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브!
B
W. 부재불명
도운은 알딸딸한 와중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본인과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하루는 이미 잔뜩 취해 여기저기 권해지는 술잔들을 모두 받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거 또 미쳤네, 또. 창원이었다면 진작에 개입해 말렸겠지만 하루의 오해받기 싫다는 간곡한 부탁도 있었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복학생이 본인 대신 말리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하루에게 모든 신경들을 집중하던 찰나 복학생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하루가 있던 테이블에서 하지도 않은 게임에 지지 않았냐며 하루에게 벌칙주를 권하기 시작했다. 참다 못해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겨 벌칙주를 손에 쥐었다. 테이블에 있던 모든 시선들이 닿았고 기다렸다는듯 벌칙주를 한번에 다 마셨다. 이걸 마시면 나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취기가 돌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된다고 여겨 하루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마, 가자. 여기저기 당황하는 목소리와 환호하는 목소리가 울려댔지만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후배, 잠시만."
호프집을 나가 숙소 쪽으로 걸어가려고 방향을 틀었을까, 아까 보았던 하루를 말리던 복학생이 앞을 막아섰다. 담배를 피웠던 건지 바닥엔 아직 제대로 꺼지지 않은 꽁초가 찌그러져 있었다. 지금 좀 취한 것 같은데 애는 두고 가지? 꽤나 날카로운 목소리에 퍽이나 기분이 상한 도운이 흐트러지는 시야를 바로잡았다. 두고 가면,
"아한테 뭐 우짤라고요."
분에 못 이겨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아무도 맞지 않았고, 되려 균형을 잃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 졸라 아프네. 복학생이 하루에게 외투를 벗어 씌워 주는 게 도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조금 뒤척였다. 상쾌한 아침을 나타내듯 여유로운 참새 소리와…잠깐, 참새 소리? 김하루는? 도운은 벌떡 일어나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하루와 묵었던 숙소도 아니었고, 옮기려고 새로 예약한 곳도 아니었다.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급한 마음에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갔다. 일어났네. 도운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새끼다. 평온해 보이는 그에게 하루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거리는 행동을 보였다. 장난하나, 지금.
"김하루, 어딨냐고."
"후배님, 일단 진정하지?"
금방이라도 해를 가할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도운은 윤도운! 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김하루. 니 장난하나. 하루였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곧장 하루에게 달려가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냐며 숨 쉴 틈 없이 추궁해댔고 하루는 그런 도운을 살살 달랬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셋은 식탁에 둘러 앉았다. 니 근데 와 이라노. 어젯밤 넘어진 탓에 얼굴과 몸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고 그를 본 하루가 도운에게 말을 건네자 도운은 말없이 그를 경계하듯 으르렁거렸고, 그는 난감하다는듯 뒷머리를 매만졌다.
둘러 앉은 식탁에서 셋은 늦은 통설명을 나눴다. 복학생의 이름은 강영현이었고, 전에 하루가 탔던 기차에서 우연하게 만나 연락처를 나눴지만 같은 학교라곤 상상도 못했고, 뭐, 어쩌구저쩌구… 그닥 흥미로운 소식들은 아니었다. 제가 깨기 전에 둘은 이미 어젯밤 + 본인과 하루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끝낸 상태로 보였다. 생각보다 오랜 침묵이 이어지자 도운은 더 할 말도 없고, 오래 있어 봐야 불편하다며 하루에게 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그래도 밥은 먹고 가요. 오해한 게 미안해서 그래."
도운이 싫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하루가 그래도 되냐며 잔뜩 설레어하는 모습이었지만 도운은 그런 하루의 모습을 보다 울렁거리는 속을 잡고 먼저 가겠다며 영현의 집을 나섰다. 아.
"주먹 날린 건 그, 어… 죄송합니다."
꽤나 늦은 시간에 새로 잡은 숙소로 돌아온 하루는 영현의 집을 나서면서 제가 했던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미친듯이 도운을 털어댔다. 때렸냐, 미쳤냐, 어찌 됐냐, 맞았냐,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하루를 대충 밀어내고 때리려고 했으나 털끝 하나도 스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꽤나 안도하는 모습에 도운은 다시 한번 속이 울렁거렸다. 아, 해장 안 됐나. 가슴팍을 툭툭, 치며 물을 마셨다.
"아, 근데! 니 우짤 긴데!"
"아, 와, 와! 또 뭔데!"
대충 하루의 말을 듣자하니 어제 '그 일' 때문에 하루 본인과 도운이 아주 핫한 커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하루는 이래선 부탁한 의미가 없지 않냐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와. 니는 내가 그래 싫나? 말이가? 괜히 말을 꺼냈다 본전도 못 찾은 도운이 다 마신 페트병을 구겼다. 걍 아니라 해라. 내 잔다.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서 배려한답시고 이불을 바닥에 깔고 누웠다. 바닥의 차가운 느낌이 얇은 이불을 넘어오는 느낌이라 덮었던 이불을 좀 더 껴안았다. 내일 핸드폰 사야겠네. 나름 해장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 일'이 있고나서 벌써 삼 주가 지났다. 결국 도운도 자취하는 게 훨씬 낫겠다며 백기를 들었지만 아예 같이 사는 건 안 된다며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 방을 두 개를 얻자고 했다. 바로 옆집이 아닌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언제든지 서로가 드나들 수 있도록 서로의 비밀번호를 공유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유일하게 하루와 시간표가 다른 날은 금요일이었다. 하루는 금공강에 성공했고, 도운은 실패했기 때문에 교양 과목을 듣기 위해 아침잠을 쪼개어 겨우 수업을 들었다. 삼 주나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소문은 식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같은 과 선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소문의 진상을 물어봤고 하루와 도운 둘 다 그저 소꿉친구라고 해명해댔지만 진상을 알고 난 후엔 그저그런 가십거리가 된 듯 보였다. 나라면 이게 더 재미있겠다.
"일어났냐?"
"누고…."
"얼씨구야."
누군지 보지도 않고 받은 건지 비몽사몽, 꽤나 잠에 잠긴 것 같은 하루의 목소리에 도운은 헛웃음이 나왔다. 해가 중천이다, 가스나야. 금요일엔 도운의 강의가 끝나면 하루의 집으로 가 점심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항상 집에서만 먹으니까 먹는 게 한정적인 것 같다는 생각에 도운은 오늘은 밖에서 먹자며 하루에게 홍대는 어떠냐, 신촌은 어떠냐, 말을 건넸다.
"내 오늘은 약속 있다…."
"뭐? 누구랑?"
"일단… 좀 자고…."
뚝, 하루는 잠에 취해 말도 제대로 못 끝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고? 전화가 끊겼다는 걸 알려주듯 반짝, 하고 화면을 보여주는 아이폰을 가만히 보던 도운은 학식이나 먹어야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학식 돈까스를 먹었다. 아, 이거 김하루가 먹었으면 욕했겠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렸다. 그냥, 맛이 별로 없었다. 혹시나 하루가 그 사이에 준비하고 나가서 길이 엇갈릴까, 도운은 오피스텔로 무작정 뛰었다. 누굴까, 누구지. 아, 김하루 치사하게 지만. 비밀번호를 치고, 노크를 했다. 무슨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난장판이었지만 그 사이에서 하루는 고등학교 때도 입지 않았던 치마를 입고 있었다.
"뭐고."
"아, 왔나."
"니 누구 만나는데?"
"미안타, 내 오늘 영현 선배랑 약속 있어가."
아. 도운은 이 생소한 느낌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서 오른손으로 입을 막았다. 와, 니 어데 아프나? 하루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도운은 대답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 대충 손을 흔들고 하루의 집에서 나와 본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속이 안 좋았다.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뛰어서 그런 거다. 아니, 그냥 돈까스가 맛이 없어서. 아니, 하루가 치마를 입은 게 이상해서. 아니, 어쩌면…….
도운은 먹었던 학식을 온전히 게워냈지만 게워낼 것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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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운이의 시점이에요 이렇게 하는 게 풀어내기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브금 넣는 법을 요즘 찾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쉽지가 않아서요
빠른 시일 내로 터득해서 읽으실 때 조금 더 몰입감 있게!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