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아니되옵니다. 소인이 이 한 몸 바쳐 전하를 지키도록.......’
‘나는 백성의 아비이자 이 나라의 지존이다... 어찌 내가 나의 자식들을 이 험한 땅에 버리고 갈 수있겠느냐.....’
따분했던 4일간의 긴 생활을 마치고 이제서야, 금요일 마지막 수학시간. 이것만 버티면 이제 끝이다.
시골에 있는 특성화고라는 특징 때문인지, 아님 수능이 이미 끝난 시점이라서인지. 이미 수시에 붙어버린애들, 회사나 공장에 취직한 애들을 제외하고
오늘 등교한 우리반 학생은 나포함 고작 5명이었다.
남아있는 학생들은 선생님의 지시하에 울며 겨자먹기로 수업을 듣고있었다. 물론 나도 수업을 듣곤 있지만, 집중을 하고있는건 아니다.
가뜩이나 오늘까지였던 수학 수행평가도 미뤄버린채 요즘 유행하고있는 넷플릭스 사극 시즌1을 정주행 해버려 잠도 1시간밖에 못잤다. 그리고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던것 같았다.
‘자 여기서는 X를 대입해서.... 변백현 일어나!!’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애들이 왜이러실까? 수능 끝났다고 다들 풀어졌구만....’
쟤도, 얘도 분명 어제 그 유행한다는 사극드라마를 보다가 늦게 잔거같다.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이례적으로 해외적 판타지와 사극을 결합시켜 초대박이 터진 드라마의 장르는 공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큰 인기를 끌어 안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후..... 정말...’
수학선생님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고작 교사가 된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임용고시 수석을 한 선생님의 배태랑은 20년교사분들과 견줄때가 없었다. 그정도 배태랑 선생님도 오늘만큼은 지친다는듯 눈을 질끈 감고 마른세수를 하였다.
고작 수능이 20일조차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하니 자기로선 굉장히 이해가 안갈거다. 저 선생 날고긴다는 서울대에서도 수석입학한 사람인데....
“전하!!!!!으악!!!!!!!!!!!”
그때였다. 맨 뒷자리 구석에서 잠만 자고있던 영화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저 대사는 분명 어제 그 사극부분중에서도 보는 시청자 모두가 숨죽이고 긴장한 부분에 터진 대사인데.... 역시나 영화도 그 드라마를 보다 늦게잔건지 하루종일 쿨쿨 잠만자다가 결국 잠꼬대를 해버린것이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야 너 미쳤어?! 뭐하는짓이야.
-아 진짜 한영화 미친년 개웃겨 ㅋ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영화는 잠꼬대를 한 후 한참을 멍때리다가 이내 창피한지 고갤 숙여 제 얼굴을 가리기 바빴다. 그런 영화를 보고 반아이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되있다. 그런 영화와 아이들을 보고 선생님은 끌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조용히하라며 아이들에게 소리쳤고 그런 선생님의 호통에 서서히 잠잠해지는 반이었다.
“한영화. 화장실 가서 세수라도 하고와.”
“네.... 죄송합니다.”
“죄송한거 알면 얼른 다녀와!”
선생님의 호통 그리고 창피함 때문인지 영화는 도망치듯 반을 빠져나갔고 몇몇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더니 킥킥- 거리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기야, 저러고 무표정으로 있으면 더 이상할거같단말이지 킥킥.
.
“한영화 이 녀석 화장실 간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들어와?
영화가 화장실을 간다고 교실을 나간지 10분이 흘렀다. 분명 선생님은 잠깨는용도로 세수만 하고 오라고 말했는데 10분이 넘어버린 것이다. ‘또 한명이 수업을 쨌구만....’ 선생님은 혀를 쯧쯧 찼다. 그리고는 반 주변을 훑어보았다.
나도 조용히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반을 훑어보았다. 10명의 학생중 영화가 나가고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는 학생은 오직 4명뿐이었다. 선생님이 영화 앞자리에 앉아있는 경희를 보더니 너로 정했다라는 눈빛과 함께 경희의 이름을 불렀다.
“김경희.”
“네...네?!”
“왜이렇게 깜짝놀라? 나 몰래 휴대폰이라도 했나?”
나는 봤다. 선생님의 부름을 끝으로 급하게 책상밑으로 하고있던 휴대폰을 숨긴것을..
그런 김경희의 모습에 씰룩 웃음이 삐져나왔다.
“너가 한영화 화장실가서 데리고와. 없으면 그냥오고.”
“네에....”
경희가 왜 하필 자기를 시키냐는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리곤 어쩔 수 없다는듯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을 조심히 열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게 휴대폰 하지 말지... 선생님도 같은 마음인듯 혀를 다시한번 쯧쯧 찼다.
검은 뿔테안경을 쓴 선생님이 자신의 턱수염을 왼손으로 한두어번 쓰다듬었다. 내 생각이지만 저 행동은 선생님의 습관중 하나인것 같았다. 무언가 불안하거나 맘에 들지 않을때마다 선생님은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선생님은 갑갑한지 조여맸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그리고는 남아있는 3명의 학생들에게 어쩔수 없다는듯 얘길했다.
“잠시 쉬자. 너희 수능 끝나서 풀어진건 다들 알다만. 이렇게 수업 진행하는것도 아닌거같구나.”
그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잠시 담배를 피러 반을 나갔고, 그렇게 잠시 수업이 중단되었다. 몰래 감춰놨던 휴대폰을 꺼내 곧장 넷플릭스로 들어가 다음화가 업뎃이 됐나 안됐나 확인을 하는데 수업하는사이 새로운 회차가 업데이트 되어있었다.
“오예. 빨리 봐야지.”
어서 급한 마음에 새로운 회차를 클릭하였고, 마지막 회차에서 죽은줄로만 알았던 중전이 일어나 모두를 습격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궁녀중 한명은 죽은줄로만 알았던 중전에게 다가갔고, 중전은 갑자기 눈을 떠 궁녀를 공격하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깜짝놀란 궁녀가 소리쳤다. 으으 귀아파. 나는 끼고있던 이어폰 한쪽을 뺐다.
‘꺄아아아아아악!!!!!!!!!!!!!!!!!!!!’
어라.. 분명 장면은 넘어갔는데 왜 계속 비명소리가 들리지? 휴대폰 음량을 낮추었는데도 비명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채 다른쪽 이어폰도 뺐다.
고개를 들었다. 다른애들도 마찬가지로 그 비명소리를 들은듯 싶었다.
순간 우리 모두 이상함을 느꼈고.
그렇게 우리 3-1반은 세번째칸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