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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씻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창밖의 세상은 벌써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해가 뜨도록 잠은 오지 않았다. 그녀와, 지갑 속 사진의 남자를 마주했던 몇 시간 전의 본인을 떠올렸다. 수빈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주변을 에워쌌다.  

당신 누구냐는 물음에 어버버- 그냥... 아는 사람이요. 하고 대답했다.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바보, 바보 최수빈. 수빈은 자책하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하지만 그녀와 무슨 사이냐고 물으면 답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에. 그저 지나가다 우연히 지갑을 주워준 사이일 뿐이니까.  

 

 

 

 

몸을 거의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그녀를 부축하며 집에 올라왔다. 연준의 얼굴은 어두웠다. 화가 난 듯 보였다. 그저 말없이, 그녀가 편히 누울 수 있도록 겉옷을 벗겨냈다.  

 

 

연준은 새벽 1시쯤 집에 도착했었다.  

 

 

회사에서의 새 프로젝트 때문에 연준은 주말에도 자꾸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불건전하게 노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냥 친목을 좋아하는 투자자 탓이었다.  

한참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새벽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오기 전, 제 옷을 잡아끌며 빨리 오라고 말하던 여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차 싶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가보겠다는 말로 술자리를 나섰다.  

 

 

—미안, 많이 늦었지. 

집에 도착 후, 제 물음에 대답이 없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자나 싶어 침실로 향했지만, 그녀는 없었다. 집 안 어디에도 없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오후 10시쯤 부재중 전화 하나. 그 이후로 다른 연락은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문자를 남겼다.  

어디야? 

 

 

답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시계 소리만 집안에 울려 퍼졌다. 벌써 3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연준은 초조하게 다리를 떨다가 겉옷을 챙겨 무작정 집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런 적은 처음이라 연준은 당황했다. 항상 어딜 나가면 나간다고 연락을 해주는 그녀였다. 늦게 들어오는 일도 없었고, 혹여나 늦는다면 꼭 전화를 해줬다. 어디를 간 걸까. 하지만 나를 떠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 그녀가 아끼는 화분이 집에 있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연준은 습관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켜진 가로등 밑의 벤치에서 그냥 그녀를 기다렸다. 언제 올지, 아니 올지조차 모르겠지만 그냥 기다렸다.  

얼마나 멍하니 앉아있었을까, 저 멀리 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 중 한 사람의 실루엣이 아주 익숙했다. 그녀였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기대며 걸어오는 그녀가 보였다. 화가 났다. 그녀 옆의 낯선 남자에게 누구냐 물었더니, 그냥 아는 사람이란다. 기가 찼다.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 손도 잡아주나. 하고 싶은 말들을 꾸역꾸역 삼켰다. 화를 꾹 누르고 그녀의 손을 당겨 품에 안았다. 자신을 그녀의 아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남자를 한번 째려보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는 그녀를 쳐다봤다. 왠지 미워져서 베개를 챙겨 거실로 나갔다. 베개를 베고 소파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 옆의 낯선 남자가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속이 답답해졌다.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출근을 해야 했다.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벌써 5시였다. 그냥 밤을 새우자 싶어 노트북을 열었다. 업무 준비를 하려다가 다시 노트북을 닫고 주방으로 향했다.  

 

 

 

 

방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그녀의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준은 방으로 들어가 알람을 끄고 그녀를 깨웠다. 

—일어나, 출근해야지. 

그녀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앉아서 또 한참을 멍하게 있더니, 기억이 안나... 라며 연준을 올려다본다.  

—차라리 기억하지 마. 밥 해놨으니까 먹고 가 꼭. 먼저 출근할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일단 눌러뒀다.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아침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집을 나서는 연준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시계를 쳐다봤다. 7시 반이었다. 나보다 일찍 출근하는 그는 항상 먼저 일어나 아침을 차린 뒤, 나를 깨웠다. 오늘도 그랬다.  

이 상태로 도저히 출근할 수가 없어서 회사에 반차를 썼다. 2시까지만 가면 되기에 시간이 조금 널널해졌다. 12시 반에 알람을 맞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걸을 수 있어요?  

낯선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뭐지? 다시 눈을 감으며, 기억이 희미한 어제 일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새벽의 가로등 불빛이 나를 비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핸드폰 문자 알람이 울렸다. 

 

 

 

 

수빈은 수백 번 고민하다가, 그녀의 명함을 꺼내들었다. 명함 한쪽에 작게 쓰여있는 그녀의 번호를, 본인 휴대폰에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연락을 해, 말아. 고민은 계속됐다.  

 

–안녕하세요. 저 어제 그... 

아 아니야. 문자를 쓰다가 지웠다.  

–속은 괜찮으세요?  

아 이것도 아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문득 그녀의 애인이라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화가 아주 많이 난 듯 싶었다. 지갑을 버려달라기에 당연히 헤어진 옛 연인인 줄 알았건만... 애인이 있는 사람에게 사적인 감정으로 연락을 하는 건 수빈 자신이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사적인 감정을 빼자. 그의 답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지갑 주워드린 사람입니다. 술 많이 드신 것 같던데, 속은 괜찮으세요? 다짜고짜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근데 아무래도 이 지갑은 다시 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안의 현금도요.  

 

 

 

수빈은 이내 머리를 부여잡으며 후회했다. 

—내가 미쳤지! 연락을 왜 해. 아, 아 미쳤나 봐 최수빈. 

 

한참 머리를 부여잡고 발을 굴렀다. 그때, 수빈의 핸드폰에서 문자 알람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어제는 감사했어요. 그리고 죄송해요... 지갑은 말 그대로 버려주시고, 안의 현금은 사례금으로 받아주세요. 

그녀의 답장이었다. 수빈은 그녀의 문자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그러다가 곧 수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어제 제가 너무 폐를 끼친 것 같아 너무 죄송해서 커피라도 한 잔 사드리고 싶은데,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실까요? 

 

그녀에게서 온 두 번째 문자였다.  

 

수빈은 잘못봤나 싶어 눈을 비볐다. 그리곤 답장했다. 

 

오늘 시간 괜찮아요. 완전 ! 

 

곧이어 자신이 충동적으로 한 답장에 후회했다.  

완전! 은 무슨 완전... 느낌표는 또 왜 썼지...  

수빈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래도 그녀와 잡은 약속에, 용기 내어 문자 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빈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사람인 양 실실 웃으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녀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완전!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아예 하루 휴가를 냈다. 충동적으로 잡은 약속시간은 3시였다. 그녀는 알람을 1시로 다시 설정한 후, 미루던 잠을 자기로 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핸드폰에서는 다시 알람이 울렸다.  

 

 

 

 

그녀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수빈이 이미 앉아있었다. 

그에게 어젯밤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너무 많이 마신 내 탓이었다. 그는 웃으며 전혀 폐가 되지 않았다고 그랬다. 착한 사람인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커피를 시켰다. 그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그의 따뜻함과 어울리는 온도였다.  

 

곧이어 그는 지갑과 현금을 내게 돌려주며 말했다. 받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나는 그렇다면 현금은 돌려주고, 지갑은 버려줄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언젠가는 버려야 할 지갑인데, 내 손으로는 도저히 버리지 못할 것 같다고, 도와달라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긴 정적이 계속 됐다. 사실상 우리의 용건은 끝난 셈이었다. 나는 어젯밤 일을 사과하며 커피를 샀고, 그는 내게 현금을 돌려줬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었다.  

 

 

문득 그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이름이 뭐예요?  

정적을 깨고 그에게 물었다. 

—최수빈이요.  

—아, 수빈 씨- 제 이름은... 

—알아요, 여주 씨. 죄송하지만 명함을 봤거든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죄송할 것 없다고 말했다. 

 

 

수빈은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떤 모습들은, 마치 연애 초 연준이 떠올려지기도 했다. 담요를 찾아와 치마를 입은 내게 덮어주는가 하면,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자, 자리 옮길까요? 하고 물어보는 그였다. 

 

우리는 앞에 각자의 커피를 두고, 별 의미 없는 대화들을 주고 받았다. 사실 알맹이 없는 대화였다. 하지만 시시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꽤나 즐거웠다.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 웃다가도, 이상한 기분이 자꾸만 몰려왔다. 이 남자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사적으로 따로 만나서 웃고 있어도 될까.  

표정에서 티가 났는지, 수빈이 다정한 투로 물었다.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무슨 걱정 있어요?  

고개를 절레절래 저었다. 그냥 말없이 웃어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꽤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따뜻한 말투에 자그마한 걱정도 녹는 듯했다.  

 

 

얼마나 이야기했을까, 밖은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 저 이제 가봐야겠어요.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혹시 어제 그 술집이요? 무슨 요일에 일해요? 

 

그는 수, 목을 제외한 모든 요일을 그 술집에서 일한다고 했다. 근무는 새벽 2시까지인데, 어제같이 바쁜 날은 마감까지 하고 4시에 퇴근한다고, 오늘은 안 바쁘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그런 그와 카페를 나섰다. 노을은 벌써 지고 없었다. 어둑어둑해진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이었다. 또 만나도 될까. 내가 이 사람을 또 만나도 괜찮은 걸까... 많은 고민 끝에 답했다. 

—글쎄요.  

수빈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늘 즐거웠다고 말했다.  

저도요. 나의 대답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둠이 나를 반겼다.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오늘,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정말 말도 안 돼서 꿈이라고 착각할만했다. 그녀는 싱숭생숭한 기분을 느끼며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피곤해 보이는 연준이 돌아왔다. 사실 그럴만했다. 한숨도 못 자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온 연준은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 보였다.  

침대 맡에 등을 대고 앉아있는 그녀에게 연준이 물었다. 

—일찍 왔네? 

—회사 안 갔어. 

—그럼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  

넥타이를 빼며 말하는 연준에게 아니. 하고 대답했다. 연준이 뒤돌아 그녀에게 물었다.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그럼 어디 다녀왔어?  

그녀가 연준의 시선을 피했다. 

—어제는? 어제는 어디 다녀왔는데?  

시선이 여전히 땅에 있었다. 연준이 머리를 거칠게 헝클이며 말했다. 

—넌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어? 얼마나 걱정됐는지 알기나 하냐고!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그가 어쩐지 어이없게 느껴졌다. 정작 본인은 항상 날 혼자 두고,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왔으면서. 어두운 밤 내내 혼자 그를 기다리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맨날 그런 기분으로 너를 기다렸어. 매일매일 너만 기다렸다고 나는! 이제 내 기분 알겠어?  

그녀가 울분에 차 소리 질렀다.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그래서, 잘했다는 거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차가운 눈빛이 그녀의 심장을 쿡- 쿡- 찔러댔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져내렸다.  

—난 잘못 없어. 다 네 탓이야.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된 건 다 네 탓이라고.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연준은 이마를 손으로 쓸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도 듣기 싫어! 그냥 헤어지자고 말하지 왜? 넌 더 이상 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같이 사니?  

그녀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엉엉 울었다. 참아왔던, 눌러왔던 서운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한없이 그가 밉게 느껴졌다.  

 

 

[TXT/최연준/최수빈] 권태03 | 인스티즈 

—이제 지겹다 나도.  

 

연준이 방 문을 닫고 나갔다. 

 

 

 

큰 걸 바란 게 아니다. 그저 예전처럼만 나를 안아줬으면 했다. 내가 아는 그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의 온기가 그리웠다. 나는 그의 베개를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어렴풋이 나는 그의 향기에 더 얼굴을 묻었다. 그와 함께 있지만, 그가 그리웠다.  

 

 

 

아주 슬픈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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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37.31
와우 대박 ... ㅠㅠㅠㅠ 연주나 ㅠㅠㅠㅠ 수비나ㅜㅜㅜㅜㅠ
4년 전
독자1
블렌지 가라사대, 새글이다 이놈아. 너는 연준이가 좋으냐 수빈이가 좋으냐 그러자 독자 1이 이르기를 내 선생이여 눈물뽑는 남주가 누구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그 말에 천지만물이 박수치며 외치기를 권태 04!!!!하더라.
4년 전
비회원64.183
아,, 연재가 빨라서 넘 좋구,, 제 심장도 빨리 뛰네요,, 요즘 새벽마다 늠 행복합니다,,^^* 하아 즌쯔 최숩인 ㅇ술집에서 일하면 날마다 난 술고래가 될테야,, 마셔~~ 마셔~~~~~ 건배~~~~!~!~!!|
4년 전
독자2
얼마 전 작가님 글 모두 정독했습니다ㅠㅠㅠ이런 천재께서... 앞으로 행복하시기를....가는 곳마다 돈다발이 떨어지기를...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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