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내일에게 내일을 "성규 학생, 어때? 우리 화보 찍지 않을래?" "저, 그게.." 너무나도 자신감이 가득차 있고, 당당함이 거침없이 묻어 나는 그녀의 말투에 대놓고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거절 자체를 거절하는 듯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제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입꼬리를 올려 차 뒷자석을 고개로 가리켰다. 그래, 거기에 남우현만 없었더라면. "저, 할래요." 하기사 남우현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나도 바보 멍청이지. #01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바야흐로 지금은 겨울 방학, 강제는 아니였지만 강제였던 방과후 특강을 끝내고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였다. 금요일 6시, 꽤 이른 시간에도 어쩔 수 없는 불금 증세를 만끽이 아니라 구경하면서 느릿 느릿 걷고 있다가 어느 금요일과 다름 없이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알지? 이번엔 카라멜 마끼아또 - 명수형 6:03 PM] 그래, 내용조차 뻔했다. 이번엔 카라멜 마끼아또라니, 도대체 정하는 기준이 머인겨. 지금 내가 얹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인 6살 위의 사촌형, 명수형은 매번 금요일에 나에게 테이크 아웃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뭐, 얹혀 사는 입장이니 고분고분 해준다만. 이유는, 나도 모른다. 19만원이나 하는 캡슐 커피 머신도 갖고 있는 주제에 이렇게 심부름 시키는 이유를 알았다면 굳이 내가 이러고 있지 않겠지. 내가 왜 사촌형, 부모님이랑도 친형도 아닌 집에 얹혀 살고 있냐고? 이유야 간단하다, 집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리라. 그 원인은 조금 길지만 이야기는 해야겠다. 사실, 친형이 있긴 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사칙연산이나 배우고 있을 때 쯔음엔, 형은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배울 정도로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형이었다. 물론, 형은 미적분을 무슨, 성적이나 미분 당해오면서 패거리와 함께 우리 작은 동네를 휩쓸고 다녔지만. 어느 날, 형은 부모님께 서울로 가고 싶다고 했다. 정중하게 무릎을 꿇으며 지금이라도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고 부탁하는 모습에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허락을 내주셨다. 매달 꽤나 큰 돈을 보내주면서 지원을 아낌없이 하셨던 걸 보면 부모님은 처음에 형을 믿은게 틀림 없었다. 그래, 그저 처음뿐이었다. 약 그렇게 반년이 지나자 부모님은 형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엄청난 광경을 보셨다. 형 몰래 올라갔던 부모님은, 형이 게이바에 들락거리는 모습을 세상에 마상에 이런 일이 순간 포착하셨던 것이다. 적잖지 않게 충격을 먹은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형을 호적에서 파버릴 기세로 꾸짖으며 모든 지원을 끊겠다 선언하셨다. 그리고 정말로, 형과 부모님은 이제 그 흔한 전화 한 통도 안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가 끝나자마자 부모님이 서울로 올려보내셨다. 다름 아니라, 그냥 너도 꺼지라 이런 식이었다. 더이상 자식에게 배신당하기 싫다는, 무언의 의미였다. 라는 것은 표면적 이유에 불과했고, 실제 이유는 각자의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이리라. 16살의 나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부모님은 더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다시말해,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 되버렸다. 언제부터 숨겨져 있던 콩가루인지 각각 애인이 있는 부모님, 서울 가서 커밍아웃 당한 형까지. 그렇다고 난 형이랑 연락하지 않는 편은 아니었다. 꽤나 많은 나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형제애가 좋았달까. 가끔 얼굴을 보기도 하고, 문자나 통화도 적지 않게 했다. 뭐, 이런 저런 사정 덕분에 나는 시촌형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형은 어떻게 사냐 하면은, 옛날의 형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말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그게 다였다. 뭐, 어찌되었든 2년째 명수형의 심부름에 시달리는 나는 카페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꽤 자주 들리는 카페였다. 형의 심부름도 이유이긴 하지만, 친구들과 카페를 들릴 때는 꼭 이곳을 들리니, 요일마다 조금씩 바뀌는 카페 알바생들도 내 얼굴을 잘 알았다. "어, 안녕하세요! 오늘은 뭐에요?" "카라멜 마끼아또 주세요." "오늘도 테이크 아웃 맞으시죠?" "흐흐, 네." 제 패턴을 익히 알고 있었던지 먼저 물어보는 알바생에 성규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진동벨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딱히 할 짓이 없어, 우리 반톡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의 시시껄렁한 말에 피식 웃고 있는데, 제 귀로 점점 커지는 높은 구두굽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꽤 키가 큰 여성이었다. 저랑 상관 없으려니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에, 그 여자가 제 앞자리에 앉았다. "학생?" "네, 네? 저요?" "응. 지금 주문 기다려?" "네... 그렇긴 한데 무슨 일로..." "주문한 거 나오면 카페 밖에 대기하고 있을테니 잠깐만 시간 좀 내줘요. 기다릴게요." 빠르게 할 말만 하고 가버리는 여자에 성규가 멍을 때렸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뜸 처음 보는 사람을 기다린다니. 지레 겁을 먹었지만, 손 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정신을 차리고 카라멜 마끼아또를 받으러 갔다. "카라멜 마끼아또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안녕히 계세요." 멋쩍은 인사를 건넨 후 천천히 카페를 빠져 나왔다. 출입문을 열자 보이는 건 도로 위에 서있는 검정색 세단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차일듯 하여 눈 앞에 보이는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때마침 조수석 창문이 내려갔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얼른 앞에 타요."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진 말투라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히터를 틀어 놓은지 꽤 시간이 지났는지, 차 안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저, 무슨 일로.." "이름이?" "김성규요." "자, 일단 받아. 내 명함." 그녀가 건넨 건 말 그대로 명함이었다. 두꺼운 하얀 종이에 써있던 건 [홍인하] 그녀의 이름과, 사진 작가라는 그녀의 직업이 적혀 있었다. 사.. 사진 작가..? "내가 성규학생 왜 불렀을 거 같아요?" 저도 그게 궁금하지 말입니다,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그녀를 빤히 쳐다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실로 놀라운 말이었다. "화보를 하나 준비 중이야, 진심으로 파격적인 화보. 근데 그 화보에 성규 학생이 같이 찍어줬음 해." "네?" 너무 놀란 나머지, 되묻는 질문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가버렸다. 화.. 화보라니.. 그것도 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대한민국의_흔한_남고딩.jpg 일뿐인데,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인데 화보 라니. 내가 잘 생겼으면 몰라. 아니, 하다 못해 키라도 크면 다행이지. 화보 찍다가 망할 일 있나. "성규 학생이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랑 딱 맞아서 그래요. 뭐랄까.. 잘 생긴 것도 예쁜 것도 아닌데, 묘하게 매력있는? 그런 얼굴을 가진 미성년자." "그게 저라고요?"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색기 있는 그런 미성년자." "네?" 색기라니, 아무리 남고라서 그런 단어를 적지 않게 접한 건 사실이지만 저를 지칭하는 건 18년 인생 중의 처음이었다. 색.. 색기.. 차마 낯부끄러운 말에 목부터 열이 오름을 느꼈다. "귀엽네. 화보, 찍고 싶지 않아?" ".. 전 연예인이 아니에요." "알아. 그게 뭐 어때서?" "제가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화보 망하면 어떡,"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단칼에 제 물음을 잘라 버리는 말에, 아 그것보단 너무나도 자신감에 차있는 말에 성규의 동공이 커졌다. 어.. 어째서.. 뭐 때문에 그렇게 자신 하는 거지? "성규 학생, 어때? 우리 화보 찍지 않을래?" "저, 그게.." 너무나도 자신감이 가득차 있고, 당당함이 거침없이 묻어 나는 그녀의 말투에 대놓고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거절 자체를 거절하는 듯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제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입꼬리를 올려 차 뒷자석을 고개로 가리켰다. 뒷자석으로 옮겨간 내 시야에는 실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아마추어도 못 되는 나를 섭외하고도 그리 자신이 있었던 이유가, 단박에 이해됐었다.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했달까. 잿빛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리를 멋드러지게 꼬으며 저를 바라보는 듯한 남자.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는 남우현 이었다.남우현, 그라면 내가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니, 한순간에 모든게 정당화 되어버렸다, 남우현이니까. "저, 할래요." -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으아, 깜짝이야! 놀랐잖아!" "너가 하도 안 오길래 친히 마중까지 나왔는데 놀라긴 뭘." 내가 아니라 커피겠지. 투덜거리며 명수형에게 커피를 넘기자 명수형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받았다. 빙구같애, 이런 커피 덕후 같으니라고. "근데 왜 미쳐?" "어? 아, 그게," 명수형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순간, 작가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화보 나오기 전에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가족들, 친구들이라도. 알겠지? 암암, 그래야 하지요. 아무렴 남우현이랑 찍는 화보인데 극비에 부쳐야지요. "아, 그게, 음 내가 저 무슨 일이 있어서... 한 일주일 동안 집에 없을 거 같아." "무슨 일이 뭔데?" "어? 어, 치, 친구들이랑 여..행.." "뭔 일주일씩이나 가냐 여행을. 너 이제 고삼이야." "그, 그러니까 가는 거지! 고삼 되기 전 마지막 여행으로.. 하하." 일주일은 집에 못 들어 갈거야. 여벌 옷이랑 세면도구 좀 챙겨서 나와.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작가님, 저는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한순간의 기승전 수능전 여행이 되어버렸지만요... 뭐, 어찌되었든 명수형은 믿는 듯 했다. 저가 사온 카라멜 마끼아또를 쪽쪽 빨면서 느릿느릿하게 걷고 있는 모습이 참 얄미웠긴 하지만.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키고 초록창에 '남우현'을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이미 일상이 되버린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프로필은 텅텅 비어있었다. [남우현 : 모델 겸 배우] 정말 이게 끝이었다. 런웨이에서 갑자기 어느날 스크린에 나타나 잘 뻗은 기럭지, 훈훈한 외모, 탄탄한 몸, 엄청난 연기력으로 사람들의 시강을 담당하더니 이젠 대한민국의 톱스타가 되어버린 남우현. 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었다. 성격도, 출신 학교도, 심지어 생일도. 잡지나 방송매체의 인터뷰는 무조건 거절, 예능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 그에게는. 그럴수록 팬들은 애가 탈 뿐이었고, 아이돌이 아님에도 극성인 사생팬들이 엄청 많이 붙게 되었다. 하지만, 사생팬들의 말을 들어보면, 차는 매일 바껴있고 운전은 수준급을 넘어선 클라스라 따라 잡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이랑, 남우현이랑, 내가 화보를 찍게 되다니... 덜컥 부담감이 몰려 왔다. 2년전, 남우현의 팬이 되버린 나에게는 남우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행운의 기회였다. 이게 무슨 행운이야, 이정도면 로또 1등도 부럽지 않은데. 그렇긴 한데.. 잘 할 수 있을까.. 설렘반 걱정반 두근두근한 마음을 갖고 가방에 여벌옷 몇 개를 챙겼다. 어쩌겠어, 이젠 돌이킬 수도 없는데. 해보는 거지, 그냥. 와 미치겠다 ㅠㅠ 어쩌자고 또 글을 질렀을까요 ㅠㅠㅠㅠㅠ 사실 잘자라 외전을 준비했었는데 글이 날라가저리는 바람에 그냥... 킁ㄹ.. 외전은 천천히 쓸게요 ㅋㅋㅋㅋㅋㅋ 음.. 이번 글은 잘자라처럼 빠르게 못 쓸거 같아요 ㅠㅠㅠ 이 점 매우 죄송하구요 ㅠ 사실 차기작은 남나빠 결혼물을 준비하려 했는데 스토리 라인이 안 잡혀서...ㅋㅋㅋㅋㅋ 어쨌든 시작한거 계속 연재하겠습니댜~! 사랑합니댜 고갱님들 ㅎㅎㅎ 이번에도 암호닉은 받는다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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