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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다고해야할까 그저 적당하다고해야할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가볍게 밀치며 경기장의 한 켠에 쭈그려앉아 숨을 고르고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차가운 물을 뚝뚝 흘리며 숙였던 고개가 내 찰박거리는 발소리를 들은 것인지 천천히 들려진다. 물기를 머금은 입꼬리가 기분좋게 올라가며 익숙한 단어들을 내뱉는다.
[축하해요, 쑨양. 금메달이네...]
이 경기장을 울리는 묵직한 함성소리들을 밖으로 내다버리고싶었다. 그의 목소리가 잘 안들리잖아. 조금만 조용히 해줘.
[쑨양?]
[아,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태환.]
이번에도 머뭇머뭇 손을 비비다가 힘겹게 내밀었다. 수영모를 벗곤 묻어있던 물기를 탈탈 털던 그가 내가 내민 손을 보고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손을 맞잡아주었다. 몇 번 겪은 일임에도 이 순간은 항상 떨린다니까... 그가 내 손에 의지하며 일어설때 주위로 다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군데군데에서 터지는 플래쉬가 또 거슬린다. 왜 하필 이 순간인데? 지금 그가 힘들어하는거 안보여? 나는 지금 태환을 부축해줘야한다고. 사정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들을향해 이를 갈고있을때 태환이 그들을 쭉 둘러보더니 내 손을 놓고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며 웃었다. 정말이지... 언제들어도 달콤한 목소리다.
[시상식 마치고 봐요. 커피 좋아해요? 커피 살게요.]
[아, 아... 아...? 아!]
이──게 무슨 바보같은 반응이란말인가! 게다가 하필 이렇게 멍청하게 입만 벌리고있을때 찰칵찰칵 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이유는 무엇이란말인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 좋죠! 좋아요, 커피! 라고 소리쳤다. 양 손 주먹을 꽉쥐고 그를 향해 몸을 들이밀며 말하는게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아 보였겠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제 손으로 탈탈 털어내며 그럼 그때봐요! 다시 한 번 축하해요, 쑨양. 이라고 말한 뒤 몸을 돌려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등에 자리잡은 잔근육들이 더없이....
'아니 이러면 안되는데...'
그냥 감상일뿐인데... 그래, 감상이야 감상. 조각 감상.
정말 금같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어깨를 쭉 펴며 코치님과 함께 자랑스럽게 밖으로 나서다가 문득 든 생각. 아, 태환이 커피... 마시자고 했었나?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적당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지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막 선수대기실에서 나오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반가웠던건지 나도모르게 중국어로 그를 부를뻔 했으나 막 움직이려던 혀를 애써 진정시키고 입 안으로 혀를 이리저리 굴린뒤 어설프게 영어로 그를 불러세울 수 있었다.
[끝났어요? 코치님도 계시네... 숙소로 가고 있는거에요?]
[아니요, 아니요. 저 지금 시간 있어요. 커피 사준다고 했었죠?]
[하하, 그럼 말하고 센터 뒤쪽으로 나와요. 캔커피도 괜찮아요?]
[다 좋아요.]
당신이 사주는건데 뭔들 마다할까. 태환과 하는 대화를 모두 들은 코치님은 혀를 끌끌차더니 내 종아리를 가볍게 툭툭 발로 차신다.
"그렇게 말을해도..."
"뭐 어때요. 이참에 태환이 좋아하는 커피도 알아놓고...."
"예끼, 이놈아!"
중국어를 모르는 그는 그저 티격태격하던 코치님과 나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아, 나도 어서 나가야지. 코치님. 부탁인데 저에게 태환과의 오붓한 시간을 허락해주세요.
덜덜덜덜
[쑨양.]
덜덜덜덜
[쑨양!]
[아... 알고있어요....]
긴장한 나로인해 찰랑찰랑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덜덜 떨리던 캔을 다시 굳게 잡았다. 그냥... 그냥 태환의 옆에 앉았을 뿐인데... 코치님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보내고 급히 센터 뒷편으로 향한 나는 두 손에 차가운 캔커피 두 개를 들고 그것들을 자신의 양 볼에 대고있는 태환을 볼 수 있었다. 차가움에 기분이 좋았던듯 헤실거리는 미소도함께. 그런 그의 모습에 적잖은 감동을 받은 나는 어이없는 생각도 해버렸다. 지금 커피가 너무 차가울까봐 데워주고있는걸까? 참,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기에 마치 그 생각이 모기라도 되는마냥 손을 얼굴 앞으로 휘휘 저어 쫓아내어버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그가 앉아있는 벤치로 다가가 그때까지도 눈을 감고있던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를 불렀지.
[어, 왔네요.]
[옆에 앉아도 되죠?]
몸에 축적해 놓았던 용기의 일부분을 소모해가며 그렇게 묻자 돌아온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것이 아니냐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그의 대답이었다.
[앉아요.]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다. 아... 미미한 용기 손실로인한 후폭풍이 꽤나 강렬하다.
[후... 이제야 좀 살겠네요.]
[에?]
[1500m요. 너무 힘들었어...]
한 모금, 커피를 마신 뒤 힘없는 미소를 짓는 그가 왠지 조금 안쓰러워졌다. 지금... 지금 어떻게 해야하지?
[잘 한거에요.]
[4위가요?]
[분명 잘 한거에요.]
[그렇겠죠?]
[그렇죠.]
위로가 됐다는 듯 힘없는 미소와 함께 캔커피를 살짝 흔들어보인 그가 앞으로 숙이고있던 몸을 의자 등받이에 편히 기대며 눈을 감았다.
"아... 힘들다."
어? 이건 한국어인데?? 게다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당황스럽다. 태환,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줘요. 이번에는 다른의미로 손이 덜덜 떨린다. 설마 태환이 내 욕을 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내가 속으로 미친듯이 안절부절 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는 아예 고개를 뒤로 젖혀버린채 한국어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 진짜 힘들....엇!!!"
그의 손에 들린채 허공에서 이리저리 날리던 캔커피가 내용물을 허공에 흩뿌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견딜수 없게 불안해진 내가 참지 못하고 그를 껴안아버렸으니까. 조금 엇나간 행동이란건 알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낯선 한국어들이 들리지 않아 이젠.
[쑤...쑨양!!]
[영어로 해요, 영어로. 방금 뭐라고한거에요?]
[이것부터 좀 놓고...!]
[방금 뭐라고한거에요?]
[히... 힘들다고...]
아 그런거였구나. 그의 더듬거리는 한 마디에 금새 마음이 편해져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를 놓아주었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많이 당황한건지 얼굴이 조금 붉어져있다. 아, 귀여워. 정말 귀여워요, 태환.
[태환,]
[어... 왜요, 쑨양?]
그의 얼굴 앞으로 내 얼굴을 쑥 들이밀자 그가 미미하게 내 시선을 피하는게 보였다. 푸흐흐, 지금 태환 부끄러워 하는거 맞지?
[내 우상. 힘들어하지마요. 당신은 내 앞에선 힘들어하면 안돼.]
"무슨..."
아, 또. 하지만 이번엔 그냥 넘어가줄게요.
[계속 힘들어하면 제가 방금 전처럼 또 껴안아줄거에요. 방금 전에 그 것, 효과 있었어요?]
[허?]
[조금 덜 힘들어졌냐구요.]
[어... 그... 그러니까...]
당황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우물쭈물하는 모습. 아, 안돼. 좀만 참아줘 나의 안면근육들이여. 이 상황에 그런 바보같은 웃음을 흘리면 안된다구.
[네, 그런 것 같네요. 고마워요, 쑨양.]
살다보니 이런날도 있다. 내 우상이 내 앞에서 나에게 고맙다며 미소를 지어준다. 그를 롤모델로 삼고 훈련에만 몰두해온 내 4년간의 시간이, 갑자기 조금 아까워져오기 시작했다. 그 시간중의 일부를 그와 지낼 수 있었더라면.... 하나라도 그에 대해 더 알고 그와 더 많은 것을 공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방적인 것은 싫다. 그도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한 번 쯤 해줬으면...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마치 그의 미소에 홀리기라도 한 듯 나는 그가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캔을 집어드는 것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저 커피, 나때문에 떨어진거잖아?!
[아, 미안해요, 커피.]
[괜찮아요. 하나 더 사면 되죠.]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그런가야?! 나는 급히 따지도 않은 내 커피를 따서 그에게 건네주려고 하였으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불순한 생각에 그에게로 뻗어져나가던 손을 다시 되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무 엉뚱한데서 기발하다니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있는 태환을 확인한 뒤 혀로 입술을 훑어 입술을 축축하게 만들고선 방금 딴 커피를 한모금 꿀꺽 들이켰다. 달콤씁쓸한 맛을 느끼기도 전에 넘겨버리곤 태환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그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릴때 내 캔커피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 이거 마셔요.]
[아니... 괜찮은데... 하나 더 사면....]
[내가 안괜찮으니까 그냥 이거 마셔요. 어차피 태환이 산거잖아.]
[그... 그럼...]
진하게 잡히는 애굣살이 내게 감사를 표한다. 그가 내가 내민 커피를 받아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조금만... 조금만...!
-꿀꺽
이런걸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람은 없을거야. 캔의 가장자리가 그의 입술에 닿을때 정말이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 두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아니지. 심장보다는 비명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사실은. 내가 노린게 바로 이것. 간접키... 키...
[스으으으....]
[? 뭐라구요?]
[아, 아뇨!! 아니요!! 어서 마셔요. 하하!! 그리고 그거 다마시고... 어, 나한테 줘요. 제가 버릴테니까...]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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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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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나서던 발걸음... 그렇게 무거울줄은 몰랐다. 그와 더 많은 얘기를 하지 못한 아쉬움에... 그리고 이제 언제쯤 다시 만날까하는 벌써부터 애타는 마음에... 그와 앉아 커피를 나눠 마셨던 벤치에 짐을 들고는 무겁게 눌러앉아 나를 잡아끄는 코치님에게 반항아닌 반항을 했었다. 가기 싫어. 그는 벌써 떠났는데... 나한테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훌쩍 떠나버렸는데... 이미 돌아가버렸는데... 코치님이 주먹을 드실때 쯤에야 나는 고개를 들고 짐을 들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자랑스럽게 돌아가자. 일단은... 나도 쉬어야...
"어?"
"왜그러냐, 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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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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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야, 이놈아. 그거 그만좀 마시라니까!!"
"태환이 이 커피 좋아한단 말이에요."
"쑨양!!"
"아, 몰라몰라~!!"
고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 앞에 마련된 작은 쓰레기봉지에는 내게 있어서는 한 두모금 될까말까 한 내용물을 담았던 캔들이 쌓여가고있었다. 정말이지 질릴정도로 나오는 코치님의 잔소리는 또 한 번 묵살. 아직 따지않은 캔커피들로 가득한 가방을 열고 막 다섯번째 캔커피를 꺼내들던 나는 하나만 꺼내려던 생각을 바꿔 앞 가방을 열었다. 그곳에는 다른 버려진 빈 캔들과는 다르게 타월로 정성들여 싸맨 캔이 있었다. 절로나오는 흐뭇한 미소를 띄우고는 다섯번째 커피를 따 빈 캔에 따랐다. 그걸 보신 코치님이 또 한숨을 쉬시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한 커피로 채워진 그 캔을 들어 볼에 갖다대었다. 아, 시원하다. 태환이 느꼈던 차가움은 분명 이런 차가움이었을거야. 어, 그럼 나는 지금 태환과 그 느낌을 공유한건가?? 좋아,좋아. 충분히 시원함을 느낀뒤에 경건하게 한모금.
'아, 간접키스다~'
왠지 돌아가서도 그렇게 아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를 직접 보지는 못해도...
다시 한 모금.
"好好照顾自己... 태환."
내가 아는 한국어는 그렇게 많지 않아. 당신의 이름과, 정말 소중한 단어밖에는 몰라. 목에 대충 걸어놓았던 헤드폰을끼며 시원한 캔을 조심스럽게 무릎 위로 올려놓았다. 아, 날씨좋다.
"...사랑해."
我爱你。이거, 이거. 정말 소중한 단어. 당신의 캔커피만큼 소중한.... 어? 이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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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으아으아으 오글거린당 헤헿 나름 달달하게 쓴다고 노력했는데 ㅠㅠㅠ 망한듯... 너무 오랜만에 써봐서 손이 타자기의 감각을 잃었어요 ㅠㅠ 아니 이건 아닌 것 같아.
근데 솔직히 캔커피는 좀 억지였나? 끙... 모르겠다 ㅎ헿 간만에 쓴거니까 텍파나눔도 해볼까요?? ㅎㅎ 아이고 부끄럽다 ㅠㅠㅠ
[]안의 말은 영어구요, "" 안의 말은 각자 자국어들입니다 ㅎㅎ
쑤...쑨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