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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자힛 전체글ll조회 1448l 3

-속보입니다. 이번 년도 최대 기대작이었던 ‘세상은 죽었다’가 무한연기 되었는데요. 작품의 주연을 맡은 여배우와 남배우의 열애설로 인해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들썩였습니다…….






눈을 감은 채로 길게 쭉 늘어진 이어폰의 가장자리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MP3의 수명이 다 닳을 때까지 버튼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해서 눌렀다. 

하지만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들과 스토리들은 한결같았다. 제작비 100억을 들인 작품이 갑자기 무한정 연기가 됐다는 얘기.... 

대한민국 초절정 미녀 배우와 제일 핫한 남자 아이돌의 열애설 이야기. 사람들의 반응은 안 봐도 뻔했다. 

기대작이었던 드라마가 엎어진 이유보다 그 뒤에 열애설에 집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넘어서, 열애설보다 더 뒤에 있는 여배우를 깎아내리고 있겠지.







“안봐도 뻔해......”







결국, 수명이 다 닳아버린 오래된 MP3가 지지 직하고 저절로 화면이 꺼졌다.

귀에 꽂혀있던 유일한 속세를 조심히 빼 들었다. 하기야, 너도 참 오래 버텼다. 자그마치 대략 20년을 버텨왔으니..... 손에 들린 MP3를 자연스레 주머니에 넣으려다 행동을 멈추었다. 

앉았던 몸을 일으켜 저 멀리 절벽 밑으로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속세’를 집어 던졌다. 이로써,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수단까지 모두 내던져버린 셈이다.






그렇게 더는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절벽 밑만 바라보고 있는데, 옆으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조심히 한발 한발 뜨거운 커피 두 개를 가지고 온 비구니가 보였다. 

그의 모습에 나는 공손히 손을 모아 잠시 눈을 감았다. 떴고 비구니는 그런 내 모습에 웃는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어서 받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스님... 동천사에서 이곳 거리가 꽤 있는데 왜 힘든 걸음을 하셨습니까.”


“알다싶히 여기가 유일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아닙니까.”





허허. 스님이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런 비구니의 모습을 보다 손에 들려있는 커피로 시선을 돌렸다. 어울리지 않는 믹스커피에 비친 나의 얼굴이 보였다.

어느새 내 옆에 있는 작은 바위에 앉은 스님께서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셨다.

나도 그런 스님을 따라서 한모금 또 한모금 들이켰다. 모순적이게도 속세를 버리고 온 이곳에서 믹스커피 하나만으로도 웃음이 지어지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스님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으시더니 입을 열었다.






“애당초,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란 현대시대를 사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일이지요. 허며, 저 또한 한 달에 한 번씩은 산 밑으로 내려가 마트에서 장을 보곤 한답니다.”


“........”


“이곳에 온 뒤로 마음의 병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스님.”






스님의 물음에 두 눈이 커진 내가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런 나의 행동에 스님이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속인다고 해도 부처를 모시는 스님 앞에서는 다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스님이 보이지도 않는 내가 왔던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오는 자들 대부분은 마음의 병을 가진 병자들이지요. 자식들까지 모조리 결혼시키고 세상에 미련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 이곳에 온답니다.”






그래서 처음 오셨을 적에 앳된 얼굴을 보고 참 가슴이 아팠었지요. 아직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세상이 미워 이곳에 찾아오셨으니 말입니다. 

스님의 말에 계속 감춰놨던 나의 치부를 들킨 느낌에 애꿎은 두 손만 이리 잡았다 저리 잡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스님이 처음으로 소리 내 웃으셨다.






“아직도 이리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이는데 정말 대한민국 제일 미녀인 배우 맞으십니까? 하하.”


“....스님!”





*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 때 봬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때는 일주일 전이었다. 내가 이 동천사에 올라오기 바로 일주일 전, 나는 이번 년도 최대 기대작이었던 세상은 죽었다의 여배우로 낙인찍혀 대본 읽기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역시나 라인업이 굉장히 짱짱했다. 조연이라지만 대한민국에서 절대 모를 수 없는 조연들과 상대역 배우는 조금 전까지도 세계투어를 하고 온 남자 아이돌 멤버였다. 

작가의 피셜로는 요즘 해외시장을 노리려면 제일 잘 나가는 아이돌을 남자주인공으로 세우는 건 이 바닥에서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필수조건 중 하나란다. 


역시나 팬덤규모가 장난이 아닌지 드라마가 시작도 안 했는데 라인업 기사가 뜨자마자 드라마는 세계 곳곳에서 난리가 났고 얼른 1화 방영을 이른 시일 내로 하지 않으면 방송국에 불을 지르겠다는 악성 팬들도 몇몇 있을 정도였다. 








‘보고 싶었어. 그래서 찾아왔어. 네가 말도 없이 떠나버리면? 정말 네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 버려 내가 찾을 수 없다면... 난.... 네가 없이 난....!’


-두 번 다시는 찾아오는 일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미치도록 좋은데.. 너가 없으면.... 난.....’


-… ….






[엑소/역하렘] 경국지색의 시간 제 1장 | 인스티즈

남자 주인공을 맡은 그의 눈가가 빨개졌다. 쌍꺼풀이 지지 않은 길게 빠진 두 눈에 눈 바로 아래 찍혀있는 작은 눈물점이 분명 여자로 태어났으면 경국지색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게 분명하다.

확실히 어린 친구들이 좋아할 얼굴이긴 하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그의 연기실력이었다. 

고작 대본리딩인데도 정말 역할에 충실한 그의 모습에 집중하자니 조금은 무시했던 내가 오히려 그의 연기에 빠져들어 대사를 놓칠 정도였다. 


그때마다 바로 뒤에 앉아있던 매니저 오빠가 신호를 줘서 대사를 까먹거나 놓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만약 이 드라마가 방영된다면 실패할 확률은 1퍼센트도 없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연예계 바닥에서는 소문이 자자했고, 나 또한 확신했고 또 확신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대본리딩이 끝나고 새벽이 되어 집에 가려 차에 오르는데 그런 나를 뒤에서 누군가 붙잡았다. 조심히 나를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나는 차에 오르려던 발을 되레 내려놓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름아닌 나를 붙잡은 사람은 나의 상대 배우역을 맡았던 세훈이었다. 

내가 연기를 10년 넘게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내놓으라고 하는 배우들의 상대역을 많이 맡았는데 단언컨대 세훈은 그들 사이에 있어도 꿀리지 않았다. 

아이돌은 배우한테 비주얼로 밀린다? 이건 다 옛말이다. 아까는 몰랐는데 가까이 서보니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건 저 경국지색 얼굴에 성격은 또 숙맥이었던 거다. 사람을 불렀으면 용건을 얘기해야지 내 눈도 못 마주치고 우물쭈물하는 게 꽤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한 삼 분간 우리 둘 사이에는 침묵이 오갔고,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연기 좋았어요. 촬영 때 이대로만 해줘요.”


“...네?”


“그럼 전 이만 일정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네... 아... 아니 저기....!”





간단히 안부만 서로 물어보고 끝내려 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다시 차에 오르려는 나를 붙잡는 세훈이었다. 

숙맥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완전 눈치 하나도 없는데? 마음속에서는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상대배우로서 그리고 연예인의 신분으로서 내 스스로 싸가지가 없어지는 것은 용납이 안 됐기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 후 세훈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그는 나의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다짐했다는 듯 용기를 내어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 ‘아 네가 원하는 게 그거였나.’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작 말을 할 것이지 사람 피곤하게. 나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휴대전화를 가져왔고 그대로 내 연락처를 찍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휴대폰을 다시 그에게 넘겨주니 그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구십 도로 내게 인사를 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야. 그의 행동에 당황했던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보여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긴 했다. 







“연락하면 꼭 받아주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선배님!”


“... 아 맞다.”





차에 올라타고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멈추는 나를 보고 세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눼?’ 딱 이 말을 하며 눈코입이 다 커지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 없었다. 아직 연습생이미지를 덜 벗어난 티가 꽤 귀엽다니깐 킥킥.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나는 세훈에게 마지막 안부인사를 건넸다.







“우리 동갑인 건 알고 있죠?”


“네..? 네!”


“그러니 다음에 볼 땐 선후배 사이 말고 이름 부르며 말도 놓기로 해요. 알겠지?”


“...어........”







벙찐 그를 뒤로한 채 나는 그 자리를 떠났고 몰래 백미러로 그를 쳐다봤을 땐 세훈은 한참이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듯싶었다. 

그런 그를 보며 킥킥 웃고 있는데 나를 뱃머리로 쳐다보던 매니저 오빠가 넌지시 내게 물어왔다. 

그리고 매니저 오빠의 말은 내 웃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근데... 있잖아.”


“응. 오빠.”


“원래 지하주차장에 이렇게 차들이 빽빽하게 많았나...?”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매니저 오빠를 쳐다보았고 매니저오빠가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자기가 연예계 생활 십여 년간 하면서 연말시상식 빼고는 지하 5층까지 차가 빽빽하게 들어선 것을 본적이 없다며 계속해서 이상하다고 말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난 그저 스태프들의 차겠지 하고 넘겼는데 다음날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





역시 안 좋은 예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매니저오빠가 이상하다고 했을 때 나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있었으면서도 왜 그것을 하나 간과하지 못했던 걸까. 

다음 날, 인터넷, 신분 그리고 텔레비전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다.

 

여배우 A양과 아이돌 B군의 열애설 현장!


이라며 사진과 함께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나와 세훈의 이름이 나란히 거론되기 시작했다. 

기획사에서 오는 전화, 주변 지인들에서 오는 전화에 내 휴대폰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고 제일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잠도 못 자게 수시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대고 문 앞에다 욕을 써놓고 아예 현관 앞에 신문지를

깔고 나오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며 머물고 있는 사생들 때문이었다. 매니저 오빠의 도움으로 겨우 경찰을 불러 집 앞의 사생들은 주거지침입으로 신고를 했지만, 경찰들도 매일같이 오는 수십 명의 사생들을 처리하긴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었다.



-니가 뭔데!!!! 우리 오빠를 꼬셔 이 여우 같은 년아!!!!!


-내가 드라마 찍는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저 여우년 진짜!!


-죽어나 버려라!!


-나오기만 해! 칼로 그 잘난 얼굴에 흉터를 한 바가지 내주겠어!!!





하루마다 집으로 오는 동물들의 시체와 인터넷에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부터 고등학교 때까지의 생활들이 하나같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남배우랑 열애설이 한번 터졌었을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정말 아이돌 팬덤과 배우팬덤은 좋아하는 방식, 성격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일주일간 지옥 같은 일상에서 내가 도피할 방법이라고는 없었다.



나갈수가 없었고 음식배달도 불가능했다. 

한번은 새벽에 몰래 음식을 시켰다가 음식 위에 쥐 시체가 배달되어온 것을 보고 화장실로 가서 몇 시간 동안 속에 있지도 않은 것들을 역류하기도 했다. 

하루하루 심해져 가는 지옥같은 생활에 나는 결국 도주를 감행한 것이다.


주머니에 있던 지폐 몇 장과 예전 드라마 소품이었던 MP3가 ‘다’였다. 

휴대폰도 두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아랫집에 사는 한 가정의 도움으로 간신히 서울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가진 돈으로 대한민국 제일 끝에 있는 동천사까지 도망쳐오게 된 것이다.






교통비도 떨어져 터미널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가까지만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렸고 큰 바위에 쓰러져 있던 나를 한 스님께서 겨우 부축해준 덕분에 동천사에서 이렇게 편히 숨 쉴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대한민국의 모든 통신매체에선 여배우 A양의 자살소식이 들려왔다. 

사생들이 A양의 시체를 어디에다 투기해서 시체는 찾지 못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생이 경찰에 체포된 상태였다.

그게 내가 마지막 ‘속세’를 집어 던지기 전 들었던 내용이었다.








“차라리 잘됐지 뭐. 가뜩이나 힘들었었는데.”






애써 담담한척했다.

죽을 고비는 넘긴 거니까. 좆같은 이주였다. 

연예계 생활을 10년넘게 했지만 이주 만에 내 연예계 인생은 박살이 났다. 세훈 그 애는 분명 죄책감에 빠져 살고 있을 것이다.

기사가 얼마 나지 않아 세훈조차 활동중지를 선언했다. 그래서 제작비 100억을 들인 이번 년도 최대 기대작 [세상은 죽었다.]가 무한연기 된것이다.


스님이 떠난 자리가 공허했다. 

다시 내가 세상 속으로 뛰어들면 나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연기할 수 있을까? 가늠이 전혀 되질 않았다. 

어쩌면 자신감을 모두 잃어버린 거 같다. 





그렇게 난 스님이 떠난 자리 한번,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세상을 바라보기를 한번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바지에 흙 다 묻었다.”






손빨래 같은 거 해본 적도 없는데. 어찌하나. 한숨이 흘러나왔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가볍게 넘기기를 한번, 또 한 번. 결국, 한숨이 또 한번 흘러나왔다.








좆같은 인생 제기랄.







그렇게 어두컴컴해져서야 동천사에 도착을 했는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나를 반겨주셨다.

춥진 않은지,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돼서 잠을 못 이루시겠다더라. 그 모습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감사하는 말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런 나를 스님이 붙잡았다.









“손님이 와 계세요.”


“....손님이요?”







나의 물음에 스님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서 방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셨다. 

그 말에 나는 의아한 상태로 방으로 향했고 방문 앞에는 더러워진 흰색의 운동화가 먼저 놓여있었다. 

괜히 무서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잠깐 더 커진 궁금증에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상태로 방문을 재빨리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인물이 앉아있었다.








[엑소/역하렘] 경국지색의 시간 제 1장 | 인스티즈


“.....안녕.”

















































여기까지가 내 마지막 기억이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정말 믿고 싶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었으니까.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정말 간만에 걱정 없이 깊은 잠에 빠져서 기분 좋은 꿈까지 꾸고 있는데 그것마저 허용이 안 된다는 듯 동자승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사실 동천사에는 아침 6시 만 되면 동자승이 알람 역할을 해주긴 하다만... 오늘만큼은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단 말이야.


일어나시오! 기상!


결국 나는 머리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조심히 걷었다.

답답했던 숨통이 탁하고 트이는 기분이다. 얇은 창호지 사이로 들어오는 쨍한 햇빛이 내 얼굴을 눈부시게 비췄다.


계속 이런 상태로 누워있다가는 금방이라도 실명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서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으으.... 벌써 여섯 시인가."

-아니 아직 새벽 다섯 시야.

“그렇구나......”












아직 새벽 다섯 시밖에 안 됐는데 왜 깨우는 거지.

그럼 한 시간만 더 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다시 몸을 누우려는데.


잠시만 새벽 다섯 시라고?


이 방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나? 갑자기 드는 생각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감았던 눈을 느릿하게 떴다. 어쩐지 아무리 산속이라도 새벽 다섯 시에 쨍하게 햇빛이 뜰 리가 없는데?

점점 시야가 또렷해지는 걸 느꼈고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 왼쪽 그리고 오른쪽을 보았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기절해버릴 뻔했다.



“왜 그렇게 두리번두리번거려? 간밤에 처녀 귀신이라도 보셨나?”

“....누구세요?”


누구긴 누구야. 난 네 동방생 연이잖아!


그 말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엔 머리가 허리를 넘어선 여자가 참빗으로 정수리부터 머리끝까지 천천히 빗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닭살이 또 한 번 돋았다. 쓱쓱- 연이라는 여자가 머리를 빗는 소리가 내 귀에는 그 어떤 소리보다도 무서웠다.

계속해서 아무 말 없이 그 여자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여자는 이내 가지고 있던 참빗을 상에 내려놓고는 머리를 아래로 단정히 묶기 시작했다.

하나로 따서 가지런히 머리를 내려 묶는 모습에 가만히 바라보기도 잠시 여자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나에게 나무라듯 뭐라 뭐라 얘기하기 시작했다.










“곧 대전에 가야 하는데, 그렇게 보고만 있을래?”




“대전이라뇨...?"


충청남도에서 혼자서 광역시로 빠져나온 거기 대한민국의 중심 대전?

아... 이게 아니지 나의 되물음을 들은 여자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계속 머리를 묶으며 한심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아무리 궁일이 힘들어도 그렇지 잊어버린 척하면 누가 모를 줄 알아?”

“궁이요? 궁이라면..... “










왕이 사는 그곳을 얘기하는 건가? 지금은 아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사극 연기를 한 적이 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을 감독님이 눈여겨보시고 주연 오디션을 제의하셨는데 운이 좋게 합격해서 반년 동안 대하사극으로 인기 절정을 찍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경복궁부터 시작해 대한민국의 전통가옥이란 가옥은 다 돌아다닌 거 같다.

그때 그 힘든 기억으로 사극이 들어와도 컨택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며 거절을 하곤 했는데... 나의 배우 10년 배우생활 촉으로 말하자면 분명 저 연이라는 여자가 말하는 ‘대전’ 은 왕이 사는 ‘그곳 (大殿)’을 말하는 것일 거다.

근데 21세기에 왕이라니 궁은 또 뭐야.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여자의 말에 갸우뚱하기를 한번 또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지 두 번.

나의 바보 같은 행동에 결국 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나를 향해 몸을 돌려서 소리쳤다.












“진짜 너 일 하기 싫어하는 건 내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 ㅈ........ 어...”

“....네?”







금방이라도 풀릴 거 같은 쌍꺼풀을 가진 여자의 눈이 나와 마주치자마자 갈 곳을 잃었다.

아주 얇은 선홍빛의 입술도 똑같이 멈춰버렸다. 그리고서 한참을 나를 조심스레 쳐다보다 이내 서 있던 몸을 다시 숙여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내 머리부터 눈, 코, 입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어색한 느낌에 어찌할 줄 모르는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한참을 내 얼굴 이곳저곳을 바라보던 여자가 마지막 종착지인 내 검은 두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계같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너..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했는데..”

“네?”




“곱다... “




“.....”










무언가 홀린 듯 얘기하는 연이라는 여자의 말에 이번에는 내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여자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라는 말만 연신 중얼거렸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 얼굴을 훑어보았다. 결국, 내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기 그래서 저희가 대전에 가야 한다...고요?”

“응.”




당최 무슨 상황인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지만, 날 만져대고 있는 이 여자의 손길이 하나하나 생생한 걸 보면 꿈은 아니었다.

설마 말로만 듣던 타임슬립을 한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드는 멍청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픽하고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던 여자가 또 한 번 무언가에 홀린 듯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만일 다른 사람과 마주쳤을 때 절대 그렇게 웃으면 안 돼.. 특히나 전하 앞에서 말이야.”




여자의 무언 압박이 담겨있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아직 빠지지 않은 젖살을 가지고 다람쥐처럼 큰 눈동자를 가진 여자였다. 하지만 그 모습 뒤에 감춰진 ‘위엄(位嚴)’이 느껴져 낯선 기분이 내 몸을 지배했다.





옷은 연이가 입고 있던 옷과 같은 푸른색의 한복을 입었다. 사극 할 때 이런 비슷한 옷을 입어본 경험이 있다. 이 옷은 궁녀(宮女)의 복장과 매우 흡사했다.

그리고 잠시 얘기를 나눴을 땐 연이의 나이는 아직 20세조차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었다.

하지만 연이는 ‘만일 내가 다른 이들과 똑같이 시집을 갔다면 나에겐 두 명의 자식이 있었을 거야.’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새 연이가 입혀주는 대로 입고 머리도 묶어주고, 사실 배우 생활하면서도 현장에서 직접 의상이나 스타일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내겐 최소 두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붙어있었으니까. 그래서 연이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준비됐니?”














오래전에 준비한건데... 시대에 맞는지 모르겠어요. 일단 투척해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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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작가님 완전 취향저격 작품이에요!! 다음작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4년 전
독자2
뒷내용 너무 궁금해요ㅠㅠㅠㅠㅠ기다릴게요 작가님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4년 전
독자3
헉 ㅜㅠ 너무 재밌어요 ㅜㅜ 다음화 기다리겠습니다 !!!
4년 전
독자4
와 진짜 미쳤어요ㅠㅠㅜ 제가 엑소 사극물 레전드 보려고 여기 가입했었는데 그거 처음 읽었을 때랑 똑같이 소름끼쳤어요 완전 대작 발견한 기분!! 여주가 여배우였다는 설정이랑 절에 찾아갔다는 건 되게 특이하네요 mp3 보고 옛날 글인가 싶었는데 여주가 선택한 거였군요 암튼 잘 읽었습니다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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