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빠08 |
경수가 나간 그 자리에서 여전히 앉아 있는 백현이였다. ‘백현아’‘...’‘좋아해’ 나지막한 너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생생하게 울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간 너의 체온이 아직도 나는 느껴지고 있다. 그 체온을 느끼려고 내 머리 위로 한쪽 손을 올렸다. 휑 했다. 네가 나간 그 자리가, 너무나 휑-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백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잡아야 한다. 지금 이렇게 멍하니 생각을 정리할 타이밍이 아니였다. 지금이 아니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다가 올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뛰어 나갔다. 경수 때문에 내려간 일층을 가리키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보다 계단이 훨씬 빠를 것 같다는 생각에 백현이 계단으로 허둥지둥 내려갔다. 계단으로 내려오면서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백현이 초조해졌다. 얘 또 바보같이 비 다 맞으면서 가다가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닌지 몰라.
ㅡ도경수!
저기 멀리서 타박타박 길을 걷고 있는 경수가 보였다. 100M 달리기 할 때 보다 더 빠르게 달려 나간 백현이 바로 앞의 경수의 어깨를 붙잡아 걸음을 멈추게 했다. 여태 울고 있었던 건지 새빨갛게 변해버린 두 눈으로 백현을 쳐다보던 경수의 동공이 크게 변했다. 백현아, 너 비 맞잖아. 라고 말하며 서둘러 백현의 머리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려다 놓으려는 경수의 손을 탁 하고 잡은 백현이다.
ㅡ대답은. ㅡ... ㅡ대답은 듣고 가야 할 것 아냐.
예상치 못한 백현의 말에 경수가 말 없이 백현을 바라보았다. 아, 대답. 내가 할 말만 하고 나와 버렸구나. 혼자 중얼거리다시피 말한 경수가 체념한 듯 한 표정으로 백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백현에게 잡힌 자신의 손이 이유 없이 초조해져 오는 듯 했다.
ㅡ...도경수 ㅡ응 ㅡ똑바로 나 쳐다 봐 ㅡ... ㅡ너 나 좋아해?
재차 묻는 백현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떨리는 백현의 두 눈을 바라보는 경수였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걸까. 난 너의 속을 모르겠어, 백현아. 너 또 이렇게 화를 내버리고 가버릴 까봐. 나는 지금 나를 붙잡고 있는 네가 너무나도 좋은데. 나의 대답으로 인해서 네가 괜히 나를 싫어하게 될 까봐. 나는 그게 무서워. 백현아.
ㅡ대답해줘 ㅡ... ㅡ경수야, 제발.
경수의 팔목을 잡은 백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경수. 그렇게 떨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제발. 제발 대답해줘. 내가 잘 못 들은 것이 아니라고, 너도 나와 같다고 그렇게 대답해줘. 제발.
ㅡ좋아해. ㅡ... ㅡ그래, 변백현. 나 너좋아해.
이젠 정말 나도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경수의 시야에 자꾸 물방울이 튀는 듯 백현의 얼굴이 흐릿 하게 보여 그가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다. 가만히 눈을 감고 다시 뜨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또렷해지는 백현의 얼굴은 경수가 상상한 그 이상의 표정이였다.
ㅡ경수야. ㅡ... ㅡ너는 나를 보면 ㅡ... ㅡ옆에 계속 있고 싶고, 혹시라도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ㅡ... ㅡ내가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것만 봐도 불안하고. 또 옆에서 막 지켜주고 싶고. 그래?
경수는 백현의 말에 두 눈만 깜빡였다. 좋아한다는 자신의 말에 도리어 경수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이 줄줄이 말하는 백현의 말에 흠칫 놀란 경수가 백현의 강렬한 두 눈을 쳐다보았다. 백현아, 너 혹시 눈치라도 채고 있었던거니?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경수가 숨을 들이 마셨다. 이렇게 된거 계속해서 현재의 감정에 충실해지자. 솔직해지자, 도경수.
ㅡ응. 난 그래. ㅡ경수야 ㅡ... ㅡ나도 그래.
빗방울이 서서히 줄어 들기 시작했다. 비에 홀딱 젖은 경수가 백현을 마주하고 섰다. 백현아. 조금은 쉰듯한 목소리의 경수의 부름에 냉큼 응. 이라고 대답을 하는 백현이였다. 말 없이 백현을 빤히 쳐다보는 경수의 시선에 백현이 슬쩍 고개를 내렸다. 뭘 그렇게 자꾸 쳐다봐.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의 백현의 말에 사알짝 입꼬리를 올린 경수가 와락 백현의 등을 감쌌고, 그대로 백현에게 안겼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듯한 백현도 이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자신을 안은 경수를 끌어 안았다.
평생 이 시간이 소중한 날이였으면 좋겠다. 늘 비가 내린 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말이다.
* * * * *
ㅡ따뜻한 거라도 줄까?
백현이 준 수건과 옷으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온 경수에게 조심스럽게 묻는 백현이였다. 응. 전에 하도 울었던 터라 갈라진 목소리로 경수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왼쪽 발목의 깁스를 만지작 거렸다. 깁스 안의 붕대가 비를 맞아 다 젖은 듯 하다. 의사선생님이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이주일만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ㅡ깁스 언제 풀지? ㅡ월요일날. ㅡ같이 갈까?
경수의 앞에 따뜻한 코코아를 내민 백현이였다. 그런 그의 말에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경수였다. 뭐, 이틀 전에 그런거니깐 괜찮겠지. 대충 수건으로 속 안의 물기까지 빼낸 경수의 앞으로 백현이 헤어드라이기를 내밀었다. 조금 말릴래?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경수가 헤어드라이기를 받아서 자신의 한 쪽 옆에 놓았다. 경수가 조심스럽게 컵을 들어서는 코코아를 한 모금 물었다. 비는 정말 지나가는 소나기였던 모양이였다. 진짜로 그쳤다. 경수의 입 안에서 달콤하게 퍼져 나가는 코코아 때문인지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진 경수가 다시 베시시 웃었다.
ㅡ경수야 ㅡ응? ㅡ궁금한게 있는데
뭔데? 잔을 옆으로 내려 놓으며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 백현을 바라보았다. 양쪽 뺨에 새빨갛게 물든 백현이였다. 의외인 백현의 모습에 경수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바보같아, 변백현.
ㅡ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쳐다보지 못하는 얼굴과는 달리 질문이 꽤나 직구였다. 백현의 말에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경수가 살짝 부은 자신의 눈을 만졌다. 여전히 경수를 쳐다보지 못하고 방바닥만 쳐다보던 백현의 시야에 언제 다가온건지 경수의 깁스한 발이 보였다. 어라? 싶어서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경수가 정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ㅡ백현아 ㅡ... ㅡ중요한 건 지금이잖아.
아. 경수의 말에 작은 탄성을 내뱉은 백현이였다. 진지한 백현의 표정에 경수가 웃으면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방바닥에 땅을 짚었다. 그러나 그 손이 움직이기도 전에 백현의 손에 단단히 붙잡히고 말았다. 갑자기 잡힌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경수가 왜? 라고 물으며 백현을 바라보았다. 할말이 있다는 듯한 백현의 입꼬리가 씰룩 거리더니 완전히 올라갔다.
ㅡ그래, 중요한건 지금이지.
그리고 경수에게 맞닿는 백현의 입술. 그들의 두번째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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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비 |
드디어 백도가 행쇼네요 ㅂㄷㅎㅅ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백현에게 고백한 경수였죠. 경수는 그냥 솔직해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백현이는 혼란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재확인하기로 마음을 먹고, 경수에게 달려갔죠. 결국 경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백도네요♥
늘 제 볼품없는 글이 재미있다고 해주시면서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 분들 하나하나 너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싶어요! 이번주는 이틀에 한번 꼴로 연재 될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인 일이 이번주에 많이 겹쳐서요..ㅠㅠ대신 주말에는 7년전 이야기가 끝나있을 정도로 폭풍연재할게요!
늘 감사합니다.
암호닉
오세훈/ 텐더 / 폴리니/ 백도러 / 볼링공 / 떡뽀끼 / 베가 / 또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