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
1. 1980년 5월 24일 밤
도청에서의 밤은 길었다. 시민군이 조직된지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통신 수단이 모두 끊기는 바람에 공수부대가 더 내려왔다는 소식을 바로 어제, 협상을 시도하러 시내를 벗어났던 박씨를 통해 들었다. 고립. 말 그대로 고립이었다. 광주는, 지금 계엄군에 의해 철저히 고립되어있었다. 성규는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총대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달은 여전히 밝고 아름답다. 이 도청 바깥은 지옥, 그 자체인데 광주의 어둠을 밝히는 달은 지독히도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21일, 그 날 일어난 금남로 집회에서 성규는 친구와 누나를 모두 잃었다. 그는 연필 대신 총을 잡았다. 희고 고았던 손은 서툰 총잡이에 의해 투박해졌다.
' 규야, 성규야. '
그녀의 피가 묻어있는 금가락지는 그 날 이후로 성규의 약지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달빛에 반응하는 반지를 볼 때마다 그는 피를 토하며 울었다. 분노하고, 또 분노했으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 곳, 도청엔 저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우현은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 또한 제 누나와 같이 집회 때 목숨을 잃었다. 대뜸 도청을 찾아와 총을 가르쳐달라했다. 위험한 일인지라 반대 하려고 했다. 하지만 텅 비어버린 우현의 눈동자와 마주쳤던 그 순간, 성규는 자신도 모르게 수락을 하고 말았다. 우현은 고작 열 여덟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였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던 건, 바로 우현의 눈이 성규 자신과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 형. "
순찰을 하고 돌아온 우현이 성규에 곁에 다가와 섰다. 여태 안자고 뭐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밖이 다른 날보다 더 서늘해요. 외투라도 입지, 감기걸리면 어쩌려구…. 성규는 우현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푸스스, 하고 웃어보였다. …그냥, 잠이 안오네.
" 형. "
형은 부모님, 아직 전주에 살아계시잖아요. 성규가 천천히 우현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제게는 아직 모셔야할 부모님이 있었다. 하지만 광주로 오고가는 모든 교통이 끊긴 지금, 전주로 간다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 지금은 가는게 더 위험해. 알잖아, 공수부대가 교통로를 다 차단했다는거. "
지켜줘야할 사람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가? 성규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우현의 얼굴을 아프지않게 쓸어내렸다. 푸르르, 우현이 고개를 양 옆으로 세차게 저었다.
" 형! 뭐하는거예요! "
피곤하다. 우현은 벌써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성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벌써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2. 1980년 5월 25일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궐기문이 오늘 도청을 떠났다. 낭독은 민씨가 하기로 했다. 성규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총구를 닦아냈다. 모두가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되기 오 분 전. 우현은 손에 맺힌 땀을 투박스럽게 닦아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 ]
민씨의 목소리가 나즈막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총을 닦고 있던 성규도, 분주하게 무기를 옮기고 있던 장씨도, 시민군 모두가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
[ 그 대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
가슴 아픈 말들이 이어졌다. 간혹 울음을 참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보아, 그도 울고 있음이 분명했다. 초점을 잃은 두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위태롭게 서 있는 우현의 모습은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힘없는 풀떼기같았다. 괜찮아, 울지마. 성규가 그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 18일 아침에 각 학교에 공수부대를 대량 투입하여 시내 곳곳에서 학생, 젊은이들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으니! 아! 설마, 설마 했던 일들이 벌어졌으니,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무참히 대검에 찔리고, 귀를 잘리고, 연약한 아녀자들이 젖가슴을 잘리우고,…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도 잔인한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
눈물을 참으려는 듯 바들바들 떨리는 몸뚱아리가 안쓰러웠다. 괜찮다 말하는 성규의 얼굴도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오늘따라 반지를 끼고 있는 손가락이 더욱 아프게만 느껴졌다. 민씨의 낭독은 계속 되고 있었다. 도청의 침묵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장을 지키고 우리 부모형제를 지키고자 손에 총을 들었던 것입니다. ]
우현은 끝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부모형제를 지키고자 했으나, 지키지 못했다. 이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광주를 지키는 일, 하나 뿐이었다.
[ 민주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을 절대 믿어주시고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모든 방송이 끝이 났다. 끝에는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울었다. 성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현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사람들의 울분 터지는 오열 소리에 성규도, 우현도, 광주도. 모두가 울었다.
3. 1980년 5월 26일 밤
협상을 실패했다. 오늘 밤, 계엄군이 이곳에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 박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씨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다 지친 우현의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던 성규가 그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시민군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않아 계엄군과 협상을 시도해보겠다며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조직되었다. 협상이 성공리에 끝날 것 같다며 무기의 일부를 회수해갔던게 바로 어제였다. 하루만에 말이 바뀌다니.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제 정말, 더이상은 돌아갈 수 없는걸까…. 그는 제 무릎에 누워 뒤척이는 우현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이번만큼은. 제발 이번만큼은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성규는 이틀 전 그 날처럼 어둠기만 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오란 빛을 자랑하던 달이 오늘따라 어둡게만 느껴졌다.
" …형. "
추워? 불 더 피워줄까? 몸을 일으키는 성규를 우현이 급하게 잡아끌었다. 우현아. 깜짝 놀란 성규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우현은 울고 있었다. 왜 울어, 우현아. 무서워서 그래?
" …꿈에, 아버지가 나왔어요. "
열 여덟. 소년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약해지지마, 약해지지말자. 우현아. 우리는 모두를 위해 이 일을 꼭 해야만 해. 이 말이 성규가 해 줄수있는 전부였다. 우현의 동그란 눈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던 성규가 자그마한 그의 머리통을 품에 끌어안았다.
" 지켜줄게. 걱정하지마. "
모두, 잘될거야.
단발마의 총성이 크게 울려퍼졌다. 눈 앞에서 장씨가 맥없이 쓰러졌다.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커졌다. 급하게 총을 들어올린 성규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엄군이랑께. 박씨가 천천히 성규 쪽으로 다가왔다. 기어이 왔어, 기어이 오고야 말았어. 박씨의 중얼거림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우현은 교련복을 고쳐입었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성규가 떨리는 우현의 손을 꽉 쥐어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 폭도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들은 현재 완전히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
그 새끼들은 우리를 폭도라고 부른디야. 우리말은 들을라고도 안하는 새끼들인께. 그는 도청에서의 첫 날 밤, 장씨가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형. 우현이 조용히 성규를 불렀다. 응, 우현아.
" …장씨 아저씨가 죽었어요. "
글쎄. 마주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멈추었던 방송이 다시 들려왔다. 폭도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들은 현재 완전히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사람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도청 건물 밖으로 나간 박씨가 계엄군을 향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의 손엔 피 묻은 태극기와 총 한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마른 침을 삼켰다. 잔뜩 끼인 먼지를 마신 탓에 목이 따가웠다. 공수부대원들이 다시 한 번 박씨를 향해 외쳤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엄군 바로 앞까지 걸어간 그가 뒤를 돌아 도청을 한 번 쭉 훑었다.
" 우리를 죽여라. 싸우다 모두 죽자! "
그리고, 또 다시 총성이 울려퍼졌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총에 맞아 쓰러지는 박씨의 입가에 미소가 띄워졌다. 성규가 우현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어느 새 도청안으로 들어온 공수부대원들과 시민군이 한 데 섞이기 시작했다. 총을 쏴보기도 전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현은 그 모습을 모두 눈에 담았다. 총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성규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끔찍한 비명소리들이 자꾸만 귓가를 멤돌았다. 뒤를 따라오던 민씨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민씨 아저씨! 성규가 입술을 깨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자꾸만 꼬이는 걸음걸이를 악 물고 버텨냈다.
" 혀, 형! "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계단이 있었다. 순식간에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놓친 우현의 손을 잡기 위해 뒤를 돈 순간, 성규는 우현에게로 향한 총구를 보았다.
" 우현아! "
교련복이 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우현을 제 품에 끌어안은 성규가 총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온 몸에 열이 올랐다. 가빠지는 호흡에 성규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쓰러지는 우현을 본 공수부대원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그들을 향해 겨눴다. 파열음이 크게 울렸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 하나가 성규의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다시 한 번 총알이 날라와 어깨에 박혔다. 들고 있던 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규는 정신을 잃은 우현을 더 꽉 끌어안으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몸. 성규는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우현의 몸에 정성스럽게 발랐다. 금방이라도 끊길듯한 숨소리가 위태로웠다. 하지만 자신은 꼭 우현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켜야했다.
' 지켜줄게. 걱정하지마. '
마음 속으로 했던 약속. 저를 쏙 빼닮은 이 아이는 꼭 지켜내야만 했다. 그러고 싶었다. 이젠 팔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었다. 수 십개의 총알이 박혀들었다.
" … 내가, "
지켜줄게. 성규의 눈이 사르르 감겼다. 그리고, 모든 것은 끝이 났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5시 10분. 계엄군이 도청에 도착한지 불과 한 시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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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번외_33년 |
바람이 불었다. 광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울에서부터 꼬박 세 시간을 달려온 지금, 저 멀리서 어렴풋이 여행자들을 반기는 표지판이 보였다. 따뜻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 곳은, 이미 33년 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보는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는 네비게이션의 안내방송을 들은 우현이 차에서 내려,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천천히 기념비 앞으로 걸어갔다. 급하게 아버지를 따라 차에서 내린 성규가 그의 손에 들린 안개꽃다발을 빼앗았다. 제가 들게요. 아버지 힘드시잖아요. 저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성규가 우현의 텅 빈 손에 지팡이를 쥐어주며 싱긋 웃어보였다. 오늘은 돌아다닐 곳이 많으니까, 특별히 더 다리 조심하셔야되요. 아시죠? 혹시라도 기분이 상할까 옆에서 자꾸만 애교를 부려대는 귀여운 제 아들의 모습에 우현이 너털 웃음을 지어보였다.
" 그런데요, 아버지. 가고 싶은 곳이 정말 여기뿐이예요? 그래도 마지막인데 광주가 뭐예요. 광주가. 어차피 명절때마다 내려오는 곳이잖아요. "
1980년과 2013년. 33년이라는 긴 세월이 무색하게도 광주의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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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삭제라는 큰 죄를 지어버렸습니다. 엉엉. |
앙영하세요, 라우입니다. 3월 1일에 올렸던 '5월의 꿈' 이 다시 올라와서 많이 놀라셨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암호닉을 정리하던 도중 실수로 삭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래서 급하게 다시 컴퓨터를 만져봤지만, 삭제완료라는 무심한 문구만 뜨더라구요…. 전 분명히 경고창이 떴을때, 엑스를 눌렀는데 어째서. 왜! 도대체 왜! 죄송스러운 마음에 텍파에만 들어갈 짧은 번외편도 같이 데리고 왔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본편에 댓글을 남겨주셨던 여섯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이비, 피존, 나무정령, 콩콩이님 그리고 새롭게 암호닉을 신청해주신 규밍, 새벽님. 정말 죄송해요 엉엉. 번외로 마음이라도 조금이나마 푸셨으면 ☞☜
피존, 콩콩이, 아이비, 귱, 미로, 마가렛 육급수, 흥, 윤조, 김난, 월요일, 클레오, 뽀뽀로, 렝도찡, 빵형, 씨리얼, 잉피, 남군, 사과맛규, 31 음표, 꼬마아이, 뀨, 까또, 깡통, 나무정령 규밍, 새벽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신청해주시면 되요 :)
+) 그리고 많이 부족한 글들이지만, 이때까지 썼던 단편 세개를 메일링을 할까 생각중입니다. 어제의 오늘, 봄, 5월의 꿈까지. 혹시라도 메일링 받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메일 주소를 살포시 적어주셔요. 짧은 땡스투와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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