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그렇게 몇 일이 지나 수업 교실이나 도서관, 그리고 학식을 먹는 시간 등등 많은 시간 우리는 마주쳤으나 서로는 원래 몰랐던 사이처럼,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사실 잡아주길 바랐다. 아니, 뭐 연인으로서 만난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에 우리 사이가 끝이 날 줄은 몰랐으니까.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재욱이가 이렇게 빨리 날 놔 버릴지 몰랐으니까 내심 그것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렇게 재욱이가 가장 힘든 시기에 그 모진 말을 하고서야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등을 했다. 아버지는 이제야 자기 딸 같다며 좋아하셨고 나는 그 1등이 반가울리가 없다. 그 1등은 내가 아버지보다 낫다며 재욱을 대신 건들인 무거운 죄값과 같았다. 그리고 졸업식, 나도 재욱이도 혼자였다. 재욱이는 올 가족이 없었고 나는 그 뒤로 2등은 커녕 10등 안으로 머물기만 했다. 그런 내가 미우셨는지 쪼팔리셨는지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해야 할 것들만 의무적으로 마친 후 마지막으로 이 학교를 둘러봤다. 좋은 기억이 될 뻔 했던 내 본과 생활, 결국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 이렇게 됐지만 그 애를 만났다는 것에 의미가 컸으니까.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스스로 마무리를 지으며 돌아가려던 순간 보이는 건 재욱이었다. 재욱은 내게로 오고 있었고 그렇게 우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리 앞으로 다시는, 다시는 만나지 말자.” 담담했다. 마치 그때부터 하려던 말을 준비하고 이제 하는 것 처럼. . . . . . “재욱 선생님!” “네.” “여기 환자분인데요.. 자꾸 선생님만 찾으시길래..” “절 왜요?” “위급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선생님이 제일 잘생겼다고 불러 달라고..” “일단 가보죠, 뭐.” “네-“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세요-“ “저 가슴 통증이 있어서요!! 목도 좀 아픈 거 같고!” “언제부터 그랬어요?” “어.. 그건 잘 모르겠고 선생님 몇 살이세요? 완전 제 스타일인데.” “얼굴에 붉은 반점들이 좀 있네요?” “질문은 제가 먼저 했는데요, 선생님!?” “질문 받으려고 온 거 아닌데요, 환자분.” “치..” “되게 말랐네, 정상 체중은 돼?” “요즘엔 말라야 예쁨 받아요- 쌤!” “그래서 먹고 토 하는구나.” “..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에 그 붉은 반점, 토하면서 얼굴에 압력 가해질 때 보통 생기는 증상이고 가슴 통증 그건 역류성식도염 증상. 목 아픈 것 또한 같은 증상. 됐어?” “와, 잘생겼는데 똑똑하기까지.. 완전 내 스타일.” “윤쌤.” “네!” “역류성식도염 같은데 일단 염증이 좀 있으니까 안티(항상제)투여 하고 혹시 모르니까 심전도 검사랑 혈액검사 해서 결과 좀 지켜봐주세요. 문제 없으면 안티 다 투여 되는대로 보내시구요.” “네, 이쌤.” “쌤!! 이대로는 너무 아쉬운데! 저 미성년자 딱지 떼는 대로 고백하러 옵니다!! 아셨죠??” “저 쪼끄만 게! 고백은 무슨,,” “성이름 질투하냐?” “엄마야! 선배, 언제부터 제 옆에 계셨어요?” “너 저 환자한테 레이저 쏠 때부터.” “ㅈ,제가 언제 그렇게 레이저를 쐈다고..” “다~ 보인다, 다 보여.” “아닙니다 선배님~ 아, 오늘 저희 회식 한대요!!” “크으.. 얼마만이냐. 맥주 한 잔 시원-하게 하고 싶다!” “한 잔은 무슨, 시원하게 두 잔 갑시다!” “콜이지!” “이름쌤! 여기 자상 환자요!” (자상: 칼이나 창과 같은 예리한 물체에 찔려서 생긴 창상) “네, 윤쌤- 갑니다!” “에고.. 아팠겠다. 어쩌다가 다쳤어요-“ “축구 하다가 넘어져서 박혔어요. 와, 근데 의사 누나! 남친 있어요? 의사 하기엔 너무 아까운 얼굴인데?” “푸흐.. 너 나랑 족히 10살은 차이나 보이는데 무슨, 의사 누나가 일단 검사부터 좀 할게요- 학생.” “누나, 저 아프니까 살살 해주세여-“ “음.. 내부손상은 깊게 없어 보이는데 원래 자상이란 게 혈관손상에다가 신경손상까지 수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검사가 좀 필요해- 일단 x-ray 먼저 찍어보자!” “누나가 해줘요?” “아니? 윤쌤한테 시킬 건데? 윤쌤! 여기 이 환자 x-ray 좀요!!” “네, 성쌤!” “아- 난 이 의사 누나가 해줬으면 좋겠는데..” “나 바빠, 꼬맹아. 얼른 엑스레이 먼저 찍고 와.” “봉합은 누나한테 받을래요. 해줄거죠?” “하트 모양으로 봉합도 가능해, 누나 손이 보통 꼼꼼한 게 아니거든-“ “아싸- 빨리 갔다 와야지!”
“정쌤.” “아, 깜짝이야! 넌 내가 옆에 있는지 언제부터 알았냐..?” “처음부터요. 저 꼬맹이 제가 봉합해요. 성이름 다른 거 시키세요.” “ㅇ,어. 어..그래.” “그럼.” “..아주 둘이 번갈아 가면서 난리구나. 난리야..”
“어이, 꼬맹이-“ “네?” “이리와, 봉합 해야지.” “저 다른 의사 선생님한테 받을 건데요?” “그 의사 선생 바빠.” “아, 그 의사 누나한테 받고 싶었는데..” “마취 주사 좀 아플 거야.” “ㅇ,아!! 아, 선생님 좀 살살요 살살!” “참아- 다음부턴 여기 오지 말고.” “네?” “다치지 말란 소리로 들으면 네가 더 편하긴 하겠네.” “아, 뭐야.. 그 의사 누나는 친절하고 예뻤는데 이 형아는 왜이래,,” “다 들리는데.” “들으라고 하는 소린데요.” “혈관이나 신경 손상도 없고 뼈도 괜찮으니까 다음부턴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웬만하면 이 병원은 오지 말고.” “무슨 의사가 자꾸 병원에 오지 말래- 혹시! 그 의사 누나 좋아해요? 그래서 질투하는 건가?” “어, 그러니까 오지 마.” . . . . . . 많이들 기다리고 있던 회식 시간이 왔고 오랜만에 병원 밖 일정이라 그런지 다들 초췌하던 얼굴과 머리는 어디 가고 셋팅 된 상태로 모였다. 온 순서대로 앉긴 했는데 앉다 보니 어쩌다 재욱이랑 마주보는 자리에 앉게 되었고 맞은 자리다 보니 사실 어쩔 수 없는 눈맞춤도 많았다. 그치만 나는 부끄러운 마음인지 아직은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인지 피하기 바빴고 그날따라 왜인지 재욱이는 눈을 잘 피하지 않았던 거 같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만큼 선생님들도 하나 둘 취해갔고 나와 재욱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많이 들뜨지도 그렇다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선에서의 우리었다. 그렇게 시계 시침선이 12시를 막 지날 때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 [사랑하는 후배 이름아! 나 내일 지방 병원으로 잠깐 내려가는데 서류를 두고 와서.. 아침에 바로 가야 되거든 ㅠㅠ 근데 지금 보시다시피 교수님한테 잡혔다 나,, 부탁 좀 하자 이름아ㅠㅠ] 선배의 부탁에 나는 바로 일어나 병원으로 갈 채비를 했고 그 순간 보이는 재욱의 자리는 빈자리었다. “어디 간 거야..”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나는 병원으로 향했고 휴게실로 들어가 서류를 찾다 열리는 문 소리에 자동적으로 돌아 봤을 땐 재욱이가 보였다. 멍하니 열린 문을 보고 있을 땐 재욱이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내게 입을 먼저 뗀 건 재욱이었다. “나 취했어.” “ㅇ,어..?” “취했다고.” “..어.. 어 그럼 어떻ㄱ..” “핑계대고 실수 좀 해보려고.” “..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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