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목소리 누구였어요?]_22:37
[남자 목소리던데..]_22:40
[아침에 연락할게요. 조심히 일해요.]_23:07
[나는 이제 일어났어요. 오늘도 힘내요.]_8:27
논문 읽다가, 졸다가, 호출 오면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논문 읽다가, 졸다가....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처럼 반복 반복하다 보니까 해 떠있더라.
어...뭐라고 대답해야하지?
그냥 선배에요? 동료에요?
모르겠다.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나버렸으니... 괜찮겠지.
"와 야 죽겠다 진짜."
"넌 대체 몇 번을 죽는 거야?"
"진짜 피곤해. 넌 힘들지도 않냐?"
저 원수 같은 놈.
쉴 때도 같이, 뛰어다닐 때도 같이. 계속 붙어 다닌 통에 핸드폰 볼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답장은 보내놔야겠지.
뭐라고 보내야 하지? 질문에 대답은...
그냥 하자.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_8:40
"야 밥 먹으러 가자."
"그러자."
모르겠다. 아침이나 먹자.
[오늘 퇴근 몇 시에 해요?]_9:03
[보고 싶은데. 데리러 갈게요.]_9:04
해가 졌다.
바깥바람이 시원하다.
며칠 만에 느껴보는 바깥공기인가.
지금 기분이 좋은 건, 바람 때문일 거다.
오래간만에 맞는 바람이 시원해서.
저기 있다.
참, 잘났다. 다리 길이가 어우...
"오랜만이네요."
"어, 나왔어요? 고생했어요. 피곤하죠?"
"괜찮아요. 김석진 씨야말로 안 피곤하세요?"
"전 괜찮아요. 선생님 보잖아요."
역시나 만나자마자 한방.
"가요. 저녁 안 먹었죠?"
"저 언제까지 김석진 씨라고 부르실 거예요?"
"네?"
갑자기 밥 먹다가?
"저 부를 때마다 김석진 씨. 성, 이름 다 붙여서 부르시잖아요."
"김석진 씨를 김석진 씨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너무 멀어 보이잖아요. 딱딱하게..."
"....."
"하다못해 석진 씨라든지, 아니면..."
"...."
"... 오빠?"
밥을 잘못 드셨나?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오빠 좋다. 저 오빠라고 불러주세요."
음식이 잘못됐나 보다.
"아니 오빠는 무슨."
"왜요, 저 오빠 맞는데. 선생님보다 나이 많아요."
"그게 뭐예요."
"제가 선생님보다 나이도 많은데, 오빠 맞죠."
"나이 많다고 다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훨씬 가까워 보이잖아요. 친해 보이고. 김석진 씨보단 훨씬 낫겠다."
오빠.....
오빠? 참나.
"김석진 씨도 저한테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존댓말 꼬박꼬박 하시잖아요."
"......"
"둘 다 똑같은데 왜 저한테만 자꾸..."
"ㅇㅇ아."
깜짝이야.
그래도 나름 잘 버텼다.
"ㅇㅇ아.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지?"
착각이었다. 나는 절대 버티지 못한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나도 양심이 있지.
"아니 왜..."
"이때까지 다 사주셨잖아요. 저도 사야죠."
"내가 먹자고 해서 온 거잖아."
"그게 뭐요? 제가 살 수도 있죠."
"그래도..."
"저도 돈 잘 벌어요. 제가 살게요."
"아니....."
"오빠."
이건 내가 돈을 내기 위해서, 저 사람을 당황시키기 위해서.
성공적이다. 이렇게 쉽게 먹힐 줄은 몰랐는데.
"제가 살게요. 빨리 가요."
매번 얻어먹을 수만은 없지.
"나갑시다, 얼른. 계산 다 했어요."
오늘따라 말이 없다.
차가 조용하니 적응이 안 되네. 몇 번 타봤다고 벌써...
집이 보인다. 아쉽다. 편했는데.
근데 이상하네.
"다 왔네요."
"...."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왜 말이 없지. 내가 뭐 실수했나...?
"오늘 감사했어요. 덕분에 또 편하게 왔네요."
"....."
"조심히 들어..."
"한 번만 더 해봐."
"네?"
"나 한 번만 더 불러봐."
"... 석진 씨?"
"그거 아니었잖아, 아까."
"한 번만 더 불러줘. 아까 잘 못 들었단 말이야."
"....."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잖아. 미리 말도 안 해주고."
"미리 말하고 부르는 게 어딨어요..."
"내가 너 목소리에 집중을 못 했었어.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와서는..."
허. 자기는...
"사람 설레게 진짜... 너무해. 심장 멎을 뻔했어, 나."
사돈 남 말 하시네.
결국 도망쳤다. 후다닥 뛰쳐나와 쫓기듯이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나는 그 사람 앞에서 수많은 공격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뭐 했다고 심장이 뛰는가.
이건 차에서 집까지 뛰어와서 그런 거다.
3번 만난 저 사람 때문이 아니다.
간만에 유산소 운동했네.
그러고 보니, 잘 가란 인사도 없이 그냥 뛰쳐나왔다.
잘 들어가고 있으려나.
....연락을 해볼까?
[잘 들어가고 있어요?]
아니다.
[안전운전하세요.]
이것도 아니다.
나보다 운전 훨씬 잘하는 사람한테 걱정이라니.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걸로 하자.
[조심히 들어가세요]_8:03
[와, 지금 나한테 먼저 연락해 준 거야?]_8:10
답장이 빠르네. 집에 도착했나?
[지금 운전 중 아니에요?]_8:11
[방금 막 도착했어.]_8:11
[주차하고 이제 집 올라가려고.]_8:11
[그래서 나 오빠라고 언제 또 불러줄 거야?]_8:12
이젠 문자로도 훅 들어온다.
그놈의 오빠.
[아까 제가 너무 후다닥 들어와서, 인사 못한 것 같아서 연락했어요.]_8:15
[용건 없어도 연락해도 돼.]_8:16
[아니다. 연락해 줘.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연락해 줘.]_8:16
[핸드폰에 네 알람 뜰 때마다 설레고 좋아.]_8:16
내 연락이...? 귀찮지 않을까. 피곤할텐데.
[피곤하실 텐데얼른 씻고 쉬세요. 오늘도 감사했어요.]_8:20
[금방 씻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_8:21
엥. 이 사람은 안 쉬나?
피곤할 텐데?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씻자.
[나는 너랑 사소한 거 하나라도 전부 다 같이 얘기하고 싶어.]_8:25
[그냥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나한테 다 말해줬으면 좋겠어.]_8:25
[금방 씻고 올게. 하나하나씩 천천히 하자, 나랑.]_8:25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머리를 말릴 생각도 없이, 번쩍이는 핸드폰을 들었다.
사소한 거 전부 다...?
아직은 어렵다.
모르겠다. 단순하게.
[방금 막 씻고 나왔어요.]_9:13
답장 오겠지.
머리 말리고 생각하자.
♬♬♪♪♬♬
[김석진]
반응한번 빠르다, 진짜.
"여보세요?"
"통화 괜찮아? 뭐 다른 거 하고 있던 건 아니지?"
"네, 괜찮아요. 머리 말리고 있었어요."
"목소리 듣고 싶어서."
착각할 것 같다.
다정한 목소리로 이런 말 하면 진짜 어떡하라고.
"머리 다 말렸어?"
"네."
"다행이네. 머리 잘 말려야 해. 그래야 감기 안 걸린다."
나한테 감기 걱정이라니.
"바로 잘 거야?"
"어... 좀 누워서 쉬다가 자려고 했었죠."
"좋네. 자기 전에 통화."
설마...
"잠들 때까지 통화해줘야 해, 나랑."
설마가 사람 잡네.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네."
"아까 왜 갑자기 오빠라고 부른 거야?"
"아..."
"나 진짜 놀랐어.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
"너 목소리로 듣는 오빠 소리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더라."
"......"
"진짜 설레더라. 얼굴 빨개질뻔했어, 나."
"아 그게..."
"응, 그게."
솔직하게.
"당황시키려고 그랬어요.."
"응?"
"자꾸 계산하려고 하시니까... 당황시키려고 그랬어요."
"아..."
"계속 얻어먹었으니까, 제가 사려고 맘먹고 있었거든요."
"...."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번 질러봤는데. 성공한 거죠."
"정말 성공했지."
와, 낮은 웃음소리 되게 좋다.
"귀엽네. 오빠 소리로 당황시킬 생각하고."
목소리가 좋은 건지 통화가 좋은 건지.
"덕분에 나는 또 반했네."
"그래서, 다음에 보면 오빠라고 불러줄 거야?"
그냥, 그냥 좋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