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o Noir w.P 왜 이렇게 자주 올라오는지 궁금하시다고요? 원래 좀 써 둔 거 푸는 거라서요... ^^; 안물안궁이세여? 죄송해여... * 마감 잘 하고 문 잘 닫아라. 와이너리 점검 잘 해 두고. 종인이 손을 뒤로 흔들며 하우스를 나갔다. 딸랑. 사람이 다 빠져 나가고 없는 하우스 안에 자그맣게 종소리가 뿌려졌다. 와이너리를 점검하기 위해 앞에 서자 짙은 오크통 냄새와 잘 숙성된 와인 향이 감돌았다. 사장도, 사람도 없이 고요한 하우스 안에 있으려니 향이 더 짙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여인들의 짙은 향수 냄새가 바에서는 끊이지 않았었지. 경수가 뻐근한 목을 꺾었다. 두둑, 둑.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한 병 정도는 월급에서 까도 괜찮겠지." 경수는 저가 제일 좋아하는 보졸레 누보 와인을 잘 모아 둔 곳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한 병을 뽑아 들고 와이너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바 안의 서랍에서 포스트잇과 펜을 꺼내어 휘갈겼ㅡ메모를 쓴 본인은 휘갈겨 쓴 것이겠지만 정작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히 괜찮은 글씨라고 다음날 아침에 이 메모를 본 종인이 말했다ㅡ다. 「보졸레 누보 한 병 마셨습니다. 월급에서 까세요. 하트. - 경수」 사장실 문 앞에 메모를 붙인 뒤 단단히 붙었는지, 떨어지진 않을까 하고 포스트잇을 재차 확인한 경수는 이내 안심하고 바로 향했다. 안에서 스털링 잔을 하나 꺼내 잘 닦은 뒤에 오프너를 꺼내 와인을 땄다. 퐁. 하고 경쾌하게 와인을 막고 있던 코르크가 뽑혀 나왔다. 냄새를 맡자 향긋한 와인 향과 같이, 오크 나무 향, 그리고 미미한 가죽 냄새. 만족스럽게 웃은 경수가 코르크를 무심코 던져 버리려다 종인의 말을 기억해 냈다. 코르크는 꼭 바 옆 쓰레기 통에 버릴 것. 경수는 픽 웃으며 바의 선반 위에 코르크를 올려 두었다. 그 코르크는, 경수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쪼르륵. 와인 병에서 흘러 나온 붉은 레드 와인이 잔의 벽을 타고 둥글게 흘러서 잔을 채웠다. 경수는 어느정도 찬 와인 잔의 스템을 잡고 들어 올려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희미한 조명의 빛을 투영하여 붉게 빛나는 와인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경수는 개인적으로 이 시간을 정말로 좋아한다.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간 마감 시간에, 바에는 조명이 켜져 있고. 한산하고 고요한 하우스 안에서 혼자 즐기는 와인은…. 누가 그랬던가? 와인은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것이라고. 누군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말 하나는 참 잘 했었을 사람이었으리라 경수는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하다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미미한 과일향. 달콤하게 넘어가는 와인에 경수가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 마감 시간인 줄도 모르고 주방에서 졸고 있던 백현이 깬 타이밍은 경수가 마악 두 잔 째로 스털링 잔에 담긴 와인을 마시려 림을 입에 가져다 댄 그 순간이었다. 백현이 주방 문을 열고 나가자 경수가 놀란 듯 백현을 보며 아직 안 갔느냐 묻는다. 백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바 스툴에 걸터 앉았다. 오랜 시간 앉아서 졸다가 갑자기 일어난 탓에 눈 앞이 잠깐 암전되며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경수는 그런 백현을 물끄러미 보다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바에 몸을 느슨하게 걸쳐 기댄 백현이 경수에게 말했다. "이번엔 머금고 오물오물, 안 하네." "그게 뭔데요." "와인 시음하러 갔을 때." 경수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하자 백현이 아직 잠에 취한 얼굴로 나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때 네가 말해줬잖아. 와인 맛 볼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백현이 짧게 숨을 뱉어내곤 말을 이었다. 난 다 기억하는데. 계속 쉬지 않고 말을 털어 내는 백현에, 경수가 이질감에 물든 얼굴로 백현을 보다 목이 타는지 또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곤 잔을 와인 병 옆에 내려 두었다. 백현이 병을 힐끔 보더니 손을 뻗어 병 목을 잡곤 제 입가로 가져가더니 벌컥벌컥 병째로 와인을 들이키곤 턱 소리를 내며 병을 내려 놓았다. 경수가 멍한 얼굴로 병을 들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순식간에 가득 차 있었던 와인이 반 이상 비워져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경수가 울상을 지었다.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내 월급인데." "다음엔 내 월급에서 까, 그럼." 백현이 마실 때 흘러내린 와인 덕에 붉게 물든 제 유니폼을 보곤 한숨을 쉬었다. 경수가 툭 뱉었다. 사장님한테 혼 나시겠네요. 그리고 작게 덧붙였다. 쌤통이다. 백현을 밉지 않게 흘기던 경수가 백현의 입가를 지나 목을 타고 흐르는 와인 방울을 보더니 가만히 닦아 주었다. 경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의 조명은 흰 색인데. 백현이 조명을 받고 있다면 얼굴이 발갛게 물드는 일은 없을 터. 백현은 경수가 자신을 빤히 보자 고개를 돌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너 다 먹고, 나 시간 늦었으니까 얼른 퇴근할게. 황급히 준비한 뒤 도망치듯 하우스를 나서는 백현에 경수는 또 한번 고개를 갸웃하며 의구심을 표했다. 딸랑, 딸랑. 백현이 나간 자리에 종이 맑게 울었다. - 백현은 가끔씩 경수가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경수야 전혀 의식하고 하는 행동은 아니었음에도, 자신이 의식하고 자신이 너무 신경을 써 버리니, 이건 분명 제가 경수에게 품은 감정이 더 벌어지는 이유이리라. 백현은 제 목을 타고 오르던 경수의 손가락이 남겼던 흔적이 후끈거리며 달아오름을 느꼈다. 하여튼 도경수…. 백현이 걸음을 더욱 빠르게 하며 선선한 밤바람으로 도경수 덕에 제대로 피가 몰려 뜨끈하게 열이 오른 얼굴을 식혔다. 분명 그가 하는 행동은 별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인데, 이런 조그마한 행동에 저가 지나치도록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도경수…. - "그나저나, 어디 보자." 그렇게 백현이 급하게 하우스를 빠져나가고 난 무렵, 경수가 바 안 쪽에서 꺼내 들고 온 것은 새하얀 봉투였다. 아까 일을 하던 도중에 사장이 네게 온 것이라며 툭 던져주었던 것이었다. 조심스레 봉투를 뜯자, 봉투 안에는 사진 하나와 엽서가 같이 들어 있었다. 노을이 막 지려는, 하늘빛과 다홍빛이 아름답게 섞인 사진이 하나 있었고, 에펠탑이 그려진 작은 엽서가 있었다. 찬열이 보내 준 것이었다. 엽서에는 찬열의 글씨로 편지가 쓰여 있었다. 찬열의 글씨는 그를 쏙 빼닮아 아이같은 구석이 있었다. 경수는 와인을 홀짝이곤 편지를 읽어 내렸다. 「경수 씨, 찬열입니다. 저는 무사히 프랑스에 도착했어요. 도착해 보니까 마침 하늘이 저렇길래 찍어 봤어요. 예쁘죠? 경수 씨가 하늘 사진을 좋아한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 따로 인화해서 보내요. 그거 보고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다. 하여튼, 나 없는 동안 잘 있어요.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금방 돌아갈게. 보고 싶습니다, Mon le plus beau garçon. 」 경수는 마지막 말에 가만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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