도 말해줘요 네?"
"...민윤기"
민윤기 민윤기.
기억하기 위해서 중얼중얼거리자,
어디서 학생이 아저씨 이름을 막 부르냐며
인상을 찡그린채 꿍얼꿍얼거린다.
"음...또..,아! 몇살이에요?"
"스물여섯"
"와 대박 늙었다.
저랑 7살 차이 나네요?"
"..."
"아저씨 군대 갔을때
나 초등학생이었을듯."
"죽을래?"
감은 눈을 찡그리던 아저씨가
홱-하고 나를 노려보고,
나는 그저 아까 아저씨처럼 푸시시 웃었다.
"아저씬 무슨 일 해요?"
"심리상담"
"우와,대박.
그럼, 막 사람들 보면 다 뭐 생각하는지 알고 그래요?
지금 나 뭐 생각하는지 알겠어요?"
"글쎄..."
"아 왜요! 나 좀 잘 봐봐요...
나 지금 완전 신기하단 말이에요"
"음.."
내 칭얼거림에 결국 눈을 뜬 아저씨가
가까이 다가와 내 눈을 바라본다.
꿀꺽-
또 이상하다.
또 막 심장이 간질간질거린다.
저 다갈색 눈동자만 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아주 난리가 난다.
"학생 너.."
"..네?"
"아저씨 좋아하는구나"
"..네..네?"
진지하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아저씨에 당황해 버벅거리자,
가까이 있던 내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밀친 아저씨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장난"
"....예?"
"장난이라고"
어떻게 사람을 보고 딱 알아, 신도 아니고.
다시 아저씨가 벤치에 기대 눈을 감으면
난 또 손을 꼼지락 꼼지락.
저 아저씨 완전 신통방통할세...,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저씨 나 어제 아저씨 만나고 집에가서,
또 글 썼단 말이에요..?"
"응"
"오늘 선생님께 그거 보여드렸는데"
"응"
"글이 많이 달달해졌대요.
감정이 막막 드러난다고, 완전 칭찬 받은 거 있죠?"
"잘했네, 우리 학생"
"근데..,그거 아저씨 덕분이니까.."
".."
"그냥 그 거 알고만 있어달라구요"
아무 반응 없이 담담하게 침묵을 지키는 아저씨에
괜히 불안해져 다시 입을 열었다.
"아저씨 내일 또 올거죠?"
"..."
"7시에 꼭 와야돼요? 알겠죠?!"
"..."
"아저씨?"
"..늦지나 마"
쿵쾅쿵쾅-
앞으로 글이 점점 달달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