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하다보면 출신국가도, 사용하는 언어도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같은 종목에 몸 담고 있다보니 선수들끼리 유대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데, 그렇다보니 서로 말로 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어느 날은 쑨양이 이리 오란 듯 손짓하길래 가 보았더니 카메라를 들곤 자신과 나를 번갈아 가며 가리켰다
자신과 같이 사진을 찍자는 의미인 듯 했다
나는 쑨양의 옆에 바짝 붙어 섰고, 그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감쌌다
3, 2, 1
그는 찍은 사진이 만족스러웠는지 빙긋 웃더니 내게 손을 흔들고 자신의 코치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오늘은 시합이 없어서 느긋하게 SNS확인이나 할까 해서 컴퓨터를 켰다
공인이다보니 남들보다 훨씬 많은 메세지를 받고, 그 메세지의 반정도는 나에 대한 욕이라고 보면 된다
'병신아 밥 먹고 하는 일이 수영인데 그걸 못 하냐?'
'광고 찍을 시간에 연습을 더 해라'
'그 나이에 쪽팔리지도 않냐? ㅉㅉ'
처음엔 나도 힘든데 뭘 안다고 나에 대해 심하게 말하나 싶어서 그들이 참 미웠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내가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채찍질로 받아들인다
메세지가 많다보니 하나하나 답을 해주진 못하지만 꼭 답변을 하는 사람이 있다
"Park, 내일 시간?"
얼마 전부터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쑨양이 어색하게 메세지를 보내왔다
"있어. 왜?"
잠시 경기 일정에 대해 살펴보다 혹시 답이 왔을까 해서 메세지를 확인했다
"내일 점심 나 숙소 와"
평소에도 워낙 살갑게 굴던 쑨양이라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
점심식사 후에 나는 곧장 쑨양의 숙소로 갔다
올림픽 기간동안 선수들은 모두 개인방을 쓰는데, 컨디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모르기에 타인의 방에는 출입하지 않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나와 쑨양은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방 출입 정도로 컨디션에 영향을 받진 않는다
쑨양은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지, 숙소 앞에 지친 듯 앉아있었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쑨양은 아니란 듯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머무르는 방이 2층이란 걸 말 하고 싶었는지 검지와 중지로 브이자를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쑨양은 어떤 방 앞에 서더니 열쇠로 문을 열고 나보고 먼저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몇몇 기사 인터뷰에서 쑨양은 경쟁심을 불태우기 위해 내 사진을 방 곳곳에 붙여놓는다고 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의 방에 들어섰으나 곧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책상 앞, 침대 옆 벽, 침대 머리맡, 옷장 앞, 천장까지 어느곳 하나 빈틈 없이 빼곡하게 사진이 붙어있었다
피사체는 모두 나
그러나 더 이상한 것은 어느사진도 내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모두 조금씩 흔들렸거나 멀리서 숨어서 지켜보는 듯한 앵글뿐이었다
"... 이게 뭐야?"
그의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내 뒤로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릴뿐이었다
똥!! 나는 똥을 만들 뿐이고!! 엉ㅎㅇ헣
+헐 쑨환이라고 적었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들, 음란마귀는 바로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겁니닿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실 중요한 건 사진 앵글이랑 문 잠그는 거 둘 다인데..
++스릴러라고 썼는데 본의 아니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