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는 여주한테 말을 해야 할 때 말고는 셰퍼드로 있음. 여주는 카이가 사람으로 있으면 불편한 줄 앎. 이제 카이 얼굴 까먹을 정도.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 그동안 공이 이렇게 재미있는 장난감인 줄 몰랐음. 제대로 놀아준 사람이 없으니까 공을 굴리거나 씹기만 했음. 근데 여주가 공 던져주니까 너무 재밌음. 여주한테 맨날 공 던져 달라고 여주 앞에 공 물어다 슬쩍 내려놓으면 여주 피식 웃으면서 던져줌. 집은 좁으니까 집 앞 공원 가서 던져주기도 함. 근데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매일 공이 눈에 띄기만 하면 해달라고 보채니까 여주 팔이 너무 아파서 결국 공 숨겨놓음. 카이 공 놀이 하자고 공 찾는데 안보임. 이쯤되면 찾아야 하는데. 카이 컴퓨터로 작업하는 여주 옆에 가서 한껏 찡찡댐. 여주 카이가 낑낑거리면서 치대니까 처음엔 영문도 모르고 받아주다가 공 때문인거 알고 웃음. 냉장고 위에 올려뒀는데 그걸 귀신 같이 찾아냄. 숨겨놓은지 하루밖에 안됨. 최선을 다해 공의 존재를 부정하는 여주의 소매를 물어서 질질 끌고 옴. 그리고 공 꺼내달라고 여주 빤히 보면서 꼬리 흔드는데 여주 결국엔 항복함. 그길로 공 던져주러 나감. 결국 다음날에 근육통으로 파스 붙임. 진짜 안되겠다 싶어서 카이가 절대 꺼낼 수 없는 곳에 넣어둠. 옷걸이 바퀴 있는데에 공 박아놈. 카이가 사람으로 변해서 가져올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한 여주카이. 카이 공 찾아서 꺼내보려고 낑낑대는데 결국 못 꺼내고 그 앞에 앉아서 여주만 빤히 쳐다봄. 여주는 최선을 다해 공이 안보이는 척 하고 있음. 카이야 왜? 배고파? 카이 애가 타서 여주 소매 물고 끌어보려는데 여주한테 옷 늘어난다고 한 소리 듣고 풀이 죽음. 여주가 물 마시려고 그 앞 지나가면 바지 자락 물고 끌어오는데 여주 끌려가면서 아주 긴 전쟁이 되겠구나 싶음. 여주가 공 꺼내줄 생각도 안하고 컴퓨터만 보고 있으니까 카이 콧잔등으로 여주 엉덩이 툭툭 치고 몸으로 등도 미는데 여주 꿈쩍도 안함. 공 가지고 놀고 싶어서 애교도 부리고 옆에서 계속 귀찮게 했는데 여주가 그냥 다 받아줘서 완전 삐짐. 불러도 못 들은 척 배 깔고 뒤돌아 누워있는 거 보고 여주 웃음 참음. 간식 준다고 했는데도 망부석. 본인이 공을 숨겼지만 공이 가지고 놀고 싶어서 1인 시위하는 카이가 너무 딱해진 여주. 결국 자리에서 일어남. 카이야 공 놀이 할까? 카이 귀 쫑긋거리고 꼬리 막 흔들면서 겅중겅중 뛰고 난리남. 결국 팔이 빠질 때까지 공 가지고 놀고 여주는 침 맞으러 감. 여주 어깨에 침 맞고 전기 마사지 받은 자국 보고 되게 미안해진 카이. 이제는 공놀이 적당히 해달라고 함. 여주는 이제 카이가 반은 사람이라는 걸 점점 잊어가고 있는 중. 인상이 진한 카이 얼굴이 점점 흐릿해질 정도면 뭐, 말 다했지. 카이한테 거리낌 없이 대하는 여주. 뽀뽀도 막 하는 쪽으로 거리낌이 없어짐. 카이는 여주한테 조심조심 대하려고 하는데 여주 때문에 그런거 고양이나 줘버려 됨. 태풍이: ? 여주가 학원 나간 사이 집 청소 하다가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이랑 약통 확인한 카이. 한글 배운 적 없어서 글은 못 읽지만 글자는 똑똑히 외워둠. 이때만 해도 거의 그림 그리듯 글씨 쓰던 카이. 여주 학원 나갈 때 공원 나가서 놀다가 같은 아파트 사는 태풍이랑 친해지고 태풍이한테 가서 글자 물어봄. 태풍이한테 글씨가 지렁이 같이 기어간다고 한소리 들었음. 역시 똑똑한 태풍이는 한글을 바로 읽어줬지만 역시나 뜻은 모름. 조금은 바보 같지만 그래도 나름 알건 다 아는 태풍이 보호자한테 태풍이가 물어오기로 약속 꼭꼭 함. 태풍이한테 글자를 물어보고 온 날, 역시나 여주가 약 먹는 걸 지켜봄. 우울증은 대충 감이 오는데 불면증은 감이 도통 안옴. 여주가 약을 삼키고 물컵을 내려놓음. 이제 여주가 자기 전에 하는 루틴이 끝남. 카이가 머리로 여주를 밀어서 메트리스 앞까지 데려감. 여주가 먼저 눕고 그 다음에 카이가 매트리스에 바싹 붙어서 자리 잡음. 카이 등을 부드럽게 쓸면서 눈을 감음. 카이는 여주가 눈을 감는 걸 보고 난 다음에 잠에 듦. 그래서 카이는 여주가 집에 올 때까지 안자려고 노력함. 여주가 늦는 날이면 현관문 앞에 자리 잡음. 여주 올 때까지 엎드려서 기다림. 여주가 도어락 누르는 소리 들리면 바로 일어나서 꼬리 흔듦. 여주는 문 열자마자 카이가 반겨줘서 좋음. 늦은 시간이라 맨날 먼저 자고 있지~ 하는데 카이가 먼저 잔 적 한번도 없음. 여주가 이불 안에 들어갈 때까지 여주 졸졸 따라다님. 그리고 여주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반겨줌. 여주가 지금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기 때문에 감정 상태가 요동을 치는데 잠이 모자라거나, 너무 졸리다거나, 아니면 아직 잠에서 못 깨어났을 때 자주 그럼. 언젠가 카이는 아침에 잘 일어난 다음에 거실에 가서 여주가 한무더기로 사준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을 때 갑자기 여주가 우는 소리가 들려서 갔더니 여주가 어디 갔었냐고 엉엉 울면서 얘기함. 그때 여주가 이상한 꿈 꿔서 그랬음. 하지만 여주가 꿈을 꿨는지 어쨌는지 모르는 카이는 여주 옆에 가서 무릎에 얼굴 올려놓거나 눈물이 굴러가는 볼을 햝아주면서 달래준 그 이후로 무조건 여주 일어날 때까지 방 안에 있는 편. 그래서 방 안에도 장난감이 조금씩 쌓이고 있음. 정말 피치못할 사정으로 방에 없는 날에는 여주가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서 두 팔 벌리고 있는 여주에게 안김. 둘의 하루 시작은 이럼. 그리고 태풍이가 알아다 줌. 우울증은 우울한 병이고 불면증은 잠 못 자는거래. 니 주인 많이 아픈가본데. 그 말 듣고 심각해진 휴카. 그, 그거 많이 아픈거야? 그건 또 물어보고 나중에 만나면 알려주기로 함.
여주가 카이를 데리고 살면서 정말 웃겼던건 명색이 경호견이라는 셰퍼드 휴카가 겁이 많다는 걸 느낄 때 였음. 예를 들면 바퀴벌레, 일명 바선생이 집에 나왔을 때 휴카 완전 패닉 상태로 짖고 뛰고 그 큰 몸으로 여주한테 안기려고 아등바등 거림. 엎혀오는 휴카 한 손으로 받히고 두꺼운 학원 교재 던져버리는 여주. 그리고 일단 완전 정신 가출한 휴카 진정시킴. 카이가 저 멀찍이 구석탱이에 몸 구겨넣을 때 여주는 교재 들어올려서 바선생 처리함. 그거 보고 여쥬 대단해... 하는 휴카. 그리고 산책 가면 가끔 저게 뭘까 싶은 게 길 위에 있을 때 갑자기 우뚝 멈춰서 뒤에서 천천히 걷는 여주 기다림. 근데 그게 바람에 날려서 움직이는 순간 기다림이고 뭐고 일단 여주한테 달려가서 여주 뒤에 바짝 붙어서 걸음. 그리고 어쩌다 로드킬 당한 고양이나 새 같은 게 저희 동네에 짱 많아여 초딩 때는 등교할 때 안보면 섭섭할 정도로 진짜 많았어여 있으면 여주가 40키로 넘게 나가는 휴카 안아들고 지나감. 그거 동네 아줌마들이 보면서 웃음. 아이고 애기가 겁이 많네~ 누나 껌딱지네 껌딱지~. 그리고 여주 휴카가 성격도 어디 모난데가 없고 사납지도 않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냥 순딩이였던 걸 알았을 때가 산책하다 다른 개들 만났을 때. 산책 하다가 자주 만나는 초코푸들 쿠키와의 그 강렬한 첫만남을 여주는 아직도 잊을 수 없음. 그때가 이른 아침이었음. 여주가 불면증 때문에 몇 시간 못자고 일어나자마자 그냥 바로 산책 나감. 그때는 사람도 잘 없어서 휴카 목줄이고 입마개고 다 풀어주고 혼자 다니게 하는 편이라 그날도 어김없이 그랬음. 휴카 먼저 신나서 뛰어가고 몸이 피곤한 여주는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휴카랑 어떤 강아지가 앙앙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여주 급하게 뛰어감. 아무래도 휴카가 커다란 대형견이니까 설마 그럴일은 없겠지만 실수로 다치게 했나 싶어서 갔는데 세상에. 여주 앞에 펼쳐진 건 쪼끄만 초코푸들이 앙앙대는 거에 쫄아서 쭈그러진 휴카. 어떤 여성분이 푸들을 겨우겨우 안아올리면서 쿠키야... 제발... 아니야... 너 대형견 아니야... 어이가 없으면서도 너무 귀엽고 웃겨서 여주 이미 입이 귀에 걸렸음. 그 여성분이 너무 죄송하다고 억지로 푸들을 사과시키고 카이한테도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하고서 얼른 강아지 데리고 사라지심. 휴카 신나서 뛰어가다가 갑자기 쬐끄만 푸들이 보여서 친해지고 싶어가지고 슬쩍 갔는데 푸들이 느닺없이 짖어대는 바람에 놀람. 약간 무안 머쓱 놀람의 결정체. 의기소침해진 휴카 토닥여주는 여주. 괜찮아, 괜찮아. 거기에 다시 겅중겅중 뛰어댕기는 휴카. 그날 이후로 여주 휴카한테는 좋은 말만 해주고 좋은 것만 보여줘야지 다짐. 그리고 저 초코 푸들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겠지. 본인보다 배는 큰 셰퍼드한테 앙앙 짖는 그 깡. 그리고 그 여성분의 황당황 그 표정까지. 웃겨서 그날 하루종일 생각날 듯.
여주의 우울증은 감기같은 존재라 늘 항상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서 어느날 갑자기 미미해짐. 여주가 무기력하고 말도 잘 없고 크게 웃지도 않으면 딱 알아채는 휴카. 그날은 여주 혼자 있구 싶은가보당... 하고 혼자 노는데 그게 오히려 좀 섭섭한 여주. 내가 신경도 안쓰이나...? 그러다 다시 우울의 구렁텅에 빠지고. 이런 날은 카이가 완전 어리광이라도 부려주는 게 더 좋은 여주. 어김없이 여주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여주 잘 준비 마치고 여주 손길에 잠에 든 카이. 근데 자다가 잠깐 깼는데 여주가 없어. 순간 당황해서 방문 열고 밖에 나감. 여주 소파에 등 기대고 숨 죽여서 울고 있었음. 휴카 옆에 가서 엎드린 채로 울고 있는 여주 올려다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음. 여주 울음 소리 삼키면서 누가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 듣고 카이 속으로 백 번 고민하다가 소파 위에 있는 담요 물고 혼자 낑차낑차 두르고 휴먼 바디로 체인지. 갑자기 너무 작아진 여주 끌어안고 괜찮아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