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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love 上~下
같은 배경입니다! 시즌 2로 봐주세요!
소년, 너의 자리 上
01.
"신랑, 신부 입장-!"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 얼마나 걸렸더라. 시민은 기억 저편을 더듬었다. 몸의 두 배는 되는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고모부의 팔목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저를 보고 있는 남자가 서있었다. 아무렴 어떤가, 천하의 원수지간이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설마 네가 이시민?'
'어. 그런데 뭐.'
첫 만남부터 꼬였다 생각했는데. 손뼉 치는 긴 하객들 사이로 주마등처럼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로소 화려한 조화들 사이로 도착했을 때. 시민의 손을 잡아주던 그는 한때 가장 증오하던 존재였다.
이후에도 여전할지는 모르겠지만.
*1
다들 이시민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쟤는 예민해요." 화가 많고 까칠한 아이. 이시민은 고작 싸가지 없는 아이, 그 정도였을 뿐이다. 기타를 치다가도 줄을 당겼다. 지가 뭔데 나보고 그래. 기분이 더러워져 기타를 내려놨다. 그래, 맞다. 이시민은 그들의 말처럼 화 많고 조절도 못한다. 예민하고, 우발적이다. 그게 이시민이었다.
"왜 혼자 있냐."
"너희가 없ㅇ.."
"하긴, 맨날 혼자 있는 거 좋아했지."
"신경 꺼."
"까칠하다 진짜."
이러면서 제 반응을 당연시하게도 나쁘게 봤다. 짜증 나게, 그냥 성질 안 좋은 이미지로 가지 뭐. 동아리방에서 만난 이동혁은 그중에서도 이시민의 신경을 건드렸다. 고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악질이라고 이시민은 생각했다.
"코드 틀렸다고, 아니라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언제나 저리 싸늘하게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이시민은 아니꼽지 않게 반응했다. 다시 시작하자고 신호를 준 이동혁에 뒤에서 드럼 소리가 들렸다. 손을 들어 기타를 내려다본 이시민은 코드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나 되었다고 또 호통 소리가 들렸다.
"매일 이 부분에서 틀릴 거냐? 잘 좀 하자."
분명히 맞게 쳤다. 악보 순으로 잘 보고 리듬을 느끼면서. "너 여기 왜 들어왔냐? 의욕도 없을 거면서." 그리고 성격 안 좋다 소문난 이시민은 참을 인을 외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넌 아까 음이탈 장난 아니더만."
이때부터 그들의 은은한 기싸움은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시티 고등학교 공식 싸움꾼들.
*2
"뭐야. 너도 2번?"
".. 재수 옴 붙었네."
"말 심하게 하네."
"떨어져 앉아."
"나도 여기 앉고 싶어서 앉는 거 아니야."
나이키 가방을 책상 밑으로 내려놓은 동혁이 자리에 앉았다. 책상을 끌고 옆으로 당긴 시민은 턱을 괴어 창밖을 봤다. 어쩜, 자리를 배정해도 이리 배정되는지.
"야."
"..."
"무시하지 말고. 진짜 봐봐."
"왜."
"너 한사랑이랑 친하지?"
"아니."
"거짓말 하.."
"아니라고."
단호한 시민의 대답에 한수 누그러든 동혁은 의심을 그치지 않았다. 책상에 엎드려 버리는 시민이었기에 곰곰이 생각하다 알겠다 말하고선 교실을 나갔다. 드르륵-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리고 시민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한사랑은 왜 묻는 거지?
*3
"오늘 연습 와라. 빼지 말고."
"아 갈 거야. 누가 보면 여태까지 안 간 줄.."
운동장을 뛰다 왔는지 땀 범벅이었다. 운동화에서 삼선 슬리퍼로 갈아 신는 동혁이었다.
"맞다. 커피우유 마실래?"
"네가? 나한테? 구라 적당히."
"싫음 말고."
"아니? 줄 거면 주던가."
"ㅋㅋ 구라인데 속네."
저 새.. 저리 말하며 나가버린 동혁은 한 번 더 당부했다. "연습 꼭 와라!" 듣기 싫어서 시민은 귀를 막아버린다. 이런 건 이제 일상이고, 어서 빨리 2학년이 되기만을 바랐다.
*4
"헐 밖에 비 오는 거?"
시민의 앞자리 아이가 지루한 수업이 끝나고서 외쳤다. 그에 다른 학생들의 한탄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엥 진짜네?" 동혁은 시민의 뒤로 오더니 창문을 열었다. 보슬비처럼 오던 비가 거세지더니 시민의 교과서로 물방울들이 튀었다.
"아! 이동혁. 비 다 튀기잖아!!"
"ㅋㅋㅋㅋ 교과서 다 젖었죠~?"
"안 닫냐? 닫으라고!!"
시민이 동혁에 팔을 잡아당겼다. 뒤로 도망가면서도 입으로 놀려대는 게 얄미웠다. 그 모습을 봐도 익숙한 듯 제 자리를 지키던 아이들 중 하나가 "또 싸우냐. 지겹다 정말로." 이리 말하며 창문을 닫았다. 교과서를 닦던 시민이 흉흉한 눈빛으로 동혁을 쳐다봤다. 슬금슬금 의자를 빼어서 앉던 동혁을 등져 누웠다. 내가 다시는 상대하나 봐라.
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친해서 유치하게 투닥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민은 동혁을 미워하고 있었다. 의도한 것도 아니면서 자꾸 제 신경을 박박 긁는 상대에 대한 분노가 다였다.
"한사랑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복도에서 요란스러운 대화들이 들려왔다. 한사랑은 우리 학교 최고 미인이었고, 인기도 최상이었다. 물론 시민에겐 그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그 정도가 다였지만.
"너 진짜 한사랑 몰라?"
"어. 아니, 알아. 쟤."
옆에서 동혁이 진지하게 다시 물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랑과 시민은 마주쳐도 모른 채 했고, 말도 섞지 않았다. 과거의 친하단 소문은 물거품에 불과했다.
"우리 집에서 나가."
"여기가 왜 네 집이야? 고모네 댁이지."
"나가라고!!"
"허.. 그래. 나간다. 치사해서라도 나갈 거야!"
한바탕 싸우고 후에는 한 집에 살면서도 없는 척 굴었다. 시민은 사랑의 부모님 댁에 얹혀살았고, 둘은 사촌지간 사이다. 고모 부부는 시민에게 할 수 있는 한에서 지원을 해주며 친절하신 분이었다. 항상 그 사실을 곱씹으며 상기시키는 건 사랑이었다. 언제부터 이리 꼬인 걸까. 그래도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사랑과 시민, 이름부터가 너무 달랐던 우리 둘은 성격조차 맞지 않았다.'
*5
"아.."
"...ㅎ"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새 학기에 떨리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이키 가방을 메고 옆에 서 있는 동혁은 허탈하게 웃기만 했다. "또 같은 반이네." 전혀 긍정적인 말투가 아니었다. "옆자리는 피하자." 시민도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작년 내내 짝꿍이었던 것도 모자라 2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이번엔 부디, 멀리 떨어지기를 기도했다.
"사랑아! 너 이거 놓고 갔어."
"고마워."
하늘의 뜻이 정녕 이렇다면 따라야 할까. 따라야 맞는 거겠지. 불행 중 다행으로 동혁과 떨어져 앉게 되었지만 불행이 한가지 더 있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양옆으로 달갑지 않은 존재들이 한 반에 모여있었다. 한사랑과 눈이 마주쳐 피하자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왜. 뭐.'
'친한 거 맞네.'
'넌 아직도 집착이냐? 적당히 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미쳤냐? 내가 왜?'
매정히 고개를 돌려버린 시민은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입모양으로 속삭이며 말을 전하던 둘은 동혁이 처음 보는 표정으로 부탁을 해오는 걸 일방적인 무시로 끝냈다. 시민은 어딘가 기분이 거슬렸다. 이동혁이 한사랑을 좋아할 확률은 사실상 있을만하지만 굳이 저가 직접 이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보나 마나 뻔하게 이어달라는 부탁이겠지. 어딜, 감히.
*6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왜 아는 척이야. 난 너 몰라."
편의점에 들어서자 보이는 건 예상외에 인물이었다. 파란 조끼를 입고서 "어서 오세요." 외치는 웬수 같은 놈이 보였다. 먼저 아는 체 해오는 동혁에게 귀를 막고 자리를 피한 시민은 그대로 나가려다 말았다.
"여기서 알바 해?"
"나 모른다면서요."
"됐다.."
그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라면 하나를 집었다.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시민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찰랑이며 꺼냈다. 삑- "너 한사랑이랑 무슨 사이인데."
바코드를 찍으며 화면을 보다 시민에게로 시선을 돌린 동혁이 말했다. 끝까지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여기서까지 한사랑.. 대체 무슨 일인데."
"마지막 질문이야. 진지하게 알아야 해서 그래."
"아, 그 부탁? 너 뭐 한사랑 좋아하기라도 하니?"
시민의 물음에 표정을 구긴 동혁이 입을 열었다.
"그건 또 뭔 소리.."
동혁이 차마 말을 끝내기도 전에 딸랑- 거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외쳐야 할 동혁이 조용했다. 이상함을 느낀 시민이 뒤를 돌아보자 어려 보이는 남자애와 그 옆엔 손을 잡고 입는 남자가 보였다. 밴드로 살짝 가려진 아이의 볼에는 옅은 흉터가 있었다.
"여기 데려오지 말라니까."
"형아 보고 싶다고 울잖아. 동운아, 형이다~!"
형아! 나 사탕 좀! 반갑게 '형' 이라 부르며 계산대 앞으로 달려간 아이가 말했다. "이동운. 이빨 썩는다고 했지?" "내가 보고 싶긴 개뿔. 사탕이 보고 싶어서 왔구만?" 중간에서 낀 시민만 어리둥절해 하다 라면을 챙겼다.
"형, 얘 집에 데려가. 나 금방 끝나니까."
형? 아.. 셋이서 가족인가 보네. 추측성만 난무했지만 대충 그리 생각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아, 이시민."
".. 뭐."
"잘 가라고. 학교에서 보자~."
조용히 나가려다 동혁에 부름에 뒤를 돌아본 시민이 고개만 까딱 끄덕이고 딸랑- 문을 열고 나왔다. 인사는 왜 해. 누가 보면 친한 줄 알겠네.
.. 내가 인성이 부족하기는 한가 봐.
02.
"뭐 하세요. 멍 때리세요?"
"잠깐 추억 회상 좀 했다."
"아~. 나도 기억난다. 그때 이시민 성격 지랄맞았었는데."
"결혼한 사람 보고 지랄?"
"네~. 죄송합니다. 출발이나 할게요."
말을 돌리던 동혁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첫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에 새 집으로 들어온 둘은 여전히 다퉜다.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거 없어 보였다. 도로로 눈이 소복소복 쌓일 때쯤 시동을 껐다.
"눈 온다."
"눈 오니까 기억나네. 자기는 그거 기억나? 눈싸움하겠다고 맨손으로 만지다가 내가 막 차가워하니까 당신이 장갑 낀 손으로 감싸줬잖아."
생생히 기억나는 상황에 습기 찬 창문을 지우다 운전석에 앉은 동혁에게 말했다. 그리운 건 아니었지만 다음으로 오는 남편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그랬나?"
"하여튼.. 결혼하더니 변했어."
"아잉. 무슨 소리야."
"어디서 애교야."
"이시민은 하나도 안 변했어.."
힝구 소리를 내며 시무룩해는 동혁을 보다 하얗게 뒤덮인 거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랑이 시작되던 그날, 떨림과, 질투로 가득했고, 원망과 배신감도 느꼈던 그날. 모든 날이 이렇게 눈이 한없이 쌓이던 계절이었다.
*7
이동혁은 가수가 될 거라고 희망찬 포부를 다졌다. 그래서 연습에 더 빡셌고, 특히 기타를 담당한 시민에게 더욱 박했다. 정작 시민은 단지 취미였을 뿐이기에 저에게만 유난히 예민한 게 싫어한다 생각해서 그런 줄 알았다.
"똑바로 하자, 제발."
"틀리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시비야?"
"시비? 시비가 아니라.. 너만 여기서 진심 없이 하잖아."
야. 하고 따지려던 시민이 멈칫했다. 뒤를 돌아 주변을 빙 돌아보자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보였다. 진지한 낯빛을 하던 동혁이 이어서 말했다. "그냥 최소한 열심히라도 해달라고. 다 티 내지 말고."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던 소문이 생각났다.
'이동혁, 진짜 가수 가능한가?'
"그래. 내가 나갈게."
기타를 내려놓은 시민의 말에 동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대신, 완전히는 말고. 나는 취미로 하는 거니까 여기랑 안 맞는 거 같네." 어차피 기타는 둘이었다. 동혁뿐만이 아닌 다른 아이들조차도 쟤네 또 저러냐 이런 식으로 쳐다봤다.
"야, 그런 뜻이 아니잖... 하.."
손등을 이마에 대고 한숨을 내쉬자 공기가 싸해졌다. 시민은 저도 알았다. 지금 자신의 태도는 이기적이고 유치하다는걸. 포기한 것인지 동혁이 나가라 손짓하며 말했다. "어. 네 맘대로 해라. 나가던가. 시간 정하던가. 그 편이 나름 편하겠네. 너도. 나도."
"그럼 난 혼자니까 점심시간은 내가. 나머지 시간은 너희가 써."
사실 이래도 되는지는 모른다. 일시적인 거라 생각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이시민은 생각보다 더 노빠꾸였다.
*8
"진짜 싸가지 없는 놈.."
괜히 나서서는 쫓겨났다. "우리 시간이야. 넌 취미로 하는 거라며, 양보하지." 중요한 일정이 있다며 원래 저가 쓰기로 했던 점심시간이어도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시민이다. 문틈에서 서성이며 중얼거렸지만 동혁은 냉정했다.
"안 나갔니?"
"네~ 네~. 나갑니다."
시민도 후회되었다. 여기 멤버들과 맞지 않는다는 어설픈 괴리감으로 홧김에 한 말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어린 애도 아니고 한심했다. 진짜 괜한 자존심 때문에 무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여기 아니면 잘하는 것도 없는데. 그저 취미라 생각하고 개인으로 빠져준 거라고 스스로 느꼈지만 막상 기타를 놓으려니 서운함이 들어 아예 벗어나지도 못했다. 누구 맘대로 빠져준 게 아니라 손해를 본 걸지도 모른다.
*9
현관문에서 급히 신발을 신는 사랑이 보였다.
'오해든. 뭐든. 이제 너 보기도 싫어!'
싸우고서 무시로 일관하는 게 어느새 반개월 정도가 흘렀다. 먼저 말 거는 거 자존심 상하는데. 용기를 낸 시민이 사랑을 불렀다.
"야. 아니..! 잠깐만."
대꾸도 않고 일어나는 사랑에 급하게 팔을 잡았다. 당연히 거칠게 쳐낸 사랑이 말했다.
"싸운 거 잊었니? 할 말 없어."
"한 가지만 물어보는 것도 안되냐?"
"어. 되도록이면 터치도 하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
저를 증오스럽게 보는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 누군 좋아서 그러나. 저번, 편의점에서 하던 말과, 왜인지 갈수록 더 귀찮게 할 거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한사랑을 붙잡았다.
"이동혁이랑 무슨 사이야?"
"... 이동혁?"
"무슨 사이냐고."
만일, 둘이 그런 사이라면, 아니 꼭 자신이 생각한 사이가 아니라도 조금이라도 가깝다면 시민은 여기서 빠질 예정이었다.
"걔가 누군데."
한사랑이 같은 반이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지독히도 관심이 없다는 걸 잊었지만.
*10
완전한 사람은 없다지만, 자꾸만 이동혁과 붙어 다니게 됐다. 타이밍이 잘 맞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까지 소문이 났는지 우리를 못 붙여 안달이었다. "둘은, 봉사하고 가야지." 따로 해도 되는 걸 굳이 같이 시켰다. 저번에 동아리실에서 싸우고 일방적으로 탈퇴 아닌 탈퇴 선언을 해서 어색해 죽겠는데.
"이런 날씨에 운동장을 돌라고..?"
"그러게. 그냥 봉사하고 가면 되지. 그런 말은 왜 하는데?"
"내 탓으로 돌리지 마라."
"그럼 내 탓이리?"
동혁이 먼저 앞은 보이나 싶을 정도로 오는 눈에 얼빠진 소리를 냈다. 때는 20분 전, 담임의 말에 알겠다 끄덕이고 나오려던 참이었다. "쌤, 꼭 같이 해야 해요?" 우는 시늉을 하며 아련하게 묻던 이동혁이었다. 그에 옆에서 이시민도 거들었다.
"맞아요. 각자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쟤랑 할 바엔 혼자 하고 말지."
"야. 너만 싫냐? 나도 싫거든!"
"예~. 어련하시겠어요~!"
욕만 안 할 뿐이지 말만 섞으면 살벌한 대화를 나누던 둘은 약하게 투닥대는 거 같으면서도, 말리지 않으면 도를 넘어갔다. 점점 거세지는 언성에 교무실에서 정적이 일었다.
탕-! 그때, 가만히 서 계시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몽둥이를 책상에 휘둘렀다.
"어디서 소란이야! 너희 둘 다 운동장 10바퀴 돌고 와!"
오리걸음을 안 시켜서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할지. 순간 다른 의미로 조용해진 교무실에는 둘이 나가고 평화가 찾아왔다. 끝까지 투닥대던 둘은 벌이 더 강해지기 전에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12
"쌤 창문으로 보고 계시냐?"
슬쩍 교무실 창문을 바라보던 시민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제서야 속도를 줄이던 둘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드러누울 기세로 느릿하게 걷던 동혁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들었다. "그건 어디서 났어?"
"봤냐. 이게 준비성이라는 거야."
주위에서 자박자박 쌓인 곳을 지나 주차되어 있는 차로 다가갔다. 무슨 차인지도 안 보일 정도로 눈에 뒤덮여 있었다. 그러더니 퍽- 물음표 상태던 시민이 어깨를 정통으로 맞았다. 축축하고 차가운 촉각에 눈이 돌아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넌 뒤졌다."
"응~! 아이고, 무셔랑."
"거기 안 서?!"
맨손인 것도 잊은 건지, 운동장 가운데로 달려가 많은 눈을 모은 시민이 떨어지는 눈 조각들을 안 새어 나가게 막으며 약 올리는 동혁에게로 달려갔다. 여기저기 잘 피하던 동혁도 평범치 않은 시민의 눈빛에 필사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퍽-
본격적인 눈싸움은 방과 후 봉사 시간에 시작되었다. 이렇게라도 서로에게 쌓였던 화를 푸는 듯했다.
*13
-붉게 상기된 볼과 손으로 주저앉은 시민은 어리둥절했다. 저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 손에서 차가운 온기가 돌았다. 점점 느껴져오는 감각에 바닥에 앉아 양손을 비비던 시민의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들자 동혁이 거대한 눈송이를 들고 앞에 서있었다.
"잠시만! 야.. 타임이다? 네가 인간이냐??"
뭔지도 모르고 겁을 먹은 시민이 소리를 질렀다. 더 가까워오는 그에 눈을 힘주어 감은 시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분위기에 실눈을 떴다.
"어.. 어....?"
"손 시렵냐?"
주저앉은 저의 앞에 동혁이 엉덩이가 닿지 않게 무릎을 접어 마주 앉아서 저리 질문했다. 부쩍 가까워진 그의 얼굴에 온몸에 온도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 결과로 볼이 더 붉어지자 동혁이 살며시 물었다. "추워?" 대답을 하지 않고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 동혁이 장갑 한쪽을 벗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동혁은 친절해 보였다.
"그러게 누가 맨손으로 눈 만지래?"
그리고 시민의 손을 조심히 들어 왼쪽 손에 맞게 씌워주던 동혁이 팔을 구부렸다. "이러면 좀 나으려나..?" 그리고 시민의 두 손을 부여잡았다. 동혁의 왼쪽 손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시선을 동혁의 얼굴에서 자신의 손으로 이동한 시민은 이상한 감정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자존심이 상하고, 분했지만 갑자기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금방 식었다.
"아프지만 마. 그러면 내 탓이니까."
뭐라 말도 못 하고 굳어버린 시민은 곧이어 정신을 차렸다.
"너 장갑 안에 눈 넣었지."
".... 걸렸네? ㅎ"
"미친, 놈아! 겁나 차가워! 씨..."
감정에 제어되어 못 느낀 것도 잠시,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감각에 장갑을 벗어던졌다. 뒤이어 도망가는 동혁에 뒤를 따라 달리려다 바닥에 떨어뜨린 장갑을 주웠다. 눈을 털어낸 시민이 장갑을 껴 눈을 모았다.
나쁜 새끼. 내 마음을 흔들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