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3일 그리고. 04
"후......"
숨을 크게 내쉰 나은은 일어나 나가려는 동욱의 옷을 붙잡았다.
"알았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던 동욱은 나은에게 옷을 붙잡혀 걸음을 멈췄다.
"알았으니까, 밥만 같이 먹어줘요"
"아니, 됐....."
"저 O형이라서 그래요"
".....예?"
"O형은 무인도에 갇히면 굶어서가 아니고 외로워서 죽는대요. 혼자 밥 먹기 싫어요"
"........하....."
동욱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나은은 동욱이 자리에 앉자마자 손을 들어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여기 소주 한 병이요!"
"......뭐 하는 겁니까?"
"걱정 마요. 계산 제가 할 거니까"
"그게 아니라,"
"왜요. 공식적으로 차였는데 술도 못 마셔요?"
".............천천히 먹어요"
".......근데요. 저 차였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이요"
"방금 '천천히 먹어요' 이거요. 모르는 사람이면 먹든지 말든지 할 텐데 왜 챙겨주는 말투로 말하냐고요, 사람 헷갈리게"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재주네요"
"동욱씨가 되~게 오해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에요. 밥은 또 왜 사준대?"
"그럼 제가 26살한테 밥을 얻어먹습니까?"
"먼저 밥 먹자고 한 사람이 사는 게 잘못된 거예요? 오히려 제가 지금 얻어먹는 게 염치없는 거 아닌가"
"....좋을 대로 해요, 그럼."
동욱이 포기한 듯 등을 기대고 앉아 물만 들이켰고 동시에 나은은 소주를 들이켰다.
시간이 지나고, 나은은 소주 한 병을 비웠고 동욱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물만 홀짝거릴 뿐이었다.
나은도 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채로 빠른 시간 안에 술을 들이켜 그 때문에 눈이 살짝 풀려있었고 동욱은 그런 나은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그만 가죠?"
".......동욱씨는 마지막 연애가 언제예요?"
"꼭 대답해야 합니까?"
"아니 뭐, 싫음 안 해도 되고요. 근데 우리 오늘 보고 안 볼 사이니까 그냥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도 될 것 같아서요."
"............."
"......아니면 제 고민 얘기할 테니까 들어주실래요?"
".............."
"어.....제 주위 사람들은 제가 되게 강한 줄 알고 있거든요. 뭐든 잘 해내고 긍정적이고 잘 웃고......그런 줄 아는데.......근데......다 그런 줄 아니까 제가 약해질 데가 없어요.
와, 이건 진짜 다른 사람한테 처음 말해본다."
"................"
"항상 고민 상담도 들어주는 쪽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주는 편이고....... 그동안 나도 여기저기 많이 고칠 데가 생겼는데 다 나 혼자 해야 돼요, 그런 건"
"..........."
"외동에다가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저 혼자 서울 올라왔거든요. 그래서 힘들다는 말도 못 하겠어요. ......저 옛날에는 진짜 강하고 뭐든 잘해내고 항상 긍정적이었는데
.....이제는 점점 제가 바래지는 것 같아요"
"............."
"동욱씨가 인생 선배시니까, 이럴 땐 어떡해야 돼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동욱은 나은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전화가 울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10분 정도의 가벼운 통화를 마치고 들어온 동욱은 그 사이에 나은이 소주 한 병을 더 시켜 반 병째 비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더 따르려는 나은에게서 소주 병을 급히 채간 동욱이 병을 멀리 내려놓고는 얼른 계산을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나은씨"
"................."
"나은씨....!"
어느새 정신을 못 차리는 나은을 보며 한숨을 쉰 동욱이 나은의 옷과 짐을 챙겨 나은을 부축했다.
나은과 함께 밖으로 나온 동욱은 택시를 잡으러 도로가로 향했다.
"나은씨, 정신 차려봐요! 네?"
동욱이 택시를 잡는 중간중간 나은을 흔들자 나은이 정신을 차린 듯 안 차린 듯 비틀대며 동욱의 팔을 잡고 섰다.
동욱이 나은을 살펴보자 나은은 자신을 부축하는 동욱의 손을 뿌리치고 비틀비틀 걸어가 택시를 잡았고 택시를 타서는 동욱에게 창밖으로 손을 흔들다 정신을 잃었다.
아침부터 울리는 알람에 눈을 찌푸리던 나은은 손을 더듬어 폰을 찾아 신경질적으로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토요일인 것을 확인한 나은은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이씨, 주말에 알람 끄는 거 맨날 까먹어.....
안 그래도 술 마셔서 머리 아픈......
원래 내 이불이 회색이었나........?
"허억.....!!!!!!!!!!"
나은은 낯선 방 안에서 눈을 떴다.
뭐지 어제 술 먹고 택시 탔는데?!....젠장 그다음부터 기억이 안 나네
그동안 필름은 끊겼어도 집에는 잘 찾아갔는데
어제 너무 빨리 마시는 바람에....미치겠네 진짜로....
나은은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방 문을 열고 나갔다.
집 안은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고 나은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며 짐을 챙겨 밖으로 향하는데 부엌 식탁에 포스트잇과 숙취해소제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나은이 조심스레 다가가 포스트잇을 집어 들었다.
'일어나면 연락해요. 010-****-****'
나은은 동욱임을 바로 직감하고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하...창피해서 어떻게 전화를 하냐고.....근데 왜 전화하라고 해놨지? 내가 어제 실수했나? 옷에 토한 거 아니야?! 정장 값....?!"
나은이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았다가 생각을 정리한 뒤 심호흡을 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들리고 나은은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을 겨우 진정시켰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도저히 입이 떼어지지 않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동욱이 눈치를 챘는지 먼저 말을 걸어온다.
'............나은씨에요?'
"..........그럴....걸요?"
'조금만 기다려요'
"네?! 왜요?"
'집으로 갈게요'
"네?! 아니 그...."
동욱이 전화를 끊자 나은은 더 안절부절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굴...! 얼굴 어떡하지?!
나은은 급히 수습되지도 않는 얼굴을 수습했고 다행히 평소 챙기고 다니는 향수와 구강청결제로 술 냄새를 가렸다.
15분쯤 지나자 현관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깜짝 놀란 나은은 자기도 모르게 방 안으로 다시 숨었다.
동욱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나은이 머리를 방문에 박은 채 어떡하냐는 말만 홀로 되풀이하고 있는데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아, 깜짝이야....!"
"거기서 뭐해요"
".............."
"얼른 나와요"
나은이 고개를 한껏 숙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나와 슬쩍 고개를 들다가 부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고 있는 동욱을 발견하고는 동욱이 고개를 돌리기 전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동욱이 그런 나은을 발견하고 몰래 한 번 웃고는 부엌에 기대섰다.
"잘 잤어요?"
"....저기.....진짜...진짜 진짜 죄송해요..."
"음...."
"제가 어제 너무 급하게 마셔서....진짜 이런 적이 없거든요 제가..."
"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감탄사만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동욱에 속을 모르겠어서 더 미치겠는 나은이었다.
"제가 혹시 어제....실수라도? 제가 기억이...."
"..........뭐...."
"죄송합니다 진짜......잠은 어디서 주무셨..."
"아, 친구 집이 근처라"
"아.....네...죄송해요"
"이만 나와요. 데려다줄게요"
"네?"
나은이 영문을 몰라 쳐다보자 동욱이 나가려다 다시 뒤를 돌아 숙취해소제를 가리키며 한 마디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거 꼭 먹고요"
"........?"
동욱이 나간 뒤 나은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짐을 챙긴 뒤 숙취해소제를 원샷 한 후 병을 두고 나가기가 뭐해 빈 병을 그대로 손에 쥔 채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여기까지...!!!
4편까지 쭈루룩 올렸으니 초큼만 쉬다 올게용~ 대신 좀 길죵?ㅎㅎ(무려 2편 분량이라는 사실)
크리고 여러분이 오해하시는 게 있는데 제가 바로바로 글을 쭈루룰룩 쓰는게 아니라 동욱님 글 쓰고 싶어서 최근 며칠 동안 써놓은 걸
읽어보고 수정하고 검토하고 수정하고 검사하고 또 수정하는 스타일이라.....천재가 아님뉘다...캬캬 다음편은 좀 걸릴 것 같아용
구독료는 며칠 뒤에 올 것 같아서 표시용으로? 5p만 걸어놨숩니당!
모두 동욱님 꿈 꾸세요
핫튜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