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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nd for love 

:사랑에 눈이 멀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안녕~" 

네 안녕하세요- 하고 웃는 낯짝으로 약간의 가식을 섞어 답했다. 나에게 인사를 건넨 이 선배는, 많고 많은 빈자리 중, 제 많은 친구들을 제치고 내 옆자리에 앉은지도 벌써 일주일째다.  

 

 

"나 대학 안 갈래요." 

부모님에게 폭탄선언을 한지도 어연 2년이 지났다. 초등학교는 유학, 국제중을 거쳐 명문고를 나온 나에게 다음 단계는 당연히 SKY였다. 나만 빼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꿈이 없다며 이제껏 해왔던 공부를 때려치우고 방황을 선택했다. 조용히 지나간 사춘기가 그제서야 왔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스무 살은 여행의 시작이었다. 비유도 맞지만, 정말 여행만 다녔다. 세상을 넓게 보고 싶다는 핑계를 방패로 삼은 도피와 다름없었다. 

그 무렵, 나는 사람에게 지쳐있었다.  

정이 많은 성격 탓이었다. 쉽게 정을 주고, 깊게 상처받았다. 한번 깊게 패인 상처는 아물 생각을 안 했다.  

18살의 겨울, 꽤나 깊게 좋아했던 오빠와의 첫 입맞춤 다음날, 나는 온갖 헛소문에 시달렸다.  

복도를 조용히 거닐다 보면,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다 나를 주어로 한 이야기들이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과 헛소문이 오갔다. 그 소문들은 내가 졸업할 때까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옥죄었다. 주변 친구들도 나를 떠났다. 영원할 거라 여겼던 우정들이, 진짜인지도 모르는 가벼운 소문에 휩쓸려내려갔다. 그때 다짐했다.  

사람에게 정을 주지 말자. 아무도 믿지 말자. 

스무 살이 되고 여행을 다니면서 동행을 구했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하루 만에 내 돈을 모조리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이라면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과 또 한 해를 더 보내고 22살이 되어서야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친구들은 3학년에 진급할 때, 나는 이제야 신입생이었다.  

대학에서 친구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금 늦게 시작한 만큼 빡세게 해야 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사람을 믿고싶지도 않았다. 그냥 내 세상에는 나 혼자뿐이고 싶었다.  

입학 후, 모든 행사는 빠질 수 있으면 다 빠졌다. 하지만 아무도 기분 상하지 않게.  

주변 사람을 다 쳐내지는 않았다. 단지 깊게 들어오려고 하면 벽을 쳤다. 얕은 관계. 그게 편했다. 

 

그런데, 그런 내게 변수가 생겼다. 일주일 전부터였다.  

 

 

 

 

"형 왜 첫날부터 안 나왔어요!" 

"지난주에 안 와서 복학 안 한 줄~" 

 

눈에 띄는 파란 머리를 한 그 사람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사람들이 모여있다 싶으면, 그 중심에는 파란 머리가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의 주변은 늘 시끄러웠으며, 그다지 깊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외관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첫인상은 일단 그랬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으며, 엮일 일 또한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파란 머리의 그 선배는 오늘도 또 내 옆자리에 짐을 놓고 내게 인사를 건넨다. 

"여주야 좋은 아침~" 

 

 

 

 

파란 머리 선배의 이름은 최연준이었다. 군대에 다녀와 올해 복학한 그는 2학년이었고, 나보다 한살 위였다.  

 

제대한 복학생은 피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몇 없는 친구들의 경험담이 그 증명이라면 증명이었다.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18살 때 좋아했던 그 오빠도 알고 보니 겉과 속이 아주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상처받기 전에 사람을 아예 믿지 않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준은 흔히 말하는 '인싸'였다. 밝고 유쾌한 성격 덕이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었으며, 그 매력 덕에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다. 사람이 많다 싶으면 항상 중심에는 그가 있었으니까.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가 나쁜 사람이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 많은 게 싫어서.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아침은 먹었어?" 

오늘도 다정하게 묻는 연준에게 네- 하고 웃어 보였다. 하지만 불편했다. 언제까지 내 옆자리에 앉을 셈일까. 

 

옆자리의 그가 아무렇지 않게 전공 책을 펼쳤다. 이내 고개를 숙여 한 페이지의 구석에다가 뭐라 끄적였다. 그러더니 책을 내 쪽으로 밀고는 웃어 보인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 

작게 쓰여진 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질문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그의 글씨체는 생각보다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귀여운 글씨체에 순간 넘어갈 뻔했다. 나도 모르게 나오려는 웃음을 막고, 그 밑에다가 '죄송해요.' 라고 작게 썼다.  

그가 시무룩해졌다. 그러더니 다시 한쪽 구석에 끄적거렸다. '대체 언제 나랑 밥 먹어줄건데?ㅠㅠ' 그의 질문에 그냥 웃어 보였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시선을 앞에 두었다. 일종의 선을 그은 셈이었다. 그는 턱을 괴고, 그런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이내 머리를 쓸어넘기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연준은 옆자리에 앉았지만, 그녀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다. 어쩐지 보이지 않는 아주 두꺼운 벽이 둘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옆모습을 살짝 쳐다봤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녀는 유하고 착한 성격 덕에 모든 이들의 호감을 샀고,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들이대도 혼자 다니는 그녀의 모습에 신비주의 같은 환상이 심어졌다. 연준 또한 그런 모습에 끌렸던 건 사실이었다. 연준은 눈길이 가는 그녀에게 호감이 갔고, 본인 방식대로 들이댔다.  

 

시작은 어쩌면 가벼웠을지 모른다. 그녀는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들 아닌 척하면서도 사실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쟤 누구야? 예쁘다."  

연준의 물음에 동기가 답했다. 

"아- 여주? 예쁘지. 이번 신입생인데 학교 늦게 들어와서 우리 학번이랑 동갑이래. 아 아니다, 한살 어리다고 했나?" 

연준은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강의실을 나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연준은 그날, 사랑에 빠졌다고,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했다. 

 

연준은 바로 그녀를 뒤따라나갔다. 

"안녕!" 

다짜고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싶더니, 이내 웃으며 안녕하세요, 선배- 하고 답했다.  

예상과는 다른 환한 웃음에 오히려 당황한 건 연준이었다. 그녀가 은근히 거리를 둔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웃을 때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그녀가 보이면 연준은 바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여주야-" 

역시나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주는 그녀를 볼 때면, 연준은 이 작은 인사를 넘어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아주 높게 쌓여있었다. 어느 정도는 허락해주지만, 그녀에게 깊게 다가가려 하면 가차 없이 문을 닫아버린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냐며 저녁식사 약속을 잡으려는 연준에게 여주는 약속이 있다며 약간의 거리를 뒀다. 지치지 않고 "그럼 내일은?"하고 묻는 연준에게 "내일도 약속이 있네요."하고 답하는 그녀다.  

일종의 경고였다. 더 이상 내 원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옐로우 카드였다. 

웃으면서 답하는 그녀의 표정 한구석에 불편해하는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오늘도 밥 약속을 거절당했다. 그도 사람인지라 당연히 속상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최연준이 아니지. 하고 생각했다.  

 

 

며칠 째 그녀에게 차였다. 매일매일을 밥 같이 먹을래? 하며 질문했으나, 결과는 다 꽝이었다. 그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다 차였다. 그냥 밥 한끼 먹는 것도 싫은가보다. 그래도 자꾸만 좋아지는 마음을 주체하는게 힘들었다. 속상하다가도 웃어주면 사르르 녹는 마음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웬일로 그녀가 과모임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술자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빠지는 그런 그녀가 말이다. 연준은 과모임에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소식이 있었다. 연준은 집에서 나가려다가 아차, 하고는 작은 우산을 챙겼다. 지금은 이렇게나 쨍쨍한데 이따 비가 온다니. 귀찮아서 놓고갈까 싶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산을 가방에 넣었다.  

 

조별과제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한 연준은 곧 바로 후회했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이미 여주의 옆자리는 꽉 차있었다. 그럼 그렇지. 

연준은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술자리 분위기를 주도했고, 게임이라는 수를 써서 드디어 여주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웬일로 왔네?" 

30분만에 말을 걸었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있는 그녀가 붉은 볼로 내게 웃어준다. 그냥요- 하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안아버릴 뻔했다. 나도 조금 취한 탓이었다. 주변은 아주 시끄러웠다. 우리 둘 주위의 공기만 정적이었다. 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슬로우 모션처럼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느리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였다. 

 

"아 비 온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낙비에 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주변이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그녀의 표정에서 약간의 당황을 읽어냈다.  

"여주야, 우산 있어?"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나랑 가자. 데려다줄게." 

 

 

 

 

둘은 나란히 붙어 걸어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찰박찰박 발소리, 그리고 도시의 소음들이 그들을 감쌌다. 검정색의 큰 우산은, 소음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듯했다. 마치 둘만 조용한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연준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관뒀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여주가 정적을 깼다. 

"여기에요. 다 왔어요. 감사해요 선배." 

아쉬웠다. 둘만 있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둘이 걸으며 한마디를 못했다.  

연준은 살짝 웃으며 "잘 자. 좋은 꿈 꾸고." 라고 말했다. 어딘지 미련이 묻어있는 말투였다. 

 

뒤돌아 가는 연준의 한쪽 어깨가 흠뻑 젖어있었다.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취기에 눈에 열이 올랐다. 눈 위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이 다 젖은 연준의 어깨가 아른거렸다. 자꾸만 흔들리게 하는 그 사람이 어쩐지 미웠다. 진심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람을 못 믿는 나의 문제였다.  

혹시 내가 여태껏 여지를 준 걸까.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걸까. 

앞으로는 감정에서 나오는 태도를 확실히 하자고 다짐하며 잠에 들었다. 

 

비는 밤새 그칠 생각을 안 했다. 

 

 

연준은 검정 우산을 혼자 쓰고 걸어가며 생각했다. 후회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다 빗소리에 묻혔다.  

이 작은 우산에 함께였다니. 함께일 때는 작게 느껴졌지만, 혼자 쓰고 걸으니 우산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한쪽 어깨가 축축했다. 그녀가 나를 적셨다. 나는 나조차도 모르게 그녀에게 젖어들었다.  

더 다가가도 될까. 속으로 질문을 했다. 그렇게 하고 싶다. 답을 내렸다.  

 

그녀에게 푹 젖어도 좋았다.  

 

 

 

 

그날 이후, 연준의 감정에는 확신이 생겼다.  

그의 식사 구애는 2주째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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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오늘도 약속 있는 건 아니지?" 

비가 많이 왔던 그날 밤, 말 없이 걸었던 우리가 생각났다. 마치 다른 사람 같이 느껴졌다.  

저 선배는 지치지도 않나. 이제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연준 덕분에 자꾸 얹어지는 사람들의 관심도 지긋지긋했다. 조용히 다니고 싶었다. 어지러운 마음도 이젠 힘들었다. 그래, 차라리 오늘 결판을 내자. 

"그럼 밥 말고, 커피는 어때요?" 

예상치 못한 수락에 연준이 되려 어버버 했다. 밥 약속은 아니지만 커피라면 어떤가. 연준은 재차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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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나랑 커피 마셔줄 거야?" 

생각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연준에 그녀가 눈을 피했다. 어쩐지 좀 미안해졌다. 

 

 

연준이 동아리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크게 웃었다. 주변 친구들이 드디어 미쳤냐며 연준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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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데이트한다!" 

연준이 외쳤다. 친구들은 미친거 맞네- 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인기가 많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애인을 만드는 타입이라, 여자한테 쩔쩔 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최연준이 커피 약속 하나로 저렇게 좋아하다니. 분명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라고 다들 그랬다. 

 

 

"대단한데? 이여주랑 커피를 마시다니. 아마 네가 처음일 거다-" 

학식을 받아 연준 앞에 앉는 친구가 말했다.  

친절하고 성격 좋지만, 절대 속을 내어주지 않는 그녀와 데이트라니. 친구는 장난 식으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에 연준은 기분 좋게 웃었다. 

"드디어 내 진심을 알아준 거지." 

 

연준의 기분은 하루 종일 붕 떠있었다.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연준은 괜히 자취방에 들어가 옷도 갈아입고, 오랜만에 향수도 뿌렸다. 멋있지만 과하지 않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매만졌다.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다, 귓가의 피어싱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연준은 고민하다가, 귓볼에 달랑거리는 2개의 작은 링 중에서, 하나를 뺐다. 느낌상, 그녀는 하나만 낀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았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다시 끼면 되니까. 

 

 

 

 

"언제까지 이러실거에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연준이 당황했다. 

 

시작은 분명 좋았는데. 그냥 그녀를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그녀가 와서 웃으며 반겼다. 허튼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 앞의 카페라떼를 빨대로 휘젓는 그녀를 보다가 "진짜 좋다."라고 나도 모르게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재미없어요. 그만 두시면 좋겠어요." 

대체 뭘- 뭐가? 내가 뭘 그만 두면 좋겠는데? 연준의 질문이 많아졌다.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대답했다.  

"저한테 이러시는거, 부담스러워요. 장난 그만 쳐주세요." 

다정한 연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장난...? 

"그럼, 내가 널 대하는게 진심이 아닌거 같아?" 

애써 시선을 맞추려는 연준의 질문에 여주는 시선을 밑으로 내리며 말했다. 

"...네." 

그 대답에 연준의 얼굴에 상처가 드리웠다. 

"내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는 거야?" 

커피가 들어있는 컵만 쳐다보는 그녀에게 말했다. 

" ... 알겠어. 미안, 먼저 가볼게." 

연준은 머리를 쓸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다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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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 한순간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 없어." 

연준은 그 말을 끝으로 겉옷을 챙긴 후 카페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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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자켓을 벗었다. 이딴 거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어떤 향수를 뿌렸는지도,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는지도, 머리를 매만지며 고민했던 시간들도 절대 모를 것이다.  

 

뺐던 피어싱을 다시 귓볼에 끼웠다. 

 

 

 

 

그녀는 연준이 나간 빈자리만 쳐다봤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컵을 손톱으로 톡-톡- 쳤다. 잘한 걸까. 이게 맞는 건가. 연준의 상처받은 듯한 눈빛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아냐, 잘한 거야.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나만 상처받을 관계, 시작도 하지 말자고. 

연준이 떠난 카페에 한참동안 앉아 생각에 잠겼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과제나 하자. 생각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과제를 하는 중에도 자꾸만 연준의 상처받은 듯한 얼굴이 떠올랐다. 도서관은 조용했고, 마음은 시끄러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와보니 꽤나 늦은 저녁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겉옷을 여미며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꽃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기자기한 꽃집의 한쪽 구석에는 다육식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도 현관에다가 다육식물 화분을 키우고 있었다. 물은 한달에 한번 주면 족했는데, 한 달 하고도 2주가 지났을 때였다. 그녀는 아 맞다- 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다육이 물 줘야하는데." 

 

달이 아주 밝은 날이었다. 

 

 

 

 

그녀를 반긴 건 다육이가 아니었다. 오피스텔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작은 벤치가 하나 있었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의아해하며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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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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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술에 취하다 못해 잡아먹힌 듯했다.  

여기서 뭐하냐는 여주의 말에 대뜸 미안하다고 하는 그였다. 

영문을 알 리 없었다. 대뜸 미안하다니. 뭐가요- 하는 물음에 그냥 다- 라며 올려다보는 연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연준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한다. 나 좀 봐달라고. 밀어내지 말아 달라고.  

둘의 시선의 위치가 순식간에 바뀐다. 연준이 여주를 앉아서 올려다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 큰 몸으로 기댄다. 여주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다시 말한다. 어린아이처럼.  

"나 밀어내지 마아..." 

술에 취한 탓인지 발음은 꼬여있다. 말꼬리는 늘어질대로 늘어졌다. 

여주는 자꾸만 다잡아 놓은 마음을 헤집어 놓는 그가 어려웠다. 선배, 선배. 하고 불렀다. 나 좀 봐달라며 말 끝을 늘이는 그에게 말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요. 춥잖아요." 

사심은 없었다. 그날은 정말 날이 추웠다. 그대로 두면 입이라도 돌아가 버릴까 봐서, 그래서 안으로 들였다. 그렇게 되뇌었다.  

문을 열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둘은 엉켜 붙어 서로를 탐하고 원했다. 뒤섞인 감정들이 주변을 에워싸았다. 

"선배는 항상 나를 ..." 

다음 말은 이을 수 없었다. 

'헤집어 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그녀의 입은 하나였으니까. 

 

여주는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났다. 일렁대는 감정이 결국에 터져버린 순간이었다.  

둘은 한참 입을 맞추다가 자연스레 침대 위로 향했다. 연준은 그녀의 위로 올라가 입을 맞추고, 가디건의 단추를 푸른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연준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그녀의 눈물을 보고서였다.  

"미안, 미안해." 

연신 미안하다며 다시 단추를 잠궈주는 그는 여전히 취해 있었다.  

아직은 약간 꼬이는 혀로 연준은 말했다. 자꾸 미안하다고 그랬다. 그러고는 그녀를 안아 누웠다. 팔을 베게 하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가 실수했어. 여주야, 여주야." 

자꾸만 이름을 불러주는 연준에게 그것 때문에 우는 거 아니라고 말했다. 그냥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흘러넘처버려서 그런 거라고. 선배는 아무 잘못 없다고. 

 

 

 

 

연준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그것이 꿈이라고 여겼다. 그가 그토록 좋아해 열병을 앓고 있는 그녀가 바로 눈앞에 있다니. 여주는 일어났어요? 하고는 살짝 웃어 보였다. 

연준은 짧은 몇 초 내에 어젯밤 일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기억이 하나하나 돌아왔다. 세상에, 내가 미쳤지. 

"하 여주야. 미안해. 진짜 미안. 나 갈게." 

번쩍 일어나 나가려는 연준의 소매를 잡았다. 

"국 끓였는데. 선배 먹고 가라고..." 

진짜 갈 거예요? 고양이처럼 쳐다보는 그녀를 연준은 도저히 내칠 수가 없었다. 내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럼.. 밥만.. 먹고 가도 괜찮을까..?" 

 

정적이 계속됐다. 체할 것 같았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가 끓인 콩나물국으로 아침 식사라니. 이게 꿈이 아니라면 뭘까 생각했다.  

여주는 맞은편에 앉아 연준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천천히 먹고 나가요. 전 수업이 있어서 먼저 나가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가방을 챙겨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봤다. 나를 뭘 믿고 이렇게 혼자 사는 집에 두고 가는 걸까 생각했다. 물론 허튼 짓은 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내가 미친놈이다. 하며 남은 밥을 먹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어지러웠다.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봤다. 아직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어제 봤던 꽃집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일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길을 걷다가 주저앉았다. 내가 미쳤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한 다짐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카페로 향하는 길이었다. 저 멀리 연준이 보였다. 아마 제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온 듯했다. 궁금했다. 내가 끓인 콩나물국 맛은 좀 괜찮았는지. 혹시 간이 안 맞지는 않았는지. 

"선ㅂ.." 

거리가 꽤 있긴 했지만 못 볼 거리는 아니었다. 나를 지나치는 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못 봤나. 하고 생각했다.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피한다. 그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연준은 다른 길로 향해 그녀를 피해 갔다. 기가 막혔다. 어제는 그렇게 자기 좀 봐달라며 애걸복걸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이상한 기분을 잔뜩 안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카페라떼도 오늘은 왠지 꼴도 보기 싫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침에 먹은 것들이 싹 정리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설거지까지. 그리고 식탁에 작은 쪽지가 있었다. 꾸물꾸물 연준이 써놓고 나간 쪽지였다. 

 

미안해. 내가 너무 취해서 민폐만 부렸네...  

국은 너무 맛있게 잘먹었어. 고마워.  

미안해 여주야, 미안해.
 

 

뭐가 자꾸 미안하다는 건지. 연신 사과만 적혀있는 쪽지를 조용히 떼어냈다. 그대로 버릴까 하다가 그냥 냉장고에 붙여놨다. 연준의 쪽지 옆에는 작게 써놓은 톨스토이의 명언이 쓰인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True life is lived when tiny changes occur. (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작은 변화..." 

 

잠잠했던 나의 강에 누군가 작은 나뭇잎을 떨어트렸다. 그것은 아주 작고 가볍지만, 강물의 온 물결을 바꿔놓는다. 연준의 꼬물꼬물한 글씨가 자꾸만 나의 강물에서 꿈틀거렸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하루 종일 나를 피했던 연준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이제 나를 모르는 채 하기로 한 건가. 아니면, 하룻밤 사이에 정이라도 뚝 떨어진 건가. 내가 울어서? 결국 그도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걸까.  

짜증이 몰려왔다. 생각이 복잡해지는 건 질색이었다.  

머리를 부여잡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어제 물 주는 걸 깜빡한 다육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차. 

물을 떠 다육이에게 주며 중얼거렸다.  

"다육아, 너라면 어떻게 할 거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말 못 하는 식물이 낫다고 생각하며 물을 줬다. 

"너무 늦어서 미안- 앞으로는 까먹지 않을게." 

 

 

 

 

 

 

연준이 그녀를 피한지 일주일 하고도 3일이 지났다. 티가 나게 본인을 피해 다니는 연준을 보며 여주는 기가 찼다.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그가 또다시 눈을 피한다.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수도 있다며 꽤 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우울감이 몰려왔다. 왜 나는 항상 이 모양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외로웠다. 정이 많은 성격은 고치려 해도 숨겨보려 해도 자꾸만 튀어나왔다. 그것을 억지로 집어넣으니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방에 나를 가뒀다. 그런데 그가 들어왔다. 문을 닫아도 자꾸만 두들겼다.  

나중에 또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진절머리가 났다. 무서웠다. 그의 진심을 외면했다.  

조심스레 손을 내미는 그에게 자꾸만 끌려갔다. 어쩌면,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다시 한번 누군가를 믿어 보고 싶었다.  

 

내 결심들을 깨부수고 나를 이렇게나 헤집어 놨으면서, 흩트려놨으면서. 이제 와서 모르는 채라니. 짜증이 났다. 언제는 다 진심이라더니, 어이가 없었다. 

 

과제 따위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 입을 맞추던 연준이 생각났다. 미칠 노릇이었다.  

노트북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연준의 머릿속도 난리가 났다. 그 또한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녀의 눈물이 며칠째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그녀를 울리다니, 아주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이게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 맞나 싶었다. 차라리 꿈이었길 바랐다.  

친구를 불러 술을 들이켰다. 연준은 한숨을 잔뜩 내쉬었다. 말없이 술만 털어 넣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친구의 물음에 연준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아- 몰라. 다 문제야. 아니다, 내가 문제다 그냥." 

연준은, 그래 네가 문제다- 라며 안주를 집어먹는 친구에게 물었다. 

"정 떨어졌겠지 나한테...? 술 먹고 집까지 찾아가다니.. 진짜 진상.. 하..." 

그녀에게 하고 싶은 변경도 괜히 친구에게 털어놨다. 

[TXT/최연준] blind for love | 인스티즈 

"여주 얼굴을 못 보겠더라.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여주를 피하게 돼... 피하려고 그런 거 아닌데..." 

친구는 한참 연준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듣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연준의 휴대폰 화면을 보고서였다. 

"야, 이여주한테 전화 왔는데?" 

연준은 마치 꿈이라도 꾼 양 휴대폰을 빤히 쳐다봤다. 

"잘못 건 거겠지..?" 

"아닐 수도 있지. 빨리 받아봐!" 

친구의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전화 좀. 하고 양해를 구한 후 가게 밖으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잠깐의 정적 후, 좋아하는 목소리가 연준의 귓가에 울린다.  

"선배애.. 와줄 수 있어요? 나한테 좀 와줘요..." 

길게 늘어지는 목소리. 조금씩 꼬이는 혀. 

"여주야, 술... 마셨어? 많이 마셨어..?" 

"선배- 선배..." 

자꾸만 늘어지는 그녀에게 어디야- 하고 물었다.  

그녀 옆의 사람이 전화를 바꿨다.  

"이 아가씨 애인인가? 나 여기 가게 사장인데- 우리 단골 손님이 많이 취하셨네~ 얼른 데리고 가요~" 

바로 갈게요- 하고 답했다. 전화가 끊겼다. 가게 안으로 급히 들어가 겉옷을 챙겼다. 

"야 나 먼저 간다. 미안." 

"뭐야 갑자기? 왜?! 이여주가 만나재????" 

"나중에- 미안, 간다." 

택시를 불러 가게 사장님이 말해준 주소를 불렀다. 가끔가다 막히는 신호를 원망하며. 

 

 

딸랑- 울리는 가게 종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원망스러운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보고 싶은 얼굴이기도 했다. 

"선배..."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응? 일단 나가자. 데려다줄게." 

가게 사장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나온 연준이었다. 

 

자꾸만 선배- 하고 부르는 그녀에게 연준이 물었다. 

"왜 자꾸 불러- 나 왔어. 여기 있어." 

그런 연준에게 여주는 따져물었다. 

"선배는.. 선배는 왜 제멋대로에요?" 

응? 하고 되묻는 연준에게 그녀의 감정이 넘쳐흘렀다. 

"왜 나를 다 헤집어놓고는... 이번주 내내 나 무시하고... 저번에는 나한테 키스했으면서 왜 이제 나 무시해요? 왜 이렇게 제멋대로냐구요. 선배도 나 가지고 노는 거에요?" 

연준은 웅얼웅얼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런거 아니야. 가지고 노는 거 아냐." 

여주가 연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연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다시 웅얼거렸다. 

"그럼 나한테 왜 이러는데에..." 

 

달이 빛났다. 

 

두번째 입맞춤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다. 해도 이미 떠있었다.  

처음 와본 곳이었다. 아마 연준의 자취방 같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옆에는 연준이 잠들어 있었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술이 웬수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집에 갈 채비를 하려고 한 순간이었다. 

"가지 마... 나랑 있어..." 

옷 끝머리를 잡아끄는 손길에 뒤를 돌아봤다. 

졸려서 눈도 다 못 뜬 채로 여주의 옷을 잡고는 말하는 연준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을지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도 잠시, 연준이 몸을 일으켜 그녀를 안았다. 연준은 다시 한번 가지 말라고, 같이 있자고 조용히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하고 싶은데?" 

연준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연준의 목 언저리에 양 팔을 둘러 그에게 안겼다. 

연준이 잠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직도 내 마음이 가볍게 느껴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나 한번 믿어볼래?" 

둘은 눈을 맞췄다.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밖의 햇살이 한가득 둘을 비췄다. 진심을 담아 입을 맞췄다.  

 

"나는요- 사랑이 무서워요. 사람도 사랑도 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손길이 좋았다. 

 

"그래도, 선배는 믿어보고 싶어요." 

 

여태껏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 당하고 상처받았어도, 그럼에도 선배라는 사람은 믿어보고 싶다고. 내 믿음이 실수가 아니길 바란다고. 그렇게 말했다. 

연준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믿어줘서 고마워. 많이 좋아해, 많이." 

 

이번에는 실수가 아니라고. 노력하겠다고. 많이 좋아한다고 그가 답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가 좋았다.  

아무리 밀어내도 다시 끌려오는 그가 좋았다.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를 꽉 안았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아주 세게. 

 

 

오늘도 해가 졌고, 달이 밝게 빛났다.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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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야밤에 이런거 올리시면 저 진짜 못 잡니다ㅜㅜㅜ
4년 전
독자2
대작이다 명작 띵작 갈채의 박수를 보냅니다 진짜 진심이에요
4년 전
독자3
짱입니다
4년 전
독자4
올해 본 글 중에 제일입니다 진짜루
4년 전
독자5
작가님 이건 찐이네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6
선배 어딨어... 내 마음 헤집어놓고 지금 어디야,....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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