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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gile fragment project 03]

   비늘의 우주








시간을 달리는 소녀 OST - Daylife





****




 물고기의 우주는 물이다. 물 밖의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물고기다. 그런 우리를 널어줄 구원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존재가 희미해서 나는 오늘도 사유한다. 사유하지 않으면 정지하게 되어버린다. 정지하면 나는 비틀려버린다. 말라서 비틀거리고 힘이 없어 비틀거린다. 사고가 비틀어지고 심성이 비틀어진다. 그래서 호흡하기 위해 비틀거리는 초점으로 말을 배설한다. 그러면서 사유한다. 그렇게 존재하고 숨을 쉬고 생을 이어간다. 이런 나의 극단적인 것에 익숙한 우리, 나, 너. 그 이야기다. 우리의 세계, 우리의 공간. 그 척박한고 천박한 공간감. 그 속에 웅크리며 속눈썹을 파들거리는 여린 것들.


 이 여린 것들은 우연이 만든 필연에 의해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여린 것들에 나도 포함된다. 우리들은 그렇게 무리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견고함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다. 나란 사람이 별로이듯 상대도 별로다. 근데 그 별로가 익숙해서 씹어 삼킬 수 있다. 별로이고 여린 무쓸모 같아 보이는 것들의 집합체, 그들이 사는 허름한 장소가 이 이야기의 공간 전부다. 이 안에는 내 세계가 모두 있다. 물고기의 바다가 있다. 나와 같은 것들이 굴러다니고 내가 생에 존재함을 자각 시키는 존재가 있다. 어머니가 존재한다. 다행인 점은 이 공간의 사람들은 가난할지언정 멍청하지는 않다. 가난에 좀먹어 상기하는 법을 잃지 않는다. 생각조차 잃으면 우리는 플랑크톤이 과도하게 증식해 붉어진 바다에서 숨을 잃은 물고기처럼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질식사일까, 옭아매는 고통의 교살일까. 우리의 잘못일까, 타인의 잘못일까.


 차분한 현실은 오늘도 내 몸 구석구석 배어있어 고단함을 건넨다. 누군가에는 시작의 쟁점이자 포근함을 한 아름 안겨주는 집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꿈을 품어내지 말고 현실의 밑바닥에 묵묵히 기어가라는 인내를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필요한 것만 자리하고 있고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하지 못하는 것도 많아 작은방은 절대적인 크기로는 작은데 광활하다. 가끔, 아주 가끔 이 광활한 곳에 밀빛의 색깔을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꿈의 속성을 지닌 상상이라는 것을 하고 기뻐해보지만 그건 등에 업혀져 있는 가난에 의해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내 손끝에 있는 피부부터 머리카락의 끝자락, 우울히 자리한 발톱까지 나는 현실에게 흠씬 저며져 생생한 싱그러움 같은 것이 없다. 그래도 가끔은 내 눈에서만큼은 생동감이 흘러나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지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거 안다. 정녕 그것이 이뤄질 소원이라면 일단 이 애처롭게 업혀져 있는 가난부터 나와 떨어져 살겠지.


 내가 이런 혼잣말, 돈도 안되는 짓을 해도 엄마는 나에게 매질을 하지 않는다. 이 빌라의 사람들은 이 동네 치고 별종이었다. 가난하지만 이 구역에서는 가난하지 않았다. 그나마 몰락한 지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미술을 하다 세상에 재능을 저당 잡혔고, 장사를 하며 글을 써봤지만 나로 인해 좌절됐으며, 지금은 간병인 일을 하고 있다. 해 질 녘에 맞춰 탁해진 생선의 눈은 엄마의 회백색의 눈과 닮아 있다. 일을 마치고 온 엄마의 낡은 살결에 죽음의 냄새가 향수 입자처럼 붙어온다. 그러면 그 죽음은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내 어깨에 처연이 기댄다. 내가 거부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애끓게. 그래서 내 어깨는 가난과 죽음으로 무겁다.


 주소지로는 내가 사는 이 작은 원 룸이 지층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삶의 공간은 지층보다는 반지하 같다. 달동네로 이어지는 비탈에 자리한 건물은 지층의 창을 경사가 높은 곳에 만들어 놓아서 창을 열면 높은 고도를 오르기 위한 계단이 보인다. 가끔은 달에 가까이 자리한 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볼품없는 다리가 보이기도 한다. 얼굴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곳은 불만 꺼놓으면 낮에 어둡고도 어둡다. 1층에는 원 룸이 2개 있고, 2층과 3층은 투룸이다. 옥상에는 옥탑방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1층의 원룸 중 하나는 나와 엄마가 자리해 있고 옆방은 나와 같은 나이지만 한 학년 높은 오빠가 있었다. 오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존댓말은 하지만 오빠라는 호칭을 하지 않는다. 그건 암묵적인 규칙이다. 그래서 항상 호칭은 이웃이었다. 장난 같으면서도 까탈스럽게 이웃이라 부르면 같은 층에 사는 이웃 오빠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익숙해한다. 보기와 달리 정신력이 강한데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초월, 달관 같은 것이었다. 아이가 아이 답지 못하면 뭉근한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딱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정신력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저렇게 초탈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본 이웃 K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2층에는 같은 학년의 친구가 있다. 이 빌라에 사는 청소년 중 가장 많은 일을 하는 녀석이다. 고되게 몸을 굴리면서 악으로 버텨낸다.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하냐는 말에 그러지 않으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뻔한 답을 하지 않는다. "이러는 편이 마음에 편해"라는 거짓이 아니면서 자신이 초라해지지 않는 답변을 한다. 몸을 굴리는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을 잃을 법도 한데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이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 중 내가 가장 편안하게 말을 하는 대상이면서 나의 정신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다는 걸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인간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이 친구의 예술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다. 근데 싫지 않다. N씨는 어쩌니 저쩌니해도 동갑인 친구였다.



 3층에 사는 사람은 답지 않은 쾌활함으로 중무장한 인간인데 나보다 1살 많다. 이웃 씨와 같은 학년이지만 아직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내 말에 한 다발의 종이처럼 서걱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나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라고 답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공간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외면할 수가 없어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보다 못한 내가 그렇게 굴다가 세상에 짓밟힌다고 말하면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K랑 비슷하다며 핀잔을 준다. 그 핀잔도 받아 쳐주기 싫어서 "나도 알아. 이웃이랑 나랑 그런 점이 같은 거. 근데 사실이잖아. 그러다 밟혀."라고 말한다. 그러면 더더욱 한숨이 깊어진다. 미안하게도 잔소리가 줄어들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 S였다.



 옥탑방에는 2명의 대학생이 살고 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입주했다. 아, 나는 고1이다. 17이라는 애매한 나이. 2층 친구는 17 나와 같은 고1이고, 이웃은 17이지만 고2이며 3층 사람은 18에 고2. 대학생 둘은 20살 19살인데 둘 다 대학 신입생. 나이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다시 옥탑방 둘에 대해서 얘기해야겠다. 지방에 올라온 둘은 같은 학교에서 만났다고 했다. 사실 둘이 어디서 만났는지는 그다지 가치 있는 물음이 아니다. 다만 둘은 전혀 다른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위해 상경했고, 각자 문과 1등, 이과 1등이라는 지루한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 타이틀은 아직도 회색의 건물로 뒤덮인 이 동네 구석에 아스라이 들릴 때가 있다. 둘은 나란히 같은 학교를 갔고, 문과 1등은 경제학을 이과 1등은 의학을 전공한다. 이과 1등이 의학을 전공하다 보니 둘은 다른 학교를 다니는 사람 같았다. 지하철 노선의 종착지가 달랐다. 그래도 둘은 여전히 같은 방에 살았고, 이사를 가지 않았다. 내가 가끔 누군가는 이해하지만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내 취미를 현관 앞에 전시할 때 들어오던 행정학 오빠한테 물었다. 왜 이사를 가지 않느냐고. 그냥 둘의 종착지를 쭉 잇고 그 가운데를 집으면 나오는 용산구로 가서 세 들어 살 것이지 뭐 하러 이 동네를 못 떠나느냐고. 그러면 두꺼운 경제학 관련 서적을 한 손에 휘적이던 L은 그냥 이 건물이 좋아서라는 맥없는 말을 한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선한 표정은 덤이고. 너무 바빠서 보기가 힘든 의예과 K오빠한테는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 했다. 의예과 K를 보면 항상 진지하면서 남는 것이 지금 당장은 없는, 이익이 없고 가치가 높은 대화만 하게 된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건물의 사람은 나와 나의 엄마를 포함하여 별종들만 모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뻔한 표현으로는 개천에서 용날 것 같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비범하다면 비범하고 기괴하다면 기괴하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비범하지 못한 게 나다. 그걸 아는 N은 연민의 눈빛을 이따금씩 나에게 보낸다. 그러면 그 눈빛을 갈기갈기 찢어서 마음의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그래도 끊임없이 연민을 건넨다. 지긋지긋하다 못해 짜증이 날 지경이 되어서야 그 시선을 거두곤 하는데 돌려진 고개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덜미를 보고 손톱을 세워 긁고 싶어지곤 한다. 그렇게라도 화를 풀어버리고 싶으니까.



 이 잡다한 문장들을 나열하며 이들에 대한 정보를 풀어낸 이유는 나의 이득의 편의를 위해서다. 내가 이 공간에 존재하다 보면 마주하게 될 인물들이기 때문일 뿐. 그래도 나는 이들에 대하여 해야 할 말이 많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본다. 자세히 보기 위해 안경을 잃어버린 난시처럼 눈을 찌푸릴수록 기억과 잔상은 일그러진다. 그래도 기억을 감각을 더듬는다. 엉키는 감각과 함께 미간이 구겨져간다. 이런 내 미간을 밀쳐내는 손길, 그 힘의 반작용으로 나의 고개가 균형을 잃는다. 균형을 잃은 내 머리와 함께 초점이 난잡해지고 이 소란을 만든 길쭉한 손이 내 180도 이상의 시야에 단편적으로 잡힌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냥"

 "항상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일관되는데 네 표정은 다 달라 보여."

 "무슨 소리."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서는 무슨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성의 없는 답만 나와."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시비를 거나 싶었다. 어깨에 기타를 메고서는 손을 뻗은 앙상한 팔을 보았다. 팔꿈치에 도드라진 관절과 붉은 색감이 도는 피부를 가진 이웃은 나의 사유의 흐름을 그렇게 멈추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이웃 씨와 정서가 비슷하다는 말을 듣는다. 근데 이것도 의견이 갈린다. 사람마다 묘사하는 것이 다른데, 이웃씨는 나보고 N을 닮았다고 하고 3층 인간은 내가 이웃을 닮았다고 한다. N한테 이걸 전하면 넌 아무도 안 닮았다고 하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옥탑방에 사는 대학생 오빠 둘은 너는 N과 이웃 씨 둘을 섞어버린 것 같다고 한다. 의예과 오빠는 심지어 화학식으로 나를 표현하기도 했다. 폭발성이 있는 기체인 수소와, 급속한 연소를 돕는 기체인 산소가 만나면 불을 꺼버리는 물이 되어버리듯 네가 그러한 유형의 사람이라는 말. 식견 있고 복잡하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 그런 말. 그래서 나는 내가 N을 닮고 이웃 씨를 닮았으며 그들과 다른 나만의 요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와 공통분모가 있는 이웃 씨를 바라만 보니 뭘 그렇게 또 멍때리냐며 미간을 또 밀어버린다. 기분이 나쁜데 손을 떨쳐내기는 귀찮다. 그저 고개를 까딱거리고 만다. 입을 닫아버리는 나를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바닥에 앉아 있는 나를 따라 옆에 앉을 뿐이다. 벽면에 가득한 포스트잇을 바라보며 말한다.


 "뭐 하고 있었어."

 "단어 적고 있었어요."

 "글이라도 써보게?"

 "아니요, 필사하다가 발견한 것들이에요."

 "필사하다가 마음에 드는 표현들 적어 놨다는 거지?"

 "응, 해석 잘한다."

 "그 말은 네가 말하는 문장의 의미를 내가 잘 이해한다는 뜻이고."

 "응, 항상 N은 나한테 말 좀 어렵게 하지 말라 그러거든요.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말하라고."

 "그렇게 따지면 걔도 그다지 대화를 간편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맞아, 도치법 쓰잖아요. 그래서 걔가 대화하는 게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긴 해요. 톤도 묘하고"

 "지금 내 이야기하는 거야?"



 표독스러움을 중무장한 N이 대문을 들어서며 말했다. 나란히 앉아 있던 이웃과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평소보다 예민함은 고슴도치의 바늘처럼 곤두세워져 있고 악바리의 정서적 색감은 누그러져 있었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일을 하던 중에 자존감이 길거리에 널린 종이처럼 밟혀진 게 예상 가능하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 것에 관심 없는지 2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에 오른다. 나란히 앉아 있던 나와 이웃은 그런 N을 노골적으로 바라봤다. N이 지나간 자리에 벗겨져 버린 생명체의 비늘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 우리의 시선을 느낀 N은 계단을 오르다 말고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는 N의 머리카락은 물기가 마르지 않은 느낌이 존재한다. 입고 있던 옷에서도 말리다 만 천의 어중간한 표면의 질감이 있다. 한바탕의 물세례 이후 말려진 것 같은 형태. 우리는 연민 없이 N을 바라봤다. 그 말 없는 대화에 N도 예민함을 거두고 거기서 오래 있다가 감기 걸리겠다는 말을 했다. 목은 잠겨 있었다. N이 지나간 자리에 염도 있는 물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N이 2층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 이후에는 한동안 이웃과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웃과 나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처럼 철저히 서로를 외면하고 무시했다. 그럴 시간이 필요했다. 각자의 위치에 대한 자각을 생각의 서랍에 정돈해야 했다. 한참의 침묵 이후에는 이웃은 자신이 메고 있던 기타를 꺼내든다. 끊어진 기타줄을 갈기 위해 손을 놀린다. 그 손놀림을 보기 위해 무시를 거두었다. 그리고 찬찬히 그 움직임을 보았다.


 "이웃, 계속 기타 칠 거예요?"

 "....."

 "평생 기타 칠 거냐는 말이라는 거 다 알잖아요."

 "응, 난 계속 칠거야."

 "이 생활을 못 벗어나도?"

 "...그럴지도."

 "하긴 어차피 우리가 이 생활을 벗어나긴 어렵겠지."

 "그래도 옥탑방 형들은 벗어날 거야."

 "혹시 알아, 이웃 씨도 대박 나서  잘 될지."

 "그러는 너는?"

 "나는 뭐, 재미없게 살거야."

 "글 안 쓸 거야?"

 "박봉이잖아요. 난 취업 깡패 학과로 갈려고. 그래야지 돈 벌지."

 "현실적이네."

 "현실적이기만 한 것도 별로고 이상적이기만 한 것도 별로고."

 "내 이상이 현실이면 더더욱 좋고."

 "내가 할 말을 다 아네."

 "그럼"


 우리가 몇 년이야. 이 동네에 살아 남은 게. 



 이웃은 줄을 간 기타를 손에 쥐어 본다. 조율을 하기 위해 기타를 몇 번 튕겨본다. 조율되어가는 그 줄들이 우리 같다. 6개의 줄들이 조화를 이루려 안간힘이다. 개중에 끊어져 버리는 소모품도 있지만. 이 말은 입안의 여린 볼에 생략하고 담아두고 만다. 말해서 좋을게 뭐라고. 그렇게 말을 소비했다. 기타는 계속적으로 조율된다. 조율이 되기를 바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정한 간격의 6개의 줄. 그 줄들이 만드는 조화는 불안정한 현실과 달리 안정감 있는 이상 같다. 그래서 이상만큼은 조화롭기를 바라나 보다. 대화의 소비가 길어질수록 조화는 안정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기서 뭐 해?"


 

 묵직하고 무게감 있는 쾌할한 목소리가 들리고 목소리의 주인과 그 옆에는 자다 일어난 사람 같은 행색을 한 옥탑방 문과 오빠가 있다. 해가 길어져가는 세상이라도 시간의 절대적 지나감으로 해는 조금씩 지고 있었다. 그 노을에 따라 주황빛이 물든 얼굴의 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가진 3층 사람은 뭐하고 있느냐 물었고 나는 자리에 일어나 벽면에 붙인 포스트잇을 땠다. 이웃도 기타를 다시 기타 가방에 넣었다.



 "오랜만에 옥상에서 밥 먹자."



 옥탑방 인간이 오른팔을 높이 올리자 보이는 것은 고기였다. 고기라는 사실에 기뻐 이웃은 옥탑방 문과 오빠에게 달려들어 안긴다. 대형견이 주인에게 애교를 피우는 행색에 헛웃음이 나왔고 3층 인간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시원스레 웃는다. 포스트잇을 다 모은 나는 옆에 있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던 책 사이에 끼웠다. 경제학 오빠는 고기를 더 높이 들고선 "오늘은 의예과 학생분도 저녁에 온다. 오랜만에 다 같이 밥 먹어야지."라고 말했다. N은 알바를 가야 한다는 말을 했더니 미리 말했다고 한다. 2층의 현관문은 여전히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올라갔고 나는 N을 부르는 임무를 맡게 됐다. 안 어울리게 말이지.



 소란스러움이 옥상으로 몰려간 이후로 나는 2층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단조로운 변화되지 않는 톤. 어릴 때 결정된 것은 어른이 돼서도 바뀌기 어렵다. 나는 이미 바뀌기 어려울 거야. 친절해 보일 수 없는 어투가. 물론, 2층 거주자인 내 친구도 다를 바가 없다. 현관문을 열렸고, 그 사이에 보이는 녀석의 눈은 봉숭아 물을 들인듯한 빛깔이었다. 녀석이 문을 닫을까 봐 손으로 문을 잡았다. N은 그 사이에 씻었는지 머리에 수건이 걸쳐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고기 먹제."

 "안 먹을래."

 "오랜만에 다 같이 있는 거야."

 "그래도 싫어"

 "문 닫지 마, 나 지금 문잡고 있어."


 2층 친구는 문을 잡고 있는 내 손가락을 쳐다본다. 문을 닫아버려도 계속 문을 잡고 있을 인간이 나라는 걸 아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한숨을 쉬고 머리에 수건을 던져버리고 슬리퍼를 신고 나온다. 축축한 머리에는 꿉꿉한 냄새가 아닌 이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청량감이 있었다. 녀석이 나옴에 따라 나는 한 발자국 뒤로 갔다. 녀석이 문을 닫는다. 따로 잠그지는 않는다. 훔쳐 갈게 있거나, 안전을 위해서나 문을 잠그지. 그래도 나는 녀석에게 문을 잠그라고 한다. 귀찮아하면서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볼품없는 방의 현관문을 잠근다. 대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옥탑방의 다른 주인도 들어선다. 며칠 밤을 새운듯한 퀭한 얼굴은 퀭함과 달리 반짝이는 눈빛이다. 우리를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오랜만이라면서 우리에게 손길을 뻗는다.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들고 있던 전공 서적 둘을 나와 N이 나눠 들었다. 그의 어깨에는 3kg 정도의 전공 책 2권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좁아터지게도 이 계단에서 3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옥상에서 3층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올라오라는 들뜬 소리. 의예과 K 오빠가 앞장 서서 올라갔다. 그 뒤로는 2층 친구가 따라갔고, 마지막에 내가 올라간다. 내 품에는 포스트잇을 삼킨 얇은 단편 책과 해부학과 관련된 전공 책이 있다. 힘 없이 올라가는 2층 친구의 등을 떠밀었다. 휘청거리던 녀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입모양으로 왜 그러냐고 하는 녀석에게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최선과 최악을 항상 생각해야 돼. 그래야지 실패를 했을 때 최악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으니까."

 "...."

 "자기 전에 볼 얼음찜질해. 심하게 붓겠다."


 머리카락으로 가려도 손찌검의 흔적은 느껴진다. 아까부터 애써서 가렸던 것은 내 눈에 명확히 보였다. 녀석은 잠긴 목소리로 "그래"라는 말만 했다. 앞서가던 전공 서적의 주인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게도.


 옥상에 들어서자 평상에서 부르스타와 고기, 야채들이 준비되어 있다. 잡다한 반찬이라거나, 소금, 기름, 쌈장 같은 것도 다 있었다. 기대에 찬 얼굴의 이웃과 3층 오빠는 둘이서 난리를 치고 있다. 젓가락을 나란히 들고 호들갑을 떠는데, 이웃은 3층 거주자에게 살 찐다고 먹지 말라며 발길질을 한다. 영락없는 어린아이들 같아서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건 N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서 전공 책을 거둬간 의예과 인간은 옥탑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있다.


 우리가 그 이후에 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세밀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실없는 농담이 오고 가고 고기가 구워지며 득달같이 달려들어 입에 넣었다. 정신을 차려 봤을 때 이미 고기는 다 먹은 후였고, 뒷정리를 하고 우리들은 나란히 평상 위에 누웠다. 누운 상태에 무릎 아래는 바닥에 늘어뜨렸다. 바닥이 닿을락 말락 하는 나와 달리 5명은 바닥에 닿는다. 빛을 따라온 날벌레들이 번잡스럽게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서울 하늘은 별이 하나도 안 보인다. 하늘은 감청색의 우울이었다.


 다들 서서히 잠에 취해가는 것 같았고, 나는 잠에 취하지 않았다. 팔을 들어 올려 보았다. 잡히는 건 달이 아니라 날벌레였다. 손을 털어내니 옆에 누워 있던 3층 인간과 이웃이 호들갑을 떤다. 저 멀리 있던 N은 얼굴을 가린다. 벌레의 시체가 자신들에게 쏟아질까 봐 겁을 낸다. 나보다 한 뼘 이상 큰 사람들이 말이다. 그게 우스운데 웃음이 소리로 구현되지 못하고 혀끝에서 부서진다. 다시 팔을 뻗었다. 그리고 마음을 거치지 않은 말들이 튀어나왔다.


 "있잖아, 신촌역 근처 재수 학원, 거기 예전에 홍등가였데. 그 근처 여대 화장품 골목도 점집하고 홍등가만 있었데. 여대에서 한 정거장 가면 있는 곳은 밤마다 아직도 붉은 등이 켜지고."


 내 말에 아무도 응수를 해주지 않지만 나는 나 답지 않은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사람은 최악을 생각해야 돼. 그래야지 최악의 상황이 되도 받아들일 수 있어."

 "너 답지 않아."


 진지한 목소리로 경제학 인간이 말했다.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옆에 있던 3층 인간은 내 옷소매를 잡았다. 의예과는 눈을 감고 있었고, 이웃은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본다. N은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말을 뱉는다.


 "최선도 생각해야 돼. 그래야지 기는 생활을 청산할 수 있지."


 그래 너도 결국 내 친구였구나. 그 말에 하늘로 뻗었던 팔을 내렸다. 5명의 인간은 작은 파동으로 한숨 소리를 만들었다. 팔을 내렸어도 생각을 이어갔다.



 물고기는 자신이 젖은 줄 모른다. 폐수에 살던 물고기는 갑작스레 1급수를 만나면 바람에 나동그라진 엷은 가지처럼 비늘을 떨며 마지막 호흡을 뱉을 것이다. 결국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갑작스러운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변화다.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은 이 밑바닥을 기던 생활이 사족보행에서 이족 보행으로 그 이후에는 비행으로 변모하기를 꿈꾸는 것뿐이다. 근데 아무리 발악해도 물고기는 새가 되지 못한다. 새는 물고기가 되지 못한다. 물고기는 수면에서 건져지는 순간에야 자신이 젖은 줄 안다. 그렇게 마지막을 마감한다. 다른 생명체에 의해 수면에 건져지는 순간 비늘이 바싹 말라간다. 괜찮아. 1급수로 가는 것도 어려운걸. 비늘의 우주는 언제나 물이다.



 눈을 감고 있던 의예과 오빠는 일어나서 나의 머릿 자리 근처로 와 앉는다. 그리고 내 머리에 손을 올려뒀다. 어색한 표정으로 하는 말은 나의 언어 세계에 맞춰준 어휘였다.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정석적이고 지루한 말이 아니었다. 같은 의미, 다른 표현. 나는 방금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사람을 살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의 입에서 죽음이 나왔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선하고 맑면서 고귀한 얼굴로, 옥탑방의 거주자면서도 자주 이 건물을 들리지 않는 사람이 말했다.






 "죽지 말자."






 우리 모두 살아 있자.






 우린 모두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면 안 된다. 물고기도 살 권리가 있다. 단명할지언정 당장과 오늘에는 살아있다. 우리의 존재는 명확하다.




















THE END





주저리 잡담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 산하엽은 들고 오지 않고 웬 글인가 싶죠?

블루투스 키보드도 샀겠다 이 작가가 글을 많이 쓸법한데 이 사람 왜 안 와?! 싶었겠다만...

많은 일이 있었던 지라ㅋㅋㅋ

동아리라던가, 축제라던가....심지어 지금은 기말고사 기간...또르르....

아마 2주 후에 올 것 같아요.

이제 방학이 찾아오면 저는 마음껏 글을 쓸 거 같네요.

사실 잠시 안 온 동안 많은 것이 복잡했어요.

글을 더 잘 쓸 필요도 있겠다 싶고, 제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방학 동안을 취미이긴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배워보려고 해요.

필사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이번 방학은 바쁘게 보낼 거 같네요.

학교생활과 관련된 공부도 많이 할 것 같고, 글 공부도 하고, 운동도 조금씩 하고!

보람된 방학을 맞이하기를 바라고 기원하게 되어요.

[시든 산하엽을 누가 묻을까]는 제가 혼란이 왔었어요.

그래서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해 시간이 필요했고 이렇게 산하엽이 아닌 단편 하나 들고 왔습니다.

[비늘의 우주]는 장편이 될 수 있는 것의 일부를 잘라, 우울하게 만든 단편이에요.

후에는 제 기준에 담담하고 부드럽고 청략하게 다듬어서 장편이 될 거 같은데 머나먼 일 같기도 하고...ㅎㅎ

아무튼!!! 2주 후에는 방학과 함께 성실 연재를 할 거 같습니다!

그때까지 안녕~

미안해요....단편 들고 와서...그래도 재밌게 썼어요....ㅎㅎㅎ


아, 그리고 호칭이 헷갈릴 법도 할 거 같아서 대충 정돈하자면!

1층 이웃 = 이웃 씨 = 강승

2층 = N = 동갑 친구 = 남태

3층 인간 = S = 미노

옥탑방 경제학 인간 = 문과 1등 = L = 아루

옥탑방 의예과 = 문과 2등 = K오빠 = 지누


사실 추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헷갈릴까봐 정리해봤어요.

이제 진짜로 안녕~


+)대체 이건 빙의글일까요, 단편 소설일까요, 아니면 조각글일까요....나도 정체성을 모르겠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독자1
작가님 안녕하세요:)저 난너를이에요 오랜만에 작가님 작품 보고싶어서 서치했는데 거의 다 지우셨네요 ㅠㅠ달동네가 하늘에 더 가깝다네진짜좋아했는데ㅠㅠ다시 보고싶어요 작가님 기다릴께요♥
9년 전
여느
아무래도 달하네를 쓸 때의 퀄리티에 대해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한 것도 있어서 글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요. 지금까지 인티에서 썼던 글 중에서 완성을 하지 못한 것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것들은 그래서 다 정리했고요. 원고는 그래도 파일로 저장해 두긴 했지만요. 달하네는 시놉을 꼼꼼히 제작한 후에, 디테일한 설정들을 다시 정비하고 만날 수 있을 거 같아요. 방학이 끝났는지라 금방 금방 하지는 못 할 거 같아요. 항상 봐주시던 난 너를님,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자기 만족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이지만, 누군가가 봐주고 기억해준다는 게 기분 좋고 그렇네요:), 다가오는 가을, 겨울에 몸 추스리시고, 다시 만나뵙길 바라요.
9년 전
독자2
네 작가님~~기다릴께요!!!작가님도 몸 조심하세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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