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몇 일이지?'
"2020년, 5월 9일. 달력에 표시 되어 있잖아"
"아아- 어떻게 읽는지 깜빡했지 뭐야"
커다란 손으로 한참이나 달력을 매만지던 태형이가 끙- 하며 앓는 소리를 내다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라고 묻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던 태형이가 달력안의 숫자를 가르켰다. "이건 어떻게 읽더라?" 그 모습에 애써 웃으며 벽에 붙어 있던 숫자판 앞으로 이끌었다. 3이라는 숫자 아래 크게 삼,셋 이라고 적힌 글을 짚어주었다.
"셋이나 삼 이라고 읽어요. 기억이 안나면 이 숫자판 보라고 했었잖아"
"아,,, 그랬나?"
머리를 긁적이던 태형이를 보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애써 아니라며 부정하는 나에게 의사는 단호했다. '알츠하이머입니다. 이미 진행은 시작 됐고 앞으로 진행 속도가 점차 빨라질거예요' 그 말을 들은 것도 4달 전, 의사가 말하는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아서 처음에는 안도했다.
하지만 어느 날, 태형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물어왔다. "이거 뭐더라?" 대수롭지 않게 '지갑이잖아요' 라고 말하자 태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갑,,, 지갑,,, 한참이나 지갑을 중얼거리던 태형이를 바라보다 아차, 의사의 말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하지만 이 정도는 실수겠거니 넘어갔던것이 잘못이었다. 그 후 처음에는 지갑이었다가 다음은 핸드폰, 주걱, 텔레비전, 리모콘, 창문 같은 기본적인것들 조차 잊어버리는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지 않길 바랬던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그 상황이 눈 앞에 펼쳐졌을 때 마음도, 정신도, 몸도 모두 무너져 내렸다.
"내 이름이 뭐였지?"
"장난도 참,,,"
"김,,,김,,,"
얼버무리며 제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는 모습에 두손을 모아 얼굴을 감싸쥐고 눈물을 터뜨렸다. "잠깐 깜박한거야. 금방 다시 생각날거라고" 눈물을 멈출 줄 모르고 쏟아내는 내 모습에 다급하게 내 어깨를 다독이던 태형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서재로 들어갔다. 문이 닫기는 순간부터 책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재문을 열고 태형이가 달려와 얼굴을 감싸쥐던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김태형, 김태형 내 이름 기억났어. 나 김태형이잖아"
이름이 적힌 책을 내밀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태형이에게 책을 건내 받았다. 다시 내 앞에 쪼그려 앉던 태형이의 손을 잡았다.
"나는"
"응?"
"그럼 내 이름은 뭐야. 김태형. 지금 네 앞에 있는 내 이름 뭐냐고"
장난스럽게 웃던 태형이가 내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김여주"
"네 이름, 김여주 잖아"
내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는 태형이의 모습에 또 다시 멈추어가던 눈물을 쏟아냈다. 다행이다. 날 잊어버리지는 않아서.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나 잊어버리면 안돼. 김태형. 네 이름도 다른 무엇도 다 잊어버려도 되는데,,,"
울컥 다시 차오르는 감정에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태형이의 머리를 감싸쥐고 품안으로 끌어안았다. "내 이름, 절대 잊어버리면 안돼. 부탁이야"
점점 무서워졌다, 나만 기억하게 될까봐. 우리 함께 했던 추억도 나만 아는 추억이 될까봐. 무엇보다 날 잊게 된다면 지금의 그 웃음도 말투도 행동도 모든게 다 달라질까봐.
그런 내 불안함을 아는지 아무 말 없이 안겨있던 태형이가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어떻게 널 잊겠어. 사랑하는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