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정국이 보고 싶다.
구름 뻐꾸기의 땅 애구(哀求) 시리즈, 하나.
태형이 고양이 하악질 하듯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대로 팔을 뻗어 책상 위의 책에 한쪽 팔을 겹치고 누워버리는 태형을 보며 호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호석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형의 머리에서 책을 잡아 뺐다. 태형의 머리가 책상에 콩 소리를 내며 맞닿았다. 태형이 눈을 살짝 감으며 아프다는 듯 얕은 탄식을 뱉었다.
- 넌 언제까지 걔 얘기할 생각이냐.
- 형은 언제까지 임용 준비 할 생각이냐.
태형이 장난스레 호석의 목소리를 따라 했다. 태형은 평소에도 호석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 호석을 놀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호석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뱉곤 태형의 등짝을 가볍게 내리쳤다. 태형은 늘 이런 호석의 반응을 즐겼다. 태형의 또래 모두 생에 세 번째 아홉수라며 온몸을 사리는 와중에도 태형은 늘 스스로 매를 벌었다. 아니, 어쩌면 이번 아홉수엔 자신에게 큰 변화라도 일어나길 바랐었는 지도 모른다.
- 김태형. 너도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 스터디에 너랑 나, 단 둘뿐인 게 지금 몇 달짼데.
- 에이, 꼭 내 탓인 거처럼 말한다, 형은?
태형이 머리를 일으켜 세우고 옆에 놓인 티를 한 모금 마셨다. 태형의 눈썹이 으쓱하며 움직였고, 태형은 호석을 바라보며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사람들이 왜 우리 스터디에 안 들어오겠어. 형이나 나나 지금 시험만 몇 번째야? 티오는 줄어드는데, 경쟁률은 날이 갈수록 올라만 가고. 근데 스터디 와보니까 정호석이 있는 거야. 크, 나였으면 진작 나갔...
- 웃기고 있네. 여기서 내 얘기가 왜 나와. 작년에 들어왔던 우리 스터디 유일한 고학력자 남준이, 너가 계속 정국인가 뭔가 하는 애 입에 달고 사니까 나갔지? 그리고 너 얼굴 하나 보고 들어왔던 여자애들도 하나 같이 너 게인 거 알고 실망해서 나갔지? 그리고 또…
태형이 다급히 포크를 들어 호석의 입에 케이크를 넣었다. 누구보다 호석의 성격을 잘 알던 태형이 호석의 따발총 같은 말들에 휘말리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었다. 늘 상황을 무마시킬 때면 나오는 태형의 멋쩍은 웃음에 호석도 더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케이크를 씹었다.
- 아, 아. 형. 알겠어.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내가 항상 카페도 쏘잖아. 그치?
태형과 호석은 과는 달랐지만, 엄연히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국문과였던 태형보다 두 학번이나 높았던 국어교육과 호석은 꽤나 게을렀고, 대학 수업에 큰 흥미가 없었다. 호석의 성격을 뒷받침하듯 수업 성적은 온통 C와 D의 향연이었고, 1년이라는 시간을 휴학과 함께 술로 보냈다. 결국 담당 지도 교수님에게 불려간 호석은 느지막이 3학년이 되어서야 졸업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호석이 휴학했을 쯤, 태형은 대학교에 첫발을 디뎠다. 교직 이수 과정을 밟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태형은 열심히 학점을 따내었고, 마침내 2학년이 되어서야 사범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인문대 학생인 태형은 당연지사 교육과 수업에 짝없이 홀로 수업을 듣기 일쑤였는데, 그때 태형의 눈에 호석이 들어왔다. 첫 수업에 나름 고학번이라며 교수님께서 소개했던 호석. 늘 자신처럼 짝없이 홀로 강의실 맨 뒤를 자리하던 호석. 그라면 왠지 자신과 함께 수업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외향력 하나는 알아주던 태형은 결국 호석과의 인연에 물꼬를 텄다. 그렇게 졸업까지 함께 수업을 들었고, 심지어 동반 입대까지 했다. 호석은 이 징글징글한 인연을 언제 끊냐며 심통을 내기도 했지만, 내심 나이 많은 저를 데리고 정보도 공유하고 공부도 함께하는 태형이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꼬박 3년이었다. 그 사이 태형은 서른의 문턱에 이르렀고, 호석은 이미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인 나이였다. 이미 주변의 임용을 준비하던 동기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은 지 한참 되었다. 질투가 날 법도 했다. 그럼에도 둘은 묘하게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스터디라는 나름의 핑계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카페에 앉아 책을 들여다봤다. 물론 책을 보기보단 서로 떠들고 으르렁 대기 바빴다. 태형은 돌아서면 정국의 얘기를 했고, 호석은 그런 태형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호석이 이내 한참 씹던 케이크를 삼키고 태형에게 물었다.
- 너 그때 말한 알바는 구했고?
- 지금 내 나이에 알바 구하기가 쉽나, 뭐. 임용 준비한다고 하니까 다들 전화가 없어. 내가 그래도 스무 살 먹은 애기들보단 나을 텐데.
- 그래, 나 같아도 그 애기들 쓰겠다. 젊지, 패기 있지, 남아나는 게 힘이지. 안 그러냐?
- 그래. 형 말이 맞다.
태형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이미 태형의 집안 사정이라면 알고 있는 호석은 그런 태형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태형은 반드시 수도권의 학교에서 근무하겠다며 어떤 부모님의 지원도 없이 낮밤 가리지 않고서 알바를 했더랬다. 그저 천진난만하던 태형의 한숨이 해가 지날수록 깊어가는 것을 호석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늘 어른 같아 보이려 마음을 숨기던 태형도 이제는 늘어가는 근심 때문인지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참 태형을 바라보던 호석이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내가 알바 자리 소개해줄게.
호석이 말을 건네자 축 처졌던 태형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 뭐? 진짜? 어딘데?
태형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호석에게 말을 건넸다. 카페의 시선이 태형에게 쏠리자 호석은 재빠르게 손을 까딱거리며 태형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곧바로 호석은 전화를 걸어 휴대폰을 귀에 가까이 댔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대에 차있는 태형을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 어, 민윤기. 너 그때 나한테 교정 교열 알바 구한다고 그랬지? 그거 아직 유효하냐.
호석은 한참을 통화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옆에서 호석의 휴대폰 가까이 귀를 대고 있던 태형이 다급히 호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 뭔데, 뭔데. 어떻게 된 건데?
- HBS에서 하는 민 PD 세상의 민낯 프로그램 알지? 거기 대본 교정 교열 알바.
- 와, 방송국? 미쳤다. 진짜 대박이다.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환하게 웃어 보이며 기뻐하는 태형에 호석의 어깨가 으쓱했다. 옆에서 너무 고맙다며 자신의 손을 잡아 무작정 악수를 해대는 태형에 호석은 그제야 한시름 놨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
찰랑 -
오늘따라 더 당차게 들리는 종소리에 모니터를 바라보던 지민의 시선이 진료실 문틈 사이로 튀었다.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음성만 들어도 누군지 뻔한 정국의 목소리가 귀를 찌르자 지민은 속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온 숨을 나지막이 뱉었다. 지민은 곧장 원내 메신저를 켜 간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부로 폐업했다고 하세요.]
메신저의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니터를 바라본 간호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은 정말 안돼요, 무작정 정국을 온몸으로 막아보려는 간호사의 목소리. 그리고 하나, 둘...
- 아니, 지민쌤. 지금 우리 딘딘이가 너무 아파요. 좀 봐주세요.
참 뻔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민은 그렇게 건강한 강아지는 처음 본다는 듯 딘딘이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지민에겐 그저 성가신 보호자 중 하나였던 정국은 오늘도 한쪽 어깨에 다 해진 가방을 걸치고서 환한 웃음을 보이며 다가왔다. 정국의 뒤로 급히 따라온 간호사를 바라본 지민은 그저 한숨을 쉬며 간호사에게 나가보라는 말을 건넸다.
- 전정국 씨. 지금 이거 영업 방해인 거 알아요?
- 와, 말 섭섭하게 하시네. 제가 그래도 새빛 동물병원 VVIP 아닙니까. 브-이브-이...
- 우리 병원에 그런 제도 없습니다.
칼같이 자신의 말을 끊어내는 지민의 말투에 정국은 그제야 장난스런 말투를 거뒀다.
- 오늘은 시덥지 않게 온 거 아니에요. 제가 오늘 이사 준비를 해야 해서... 딘딘이 좀 맡기려고 왔어요.
- 보호자분, 애견 호텔 서비스는 굳이 진료실까지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아 -
지민은 정국에게 더이상 말을 하지 말라는 듯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 이따 저 이사 준비 끝내고 방송국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 제가 거길 왜요.
- 민PD님이랑 친하시다면서요.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좋잖아요.
정국의 말에 지민은 답이 없었다. 정국은 짧은 탄식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딘딘이를 껴안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자신에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서 로봇처럼 모니터만 바라보는 지민을 내려다보던 정국이 가방에서 웰치스 젤리를 꺼내어 지민의 책상에 올려보였다. 젤리에도 반응이 없는 지민에 정국은 입술을 씰룩이다 제 분에 지쳤는지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진료실을 나섰다. 정국이 나가자 지민은 고개를 돌려 책상에 놓인 달력을 바라봤다.
' 벌써 몇 달 째인지... '
처음부터 지민이 정국을 이렇게 대하진 않았다. 의사 입장에서 그럴 수조차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물 병원의 레드오션이던 아파트 바로 앞의 상가에 병원을 개업한 지민이 평소 성격대로 손님을 맞이했다간 거지꼴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체 사람과의 대화는 하지도 못 하던 지민은 손님들이 그저 일상적인 대화만 걸어와도 꽤나 지쳐했는데, 저렇게 TMI를 마구 방출해대는 정국이라니. 지민은 늘 딘딘이의 정기 진료 날이 오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정기 진료 날에만 병원을 찾아올 거라는 지민의 생각은 정국의 쓸데없는 성실함과 꼼꼼함에 곧바로 엉망이 되었다. 어느샌가 정국은 매일 아침 지민을 찾아오기 시작했고, 이젠 그저 지민에게도 하루 일상의 부분이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물론 지민 나름대로 해결방법을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병원 문을 아무 말도 없이 닫아보기도 했고, 정국에게 다른 병원으로 가는 건 어떠냐 회유해보기도 했다. 허나 그때마다 정국의 대답은 늘 같았다.
- 저는 선생님이 좋아서 여기로 오는 건데요.
그때마다 지민의 대답도 늘 같았다.
- 전 싫어요.
*
- 아씨, 뭔 소리야.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던 태형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얼마 전 바꾼 핸드폰으로 빵빵하게 음악을 틀고서 한가로이 백수 탈출을 즐기고 있던 태형이 침실 문을 벌컥 열고서 거실로 향했다. 자그마한 원룸에 그저 벽을 세운 것뿐이라 거실이라고 하기에도 우스꽝스러웠지만 나름대로 첫 자취라는 위대한 경험을 허투루 버릴 수 없었던 태형은 큰맘 먹고 티비도 사고 유행하는 마약 방석도 놓았다.
태형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스타 감성 돋는 집이라며 친구들을 불러모아 집들이를 하기가 무섭게 태형의 동생인 태완이 서울로 상경했다. 당연히 무자본으로. 알바비를 알뜰살뜰 모아 부모님 도움 없이 마련한 자신만의 집에 갑자기 혹이 하나 붙었으니 억울함을 감출 수 없었던 태형은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무참히 패배했다. 불같은 엄마의 잔소리에 태형은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학교도 겨우 졸업한 태완은 서울이 곧 자신의 홈그라운드가 될거 라며 기세가 등등했다.
- 야, 김태완. 너 진짜 맨날 집에서 놀고먹으면서, 아주. 내 백수 탈출을 기뻐해 주진 못할망정. 티비 소리 안 줄이냐?
- 어차피 티비 꺼도 시끄럽거든.
- 뭔 소리야.
- 아랫집 이사 오는데 이것저것 뜯어고치는 모양이야. 아까 형 나가고부터 계속 공사 중이야.
태형의 귀가 쫑긋했다. 한참을 듣고 보니 티비소리 보다 자신의 귀를 툭툭 건드렸던 건 아랫집에서 경쾌하게 들리는 드릴 소리였다.
- 아무리 그래도 이 늦은 시간에 공사가 말이 돼? 한마디 하고 와야지.
- 아, 무슨. 지금 밑에 주인 없어. 아까 출근하는 길에 미안하다고 치킨 한 마리 사서 올라왔더라.
- 치킨?
태완의 말에 태형이 고개를 돌려 부엌 선반을 바라봤다. 봉지에 쌓인 치킨을 보아하니 누가 봐도 태완이 이미 다 먹었을 치킨이었지만, 내심 세심한 사람이다 싶어 태형도 더이상 말을 말았다.
[ 당신의 눈이 되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생방송 세상의 민낯. 민윤기 피딥니다. ]
티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 티비엔 흥미도 없던 태형이라면 그냥 한 귀로 흘렸을 태형의 시선이 남자가 내뱉는 단어에 고개를 돌렸다. 하얀 피부에 새까만 머리를 한 윤기는 올 블랙 정장을 입은 채, 고요히 방송을 이끌어나갔다. 홀린 듯 한참 티비를 바라보던 태형의 옆에서 태완이 평소답지 않은 하이톤으로 말했다.
- 크, 진짜 같은 남자가 봐도 목소리가 정말.
- 야, 나 저기서 알바한다.
티비에 나온 윤기를 보며 호들갑을 떨던 태완이 고개를 들어 태형을 올려다봤다.
- 뭐?
- 저 피디라는 사람. 호석이 친구래. 내일 면접 보러 가.
- 아니, 방송국에서 형을 왜?
- 나 국문과 출신이거든?
아하.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태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창한 타이틀처럼 그저 세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마치 정의 구현이라도 해보려는 건가 싶었던 프로그램은 태형을 티비 앞에 앉혔고, 태형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
- 감사합니다. 언제나 세상을 밝혀드리겠습니다. 민윤기였습니다.
[ 칙 - 오케이 - ]
윤기의 귀에 꽂힌 인이어에서 송출 담당자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다. 윤기는 그제야 한시름 놨다는 듯 숨을 내쉬었고, 온몸을 꽉 조인 수트의 단추를 풀었다.
- 수고했어요.
스튜디오를 나서자 곧장 보이는 코멘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윤기의 일상은 늘 이래왔고, 다음 주도 이럴 것이 분명했다. 언제까지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할지 윤기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윗선에서도 10년이 넘은 장수 프로그램을 갑자기 잘라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유일하게 남은 시사 프로그램이었기에 윤기도 스스로 책임 의식을 지고 있었다.
윤기는 엘리트의 표본이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봤다. 그리고 그다음 해 무난한 성적으로 18살이 되어 신문방송학과 진학에 성공했다. 친구 하나 없이 기자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꿋꿋이 버텼다는 것을 윤기의 부모님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 꿈 하나까지 말릴 순 없었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많지 않았던 윤기는 자연스레 말수도 줄었다. 그래서 그런지 윤기가 메인 PD로 올라서자마자 장수 시사 프로그램의 MC도 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윤기 부모님은 드디어 말이 트인다 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 민 PD님!
- 어, 왔냐.
정국이 손에 들린 알로에 병 음료를 내밀었다. 윤기는 지쳤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음료의 뚜껑을 따 고개를 들었다. 곧바로 윤기의 시야에 지민이 보였다.
- 나도 왔는데.
음료를 마시던 윤기는 사레가 걸려 몇 차례 헛기침을 해댔다. 지민은 괜찮냐며 급히 티슈를 꺼내어 윤기에게 내밀었다. 티슈를 받아든 윤기는 기침 때문인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 어쩌다 둘이 이렇게.
- 아니, 정국 씨가 방송국 간다길래. 나도 겸사겸사.
입가를 티슈로 닦은 윤기는 한참 지민을 바라보다 정국에게 인이어를 건넸다.
- 넌 월차도 쓴 놈이 오늘 출근은 왜 해.
- 네? 아. 그냥, 뭐. 지민 씨랑 같이 차도 타고, 방송국도 오고. 좋잖아요.
- 시간 있으면 가서 편집이나 마저 해.
- 와, 너무해요. 피디님.
정국의 말을 듣자 윤기의 머리가 쭈뼛 섰다. 어쩐지 정국이 지민의 이름만 뱉었다 하면 윤기는 가슴이 요동쳤다. 지민은 윤기에게 그러한 사람이었다. 돌아보지 않을래도 그럴 수 없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