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악. 한 번만."
"안돼요."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진짜 안돼?"
"네. 안돼요."
"힝..."
힝이래. 겁나 귀여워. 미쳤나 봐.
웃음소리가 핸드폰 너머 흘러들어갈까 봐 다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보고 싶다고 회식 끝나고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김석진과,
"아니 내가 내 여자친구 집도 못 가?"
"안돼요. 집에 가서 쉬어야지 대체 왜 온다는 거야."
"난 네가 있어야 쉬는 것 같단 말이야."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는 나와의 대립되시겠다.
내일 아주 중요한 일정이 있다.
오늘 퇴근하면 집에 가서 잠 푹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단 말이다.
"그럼 네가 와, 우리 집으로!"
"내 집 놔두고 거길 왜가요."
"남자친구 집이잖아! 비밀번호도 알고 있으면서 왜 안 와!"
저번에 퇴근하고 자기 집으로 오래서 갔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길이 엇갈렸는지 내가 앞에서 좀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날 바로 본인 집 들어가는 하이패스 깔아줬던 그.
비밀번호부터 지문등록까지 다 해줬더랬다.
"집에 아무것도 없어요."
"너만 있으면 되는데, 나는."
"아, 뭐라는 거야."
"내가 다 챙겨갈게. 옷은 거기 있잖아. 속옷만 챙겨가면 되는 거 아니야?"
이제 그의 집에도, 내 집에도. 서로의 물건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ㅇㅇ아, 나 진짜 너 보고 싶단 말이야. 우리 안 본 지 일주일 다 됐는데..."
"아, 그래도 오늘은 안돼요."
"왜, 술 냄새 나는 게 싫어서 그래? 그럼 술 안 마실게."
"영화 촬영 잘 끝난 기념 뒤풀인데 주인공이 술을 안 마시면 어떡해요."
지방을 왔다 갔다 하며 촬영했던 영화는,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잘 끝났더랬다.
오늘은 촬영 다 끝난 기념, 아무 일 없이 잘 마무리된 기념으로 다 같이 회식이 잡혀있는 날이었다.
근데, 회식 끝나고 우리 집 오겠다고 떼를 쓰고 있는 거다.
김석진이 밤에 술 먹고 집으로 와봐.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겠나.
"아, 몰라 몰라. 매니저한테 여자친구 집으로 간다고 해야지."
"오빠!"
"오늘도 파이팅! 이따 저녁에 봐!"
띠리릭.
그대로 전화가 끊어졌다.
허,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핸드폰을 가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고 보자, 김석진.
배식 받은 식판을 테이블에 놓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야, 깨지겠다."
"이 정도로 쉽게 안 깨져."
맞은편에 전정국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숟가락을 들어 국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따뜻하니 좋네.
오전 회진 끝내고, 밀린 처방 내리고, 수술 어시 들어갔다가 점심 먹으러 내려왔다.
오래간만에 점심시간 맞춰서 병원 밥 먹어본다.
"야,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
"오늘? 왜?"
"호석이 형이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던데. 셋이서."
"아, 그래?"
밥을 한술 떠 우물우물 씹으면서 얘기한다.
"갑자기 웬 술?"
"그냥 뭐. 오래간만에 우리 셋 다 시간 맞기도 하고, 셋이 술 안 마신 지도 오래되지 않았냐?"
"그렇긴 하네."
외과에 갓 들어왔을 때, 같은 학교 후배에 같은 과로 들어온 우리를 유난히 잘 챙겨주셨던 호석 선배이다.
그때는 선배 시간 될 때마다 저녁 같이 먹고 그랬는데...
"그러자."
"오케이. 그럼 형한테 간다고 얘기한다?"
"어."
셋이서 갖는 정말 오래간만의 술자리다.
술의 힘을 빌려서 일찍 자야지. 취하지 않게 딱 알딸딸할 정도로만 적당히 마셔야지.
[저도 오늘 저녁에 술 약속 생겼어요. 늦을 것 같으니까 회식 끝나고 집으로 가서 쉬어요. 우리 집 오지 말고.]_1:43
이러면 안 오겠지.
"여보세요?"
"응. 나 네 여보 맞아."
"뭐라는 거예요..."
말은 저렇게 나갔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왜애- 나 네 여보 맞잖아. 너도 내 여보 맞고."
또 훅 들어오는 것봐.
잠깐 시간이 생겨 옥상정원으로 올라왔다. 바람 쐬러 간다고 연락했더니 바로 전화 온 그.
"옥상 올라왔어?"
"네. 날씨 생각보다 되게 좋네요."
"또 바람 쐬면서 하늘 구경하고 있구나. 조심해. 몸 너무 앞으로 숙이지 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햇볕을 쬐면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깐, 아주 잠깐의 여유지만 행복하다.
"오늘 진짜 약속 있어?"
"네. 진짜예요. 뭐 어쩌다 보니... 일부러 잡은 건 아닌데 그렇게 잡혔어요."
"술 많이 마실 거야?"
"아뇨.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적당히 마셔야죠."
"그럼 집에 일찍 들어가겠네?"
"딱 적당히 마시고 술기운에 푹 잘 거예요."
"....."
"그러니까, 자꾸 수작 부리지 말고 회식 끝나면 오빠 집으로 가서 쉬어요."
"치이... 나 진짜 너 보고 싶은데..."
"저도 엄청 보고 싶어요."
"....."
"근데 내일 아침 일찍부터 중요한 스케줄이 있어서, 일찍 자야 해요. 기다릴 수가 없어요."
"... 알았어."
"내일 최대한 일찍 퇴근해볼게요. 그때 같이 있어요."
호출기가 울린다. 몸을 다급하게 움직였다.
"저 호출 왔어요. 끊을게요."
"응. 조심하고, 연락 꼭 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뛰기 시작했다.
김석진 목소리 들어서 그런지 좀 충전된 것 같기도 하고.
"정리 다 했어?"
"아, 네! 잠시만요!"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야, 시끄러워."
아오, 아직 술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미쳤나 저건.
해가 질랑 말랑. 밝지도, 어둡지도 않는 하늘에 진 노을이 예쁘다.
옆에서 방방 뛰는 전정국도, 가만히 서서 웃어주는 선배도. 오늘은 다 괜찮을 것 같다.
"가자, ㅇㅇ아."
저 멀리 전정국이 앞장선다.
뒤따라 선배와 나도 걸음을 재촉했다. 다들 퇴근하시나 보다. 거리가 생각보다 북적인다.
"오늘은 선배도 술 마셔요?"
"응."
웬일이래. 맨날 차 가져와서 안된다, 내일 오전부터 수술 있어서 안된다 하면서 끝끝내 피하던 사람이.
"차는요? 대리 부르시게요?"
"아니? 나 오늘 차 안 가지고 왔는데?"
"헐."
와, 이 선배 작정했나 보다.
놀란 얼굴로 선배를 바라봤다. 얼마나 마시려고 차를 두고 온 거야.
"왜 그렇게 놀라. 나 많이는 안 마실 거야."
"웬일로 선배가 차를 안 가져왔나 싶어서요. 오늘 맘먹은 거 아니에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와, 선배 미리 저한테 주소 알려주고 술 마셔요. 택시 태워 보내게."
"많이 안 마실 거라니까."
일부러 더 장난스레 말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지금 들떴다, 나.
"걱정하지 마. 나 취할 때까지는 안 마실 거야. 너 집에 데려다줘야 되잖아."
"에이, 괜찮아요."
"아니야. 말했는데, 지켜야지."
"진짜 괜찮은데."
"나 오늘 차 없다고 그러는 거야? 걸어서 데려다주는 게 싫어서? 너무한데?"
"아, 아니에요! 선배 차가 편하긴 하지만!"
"내 차가 좀 좋긴 하지?"
선배가 결국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마주 보며 같이 웃어버렸다.
오랜 사람들과의 익숙함.
"야! 빨리 와!! 왜 이렇게 느려!"
"네가 안 뛰면 되잖아!"
"형 빨리 와요!"
"어어. 천천히 가."
"얼른 가자, 우리도."
해가 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짠!"
전정국 신났다. 정말 오랜만의 셋이서 먹는 술이니, 그럴 만도 하다.
사실 나도 좀 신났다. 그래서 군말 없이 전정국 속도에 맞춰주는 중이었다.
"천천히 마셔. 고기 먹어, 고기."
우리 둘의 만담을 지켜보면서 웃으면서 고기를 굽던 선배가 둘의 접시 위로 고기를 잔뜩 올려준다.
"선배도 드세요. 왜 자꾸 저희만 줘요."
"맞아요. 형도 먹어요. 오늘 얘가 살 거예요."
"와, 말 바꾸네. 같이 사기로 해놓고. 너는 선배한테 쓰는 돈이 아깝냐? 진짜 너무한다."
"아니 ㅇ..."
"얻어먹은 게 얼만데. 양심도 없는 새끼. 선배가 우리한테 얼마나 해준 게 얼만데. 진짜... 선배 상처받겠다. 네가 그러고도 직속 후배냐? 내가 낸다, 내! 어유, 이런 걸 후배라고..."
"아!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같이 낼 거야! 혼자 내기만 해봐라!"
아, 역시 전정국 놀리는 맛에 산다.
선배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됐어, 내가 너네한테 어떻게 얻어먹겠어. 많이 먹어라."
"저희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오늘은 저희가 사야 해요."
"괜찮아. 내가 너희 말고 또 누굴 사주겠어, 먹어먹어."
고기 먹어, 얼른-하며 집게로 따뜻한 고기를 나에게 내민다.
아- 하길래 냉큼 받아먹었다. 역시 맛있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너네 이렇게 편한 모습 보는 거 되게 오랜만이다."
맨 처음 인턴으로 들어왔을 때는, 아직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바짝 얼어있었다.
그런 우리를 매번 챙겨줬던 게 선배였다.
항상 시간 날 때마다 우리 데리고 밥 먹으러 가고, 퇴근하면 밥 사주고, 술 사주고.
병원에서 꽁꽁 얼어있던 우리가 유일하게 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선배와 있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각자 맡은 일이 많아지면서 마주칠 일도 줄어들고, 서로 예민하고 날카롭게 굴까봐 대화도 조심스러웠던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셋이서 자주 나왔었는데."
"그러게요."
"형, 그때 형 때문에 외과 왔잖아요. 형 하나 보고."
외과. 남들 다 기피하는 과를 왜 선택하냐고, 동기 둘이서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선배 하나 보고 들어왔다. 아, 저 사람 있으면 괜찮겠다. 저런 의사가 되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인턴 기간이 끝나고 전공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나오지 못했다. 3년 됐는데
당직에 응급에, 더군다나 선배가 전문의가 되면서 셋이서 시간 맞추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종종 이렇게 나오자. 뭐, 자주는 힘들겠지만."
"정말 좋죠!"
전정국이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거린다. 쟤 벌써 약간 맛 간 것 같은데...
"ㅇㅇ이는, 싫어?"
"그럴 리가요. 저도 정말 좋아요."
싫을 리가.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간만의 시간은, 참으로 편안하고 그리웠다.
"조심히 들어가. 집 도착하면 연락 꼭 남기고."
"네. 형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잘 먹었습니다. ㅇㅇㅇ 너도 조심히 들어가라."
"엉. 낼 보자."
다행히 아무도 취하지 않고 멀쩡히 걸어서 집에 들어간다.
전정국은 그냥 이상했던거다.
[아직 안 끝났어?]_21:37
[이제 집으로 가려고요.]_22:19
다른 연락이 없는걸 보니 한창 회식중인가보다.
가게 앞에서 전정국과 찢어진 후, 선배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맛있게 먹었어?"
"네. 진짜 잘 먹었습니다. 또 얻어먹었네요."
"좀 얻어먹을 수도 있지, 뭐. 선배 뒀다 뭐해. 막 뜯어 먹어."
시원한 밤공기가 술이 알딸딸하게 올라 뜨거운 내 뺨을 식혀준다.
조용한 거리가, 어두운 길거리가 참 좋다.
"오늘 술 많이 안 마셨네?"
"아까 전정국이 그랬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내일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긴, 그건 그래. 예전에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는데, 이젠 그럼 안되니까."
"선배야말로 저희 때문에 많이 못 드신 거 아니에요? 고기도 계속 주기만 하고."
"아니야, 나 잘 먹었어. 술도 딱 적당해. 기분 좋을 만큼 마셨어."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 진짜 오늘도 나를 데려다줄 생각인가 보다.
"진짜 저 데려다주시는 거예요?"
"응.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집까지 어떻게 가시려고요."
"택시 타면 되지. 그리고 널 어떻게 혼자 보내. 걸어갈 거 뻔히 보이는데."
아, 들켰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이젠 전정국도 선배도 나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다.
"조용히 걸을까? 너 혼자 조용히 걷는 거 좋아하잖아."
"괜찮아요. 오늘은 기분도 좋고, 술도 좀 깨고."
"......"
"자꾸 말해야 술 더 빨리 깨잖아요."
"어지러워?"
"아뇨, 그건 아니고. 지금 딱 알딸딸해요. 집 들어가서 씻고 자면 완벽할 것 같아요."
나를 보며 씩 웃길래 나도 같이 웃었다.
둘이서 말하면서 걸으니까 또 색다른 느낌이다.
오빠한테 산책하러 나가자고 하고 싶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나가자고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다.
아, 김석진 생각하니까 보고싶다. 슬며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래도 다행이다."
"네?"
"너 요즘 밝아 보여서."
"제가요?"
"응."
내가 밝아졌나? 달라진 게 없는데.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요 근래 좀 많이 밝아졌어. 그전에는 한 번씩 엄청 힘든 게 보였거든."
"....."
"억지로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 언제 무너질까 싶어서 되게 불안했거든."
"....."
"근데, 요즘은 아니야. 되게 뭐랄까... 편해졌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유해졌어. 표정도, 분위기도."
"......"
"올 초부터였던 것 같은데?"
아, 그를 만나기 시작했을 시기다.
그를 만나면서 여유를 배우고, 위로받기 시작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거, 내 편이 있다는 거, 쉴 곳이 있다는 거, 돌아갈 곳이, 버팀목이 있다는 게 이렇게 크구나.
내 스스로도 많이 밝아졌다, 괜찮아졌다 생각했지만 남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들으니 기분이 새롭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를 생각하면 항상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새 내 일상 속 깊숙이 스며들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그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보고 싶고.
어느새 집 근처에 다다랐다.
그래도 선배 가는 건 보고 들어가야지.
"선배 여기서 택시 타요. 가는 거 보고 들어가게."
"아냐, 조금만 더 가자. 혼자 어떻게 보내. 너 들어가는 거 보고, 내가 택시 탈게."
"저도 양심이 있죠. 여기서 타고 가요."
"집 다왔다! 얼른 가자, 얼른!"
아, 자꾸 이렇게 밀리면 안 되는데.
결국 선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아파트 입구까지 들어왔다.
"진짜 선배 가는 거 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나 괜찮아. 술 얼마 마시지도 않았고, 그나마 있던 술기운도 너랑 걸어오면서 다 깼어. 얼른 들어가."
"감사합니다. 선배 내일 쉬어요?"
"응. 내일모레 보겠네."
"네. 오늘 진짜 감사했어요. 다음번엔 제가 살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얼른 들어가. 병원에서 보자."
"네!"
마지막 남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선배를 배웅하려 했건만...
나는 이렇게 또 양심 없는 후배가 되고 말았다.
저 멀리 서있는 선배에게 인사를 꾸뻑 한 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 김석진 보고 싶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통화 안 되겠지.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집으로 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 집 냄새. 약간 그의 향기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걸 보면 회식이 많이 길어지나 보다.
집에 오니 몸이 풀리면서 노곤노곤해진다.
술기운에 몸까지 풀리니, 지금 씻고 잠들면 딱이겠다.
얼른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간다. 빨리 잠들어야지. 그래야 푹 잘 수 있겠지.
어두운 새벽이었다.
무언가가 내 배 위에 턱 얹어지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불을 켜려는데...
"아직 새벽이야. 다시 자."
누군가가 내 허리를 끌어당겨 나를 다시 눕히더니 한 손으론 허리를, 다른 손으론 머리를 자기 품으로 당겼다.
토닥토닥. 익숙한 향기가 온몸을 뒤덮는다.
"... 오빠?"
"응. 얼른 자자."
기어이 우리 집으로 왔나 보다.
아직 한밤중인 것 같은데,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었구나.
술 많이 먹었으려나. 속은 안 아픈가. 별일은 없었나.
물어볼게 엄청 많았지만 잠에 취한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이마에 한번, 코에 한번, 그리고 입술에 닿았다.
다시금 손이 내 등을 토닥인다.
그렇게 그의 손길에,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