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림자가 내 발목을 붙잡는다.
질척여 떨어지지 않는다. 끈적이는 독 같았다.
독은 치명적이고 해롭다. 그건 내게 독이었다.
가위를 들어 손가락이 부서질 듯 쳐봐도 소용없다.
그는 없고, 그림자만이 날 따라다닌다.
01. 정재현
'덥다. 물 마실래요?' 처음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뭐야. 카메라 켜진 거야?' 아직도 생생하다. 지우지 못한 영상들만 수십 개였다. '제육볶음 해줄게. 너 좋아하잖아.' 하지만 '기다려 봐. 먼지 묻었어.' 과거다. '이제 가야 해.' 이것조차도 과거다. "비행기 놓치겠어. 나중에 연락 주겠니." 말하고서 사라졌다. 남는 건 미련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떠났다. 나중은 없었다.02. 나재민
'옆에 누워. 피곤하다며~.' 아직도 침대에 누우면 향기가 가득했다. '달고나 커피, 만들어봤어?' 처음 만들어봤을 때. 팔 아프다고 징징대던 게 기억난다. 화보 찍냐? 묻던 내게 마냥 웃어 보였다. 이것도 기억난다. "다음 생에도 만날까?" 그래, 지금은 행복하니. 아직도 다음 생을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곁에 없어 소리 없이 눈물로 잊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03. 김정우
'안녕. 나는 정우야.' 입모양으로 몰래 말을 걸어왔다. 영상이 낡은 만큼 오래전 일이다. '케이크 먹자! 너 생일이라며~.' 1년마다 반복되는 날이었음에도 정확히 알고서 날 챙겼다. 볼에 크림을 묻히는 건 익숙해졌다. '우리도 나중에 딸 낳자! 나 닮은 딸.' 차라리 내가 못났다 하라고 성질을 냈었다. 그럴 때 김정우는 '너 닮은 아들도 좋지~.' 하고 능청스레 넘어갔다. 그러나 해가 뜨면 달은 졌다. 나는 너의 행복을 여전히 품고 살지만, 너는 나를 더 이상 품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웠던 과정과 달리 끝은 쉽게도 찾아왔다.04. 이마크
'웬일로 영상통화를 다 걸었어?' 그거 알아? '오~. 게임 잘하는데.' 네가 날 보고 웃는 날은 '계속 이럴 거면. 나 너랑 상대 안 해.' 만나 온 세월에 비해 냉정하게도 적었다는 거. 사랑이 어려웠고, 어색했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허공에 대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지만. 그래도 난 널 사랑했어. 가끔 이렇게 고르기 글도 가져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