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부서진다. 매서운 칼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렸다. 새벽부터 불어오기 시작해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를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요 며칠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주춤하는 듯 보였다. 혹시 몰라 가디건 하나를 가방에 넣고 구석에 박아두었던 우산을 꺼내들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지금과는 다른,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머리 위로 씌워졌다. 땅이 축축하게 젖은 탓에 발걸음을 옮기는 그 길목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한 가득 들려왔다. 빗방울은 무서운 기세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른 땅에 깊이 박힌 빗줄기는, 김성규를 참 많이 닮아있었다. 세상을 덮은 저 짙은 안개는, 그가 피던 독한 담배 연기와도 비슷했다.
" …왔어? "
오늘도 어김없이 김성규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자신을 바닥으로 밀어넣은 담배와 함께. 우산같은 건 없었다. 미친놈. 이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 같았다. 우산 하나 없이 비를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위태로워서, 나는 또 눈물을 삼켜내야만 했다.
" 담배 좀 끊어. 몸도 안 좋은 사람이. "
" 끊고 싶다고 다 끊어지는 건 아니잖아. "
" …비는 또 왜 맞고 있어. 감기 걸리게. "
" 우산 들 힘이 없어서. 보다시피, 치료 때문에 손에 힘이 안 들어가. "
그가 웃었다. 가슴에 못이 박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그가 웃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숨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려온다. 우산을 김성규 쪽으로 밀어두고, 가방에 넣어두었던 가디건을 꺼냈다. 안그래도 차가운 몸이 비 때문에 더 차가워졌다. 김성규는 내가 내미는 가디건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는니, 패션센스가 없다는 등 시덥지도 않은 장난을 쳐대면서. 안타깝게도 나에겐 김성규의 농담을 받아 줄 여유따위 없었다.
" 농담을 하면 좀 웃고 그래라. 사람 무안하게. "
" …형. "
" 남우현 조온나 재미없어. "
" 형. 성규형. "
" 왜 자꾸 불러. "
그냥, 옆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불렀어. 김성규는 나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해보이지 않았다. 물고 있던 담배를 버렸을 뿐.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김성규도, 나도. 모두가 그렇게 침묵을 지켰다. 바닥에 쌓인 담배꽁초도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노을 진 하늘이 서서히 모습을 들어낼 때 즈음이 되어서야 말문이 조금씩 트였다.
" 야. "
" 응? "
" …걱정하지마. 부르는대로 다 대답해줄테니까. "
" ……. "
" 나 그렇게 빨리 안디진다. 새끼, 겁은 많아서. "
김성규는 그렇게 지나쳐갔다. 긴 다리를 휘적이면서. 네이비색의 가디건을 어깨에 두른 채 앞서 걸어가는 김성규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금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의 입가엔 언제나 그렇듯 연기가 피어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쓸데없는 욕심이 생겨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천천히 잠식되어간다. 헛된 희망에.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Obvious Story <morceau_조각>
3일이 지났다. 여전히 비는 내렸고, 하늘은 흐렸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김성규는 병원으로부터 외출금지명령을 받았다. 물론, 담배도 모두 압수당했다. 아무리 제재를 가해도 들을 생각조차 안하는 그를 위해 병원에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 담배 피고 싶어. "
" 참아. "
" 돈 줄게. 담배 좀 사와. "
" 참으라니까. "
" 재수없어, 남우현. "
" 어, 알아. "
" …씨이발. "
아무 의미없는 싸움이 이어진다.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김성규는 꼭 이렇게 하루에 한 번씩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 이번 기회에 좀 끊어봐, 형.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한 말도 아니긴 했지만.
" 추운데 문은 왜 열고 있어? "
" 바다 보려고. "
" 맨날 보는 바다, 뭘 또 보려고. "
창문을 닫자 김성규의 시선이 따라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뒤돌아보면, 그대로 사라질까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속에서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병실엔 시계침이 돌아가는 소리, 가습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리고 가끔씩, 김성규의 기침소리도 들렸다.
" …괜찮아? "
" 괜찮아보여? "
" ……. "
" …장난이야. 말 하나 잘못했다고 바로 표정 굳히는거 봐라. "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푸스스, 하고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장난 싫어하는거 알면서. 볼멘소리를 하니 좋다고 또 발을 동동 굴러대는 꼴이 영락없는 다섯 살 꼬마같아서 화를 낼래야 낼 수가 없다. 그 와중에도 기침은 그치지 않았다. 간간히 보이는 그의 손바닥은 이미 붉은 피로 가득했다.
" …나, 물 좀 떠올게. "
" 어? 어. "
애써 모른 척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빗줄기가 다시 거세졌다.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는 내렸고, 그와 함께 강한 돌풍이 불어왔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빗소리에 어렴풋이 섞이는 걸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 나 그렇게 빨리 안디진다. 새끼, 겁은 많아서. '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형.
암호닉'-'* |
안녕하세요, 라우입니다. 오랜만이예요! 연재텀을 줄이겠다고 말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네요. 약속까지 하고 갔는데, 늦게 와서 죄송해요. 늦게 온 것도 모잘라서 가지고 오라는 향수는 안가지고 오고, 조각을 가지고 온 저를 용서해주세요. 원래는 이걸 완성시켜서 올 예정이었는데 그러면 너무 늦을까봐서 앞부분 살짝 올리러 왔어요. 일주일 뒤? 그 때 즈음에 아마 완결을 내서 가지고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소설의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뻔한 이야기(Obvious Story)' 라 가제를 지어놨는데…, 가제대로 흔한 내용, 흔한 소재, 흔한 캐릭터 설정으로 극이 전개가 될 예정이예요. 애초에 흔한 내용이 더 슬퍼! 라는 생각으로 쓴 글이니까요^.^ 비도 오는 요즘, 그대들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자극하는 글이 되었으면 해요! 스포를 미리 드리자면 뻔한 결말이니 다들 예상하실 듯 …! (미리 결말 내뱉기) 그나저나, 성규 캐릭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네요 음. 그래. 마음에 드네요.
그럼 우리 조금 있다가 봐요! 앙영! 그리고, 암호닉 빠지신 분들은 꼭 말씀해주셔야합니다!
피존, 규밍, 모닝콜, 섹피, 판다, 테이프, 콩콩이, 빵형, 나무정령, 아이비, 하리, 새벽, 망태, 쪼코, 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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