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권태로움에 대하여 下
"..막내, 커피 마실래요?"
"아, 네.. 감사합니다"
"..무슨 일 있어요? 출장이 별로였나?"
학교 다닐 땐 공강이다, 뭐다.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도 많았는데 사회 생활하면서 그건 정말 꿈 같은 이야기인거야
무슨 드라마 주인공처럼 밤새 울다 지쳐 잠들어 놓고도 지각 안하려고 평소처럼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는데 얼마나 비참했는지 몰라
평소처럼 일어났으면서도 복잡한 마음에 밥 먹으면서 멍하게 있고, 양치하면서 멍하게 있느라 살짝 빠듯하게 출근했는데 그래도 출장갔다왔다고 군소리는 안 하시더라
아무 말 없이 혼자 저기압으로 문서 작업하려는데, 자꾸 김종대만 생각나고 막.. 내가 뭘 잘못했지, 하나하나 곱씹어보느라고 시작도 못하고 멍하게 있는데,
대리님이 내 손 옆에 커피 놓으시면서 가까이 오시더니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더라
그 말에 또 울컥하려는거 꾹 참고 ..엄-청 피곤했어요오.. 하고 애써 웃으면서 징징거리는 소리내니까 남자친구는 만났어요? 하시는거야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 미묘하게 표정이 굳었다 싱긋 웃으면서 ..만났죠.. 하고 작게 말하니까 으아, 좋을때다- 하면서 자기 의자에 기대시더라
"우리 와이프는 이제 배 많이 불렀어요- 아, 우리 아기 딸이에요!"
"진짜요? 부인분 닮았으면 예쁘겠어요!"
"안 그래도 벌써부터 예뻐서 큰 일이에요-"
"..대리님,"
"응? 왜요?"
"결국엔 대리님 자랑하시려고 남자친구 얘기 꺼낸거죠?"
어? 들켰다.
내가 만났다는 이야기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인분이랑 아기 자랑하시는데, 내가 장난친다고 눈 흘기면서 말하니까 헤헤 웃으시면서 말하시는데,
갑자기 훅 진짜 김종대가 나랑 헤어지게 되면.. 막, 나중에 다른 여자 저렇게 자랑할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미치겠는거야
크게 질투심 가져본 적 없으면서도 그런 생각하니까 나한테도 자신없어지고, 막, 내 자신이 지하 몇백미터까지는 쿵 내려가는 기분이더라
그것부터 시작해서 혼자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해선, 나도 모르게 표정관리를 못했나봐
대리님이 내 앞에서 진지하게 보시더니 ..막내, 괜찮아요? 하시더니 ..무슨 일 있으면 말해요, 우리 와이프도 막내는 다 괜찮대. 하고 어깨 툭툭 두드려주시곤
내 눈치보시면서 자기 자리로 가시더라
"..미치겠다, 진짜"
대리님 가시자마자 몰래 손바닥으로 눈 꾹꾹 누르고 한숨 쉬고 난 뒤에 일 시작하는데, 자꾸 틈만 나면 다른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머리가 쉴 틈고 안주고 일만 했어
얼마나 미친듯이 두들겨댔으면 오후에나 끝날 일을 오전에 다 끝내버렸는데, 보고서 보내고나니까 딱 점심시간인거야
다른 동기들이 나한테 밥 안먹냐고 챙겨주는데, 밥 맛도 없고.. 그냥 고개 저으니까 그 몸에 다이어트는 반대라고 소리지르면서 나가더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의자만 팽팽 돌려가면서 멍하게 이런 저런 생각하는데, 혼자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소심하게 인터넷에 검색했어
나이가 몇인데 연애를 글로 배우냐.
혼자 허허, 헛웃음 나오면서도 평소같으면 별 중2병 걸린 글들도 있다면서 비웃었을 것들도 심취해서 열심히 읽는데,
남자친구한테 권태기의 이유가 뭐냐니까 너무 잘해줘서 그렇다고 했다는 글이랑 남자 군대는 기다려 주면 안된다는 글 보고 혼자 심각해져서 다 꺼버렸어
"..개..개소리 하고 있네!"
혼자 얼굴 달아오른채로 소리 빽 지르고 내가 놀라서 다시 아무도 없는지 확인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더라
가만히 꺼진 모니터만 쳐다보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종대에 비해서 별로 잘해주는 것도 없고.. 착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또 남이 하는 얘기들은 달랐거든
내 친구들이 무슨 연애를 초딩 연애처럼 다 퍼주고 있냐고,
남자들한테 착한 신사임당은 결혼하면 필요한거라고 나한테 핀잔줬던 것도 생각나고,
박찬열이랑 변백현이 나한테 김종대는 어떻게 너 같은 곰이랑 사귀냐고 놀렸던 것도 생각나고.
그 땐 장난으로 대충 종대만 좋다면 된거지- 하고 넘겼었는데, 다시 곱씹어보니까 오래 사귀다 정으로 사귄다는 말을 내가 너무 무시했나 싶더라
그렇다고 종대한테 당장 못되게 하면서 더 세게 나가자니, 김종대 입에서 헤어지자고 하는 건 또 무섭고.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복잡해지는데, 휴대폰 불빛이 반짝거리는거야
..연락 올 사람이 없는데..
김종대는 아닌데, 아닐텐데. 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면서 꾸욱 버튼 눌렀는데, 무슨 생각인지 김종대가 [ 밥 먹었냐 ] 하고 왔더라
[ 아 ] 오후 12 : 57
[ 아니 안 먹었어 ] 오후 12 : 57
[ 너는? ] 오후 12 : 58
[ 먹고 있어 ] 오후 12 : 58
[ 학교 후배랑 ] 오후 12 : 59
[ 누구? ] 오후 1 : 01
[ 그 저번에 인사했던 애? ] 오후 1 : 01
[ 이름 기억 안난다ㅠㅠ ] 오후 1 : 02
[ 아니 그냥 ] 오후 1 : 03
[ 공모전 같이하는 애 ] 오후 1 : 03
[ 그래 맛있게 먹어!! ] 오후 1 : 04
[ 나 일해야 한다ㅠㅠㅠ ] 오후 1 : 04
김종대가 보낸 딱딱한 답장에, 또 계속 은근히 누구인지 설명 안해주려는게 뭔지 대충 느낌은 오는데, 평소처럼 따지면서 물을 수는 없겠더라
내 자신이 자신감이 없어져서 대충 일해야 한다고 대화 끊고 휴대폰 덮어버렸다,
금방 다시 휴대폰 들고 종대랑 했던 대화 곱씹으면서 내 속은 문드러지는데, 괜찮은 척 하는게 얼마나 비참한건지 느꼈어
..공모전은 개뿔이, 개새끼가.. ..공모전 할 때는 밥 먹을 정신도 없으면서 퍽이나..
한 세 번 쯤 다시 읽다, 어느샌가 위로 올려서 종대 다정한 말들 읽고 있을 때 쯤이었나, 사람들 들어오기 시작하길래
김종대 앞에서는 절대 못 할 말들 중얼거리면서 신경질적으로 휴대폰 꺼버리고 오후 내내 일만 했어
"OO씨 오늘 열심히 하네요?"
"아, 팀장님"
"보기 좋다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내가 고속승진 약속할게요"
"..아, 퇴근시간이구나"
"빨리 퇴근해요, 밤 길 위험하니까"
얼마나 미친듯이 일만 한 건지, 팀장님이 내 앞에서 고개 까딱거리시면서 말 거시길래 정신차리고 주변 둘러보니까 언제 다 퇴근한건지 나 빼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더라
얼빠진 얼굴로 아, 퇴근.. 하고 중얼거리니까 팀장님이 싱긋 웃으시면서 밤 길 조심하라고 하시는데,
나가시다 말고 아, 하시더니
..OO씨는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나? 하고 더 싱긋 웃으시는거야
그 말에 벌떡 일어나서 눈 동그랗게 떴다, 아, 아니요! 하고 고개 도리도리 저으니까 아님 말고요- 난 언제 결혼 하려나- 하고 나가시더라
팀장님 뒷 모습 안 보일 정도가 되어서야 다시 자리에 털썩 앉는데, 막 헛웃음이 나오는거야
..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김종대야. 결혼한 것도 아닌데.
혼자 중얼거리면서 옷자락 만지는데, 막 진짜, 절망스러운 마음도 같이 드는거야
집에 잠깐 들릴때도 엄마는 종대 얘기하기 바쁘고, 친구들도 나 하면 종대 얘기도 같이 물어보고,
..이젠 하다못해 회사까지 다 아는데.
내 인생에서 그 김종대가 없어지면 어떻게 해야하지?
혼자 딱 거기까지 생각이 드니까 진짜 하루종일 꾹꾹 참은 울음 회사에서 터뜨릴 것 같아서 얼른 일어나서 급하게 밖으로 나갔어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선, 택시타고 누구든지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필요해서 미친듯이 전화부를 뒤지는데,
여자애들은 아무리 친한 애라도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할 것 같고,
엄마? 나보다 먼저 종대 찾아가서 때릴 것 같은데 그건 내가 못보겠고.
여러사람 패스, 패스. 하다보니까, 결국엔 한 명밖에 없더라
"야, 박찬열"
"어? 니가 전화를 다하냐?"
"술 좀 마셔"
"..미친, 넌 나 보면 술밖에 생각 안나지?"
"응, 그러니까 술 좀 마셔"
"..이미 마신 것 같은데"
"아, 니네 집 앞으로 갈거니까 당장 나와 끊는다"
"야, 야, 야!!!"
박찬열이 뭐라뭐라 변명해대는데, 듣지도 않고 끊어놓고 기사 아저씨께 죄송하다고 하면서 박찬열네 동네로 곧장 갔어
그래도 전화하니까 인상 팍 쓰고 욕에 욕을 하면서도 바로 나왔는지 대충 후드집업에 슬리퍼신고 나왔더라
그 모습에 웃으면서 이야, 역시 내 친구! 하고 헤드락 거니까 기겁하면서 돌았냐 진짜! 하고 멀리 떨어지더니 나 째려보더라
"솔직히 말해,"
"뭐어"
"마셨지"
"뭔 소리야, 이제 시작할건데"
진짜 미친사람 보듯이 쳐다보는 박찬열 질질끌고 나도 꽤 자주 간 술집 들어가서 평소보다 주문 더 많이 하니까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내가 싱긋 웃으면서 마시고 죽을거다! 하니까 고개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래라, 장례식은 안간다. 하는 거야
이 새끼가, 누나랑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인공 눈물 넣고 와!
그 말에 내가 툭 치면서 장난치니까 ..지랄한다, 지랄. 하고 나온 술잔 내 앞에 놓아주더라
내가 앞에 놓이자마자 벌컥벌컥 마시니까 내 팔 급하게 잡으면서 야야, 천천히 마셔, 천천히. 하고 말리는데, 뿌리치면서 결국엔 거의 다 마셨어
다음 잔도, 그 다음 잔도 거침없이 마셔대니까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더니 좀 과하다 싶었는지 그 다음은 그만해, 그만. 하고 자기가 갖고가서 마시더라
"왜, 또, 뭐가 문젠데"
"오오, 서당개 삼년이면 사람 좀 되냐?"
"..뭐래, 너 스트레스 술로 푸는거 그거 안 좋은거야 멍청아"
아무리 치고박고 싸운다지만, 초딩때부터 붙어있었던 건 어쩔 수 없는지, 금방 눈치채고 나한테 묻는데, 살짝 헤롱해진 상태로 흐흐 웃으면서 말하니까
어이없다는 웃음 흘리면서 한심하게 쳐다보더라
서로 잘 알긴해도 애정은 절대 없는 사이랄까.
아무튼, 내가 술 좀 들어가니까 용기가 생겨서 박찬열한테 ..질린다는건 무슨 의미야아? 하고 물으니까
인상쓰더니 내가 너 보기 싫으니까 그게 질리는거겠지. 하는거야
"아아, 그럼 보기 싫은 사이구나. 그렇구나."
"..미친, 야, 나 너 못데려다 줘. 정신 안차릴래?"
"당연하지. 박찬열은 나 한번도 데려다 준 적 없으니까"
"...개는 자기 집 알아서 찾아가는거야"
"..맨날 김종대가 데려다줬었는데, ..막, 이렇게 업어서. ..안 무거웠나"
"..씨발, 이젠 내가 무슨 진짜 커플 매니저인줄 알아,"
니네 싸우고 나 찾아오지 말랬지, 어?
내가 김종대 얘기 꺼내니까 순식간에 표정 질린다는으로 변하더니 싸우고 자기 찾아오지말라고 버럭 화내고 아, 갈거야! 솔로천국이다 씨발! 하고 가려는 듯이 일어서는데,
그 말에 훌쩍이면서 ..싸운거 아니야. ..그냥, ..헤어지는거 준비하는거야. 하니까 나 가만히 쳐다보더니 슬그머니 다시 앉더라
"왜, 비글새끼가 너한테 헤어지쟤?"
"그건 아닌데, 암튼! 나도 솔로 될거니까 받아줘라! 빈 열매야!"
"아, 나 빈 열매 아니라고!! 초딩이냐!"
"알찬게 뭐가 있다고, 텅텅 비었지!"
"우리 아빠가 지었거든!!"
그러니까, 불효자야. 왜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 막, 어? 버리고 다니냐!
술 취하니까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박찬열도 술기운이 좀 있는지 괜히 발끈해서 받아쳤다, 주위 시선을 느꼈는지 큼큼거리면서 ..왜, 뭐라했는데. 하더라
하루 종일 혼자 끙끙 앓다, 처음으로 내 감정 알아주는 말 들으니까 갑자기 서러움이 올라와서 훌쩍거리면서 ..열매야, 하고 박찬열 쳐다보니까
당황함과 징그러움이 섞인 표정으로 왜 이래, 아, 씨발. 김종대 새끼. 나한테 시련을 넘겼어. 하더라
그 말도 안들리고, 그냥 혼자 종대가 변한거 하나하나 말해주니까 처음엔 ..니가 예민한 거 아니야? 하다, 점점 자기도 얼굴이 굳어지더라
마지막으로 오늘 공모전 같이 하는 후배랑 밥 먹었다던데, ..아무래도 여자같아. ..그냥 촉이 그래. 하니까 더 굳더니,
"..씨발, 그거 너 아니었어?"
"..어?"
"..아, 나 뭐래, 아니, 아니다"
뭔데에. 말해. 괜찮아.
박찬열이 내 말에 말 실수 한 것 같은데, 내가 얼굴 괜찮다고 말하라니까 씨발, 박찬열 병신이. 야, 나 니말대로 빈열매로 바꿀까봐, 하면서 머리 벅벅 긁는거야
내가 정색하면서 ..말 안하냐, 하고 정강이 콱 차니까 아! 야! 하고 소리 지르더니 ..하아, 씨, 하면서 말 시작하는데,
박찬열이 자기 학교 주변에 밥 먹으러 나가다가 종대를 봤나봐
어떤 여자랑 같이 있었는데, 김종대가 자연스럽게 말도 걸고 하길래 얼굴 안보여도 당연히 난 줄 알고 바퀴벌레라고 비웃으면서 지나갔다는거야
아무리 예상하고 있었다지만, 남이 직격타로 날려주니까 막 내 몸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인데,
박찬열이 내 눈치보길래 괜찮다면서 억지로 웃으니까 더 미안해하더라
"..니가 왜 미안해, 정작 미안해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아니, 김종대, 씨발 새끼가,"
"됐어, ..이왕 볼 거 예쁜지도 같이 봐주지 그랬냐"
"아, 그건 안봐도 니가 더 못생겼어"
죽는다, 진짜.
일부러 나 기분 풀어주려고 농담도 살짝 던져주는데, ..그냥, 웃으면서도 웃는게 아닌거야
속이 답답해서 술 한 잔 더 마시는데, 이번엔 박찬열도 막지 못하더라
"열매야,"
"..아 그렇게 좀 부르지 마, 그거 우리 엄마랑 내 미래부인만 하는거거든"
"..어쨌든,"
"뭐"
"만약에, 김종대랑 나랑 헤어지면 ..넌 내 친구해주면 ..안되겠지"
나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그냥 김종대때문에 박찬열까지, 내 진짜 친구까지 잃고 싶지는 않았다고 해야하나.
나름 진지하게 말하니까 술잔 입에대다, 멈칫하고 나 보더니 ..원래 김종대 친구 아니고 네 친구였어. 하는거야
"..무서워"
"...."
"..내 인생에서 김종대를 빼면, 나한테 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나는 10년 뒤라도 김종대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하면 못 들을 것 같단 말이야"
"..나도 갈 생각 없다"
"...."
"축복해줄 생각도 없어"
"...."
"내 불알친구한테 의리가 있지,"
의리하면 박찬열이고, 박찬열하면 의리 아니냐.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데, 처음으로 박찬열이 어른 같아 보여서, 나도 웃으면서 ..너 왜 여자친구없냐, 괜찮은 놈인데. 하니까
미스터리 중에 미스터리지- 얼른 이 오빠한테 괜찮은 여자 좀 소개시켜줘봐. 하더라
그 말에 정색하면서 ..아, 알겠다. 없는 이유. 하니까 발끈하면서 야!! 하는데, 흐흐흐 웃으니까 자기도 어이없어서 허, 웃더니
시계 슬쩍보고 계산하고 집에 가, 내일 지각하지말고. 하더라
그 말에 치, 하면서 더 있겠다고 고집 부렸는데, 결국엔 현실은 현실이라 내가 계산하고 조용히 택시타고 집에 갔어
그래도 내가 꼴에 여자라고 나중에 [ ㅈ? ] 하고 집이냐고 카톡왔길래 [ ㅇ ] 하고 답장 보내주긴 했지만.
박찬열 덕분에 기분 좀 괜찮아져서 전날 밤 보다는 편하게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또 다시 김종대 투성이인건 어쩔 수 없더라
또 똑같은 일상이었어
휴대폰에 저장된 같이 찍은 사진 넘겨가면서 보고.
한 없이 다정했던 문자들 넘겨보고.
그러면서 왜, 왜.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혼자 자책하고.
김종대가 밉다가도, 소중한걸 몰랐던 내 탓같아서 내가 밉기도 하고. 복잡했어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일 없는 척, 행복한 척 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지는데.
퇴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려서 맥주 사들고 한숨만 푹푹 쉬면서 발만 보면서 걷고 있는데, 집 앞에 사람이 있는거야
놀라서 멈춰섰다, 자세히 보니까 익숙한 형체에 곧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담으면서 조심히 걸어갔어
"..김종대?"
"..야근했네"
내가 이름 부르니까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또 감정없이 말하는데, ..그것마저도 좋은 내가 너무 싫더라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 척 하면서 ..왜 오늘 연락 안 했어, 들어가서, ..들어가서 얘기하자. 하고 억지로 끌고 들어가니까 한숨 쉬면서도 따라 들어오더라
"..너 또 밥 안 먹었지, 올거면 연락을 하지"
"...됐어"
"..너 좋아하는거 하나도 없는데. 대충 김치 볶음밥이라ㄷ"
"..야,"
"...."
"..넌 대체 뭐야"
종대랑 얼굴 맞대고 얘기할 자신이 없어서, 아니, 헤어지자는 말 듣기가 싫어서.
막 들어오자마자 가방 현관 앞에 던지듯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뒤지면서 말하니까 한숨 섞여서 됐다고 하는데,
못 들은 척 하면서 계속 말 이어가니까 나 돌려세우면서 야, 하더니 자기 머리 한 번 쓸면서 나보고 대체 뭐냐고 하는거야
그 한마디에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
너 때문에 별 생각을 다하면서 지냈는데, 나한테 대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하는건지.
그냥 입 꾹 다물고 종대 눈 피하니까 더 목소리 높이면서 ..너 병신이야? 하는거야
"화도 안나? 내가 어떻게 하는지 다 알면서?"
"...."
"나 권태기인거 다 알고 있잖아, 근데 왜 아무 반응이 없는데?"
"...."
"..진짜 헤어지길 바라는 거야, 뭐야?"
"....."
"넌 좋냐? 내가 계속 이러는게?"
그냥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지금 자기 권태기니까 나보고 잡아달라고 하는건가.
대충 김종대 의도 파악이 되니까 더 어이가 없는거야.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데, 내가, 내가.
"..너 진짜 이기적이다"
"..뭐?"
"..너 때문에 며칠을 울고, 나 출장가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다 너때문인 것 같아"
"....."
"진짜 웃긴다, ..내가 아무 반응 안 한 이유가 뭐 일 것 같아?"
"...."
"..진짜 헤어질 것 처럼 굴었잖아 니가. 나랑 지금 헤어지면 내일 당장 만날 여자도 만들어놓고"
"..야,"
"왜, 이것까진 모를 줄 알았어?"
"...아니야"
내가 결국엔 터져서 눈물 가득 고인채로 김종대 쳐다보면서 말하니까 살짝 놀란듯 싶으면서도 생각보다는 무덤덤하더라
내가 여자 만들어놓고. 하니까 인상쓰더니 아니라고 하는데, 뭐가 아니야. 심증에 물증에. 다 있는데.
"내가 참고 참고, 또 참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왜 못해? 당장이라도 머리채잡고 싶을거라는 생각은 왜 못하냐고"
"...."
"내가 병신은 맞는데,"
"...."
"없는 공모전까지 만들어내면서 바람피는 남자친구 기다려줄 병신은 아니야"
"...."
"헤어지자"
"..야"
"진심이야"
내가 운다고 벌개진 눈으로 말하니까 인상쓰고 쳐다보다 헤어지자고 하니까 말부터 막고 보는데, 진심이야. 하니까 말을 말더라
..내 집에서 나가.
김종대 증오하는 눈빛으로 보면서 말하고 방 문 쾅 닫고 들어가버리니까 곧 도어락 열리는 소리 들리는데, 그 소리 나자마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어
김종대랑은 끝나도 좋게 끝날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구나.
결국 우리도 똑같구나.
또, 이번엔 진짜구나.
복잡한 마음에 엉엉 울다, 새벽에서인가 잠 들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밥은 거르고. 그렇게 한 일주일 똑같이 살았나.
술마시니까 우리 집에 유난히 김종대랑 뭘 했던게 많이 기억나서, ..아, 이제 이사도 가야겠구나. 하고 펑펑, 진짜 머리가 어지러울정도로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폐인처럼 살다보니까 내가 정신이 없었나봐
그저 지각할거라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해서, 분명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냅다 뛰었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안나.
눈을 뜨니까 낯선 천장이 보이는데, 몸을 움직이려니까 뭔가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기분인거야
꿈벅꿈벅, 눈만 움직이다 슬쩍 고개 들어서 보는데, 팔에도 깁스하나, 다리에도 뭐 하나가 있고. 손등에는 주렁주렁 링거가 메달려 있더라
..이게 뭐지.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데, ..정신이 드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젊은 사람이 영양실조에, 과로에, 길거리에서 쓰러지면 곤란해요"
"..네?"
"다행히 교통사고는 크게 안 나서, 깁스만 몇 주하면 될 것 같네요"
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깬지 얼마 안되서 머리도 웅웅 울리는데,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땀에 잔뜩 젖은 김종대가 보이더라
멀뚱멀뚱, 사태파악이 안되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나 보더니 성큼성큼 걸어와서 갑자기 와락 안는거야
나는 놀라서 아무 반응 없이 마네킹처럼 있으니까 내 목에 얼굴 묻으면서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하는거야
..우리 헤어졌잖아.
정신차리고 차갑게 말하면서 떼어내려니까 내가 못 떼어내게 힘으로 더 꽉 안더니 ..미안해, 응? OO야, 미안해. 하더라
"...너 나한테 이럴 자격 없어"
"...그냥 3초만 가만히 있어줘, 응?"
"..놔,"
내가 매정하게 뿌리치고 누워버리니까 의사 선생님도 분위기 눈치채셨는지 조용히 나가주시더라
김종대는 내 옆에 가만히 앉더니 ..내가 죽일 놈이지, ..그치.. 하고 조용히 내 손 잡아오는데, 그것마저도 내치려다, ..김종대 손 떨리는게 느껴져서 차마 내치진 못했어
그러니까 내가 자기 이야기 들어준다고 생각했는지 한숨 크게 쉬더니 조곤조곤 말하더라
"...권태기가, ..너가 싫어서가 아니고. ..내가 싫어서, 그래서 온 거였는데"
"..말이 돼?"
"..넌 이제 나보다 더 좋은 남자 충분히 만날 수 있으니까"
"...."
"..막, 차고 넘칠 거 아냐. 회사에"
"..허, ..넌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해?"
김종대 말에 더 열 받아서 손 뿌리치면서 말하니까 급하게 내 손 다시 찾으면서 ..그냥 듣기만 해줘. 하더라
그 말에 깊게 한 숨 내쉬고 다시 돌아 누우니까 ..헷갈렸어. ..내가 너한테 필요한 존재가 맞는지, 그냥 조용히 없어져야 하는지. 하는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그래서, ..금방 니가 잡아주길 바랬는데,"
"...."
"..생각보다 니가 너무 무덤덤한거야"
"....허,"
"..그래서 나도, 막, ..자존심 상하고. ..진짜 난 너한테 뭐지. 이런 생각 들기 시작하니까 끝이 없어서,"
"...너 나가,"
"..내가 미친 놈이야"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가 없어서 결국엔 나가라고 짜증내니까 머리 쓸면서 내가 미친 놈이야. 하는데, 진짜..
마음 고생한거 떠오르고, 막, 나도 울컥해서 울면서 ..여자, 여자는 뭐야. 그래서 그랬냐? 내가 질투 안하고 막, 반응이 없어서? 하니까
표정이 갑자기 굳더니 ..그건 진짜 아니야, 여자는 맞는데, 아니야. 진짜 아니야. 하는거야
"그럼 뭔데! 박찬열도 봤다던데!"
"..그 새끼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너도 제대로 말 안해줬잖아! 누가봐도 여자인 것 처럼 카톡 했잖아!"
"..아니, 그건.. 하, 진짜"
들어보니까 김종대 사촌 여동생인데, 내가 종대 친척 꽤 알아도 사촌은 너무 많아서 다 모르거든
오랜만에 서울 왔다길래 놀아준다고 같이 다닌거고, 나한테 공모전 후배라고 한 거는 김종대가 권태기도 겹치고 내 반응보려고 그냥 강수 둔건데 내가 아무 반응 없으니까
자기도 화나서 우리집 찾아 왔던거였고.
들으면 들을수록 더 화나서 결국엔 ..초딩이냐, 초딩이야? 어!? 하면서 깁스 안 한 팔로 베개 던지고, 때리면서 엉엉 우니까
나 꽉 안아주면서 미안해, 미안해. 응? 자기야, 미안해. 하는데, 누구보고 자기래!!!! 귀에 대고 빽 소리지르니까 잠시 인상쓰면서 멈칫했다,
내 머리 쓸어주면서 ..다행이야, 다행이다. 나한테 화 낼 기운은 있네. 하는거야
그 말에 내가 깁스한 손으로 김종대 등짝 퍽 때리면서 내가 이모양 이꼴인데! 너 때문에 지금! 몸이랑 마음이 다 상했는데! 뭐? 다행? 하니까
아프다고 떨어졌다, 내가 더 엉엉 울면서 이게 뭐야! 이게! 하고 징징거리니까 다시 나 달래주더라
나 토닥토닥거리다, 내가, 너.. 교통사고 났다는 소리 듣고 놀라서.. 하면서 자기도 훌쩍거리는데,
내가 놀라서 야, 야, 김종대. 우냐? 하니까 ..몰라.. 하면서 내 어깨에 얼굴 묻더라
"..걱정 진짜 많이 했어"
"..."
"..얼마나 다쳤는지도 모르고, 막, ..하, 진짜"
"...."
"..그러면서도 니 얼굴 볼 수 있는 이유가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다?"
"...미친놈"
"..욕해, 실컷 욕해"
김종대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는게, ..진짜 놀랐구나 싶어서. 살짝 안아주니까 진짜 숨도 못 쉴정도로 끌어안으면서 웅얼웅얼 얘기하는데,
나 볼 이유 생겨서 좋아했다는 말에 허, 웃으면서 미친놈.. 하고 작게 욕하니까 욕하라면서 막 그러더라
그러면서 내가 ..너 내가 다시 안 받아 줄거야. 하니까 급하게 떨어져서 빨개진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데,
내가 일부러 눈 피하면서 ..친구 해, 그냥. 하니까 단호하게 싫어. 하는거야
"...그 때 너가 헤어지자고 했을때,"
"...."
"..그 때 정신이 들더라"
"...."
"...니네 회사 앞에 가서 기다릴까, 생각도 많이했는데"
"..."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하고 관뒀어"
"..그럼 멀쩡하게 살던가"
"...."
"..왜 이렇게 말랐어"
김종대가 눈빛이 흔들리면서 말하는데, 화가 살짝 가라앉으니까 김종대 마른 얼굴이 보이는거야
볼 매만지면서 말하니까 픽 웃으면서 ..영양실조 환자보다는 낫거든. 하더라
..너가 사람 하나 굶겨 죽일뻔 했다는 생각은 왜 못해?
까칠하게 대답하니까 표정 굳으면서 아, ...진짜.. 하면서 고개 푹 숙이는데, 내가 헤어지고 나서 고생한것도 생각하니까 설움이 복받쳐 올라서
울먹이면서 ...진짜, 너, ..최악이야. 하니까 놀라서 고개들더니 내 볼 매만지면서 울지마, OO야, 또 쓰러지겠다, ..울지마, 응? 하더라
"아, 몰라"
"뚝, 울면 기운 빠져, 응?"
나 실컷 고생시킨 김종대인데, 달래주면 난 또 뭐가 좋다고 가만히 있는지.
나도 싫고 김종대도 싫.. 아니, ..아,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잡해서 엉엉 울면서 김종대한테 짜증나! 저딴 개새끼가 뭐가 좋다고! 하면서 이불 퍽퍽 치니까 놀라서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더라
내가, 말도 안되게, 김종대를 좋아해.
막 엉엉 꺽꺽 울면서 말하니까 울지마, 뚝. 하고 달래주면서도 웃는 얼굴이더니 나 안으면서 나도, 말도 안되게 좋다 진짜. 하는거야
몰라, 놔!! 안 받아줄거야!
신경질적으로 말은 놓으라고 하면서도 깁스 안 한 손으로 종대 안으니까 예쁜 내새끼, 내가 데려가야지. 누가 데려가. 하면서 뽀뽀해대는데,
내가 결국엔 깁스한 팔로 한대 퍽 치고서야 나가떨어지더라
..나중에 비글 트리오가 와서 우리 다시 붙은거 보더니 역시 바퀴벌레 생존력은 강하다면서 놀린건 안 비밀.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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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닉 신청 후 확인은 필수!!
+) 암호닉은 항상 받지만 신청하실때 가장 최근 편에 [신청하는 암호닉] 으로 눈이 나쁜 작가의 눈에 띄게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 오늘의 교훈 : 암만 생각해도 못된 종대는 힘들다...
+) 사실 3편짜리인데 다음주에 화해시키시 뭐(?) 해서 걍 확 초스피드 전개..후..ㅠ
급전개 전문(?) 레밍입니다~
+) 다음썰은 '첫' 들어가는 것들을 주제로..(ㅇㅅㅁ?)
+) 댓글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 아 학생 독자분들 즐거운 방학되시어요 :]
+) 오늘 건축썰 1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