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요...?"
"응. 원래 처음이 어렵지 그 뒤에는 쉽다던데."
"..."
"계속 그렇게 불러줄 생각, 있어?"
"어..."
"힘들면 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어."
"아뇨 그게..."
"응."
하. 저렇게 다정하게 말하면...어떡하라고 진짜...
"제가..."
"...."
"누군가를 오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좀... 힘들다기 보단...."
"...."
"어색해요. 그래서 그래요."
다정한 말과 행동이,
"노력해볼께요."
다정한 눈빛과 표정이.
"....오빠."
고마워서. 이건 고마워서 그런거다.
목소리 되게 좋다. 나긋나긋하다.
통화라는게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구나.
정말 사소한거, 아무것도 아닌게 이렇게 대화주제가 될 수 있구나.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통화를 이렇게 오래 할 수 있구나.
진짜 하나씩 배워가는 느낌이다.
"안피곤하세요?"
"괜찮아. 넌? 일찍 자야되는거 아니야?"
"괜찮아요."
"그래? 그럼 조금만 더 통화하다가 자러 가자."
"네, 그래요."
"그러면..."
뭐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지?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에이. 난 또 뭐라고.
"네. 뭔데요?"
"그때..."
"....."
"우리 처음 통화했을 때, 너 병원에서 당직 섰던 날."
"....아. 네."
"그 때 전화 급하게 끊었었는데.. 기억나?"
그랬었나?
"어...제가 전화를 끊었었나요...?"
"응. 전화 끊어야 될 것 같다고..."
뭐였더라..
어쨌든.
"근데 그게 왜요?"
"아 그 때, 남자 목소리가 들렸었거든."
남자?
"어떤 남자 분이, 널 불렀어."
"....."
"ㅇㅇ아!하고."
아, 기억났다.
"그 남자분... 누구야?"
"풉."
"...뭐냐?"
"어? 아냐아냐."
미쳤나보다.
갑자기 그 목소리가 왜 떠올라서는...
"드디어 너도 정신을 놨냐? 왜 갑자기 혼자 웃어?"
"뭐라는거야. 내가 너냐?"
"뭔데. 혼자 웃지말고 같이 좀 웃자. 뭔 생각했는데."
아, 귀찮은 놈.
어떻게 관심을 돌리지? 또 물고 늘어질 것 같은데...
"넌 옷도 안갈아입냐? 어떻게 맨날 옷이 같아?"
"야! 내가 얼마나 자주 씻는데!"
"너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잖아. 드럽게."
"야 그러는 너도 맨날 수술복 입고 다니잖아!"
"수술복은 병원에서만 입고, 그리고 난 맨날 갈아입잖아."
"나도 갈아입어! 누가 들으면 나는 안갈아입는 것 처럼 얘기하냐!"
"갈아입어?"
"와 이거 너무하네 진짜. 수술복 안갈아입는 의사가 어딨냐! 그리고 의사가 병원에 처박혀 있는데 옷이라도 편하게 입어야지! 이 체육복이 뭐가 어때서. 내가 얼마나 깨끗이 빨아 입는데!"
됐다, 단순한 새끼.
"내 말 듣고 있냐? 야!"
아 시끄러 진짜.
밖으로 나가야겠다. 옥상 올라가서 커피나 하나 뽑아마실까.
바람이 분다. 잔머리가 휘날린다.
시원하다.
그 날, 밤새도록 이어진 통화에서 나는 결국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 남자가 누군지, 왜 나를 불렀는지.
"비밀이에요."
"....응?"
"말 안해줄건데."
"와... 이제 장난도 치는거야, 나한테?"
뭔가... 재밌다.
"아 졸린다. 자러 가야겠어요, 이제."
"와, 진짜. 이렇게 그냥 끊는다고?"
"잘자요! 좋은 꿈 꿔요!"
"하. 참나. 그래.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냐."
"잘자. 꿈 꾸지말고, 푹."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다정할 수 있구나, 싶다. 타고난거겠지.
누군가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나눈다는게, 누군가가 내 하루를 알고싶어한다는게,
생각보다 꽤 기분좋은 일이더라.
며칠사이에 연락이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이렇게 쉽게 바뀌는 사람이었나.
"뭐해? 왜 그렇게 미소짓고 있어? 보는사람까지 기분좋아지게."
깜짝이야.
"내 생각했어? 웃는거 이쁘네."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었나보다.
...미소? 그 사람 생각하면서?
"무슨 선배 생각이에요."
"왜, 나 희망적이잖아."
하긴,
"나 봐봐. 얼마나 밝아!"
"그건 그래요."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렇게 흐뭇하게 웃고있었는데?"
"그냥..."
"그냥?"
나는 절대 말 못하겠지.
"그냥 바람이 너무 시원해서요."
"...."
"바람 맞는게 좋아요, 생각보다. 속도 시원해지고."
"....그래?"
"네. 한번씩 답답하면 올라오는데."
진짠데.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뇨. 그냥, 갑갑해서?"
"다른 일 있었던 건 아니고?"
"아니에요. 진짜 그냥 광합성도 할 겸, 바람도 쐴 겸."
"...."
"겸사겸사 올라온거죠."
"....."
"전정국이 시끄럽기도 했고."
"아..."
"인정. 정국이 한테서 도망친거였구나?"
밝다.
여기도 있었구나, 타고난 다정함이.
퇴근이다, 퇴근!
집에 갈 수 있다!
"야... 하나 뿐인 동기를 여기 버려두고 진짜 혼자 갈거냐?"
"불쌍한척 하기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넌?"
참나.
"야, 너 나 당직이던 날 나한테 뭐라고 하고 갔어."
"...."
"아 나는 집에가서 씻고 치킨시켜먹고 자야지~ 배부르게 먹고 푹신한 침대에서 따뜻하고 편하게 잠들어야지~"
"...."
"불쌍한 영혼은 병원에서 고생해라~ 응급수술 없기를 빌어줄게~ 했냐 안했냐."
"...아니 그거는..."
"그거는 뭐. 그게 불과 3일전이야 이 썅,"
"ㅇㅇ아, 퇴근 안해?"
"해야죠! 하려구요."
선배, 나이스 타이밍.
환상의 타이밍에 문열고 나타났다.
"선배님도 가십니까! 저는 퇴근 못해요! 어떻게 저만 빼고 다 가는겁니까!"
아, 시끄러운 새끼 진짜.
"정국이 당직이냐?"
"예엡..."
"고생해라. 가자, ㅇㅇ아."
"내일 올 때 커피 사와라!! 지쳐있을 동기를 위해서!"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내일 아침에 커피 사와야겠네?"
"어우. 제가요? 절대 아뇨."
"정국이 저렇게 애절하게 말하는데?"
"몰라요. 너무 시끄러워요, 진짜."
단둘이 내려가는 길이 어색하지가 않다.
알게 모르게 선배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
"주차장 가실거죠?"
"같이 나가자."
"네?"
"내가 태워줄게. 같이 가자."
아, 나는 편안함 앞에 무릎을 꿇지 안...
"...진짜요?"
나는 나약한 인간이다.
"응. 태워줄게. 집에는 편하게 가야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저녁은 어떡할거야?"
"저녁이요? 음 아직 생각 안해봤는데.."
"그럼 나랑 같이 먹자. 먹고 데려다줄게."
"그럼 밥은 제가 살게요. 차도 얻어타는데."
"아냐, 내가 어떻게 너한테 밥을 얻어먹냐. 가자. 먹고싶은거 있어?"
"저는 다 잘먹어요."
아싸.
건물 밖으로 걸어나오니, 해가 지고 있다.
하늘 이쁘다.
핸드폰이 울린다.
[퇴근했어요?]_6:19
여기도 타이밍이 좋다.
하루종일 촬영 있다더니, 이제 쉬는 시간인가보다.
[방금 퇴근했어요.]_6:20
"내 차 저기있어. 이쪽으로 가자."
"네!"
어, 저기 서있는 저 사람...
김석진...?
[나 병원 앞인데, 어디로 나와요?]_6:22
미치겠다. 어떡하지?
이미 선배랑 저녁 약속을...
"ㅇㅇ아! 왜 안와?"
"아 선배, 잠시만요!"
나를 봤다.
내 이름을 부르는 선배 목소리에 이쪽을 돌아봤다.
"선배 잠시만요! 금방 다녀올게요!"
어떡하지.
진짜 어떡하지...?
"ㅇㅇ아. 저 사람...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