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어릴 적 무심결에 본 누드화보 같았다.
바보같던 내 호기심,그리고 후에 몰려오는 구역질.
넌 그랬다.
평범한 척 속은 그렇지 않았고,나를 바보천치로 만들었다.
너도,그랬다.
**05**
머리가 꽤나 복잡했던건지 그 다음날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맨 몸에 닿는 이불의 감촉에 은근 기분이 좋아졌다.침대에 일어나 앉아 부스스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빗었다.나 혼자 머리를 쓸어내리니 어젯밤 내 머리를 쓰다듬고 가던 그가 생각이 났다.자연스레 손이 입술로 향했다.언제부터 입술을 뜯는게 버릇이 된지는 모르겠지만,어떤 것을 생각할 땐 항상 입술을 잡아뜯곤 했다.그의 행동을 생각하다 갑자기 아릿한 아픔에 미간을 찌푸렸다.언제 여린살까지 뜯은 건지 손에는 입술에서 터진 새빨간 피가 묻어있었다.혀로 입술을 살살 쓸었다.비릿한 피맛이 났다.
언제나 그랬듯 집엔 나혼자뿐이였다.옷을 챙겨 화장실로 가 샤워를 했다.따뜻한 물때문에 생긴 후텁지근한 습기가 오늘따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드라이기로 머리를 대충 말리고 슬리퍼를 신은 채로 마당을 나와 대문을 열었다.항상 놓여져 있던 자리에 신문이 놓여져있었다.신문을 집어들곤 대문을 열어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던 내 시야에 무언가가 밟혔다.대문 앞엔 얼룩진 메모지가 붙은 우유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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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으로 들어와 식탁에 아무렇게 신문을 던져놓고 우유팩을 내려놓았다.방금까지 좋았던 기분이 더러워지는 느낌이였다.다 아는척,나에게 웃어보이던 그.그리고 그의 행동이 나를 충분히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메모지를 잡아뜯어 식탁에 붙여놓곤 싱크대로 다가가 우유팩을 열었다.얼마동안 있었던 건지,더운 날씨에 우유는 상할대로 상해 역겨운 냄새가 나고 있었다.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응어리가 져가는 우유를 그대로 하수구에 버려버렸다.몽글몽글 응어리가 진 우유를 보니 괜히 속이 불편해 토할 것만 같았다.
식탁으로 다가가 얼룩진 메모지를 바라보다 반절로 잘라버렸다.그 반절을 겹쳐 다시 반절을,또 다시 반절을.몇 번 찢자 두꺼워져 찢을 수도 없게 되버린 종이에 되려 화를 내며 휴지통으로 던져버렸다.찢겨진 메모지가,하수구에 버려진 우유가 준면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의자에 다리를 올리고 앉았다.물기가 아직 남아있는 머리를 손으로 쓸어냈다.다른 걸 하면 생각이라도 안 날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올라가 책상 앞에 앉았다.이어폰으로 나오는 노래도,풀다만 수학문제도,어느 하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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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는 내가 잠들기 전까지 들어오지 않았다.그리고 내가 깼을 땐,그는 자고 있었다.항상 그랬듯이 일어나면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샤워를 했고,밥을 먹고,운동화를 신어 밖으로 나왔다.제발 그가 집 앞에 없길 바랬다.하지만 간절한 그 소원이 무색하도록 준면은 항상 그렇듯,항상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있었다.그런 그를 애써 무시하며 치마 속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꼽았다.그렇게 그를 지나쳐 가려던 나를 보던 준면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성큼 다가와 팔목을 잡고 돌렸다.돌려진 몸에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언제나 그래왔던 듯 날 보며 웃고 있었다.그는 여전히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내 머리카락을 만지려했다.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몸을 피했고,그는 허공에서 팔을 거두어갔다.
"늦겠다."
"...."
"얼른가자."
그는 여전히 내 팔목을 잡은 채로 팔을 잡지 않은 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는 웃으며 내 팔목을 잡아끌듯이 끌었다.하지만 나는 그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았고,잡아끌던 그는 움직임이 없는 내 모습에 자신도 발걸음을 멈추고 날 지긋이 바라봤다.숙이고 있던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마주했다.아무 생각도 드러나지 않는 저 눈과,항상 날 볼때면 올라가 있는 저 입꼬리가 내 속을 울렁이게 했다.
"나한테..왜 이래요?"
"...그냥."
"...."
"그냥이 아니라고 생각들어도,너는 영원히.그냥으로 알고 있어."
그가 내뱉는 그냥이라는 말이,흔하게만 쓰던 그냥이라던 말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인 줄은,그때는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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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있으니 친구들이 내게로 다가와 주말동안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설명한다.그 모습에 가끔가다 맞장구를 치고,옅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놀러간 얘기,공부한 얘기,컴백한 아이돌 얘기,자신의 오빠를 흉보는 얘기.친구들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며 함빡 웃으며 떠들었다.그 속에서 나는 겉도는 아이처럼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어디를 놀러가지도,그렇다고 공부가 흥미있지도,연예인의 가쉽거리에도,그리고 남들에겐 없는 척하는 오빠도.어떤 것하나 대화에 낄 만한 주제는 있지 않았다.그렇게 지루하게 얘기에 간간히 맞장구를 쳐주며 얼른 조례종이 치길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그러다가 화장실을 갔다오겠다 핑계를 대고,교실을 나왔다.복도에서도 시끄럽기 마찬가지였고,열어놓은 문 사이로 반마다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멍하게 바닥만 보다가 한사람에 부딪혀 바닥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괜찮아?"
"아..네."
얼핏본 교복명찰은 파란색이였고,3학년이였다.주저앉아있던 내게 그 사람이 손을 내밀었고,그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교복치마를 툭툭 털고 지나가려던 그 때,그 사람이 나를 다시 잡아세웠다.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낮춰 내 무릎을 바라봤다.넘어지면서 긁힌 건지 언제 생긴지 모를 상처에서 피가 조금씩 나고 있었다.
"아,미안.어떡하지?"
"아 괜찮아요."
"정말 미안...어?..안녕?"
"...네?"
내 앞에 몸을 낮춰 앉아있던 남자가 상처를 계속 쳐다보며 미안하다 사과를 했다.앞을 안보고 걸은 내 잘못도 있었기에,괜찮다며 말하는 내게 그 남자가 일어나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무릎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남자가 내 얼굴을 바라봤고,내 얼굴을 바라본 남자의 큰 눈이 더 커졌다.그러고는 내게 인사를 해왔다.어리둥절한 상황에 표정을 찡그리고 그를 쳐다봤고.그 다음으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한껏 찡그려진 내 얼굴을 멍해지게 만들었다.
"난 박찬열.넌,김종인 동생.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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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도 적고,스토리도 이상하고...ㅜㅜㅜㅠㅠ흐뷰뷰
박찬열의 등장ㅎㅎ
김종인 동생인건 아무도 모르는데,찬열이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스토리 진행이 참 그래요...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