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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잠든 도서관, C관이라고. A관은 네가 쓰러진 데고.” 저 말을 끝으로 재욱은 나갔고 나는 한참을 멍 때리다 울리는 콜에 응급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성쌤! 여기 복통 환자요!” “환자분- 어디가 아프세요.” “ㅂ..배가, 배가 자꾸 아파서...” “어느쪽이 아픈 거 같으세요?” “오른쪽 아랫ㅉ,쪽이요..” “제가 배 좀 눌러 볼게요-“ “..으, 아아!!!” “혹시 요즘 소화도 좀 안 되고 그러셨어요?” “으,, 어, 네..” “윤쌤! 맹장 같은데 정쌤 콜해주시고 OR 준비 해주세요.” “네-“ “재욱 쌤, 여기 좀. 나 응급수술 들어가야 되서.” “네, 정쌤.” “윤쌤, Sx (symptoms, 증상)가 어떻게 돼요?” “아, 찰과상이요. 설거지 하시다가 접시가 깨지면서 베이신 거 같아요.” “환자분, 손 좀 볼게요.. 어,, 운드 (상처)가 깊지는 않네요.” “드레싱 준비 할까요?” “네, 디셋 (드레싱세트 dressing set)좀 준비해주세요. 안티 (항생제)도요.” “네-“ “아- 정신없어..” “금요일이 이렇지 뭐.” “아, 정쌤! 맹장 수술 잘 끝내셨어요?” “간단한 수술인데, 당연하지.” “선생님!!!! 여기 환자요!!” “....” “..가자...성이름..” “선배, 오 왼?” “나 왼.” “오케이, 그럼 전 오 갑니다.” “가슴 통증에 호흡 곤란 있다고요?” “네, 오늘 오전부터 계속 그러셨대요.” “ECG(심전도)검사랑 혈액검사 하고, 흉통 엑스레이도 좀 부탁해요.” “네-“ 금요일 응급실이 가장 붐비는 요일. 크고 작은 환자들이 넘쳐나는 이 응급실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케어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복통에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머리를 잡혀 힘들어하는 정쌤을 보며 왼쪽으로 안 가길 잘 했다 생각한다. 그리고..
웃음으로 환자를 안심시켜 가며 꼼꼼하게 봉합을 하고 있는 재욱이가 보인다. 거의 다음날이 되서야 한산해진 응급실을 뒤로 한 채 우린 휴게실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포장 음식을 먹기로 했다. “어! 이재욱 선생!! 수고 했어. 여기 와서 뭐 좀 같이 먹자.” “아뇨, 전 괜찮습니다.” “어제부터 뭐 제대로 못 먹은 거 같은데, 같이 먹지-“ “좀 씻고 싶어서요. 그럼.” “...” “요즘 도통 뭘 안 먹네-“ “이재욱 선생이요..?” “응, 너 2주동안 입원해 있을 때도 너 대신 너 환자들 다 보느라 고생 많이 했거든.” “아..” “엄청 힘들텐데 잘 버티네.. 먹자!” “..네.” . . . 대학교 때 집에 불이 났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잠드는 바람에 늦은 새벽이 되서야 집에 돌아갔고 내가 집 앞에 왔을 땐 새카만 연기가 피어나고 있고 여러대의 소방차가 도착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ㅇ아,, 안 돼..” 뛰어 들어가려던 나를 막는 관계자에 주저 앉아 울기만 했다. 그렇게 주무시고 계시다 사고를 당하신 부모님은 병원에 옮겨진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고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학생이면 다 컸다 생각 했는데.. 내겐 너무 힘든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더 힘들었던 건 멀어져가는 성이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한 이름이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고 엎친데 덮친격 부모님과 이름이 모두 잃어 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름이에게는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일일 뿐더러 쓸데없이 마음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에게 점점 무뚝뚝해지는 이름이었고 혹시나 내가 챙겨주지 못 하는 부분이 많아진 건가, 이름이에게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 더 노력했고 그럴수록 더 멀어져가는 이름이와 지쳐가는 나였다. . . . “어,,! 아버지가 학교엔 왜..” “네가 알아서 한다더니 여전히 달라지는 게 없더구나..?” “...” “이재욱 학생 부모님 돌아가셨다는데 그건 알고 있었니?” “..뭐라고요?” “그 애 멘탈이 약해졌을 때, 그때 너가 더 노력해야 돼!! 그런 틈을 이용하란 말이야!” “..아버지는 어떻게 아셨는데요.” “..크,흠.” “사람 붙였구나.” “...” “설마.. 아버지가 그런 건..” “그저 잠시 멘탈을 흔들려 했을 뿐이야!! 이렇게 사고가 커질 줄 알았겠니. 그리고 이딴 일 정도는 네가 최고가 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뿐이라고! 이게 다 널 위해서야, 모르겠어?!!!!” “역겨워, 진짜..” (짝-) “정신 차리고 이 틈을 노려. 성장해!!! 무슨 짓을 하든 최고가 되란 말이야.” “... 최고는 무슨.”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맞은 뺨은 아프기 보단 그 손이 닿았다는 것 자체로도 불쾌했다. 이런 사람이 내 부모라니,, 내 생각과는 반대로 몸은 재욱을 향해 찾아 가고 있었고 학교였기에 교실 몇 군데만 가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팠겠다..” 볼 한 쪽이 빨갛게 부어 올랐는지 날 보자마자 맞았다는 건 금방 알았나 보다. 그런데 재욱은 왜 그러느냐, 누구에게 맞았냐 묻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얼굴을 감싸줬을 뿐이었다. 눈물을 꾹 참고 나는 재욱의 손을 쳐냈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애한테 세상에서 제일 나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같잖게 걱정하지 마. 앞으로 나한테 아는 척도 하지 마 이젠.” “...” “공부 좀 잘하길래 뭐 얻어낼 거 없나 좀 다가 갔더니 진짜,, 뭐 어디 세상 좋은 친구라도 된 줄 알지.” “..이름아. 힘들면 그냥 힘들다ㄱ..” “그딴 걱정 필요 없다고! 하긴, 고작 1등 좀 하는 거 가지고 니까짓거 한테 뭘 얻을 게 있다고.” “...” “이제 좀 알아 들어? 나 그냥 너가 필요해서 다가 간 거고 이제 필요 없어서 버리는 거야. 우리 아빠 돈도 많아서 너처럼 공부 그렇게 안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고 더욱이나 너한텐 받을 게 너무 없는 걸 이제 알았네.” “...” “..간다.” “잠시만, 이거 가지고 가.” 이렇게 모진 말을 한 나에게 재욱이 준 것은 연고였고 나는 보지도 않고 집으로 향했기 때문에 집에 도착해서야 연고인 것을 알았다. 아까 맞을 때 아버지 반지에 긁혔나 보다.. 그 날은 우느라 잠도 못 잔 하루였는데 내 말을 들었을 재욱이에게 비하면 너무나도 편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그때 재욱이가 연고를 어떻게 알고 줬는지 생각하지 못 했을까. . . .
“...하,” 모진말은 내가 듣고 있는데 왜 성이름이의 눈이, 얼굴이 더 아파 보일까. 다 보인다. 그 말들이 진심이 아니란 것도 억지로 날 쳐내기 위해 하는 말인 것도. 주먹을 꼭 쥐고 눈물을 참아가며 말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나는 더.. 힘들었다. 이름이가 날 쳐낸다면 난 기꺼이 쳐질 거다. 그 말들이 진심이 아니란 걸 확신하는 이유는 사실 듣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난 이름이를 보러 갔고 놀래켜주고 싶어 뒷문 뒤로 숨어있었다. 그렇게 다, 듣고 말았다. 당연히 화가 났다. 우리 부모님의 사고가 고의에 의한 사고라는 사실에. 근데 그 사람이 이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화가 낫기 보다는 이름이를 그렇게 만든 아버지란 사람에게 더 화가 났다. 나에게 남은 건 이제 이름이었는데 그것마저 뺐어 버리는 그 사람에게 나 또한 역겨움을 느꼈다. 착한 사람을 나쁘고 모진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아버지란 사람은. 그리고 느꼈다. 이름이는 나와 함께이면 행복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다짐했다. 날 밀어내면 밀리기로. 그리고 나도 조금씩 놓아 보기로. —————- 정말 글 같지도 않은 글 생각지도 못한 반응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