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3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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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버스표를 끊었다. 그리곤 주어진 돈에 맞추어 겨우 숙소를 잡고 집을 나선 오늘은, 내 인생 첫 일탈을 맞이하는 날이다. 스물넷이란 나이에 처음 맛보는 일탈.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 전화가 울렸다.
"인생 첫 여행은 아니지, 수학여행은 가봤는데. 그리고 내가 뭐 애냐."
"수학여행 초등학교 때 가본 게 전부라며. 난 몰라, 혼자 무섭고 심심하다 찡찡대도 나 못 가. 안 가."
"남 걱정하지 말고 너나 조심해. 특히 남자, 너 완전 금사빠잖아. 나는 더이상 성여주 짝사랑 타령 듣고 싶지 않다. 도착하면 연락해."
말은 이렇게 해놓고 내가 밤에 무섭다고 전화하면 달려올 거면서, 툴툴거리긴. 내 친구 유태양은 대학 동기이자 동네 친구이고 얼굴은 모른 채 지냈지만,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새내기 오티에서 얼굴만 보고 '쟤다!' 싶어 사귀어 보겠다고 애먹었는데, 4년이 흐른 지금은 정작 둘도 없는 절친이 되어버린 사이이다.
급하게 예약을 하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게스트하우스는 생각보다 꽤 큰 건물이었다. 내가 생각한 게스트하우스는 겨우 방 두세 개 정도 있는 단층집이었는데, 3층이나 된다니.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에서는 급한 발소리가 들려 왔고 이내 사장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성, 여주님?"
뭐야, 이 사람. 큰 키에 나 보다 더 뽀얀 피부. 상상도 못한 훈남의 등장에 놀란 나는 입에서 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그 남자 얼굴만 바라 보며 서있었다.
남자 말에 나는 연신 고개를 흔들고 끄덕이기 바빴다. 아니, 아니 죄송할 거 없는데. 죄송 안 하셔도 되는데.
뭐라고 대답도 못한 나는 남자의 뒷 꽁무늬만을 쫓아 계단을 올랐다.
"이렇게 오래 머무시는 손님도 계시는지 처음 알았어요. 2주나 예약하셨던데."
"어쩌다보니..."
"303호, 여기 쓰시면 돼요. 지금 같은 겨울 시즌은 비수기라, 손님이 많이 안 계셔서 특별히 유의하실 건 없을 것 같고 아침에 조식 제공되는 건 아시죠?"
"그리고 금요일엔 파티를 한데요. 이렇게 두 개만 아시면 될 것 같은데, 그 외에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낮에 직원분들한테 물어보시면 될 거예요. 그럼 쉬세요."
설명을 마치고 발길을 돌려 복도를 빠져나가는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뭐라도 물어보자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나는 남자가 사라지고서야 포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고리를 잡고 방에 들어서려는 순간 들려 온 남자의 목소리는 다시 내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가장 중요한 걸 깜박해서요."
"...뭔데요?"
"금연!"
"...네?"
"객실 내 금연이요. 흡연은 뒷마당에서만 가능하세요. 그럼 쉬세요."
"잠시만요!"
"아, 마트. 조금만 나가면 큰 마트 있어요."
"그 조금만이 얼마나인데요?"
"자전거, 빌려 드릴까요?"
1월, 언제 눈이 내려도 이상 할 것 하나 없는 오늘의 날씨에 자전거라니. 버스 정류장까지는 15분, 택시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소리에 나는 결국 알겠다며 자전거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짐을 방에 들이고 나와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향하던 순간 계단 바로 앞방의 문이 덜컹거리더니 열렸고 그곳에서 그 남자가 나왔다.
300호? 태어나서 300호는 처음 봤네, 보통 301호부터 시작하지 않나.
"그야, 제 방이니까요."
"사장님도 객실에서 지내세요?"
"전 사장님이 아니고, 이재윤입니다."
내 생의 첫 일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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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끄적이던 글을 꺼내 놓으려니 부끄럽네여,,,
오늘은 에필로그이고 앞으로 이런 분위기로 흘러 갈 예정이랍니다
뭐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도, 다음 화가 마구 궁금해 미치겠는 이야기도 못 되는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노래와 함께 잔잔하게 흘러가는,
뻔하고 일상적이지만 약간은 설레는, 자기 전에 읽기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만약 쟁턍이 드라마에서 연기를 한다면- 이라고 상상하며 제가 입혀 본 캐릭터인지라 제 취향이 강하게 담길 것 같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천천히 달려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