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 池田春菜(이케다 하루나) - あなたを想いたい(당신을 그리워하고 싶어) Piano ver. ]
청춘로맨스 Plorogue ~ 03 W.이브 prologue. 물러갈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던 꽃샘추위가 조금씩 사그라 들고있던 2월의 끝자락이였다. "야!" 내 불음에 꽤나 빨리 지나가던 자전거가 저만치 굴러가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지금 몇 시야?" 그렇게 멍하게 서있는 내 어깨위로 익숙한 체온의 팔이 휘감아 오고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변백현, 왜 그래? 정신차려." "어?어... 집에 폰 두고 왔어." "아... 그랬어? 늦겠다 빨리가자." "어...어." 이상하게 사람을 홀리게 하는 그런 미묘함을 가지는 그런 아이. 그 날 아침에 내가 만난 그 아이는, 정말이지 미묘한 아이였다. 01. 어김없이 오늘도 아침부터 들려온 문자음에 확인해보니, 미안. 오늘도 혼자 가야될 것 같아. 하고 날라온 찬열의 문자였다. "어? 왔네? 오늘도 일찍왔다." "응. 오늘도 혼자 왔거든." "...혼자? 오늘은 또 왜?" 왜라고 물어온다. 벌써 몇 일째다. 아니, 그것 보다야 이건 나와 박찬열 사이에 있어서 서로에 대한 예의라면 예의로써 다른사람에게는 함부로 발설하기엔 좀 그러한 이야기니깐. 그냥 대충 둘러대야겠다고 생각했다. 도경수가 이렇게나 평소에도 동그랗던 두 눈을 이렇게 더 크게 동그랗게 뜨고선 나를 쳐다보고 왜하고 물어보는 이유도 아니깐. "그냥... 찬열이가 오늘은 어디 좀 아픈가봐, 먼저 가라 그래서." "아...아파? 찬열이..아파?" 고작 다른 이유를 대서 둘러대겠다고 내뱉은 이유가 박찬열이 아프다는 핑계. 박찬열을 꽤나 좋아하게되버린, 아니 꽤나라기보다 많이 좋아하고 있는 도경수에겐 제일 좋지 않은 핑계였다. 그렇게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끄적이고 있던 크로키북도 덮어버리고 내 쪽으로 몸을 튼 경수였다. 이제 분명 이것저것 다 캐물어 볼것이다. "어디가 아프데?" "...그냥 몸살인가봐." "..많..많이 아프데?" "그냥 하루 푹 다 나을꺼같다고 하더라." "그럼 오늘도 학교 안나오는거야?" "응, 아마도." 내 마지막 대답과 함께 지난번에 박찬열에 대해 물어보던 때와 같이 꽤나 길어질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더이상 질문을 해오지 않았다. "............오늘 반배정 나는데..." "...찬열이랑 같은반 된지 안된지 내가 직접 가서 물어보고 확인하고 싶었는데..." "..........."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서 지어오는 도경수의 미소는 꽤나 씁쓸한 미소였다. "어쩔 수 없이 또 종인이 한테 물어봐야겠네..." "................" 그리고 아, 하고 짧은 감탄사를 보내며 다시 고개를 휙돌려서 나를 쳐다보는 도경수의 행동에 놀라 전송. 박찬열, 진짜 언제 올꺼야. 이제 되도안되는 변명으로 경수한테 거짓말 하는 것도 힘들어. * * * "종인이 진짜 무슨 일 생긴거 아니야?" 백현을 바라보자 금방 내가 하려던 말을 먼저 내뱉어 오는 백현이였다. 꽤나 백현도 초조한 느낌이였다. "글쎄..이렇게 연락이 안되는 애가 아닌데.." ".....내가 종인이네 교실..갔다 와볼까?"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백현의 질문에 조금 의아했다. 어색함이 물씬 흐르는 두 사람 사이인데, 알고 지낸지 2년이 되어가는 시점에도 어색함이 잔뜩 흐르고 있는 두 사람이였다. 그렇게 점점 조그맣게 줄어들던 뒷모습이 전혀 안보일 때쯤이였다. 휴대폰이 손안에서 꽤나 길게 진동을 하고, 액정위로 낯익은 이름이 떴다. 박찬열. 황급히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귓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한껏 떨리는 감정을 속으로 몇 번이고 추스리고서는 그 감정처럼 떨려버릴까 조심스레 여보세요. 하고 목소리를 내었다. "밥 먹으러 가야지. 여기서 뭐해." 뒤에서 그리고 내 귓가에서 동시에 똑같은 말과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름 상황판단을 해보겠다고 뒤를 돌아보니 익숙하게 내 어깨에 팔이 올려져 오는데. "밥먹으러 안가?" 멍하게 뚫어져라 찬열이를 보고있으니, 다시한번 수화기넘어로 그리고 내 바로 옆에서 또한번 박찬열만의 저음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안 아파?" "...........응?" "....아프다며." "..............." 내 물음에 아무대답 없이 한동안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 그냥 서있다. 찬열이는 그렇게 한동안 그냥 서 있었다. 보고싶었어. 요 몇 일밖에 못 본건데 어찌나 니 능글맞음이 보고팠는지 알아? 하고 말하고싶었다. 하지만, 이런 날 모르니깐. 모르니깐 꾹 눌러담는다. 내 속 제일 깊은 곳으로 꾸겨넣는다. "배고프다. 밥먹으러 가자." "어?! 백현이랑 종인이 아직 안왔는데.." "걔들은 걔들끼리 알아서." 그렇게 두 번째로 찬열이와 단둘이서의 점심시간이였다. 02. 행복했던 기억이라던지, 딱 기억에 남는 머릿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만한. 그런 기억을 꺼내보려고, 그 순간의 느낌을 생각으로나마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없다. 머릿 속에서 맴도는 기억들은 이미 다 곡을 써내는데 다 써버린 그런 감정들이였다. 다시 눈을 뜨고 음표하나 찍히지 않고 그저 높은 음자리 표 하나만 우둑하니 그려져있는 오선지를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어느순간부터 였다. 곡을 억지로 써내기 시작한게. 추억거리가 없었다. 아니 없다기보단, 곡이 될만한 그런 추억과 그리고... 감정들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오선지들을 차곡히 모아 파일을 열어 파일 속으로 집어넣어버렸다. 언제 부터였을까. 한숨을 쉬고 파일을 다시 덮고서는 나즈막하게 손을 들었다. 교실을 나왔다. 정말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복도의 오묘한 그 정적이 좋아서, 깨고 싶지 않아서 나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서. 다른 교실들을 지나쳐 걸었다. 조용한 학교를 미술관 마냥 숨죽이며 감상하 듯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운동장 쪽 창가에서 들어오는 봄햇살, 그 햇살과 잘어울리는 하얀색 창살. 그리고 그 창살 사이에 있는 초록색 잎의 나무들도. 다 좋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실이 아닌 도경수를. 웃고있다. 예쁘게. 봄처럼, 화사하게. 눈부시게. 한동안 그렇게 빠져있었다. 추억에, 그리고 피아노에. 온몸에서 땀이 날정도로. 흠뻑 취해있었다. 정갈하게 뜨는 세글자에 나는 그냥 다시 주머니 속에 폰을 넣어버린다. 그냥, 나도 모르게 받고 싶지 않아졌다. 정적이 흘렀다.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던, 추억으로 물들어 따뜻했던 교실이 다시 차가워져가고 있었다. "종인아." 누가 나를 불러온다. 나즈막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살며시 눈을 떠본다. 같이있어? 박찬열하고.. 박찬열하고 같이있어?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내 옆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는 변백현이 눈에 들어온다. "종인아." 다시 나를 불러오는 변백현의 목소리에 멍하니 변백현의 손을 바라보며 응? 하고 멍청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도경수가 처음 만날 그 날에 내게 했던 말을 해온다. "나도 피아노 가르쳐 주면 안될까?" 그 날의 도경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찌릿하게. 그렇게 아려왔다. * * * 몇 일전 일 덕분이다. 이렇게나 내가 한가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게. 듣고싶었다. 변백현의 대답을. 변백현이 대답해준다면, 변백현이...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면. "요 몇 일 사이에 어디 갔다온거야?" 멍하니 그저 식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젓가락으로 밥만 휘적휘적 대면서 생각하고 있는데, 마주 앉은 경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아픈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변해버렸나보다. 순하게 조금 쳐지고 동그란 눈하며, 저렇게 자기 주변사람들 생각하는 마음하며, 남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저 차분한 목소리도, 딱 착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아냐,아냐. 안아퍼. 밥 먹자." 그래. 아프진 않다. 다만 기분이 이상할 뿐이다. 그래, 고등학교 3학년. "경수야." 아래로 박고있던 경수가 고개를 들어 응? 하며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그 순한 눈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그 세상에 있는 느낌은 어떤 느낌이니? 넌 언제 그 세상으로 갔니? "넌 미술 왜 해?" 내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음..그러니깐 뭐라고 대답해야되지. 하고선 우물쭈물하는 경수를 계속해서 빤히 쳐다봤다. "그게 다야?" "남기고 싶어서. 내 추억들, 잊어버리지 않게. 내가 직접 그때의 느낌을 살려서 남기고 싶으니깐." 아까 들은 대답보다 꽤나 의미있는 말이여서. 바보처럼 멍하게 경수를 바라보다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질문. "경수야." "응?" "내가 한심해?" 나도 뱉어놓고는 아차, 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그리고는 내 질문을 들은 경수를 바라보고있자니 질문을 하고나서 괜히 내 스스로가 비참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궁금해져 왔다. 정말 내가 한심한걸까? 지금의 내 모습이... 한심해? 혹여나 지금 마주앉아 순한 얼굴을 한 경수도 나와 다른 세상에 서있는 사람 중 하나라서. 저 순한얼굴을 하고도 냉정하게 한심하다고 대답할까봐 내심 걱정을 했다. 너도 내가 한심하니?....한심..한거야? "아니, 왜! 누가 한심하대?" "아니, 그냥." 다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보이며 경수에게. 03. 고개를 숙인 채 식판을 뒤적거리기만 하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온다. 그리고는 그 오묘한 눈빛이 나를 바라보고있다. 그 눈빛을 나는 그저 멍하니 쳐다보았다. 멍하니 종인이가 응? 하고 그 저음의 목소리로 나에게 대꾸해줄 때까지 아무말을 하지 않고. 하지만, 돌아오는 말 소리는 없다. 그냥 너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는 너에게 내가 여기서 아무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래, 그냥 니 목소리가 듣고싶었다. 그리고, 그냥 니 이름이 불러보고싶어져서 그랬다. "너는 피아노 언제부터 치게 된거야?" 너에 관해서, 너에 대해서, 너와 관련된 질문들이라면 그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못할 것들은 없을 거니깐. 내 질문에 꽤나 대답이 없다. 한참동안이나 그냥 멍하게 나를 바라본다. 그 멍하게 바라보는 종인이의 나른한 눈빛이, 하지만 그 나른함에서 느껴져오는 오묘함이. 꽤나 사람을 빨아들이는 그런 묘함이 있어서. 나도 멍하게 바라봤다. 그저 멍하게 마주앉은 종인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식-하고 조금 씁쓸한 느낌의 미소를 지어왔다. 항상 보여주던 그 미묘한 웃음과는 느낌이 다른 서글픔이 섞인 듯한 미소였다. "초등학교 6학년때 부터." 그 말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대답해오는 종인이의 목소리에 취해. 박찬열의 문자였다. 악보에서 원하는 느낌대로, 아니, 형이 이 곡을 만들 때, 연주했을 때 표현해내고 싶었던 느낌으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 들었던 그 커다랗고 웅장하던 그 박수갈채들이 떠오르게 아주 가까이에서 크게 들려왔다. "넌 이름이 뭐야?" "................" 이름을 물어오는데도, 아무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대답을 하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저 천천히 눈만 깜빡이며 여전히 그 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잡아도 될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저, 나랑은 정말이지 다른 사람 같아서. "니가 친 피아노 곡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 "그래서 말인데..." 우물쭈물 거리는 그 날의 경수 행동이, 불과 몇 분간 아니 몇 초간의 그 모습과는 조금 달라서. 그 정적이 흐르는 데도,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니,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그냥.. 그 날 처음 봤는데도. 그 날 처음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더 이렇게 해서라도 같이 있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적이 조금 깨지고 나서 내가 먼저 자리에 일어서려는데. "니가 싫지 않다면, 나한테 피아노.. 가르쳐 주지 않을래?" 도경수에게 이끌려서.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그 서늘한 추위에 언제쯤에나 나올지 전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굳게 닫힌 박찬열의 대문을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뭐라고 또 나는 바보처럼 장난감 코너에서 기뻐하는 아이처럼 집에서 곧장 튀어나오는 바람에 휴대폰도 침대위에 고이 두고 나와버렸다.
그리하여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내가 어언 이렇게 박찬열이 나올때까지 기다리고 있는게 20분정도 지난거 같은 느낌.
그 때, 나랑 똑같은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내앞을 쓱하고 스쳐지나가는 걸, 문득 시간이 궁금해져서 그 아이를 꽤나 큰 소리로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가던 아이는 자전거 안장에 앉은 채 그대로 고개만 돌린 채 나를 뚫어져라 계속 쳐다보기만 하였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아무말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아이의 시선에 괜히 민망해져서, 나는 큼큼 괜한 헛기침을 하며 그아이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나를 뚫어져라보고있던 시선을 자신의 손목 쪽으로 옮기더니 이내 교복 마이의 소매를 살짝 밀어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서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 아이는 입가에 먼지모를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일곱시 삼십분.하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꽤나 매력있는 저음의 목소리였다. 외모와 사뭇 잘어울리는 목소리였고, 그 아이가 짓고있던 그 알수없는 미묘한 웃음과도 꽤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 미묘한 웃음과 목소리에 나는 꼭 그 아이에게 홀린 듯 뻥찐 채 그 아이를 계속 쳐다보고있었다.
그런 나를 뒤로한 채 다시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서 점점 그 아이는 멀어져갔다. 멀어져가는 그 아이의 모습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상하게 아른거렸다. 그 미소지은 얼굴이. 그 나즈막한 목소리가.
이상하게 또한번 듣고싶고 또 한번 보고싶어지는 그런 얼굴과 목소리였다. 그만큼이나 매력이 있는 그런 아이였다.
"조금 늦는다고 먼저가라고 문자했는데. 못봤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계속 귓가에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정말 미묘한 아이였다. 청춘로맨스 01
괜히 그 문자에 이상하게 이제는 짜증이 솟구치는게 괜히 집앞 대문을 쾅하고 닫고서는 혼자 등교를 했더랬다.
학교를 와서도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 짜증에 교실문을 탁하고 열어재치고선 바라본 교실 분위기는 꽤나 어수선했다.
어떡하냐는 소리를 몇번이나 반복하며 자기들끼리 손을 부여잡고 제발제발을 연신 외쳐대는 여자애들 무리와 벌써 3학년이되는거냐며 이제 마음대로 컴퓨터도 못한다며 어린애처럼 징징대는 남자애들 무리들이 넘쳐났다. 이게 무슨 분위기인가 싶어 일단 내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와 자리에 앉으니, 내 옆자리에 앉은 경수는 역시나 양쪽 귀를 엠피쓰리 이어폰으로 틀어막은 채 크로키북위로 무언갈 끄적이고 있었다.
뭘 그리나 싶어서 빼꼼히 팔에 교묘히 가린 사이로 보이는 하얀색 크로키북을 훔쳐보고 있자니, 내 눈길을 감지한건지 이어폰 한쪽을 손으로 빼더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서는 해맑게 웃어보이는 경수였다.
하지만 진짜 무슨 일인지 다 말하자면 꽤나 길어진다.
그 핑계에 꽤나 이번엔 심각한 표정을 지어오며 나머지 한쪽의 이어폰도 거칠게 빼버리고선 다시 나한테 박찬열이 아프냐고 재차 확인해오는 도경수의 말에 아차, 싶었다. 둘러대려고 내뱉은 핑계 중에 잘못된 핑계를 선택해버렸다.
이제 저 계속 무엇부터 물어야하나 하고 우물쭈물하며 달싹거리기만 하는 입술에서 나올 뻔한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말이다.
그저 다시 덮었던 크로키북을 펼치고는 한숨을 훅 쉬고선 다시 책상으로 바르게 돌아 앉아서는 꼭 크게 낙심한 사람처럼 웅얼거리는데, 꽤나 그 모습이 귀여워서 풉하고 웃으니 다시 나를 한번 쳐다보는 경수였다.
뭐 평소때도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귀엽다는 소리는 귀에 딱지 앉도록 듣는 도경수이긴 하다만.
그리고 연신 크로키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꼭 내게 말을 건내듯이 들려오는 도경수의 말.
아, 그 말에 드디어 상황정리.
어수선한 교실분위기가 왜그런지도 이해가 되고, 그리고 지금 내 옆에서 저렇게 울상이 되어버린 경수가 왜저리 심각할정도로 울상인지도 이해가 된다.
그래, 벌써 3학년이다. 이 학교에 들어온지가 얼마 안된거 같은데 벌써 3학년이란다. 벌써. 내가 김종인을 처음 본날이. 그리고 내가 김종인을 보고 두근거림을 느낀지도. 그 두근거림으로 나 혼자 속앓이를 하는 것 모두가.
그 모든게 2년이 지나고 이제 3년이 되려고한다. 벌써....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지나가려고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떤 조그만한 핑계를 대서라도 박찬열하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쓸떼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눈에 보여서.
하지만, 한편으로 아프다는 박찬열이 엄청나게 걱정되고 신경쓰인다는 생각이 다 들어나는 미소라서.
그래서 괜스레 죄책감이 느껴졌다.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라서. 그래서...... 그냥 따라 웃었다. 아무말 없이 그저 거울처럼 그 미소를 따라서 웃어주었다.
그 미소를 거두고선 고개를 다시 크로키 북으로 돌리는 경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말 없이 다시 조용히 이어폰 두쪽을 귀에 꽃고는 아무일 없다는듯이 다시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하는 경수였다.
................왠지 다 알고있는 데 속아주는 듯한 느낌이들었다. 그때처럼 또 그랬다. 다 아는데도 일체 따지지도 않고 그저 그냥 넘어가주는 듯한.
그런 도경수의 모습에 나는 또한번의 알수없는 죄책감에 책상 밑으로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옆에 앉은 도경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자판을 꾹꾹 눌러가며 메세지 하나를 작성했다.
[ 박찬열, 언제 돌아올껀데? ]
꽤나 화들짝 놀란 내 행동에 얼굴에 물음표를 크게 하나 띄우고서는 고개를 한번 갸우뚱 하더니 원래 자기가 하려더 했던 말을 내 뱉는 도경수였다.
"그럼 오늘 점심은 나랑 너랑 종인이 셋이서 먹는건가?"
전송완료. 라고 뜨는 휴대폰 액정을 보고나서야 나는 다시 경수와 눈을 마주치고선 나도모르게 어색하게 미소짓고,
그보다 더 어색하게 아,아마도? 하고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벌써 15분이나 지났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서는 급식소 앞에서 백현이와 둘이 이렇게 나란히 서서 기다리고있는 게.
문자도 언제오냐고, 밥은 먹을꺼냐고, 무슨일있냐고, 답장좀 해달라는 식으로의 내용으로 6통이나 보냈는데 모조리 씹혔다.
정말 무슨일 생긴거 아닌가 싶어서 전화도 3통이나 해봤는데 도통 받을 기미도 안보이고, 야속하게 수신음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절대 무슨일이 있어도 이렇게 까지 연락을 무시할 김종인이 아닌데, 정말 무슨 일이 생긴거 아닌가 싶은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같이 지내온지 어언 2년이 꼬박 넘어가니, 종인이 이렇게까지나 연락을 무시할 아이가 아니라는걸 어느정도 알테니 연락이 안되는 종인이를 나와 같이 걱정이 되는 듯했다. 이렇게 연락이 안된 건 이전까지는 딱 두 번있었다. 피아노 연주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미친듯이 방학 내내 집에서 피아노만 치던 때. 그리고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중 어느날. 그리고 오늘이 세번째다. 분명 학교 등교까지 같이 해놓고선, 점심시간때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져 놓고선 연락이 없다.
그런데 지금 그 두 사람 중에 한명인 백현이 그런 질문을 해오는게 왠지 의외라서. 나도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진짜? 하고 되물어버렸다.
그러자 내 반응에 꽤나 민망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응.하고 민망함에서 나오는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백현이였다.뭐 나름 어색한 사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백현의 노력인거 같아 그럼 갔다와. 하고는 종인이네 교실로 향하는 백현이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선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해서, 다시한번 여보세요. 하고 목소리를 내자.
박찬열이다. 아프다던... 박찬열이 서있었다. 난 그 날 그 때처럼 다시한번 벙 쪄버린 채 박찬열을 올려봤다. 다시 그 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미술실의 쾌쾌한 먼지냄새와 얼떨결에 가까워진 찬열이의 몸에서 나던 비누냄새가 다시한번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느낌이였다.
.........멀쩡해 보인다. 아프다던 박찬열이, 멀쩡히. 전혀 아프지 않은 모습으로 내 옆에 서있다.
아직도 내 옆에 서있는 게 진짜 찬열이라는게 믿기지가 않아서, 수화기를 귀에서 떼어내고는 찬열이를 마주하고선 아무말 없이 서서 물었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이내 다시 생글생글 웃으면서 안 아파. 꾀병이였어. 하고는 평소때처럼 능글맞게 내 머리를 톡하고 쳐왔다.
이제야 진짜 박찬열이구나 싶어서, 나도 마주보고 웃었다.청춘로맨스 02
초록색 칠판 빼곡히 하얀 분필로 적힌 글자들이 한곳도 빠짐없이 박혀있었다. 초록색 칠판이 하얀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려와서, 책가방에 들어있던 검은색 파일을 조용히 책상위로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파일을 열어 파일안에 빼곡히 들어있던 오선지 몇 장을 책상에 늘어놓았다. 깨끗했다. 깨끗한 흰종이 위에 다섯개의 줄들 질서정연하게 삐뚤어 지지도 않고 곧게 뻗어있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추억들을 되새김질 해보았다.
그냥 갑자기 피아노가 치고싶어져서. 도경수와의 추억들을 연주하고 싶어져서. 거짓말을 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아니, 거짓말은 아니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파란색으로 2-5 라고 적힌 푯말에. 옮기던 발걸음을 나도 모르게 멈춰서고는 그 교실을 훔쳐봤다.
그 예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꽤나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별관 음악실 앞에 와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문을열었다. 조용했다. 추억을 연주하긴 딱 좋은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커튼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햇빛도, 그리고 아무도 없어 정적이 흐르는 이 별관과 똑같이 흐르는 교실안의 정적도. 문을 닫고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을 하나 살짝 눌렀다. 그러다 댕- 하고 정적사이로 커다랗게 피아노 소리가 울렸다.
왜 멀어지는 것만 같을까. 도경수 너는 내게서만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점점 더 멀리, 아니라고 생각할 수록. 아니라고 믿고 싶을 수록. 야속하게도 더 멀어진다. 그래서 이렇게서라도 니가 멀어지지 않고있다고 믿고싶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을 연주한다. 그 때의 너와 나의 거리감으로 돌아갔다고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고 있던 곡이 끝나고 정신이 들었을 때 때마침 오른쪽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폰을 꺼내들었다.
도경수.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연주했다. 널 처음만났던 그때를 연주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주하다 그대로 피아노 위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동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뜨면, 내 눈앞에 니가 웃고 있었으면 해. 그랬으면 좋겠다.
서서히 밝아오는 시야에 들어온건, 도경수가 아닌 변백현이였다.
다시 눈을 감았다.보고싶은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리고 물었다. 경수는 하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가느다랗고 예쁜 손이였다. 피아노를 치면 더욱 빛날 것 같은 그런 예쁜 손이였다.
그러자 건반을 바라보던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웃는다. 도경수가 생각나게 꽤나 예쁘게 웃어온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던, 정말이지 고민따위 없이 즐겁게 잘 살고있던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면서 학교에서 이제 막 집에 돌아온 나에게 아버지가 오라고하시더라. 라고 전해주는 엄마의 말에 잠시 미국으로 갔다.
역시나, 분위기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당연하기도 했다. 내가 이 집안에서 대접받을 만할 그런 애가 아닌걸 나도 잘 알고있으니깐.
하지만 의외였다. 꽤나 날 못괴롭혀서 안달이던 친척분들과 그리고 그닥 나를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에게서 내뱉어온 질문은. 그 질문을 받고나서 한참동안을 생각했다. 그리고 변백현에게 문자를 했다. 너도 내가 한심하냐. 라고. 답장이 없었다. 분명히 읽었을 것인데 답장이 없었다.
나도 내가 받은 질문에 해답을 내릴 수만 있을 것 같은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답이 없다. 내 질문을 모르는 척 회피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각해봤다. 변백현의 대답을, 그리고 그 대답에 따라 달라질 내 결정들을.
꽤나 심각한 목소리에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려 마주앉은 경수를 바라보니, 눈을 댕그랗게 뜨고는 무슨일 있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있다.
그래서 그냥 괜히 멋쩍은 웃음만 지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면서 아니,아니야. 밥먹자 하고는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 입안으로 넣었다.
딱히 이래저래 소문내고 다닐 만한 일은 아닌 거 같으니깐. 그리고... 그래, 그냥.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해야 되는 일이니깐.
한참동안 내 눈치를 살피느라 밥도 안먹고 내 표정만 살피던 경수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참 착하다. 그래, 김종인이 좋아할만 하다.
싫은 척, 나쁜 척, 아닌 척 하면서 남 생각하고 챙겨주는 변백현의 착함과는 사뭇 다른 착함이다. 변백현과는 조금 다른 그런, 아직은 익숙치 않은 선함이다.
이제 문턱 앞에까지 왔다. 내가 도대체 뭘 해야되는걸까. 어떻게 해야되는건지. 왜 난 이런 생각을 이제서야 해야되는 건지. 그냥 조금 울쩍해졌다.
지금 이 급식실 안에 있는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꼭 한발짝밖에 차이 안나지만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세상에 서있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딱 그런 느낌이였다. 한발짝만 내밀면 갈 수는 있는데, 내 발을 누군가 묶어놔서. 그 발을 풀 방법이 없어서. 그리고 그 발에 묶인 무언가를 끊어낼 용기가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는 느낌이였다. 이걸, 내 발을 묶고 있는 이 무언가를 어떻게 풀어야 될까? 그 생각에 사로 잡혀 마주앉은 경수를 불렀다.
묻고싶은 건 턱끝까지 차올라오는데, 턱끝까지 차오르는 많은 양들의 질문들을 꾹꾹 눌러 참은 채 제일 궁금한 한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자 히죽 웃으면서 부끄러운 듯이 말하는 경수의 대답은.
"좋으니깐. 그림그리는게, 좋으니깐."
생각보다 허망함을 느껴지는 대답이여서, 괜히 다른 대답을 해달라는 듯 보챘다.
그런 허망한 대답말고, 좀 더 크나큰 의미 있는 대답을 해줘.라고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는 듯이 조금 칭얼거리며 보챘다.
그러자 음... 하고 다시 뜸을 들이던 경수가 다시 대답하기를.
멍하게 경수를 바라보았다. 다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걸까? 그렇게 자기가 하고있는 거에 대한,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걸까?
아니, 그냥.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이 된 느낌이라서. 그래서, 누가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니가 지금 나한테 말한 것처럼, 변백현도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밥 다먹었으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능글맞게 물어봤다. 내 제안에 경수도 봄과 같이 밝게 웃으면서 응! 하고 마치 여섯 일곱 쯤 된 아이마냥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해왔다.청춘로맨스 03
어색하기 짝이없었다. 마치 오늘 처음 안 사이인 마냥. 아무말이 없었다. 그저 마주앉은 종인이와 나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소란스럽게 떠드는 급식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러넘쳤다. 벌써 안지 2년이 다되가는데, 그런데도.
처음 종인이를 경수에게서 소개받았을 때, 그때와 별로 달라진게 없었다. 이런 어색함이 싫다. 매일 만나도 단둘이 있으면, 아무말도 안하는 이런 사이가 난 싫다. 원래 조용조용한 성격인 종인이의 탓도 있지만, 그런 김종인 앞에 서면 아무말 못하는 나도 문제가 있어서. 그래서, 그게 싫으니깐.
"종인아."
괜히 먼저 내가 불러보았다. 조심스럽게 먼저 그 익숙하면서도 익숙치 않는 이름을 불러보았다.
내 말을 듣고 있다고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니가 집중하고 있는게 나라고, 지금 너의 모든 포커스가 나에게 맞춰져있다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 대답 하나로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서 아무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 한참 동안이나.
아무말도 내뱉지 않으면 그나마 나에게 향하고있는 니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할까봐. 괜히 그 시선마저 날 외면해버릴까봐, 그런 조급함과 조바심에 괜히 니 이름을 한번 더 불러봤다. 종인아. 하고 다시한번 불러오는 내 불음에, 그제서야 마주하고있던 너의 얼굴에서 그때처럼의 미묘한 웃음이 새겨져간다.
그리고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다 다시 나를 쳐다보고서는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하고 조금은 다정한 듯 하면서도 무뚝뚝한 너의 그 대답이. 막상 들려오는 너의 대답에 그냥 아무말도,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를 쳐다보며 나에게 집중해주는 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니깐. 그러니깐.
쓸떼없는, 아니 쓸떼없기보다는 그냥 뜬금없는 질문을 해본다.
그렇게라도 니 목소리를 듣고싶으니깐. 그렇게라도 너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으니깐. 그렇게 해서라도.. 너와 이야기 하고 싶으니깐.
하지만, 그 미소도 꽤나 매력이 넘쳐서. 종인이의 지금의 눈빛과 너무 절묘한 조화를 이뤄서. 아아, 하고 속으로 감탄아닌 감탄을 하며 종인이의 그 입꼬리에 눈을 떼지 못하고있을 때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딱 알아듣기 좋은 명확한 대답이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집중하던 시선을 돌려 다시 식판으로 향하는 니 시선을 다시 붙잡고 싶어서. 김종인과 한번이라도 더 눈을 마주 하고싶어서.
조금이라도 니 목소리를 더 듣고싶어서. 오늘만이라도 너와 평소보다는 기나긴 대화를 하고싶어서. 조바심을 느끼고는 다시 한번 꼭 말을 토해내 듯이 급하게 입밖으로 내뱉었다.
"왜 하게 된거야?피아노..?"
식판을 뒤적거리던 종인이의 젓가락질이 순감 멈칫하고 멈췄다. 종인이 뒤로 보이는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은 분주해 보이는데, 꽤나 오랫동안이나 종인이는 그렇게 멈춰있었다. 그렇게 멈추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멍하니 아래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종인이를 바라보자 아차, 싶었다.
괜히 미움을 받으면 어쩌나 싶어서. 그래서. 다시 그 말을 없던걸로 하려고 나는. 괜히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 안해주고 싶으면 안해도 돼. 라고 말하려는 그 순간. 다시 웃어온다. 시선은 여전히 아래로 향한 채. 아까와 마찬가지로 서글픔이 섞인 듯한 미소가 입꼬리에 걸려져온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그 웃음을 더 진하게 지어 오며.
"잃고 싶지 않아서."
꼭 뭔가에 홀린 듯 아찔하게 흐릿해져 오는 정신을 부여 잡고는 멍하니 내 맞은 편의 미묘한 웃음을 바라보며 바보같이 그저 응? 하고 다시 되물었다.
응? 하고 되물어 보는 내 말에 다시 한번 그 아릿한 목소리로 잃고싶지 않으니깐. 하고 아련한 느낌의 말을 해온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그 미소를 거두고선 아무일 없던 것 처럼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서는 자기 입으로 넣는 종인이의 모습을 아직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앞에 그 마약같이 중독되는 종인이 만의 미소들이 선해서. 잊을 수가 없어서. 혼자 그 미소들에 취해있을 때였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져왔다. 그 진동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더듬어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니,
[난 11반. 경수랑 같은 반이더라. 넌 몇 반이야?]
* * *
지겨워 질 때쯤이였다. 그냥 그 모든게. 하얀색의 건반사이사이에 올라가있는 검은건반을 쳐다보기도. 그리고 그 건반위에 손을 얹어 연주하는 것도.
그 건반들에서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바라보면, 오선지라는 종이 위에 빼곡히 그려져있는 검은머리들의 음표들도. 멈추고싶을 때였다.
내가 하고 있는 지금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싶어서.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 날 내가 들었던 형의 연주처럼. 그때의 그 느낌으로, 내 생에 마지막이 될꺼라고 생각하며 연주를 했다.
역동적으로, 그리고 천천히. 그러다가 또 다시 빠르게. 그리고 슬프게.
마지막 한음을 치고나서 감고있던 눈을 천천히 뜨자, 다시 내 눈앞에 정말 오차하나 없이 고르게 정렬된 건반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지막이였다고 생각했다. 이게 정말 마지막. 그리고는 아직 그 건반위에 올려진 채 멈춰진 내 손을 천천히 내렸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한 남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해맑게 웃고있다. 내가 쳤던 형의 곡과는 너무 상반되게. 어울리지 않을 분위기의 아이였다.
한참을 쳐다봤다. 순수함. 그래, 처음 봤을 때.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본 그 아이의 모습은 순수함. 딱 그것이였다.
"너 피아노 되게 잘친다."
잘 어울렸다. 그때 들려왔던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그 애가 풍기는 분위기와 꽤나, 아니 아주 잘어울렸다.
너무 잘 어울려서, 분명 말을 걸어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멍하니, 아무말 없이 그 애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말 없이 바라보고있는 내가 이상하지도 않은지 정말 티끌하나 없이 맑은 웃음을 보이며 피아노 의자에 걸터 앉아왔다.
여전히 맑게 웃고있었다. 그리고는 피아노 건반 하나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대답 없는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다시한번 피식 웃어보이더니 내 왼쪽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김..종인? 하고 내 이름표를 읽어오는 그 목소리에 이상하게 가슴이 찌릿해왔다. 내 이름표를 그렇게 더듬거리며 읽더니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씨익 웃으며 손을 건내왔다. 건내져온 손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도경수. 반가워."
악수를 청해왔던 것이였다. 그래, 알고는 있었다. 악수를 하자는 뜻이라는 걸.
내가 저 손을 잡는다는 것이 저 순수함에 때를 묻히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그래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내 행동에 그때의 경수도 머쓱해졌는지, 조용히 건네었던 손을 다시 내리고는 피아노 건반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건내왔다.
여전히 나긋나긋한 그 목소리로, 떨림없이.
또 그 모습이 꽤나 재미있어서. 고개를 조금 기울인 채 이번에도 멍하니 눈만 느릿느릿하게 깜빡이며 아무말없이 경수를 바라보았다.
뒷 말을 흐리고는 마지막으로 내 뱉은 경수의 말 이후로 꽤나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정적 속에서 경수는 피아노만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경수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고있었다.
한참동안이나 바라보고 있던 경수의 모습 뒤로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를 바라보기 무섭게 수업시작 종이 울렸다.
그게 경수와의 첫 만남이였다. 그리고 내가 피아노에서 손을 떼지 않게 된 계기.
알 수 없는 순수함에 이끌려서, 또 그 다정함에 이끌려서. 마지막으로....
▶ 이브 주저리 |
어짜보니, 필명을 아주 쬐끔 수정하게 됐어요. 그래서... 신알신 하셨던 분들 ㅠㅠ 제글 이때까지 읽어주셨던 분들 여기로 다시 신알신 해주셔야될꺼 같아요. 그래서... 어쩌다보니 또 이렇게 프롤로그와 같이 3편을 다시 한꺼번에 쓰게 됐어요.에휴... 또... 원치않게 잠시 아주 짧은 공백기도 가졌네요. 그 이유는 ㅠㅠ 제 블로그를 타고 들어가시면 알꺼에요! ㅠㅠ... 혹시나 그 짧은 공백기 동안 기다려주신 분들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기다려주셔서. 제 망글 똥글을 사랑해주셔서.
앞으로 그런 공백기 없이 쭉쭉 전진합시다. ㅠㅠㅠ 사랑합니다 독자분들. 워아이니.
새로운 시작이니, 혹시나 암호닉 원하시는 분들 언제든 상관없이 신청해주세요! 암호닉은 저에게 사랑이자 애정이자 제가 글을 쓰는 원동력입니다 ㅠㅠ... 정말 사랑해요 워아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