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늦은 밤에 오려했는데.. 엉엉. 일이 생겨서 늦게 왔네요 죄송해요.
아까 올리려고 했는데 점검이라니...
암호닉 신청해주신 나의 사랑들 고마워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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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말 감사해요. 댓글 하나하나 열심히 읽고 댓글달고 있답니다!
혹시 나중에 이런 똥글 읽고 퍼가실 분 있으시면 소근소근 말씀해주세요, 퍼갈 수 있게 풀어놨어요!
오늘도 브금과 함께 합니다. 아... 글보다 브금이 무섭다...
아는 분이 막... 팬아트 해줄까말까 놀리던데.. 그려주세요... 저 그런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
03
경수가 눈을 감았다. 종인이 그런 경수의 모습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다가 손을 들어 눈 앞에서 흔들었다. 이 상황에 진짜 잠이 오나. 단순하기는.
종인이 경수의 앞머리를 베베 꼬다가 입에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아 진짜 예쁘다. 종인이 중얼거렸다.
찬열은 서둘러 백현을 업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 보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당연히 보건선생님과 학생들, 아무도 없었다. 찬열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침대에 백현을 눕혔다. 백현이 씩 웃어보였다.
"왜 웃어. 피 나는데 웃으니까 존나 호러다."
"고맙다고 해줄랬더니, 아 꺼져."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에로물같기도 하고?"
찬열이 능글맞게 웃으며 구급상자를 들고와서 탁자에 놓고 어멍, 환자분 어디가 아프세용? 하고 콧소리를 냈다.
악! 징그러워 꺼져!! 백현이 다친 팔대신 발로 찬열을 걷어차듯이 밀어내고는 구급상자를 뒤적거렸다. 왠만한 지혈도구와 소독약은 갖춰져 있었다.
백현이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쉬고 한 쪽 팔로 끙끙대며 재료들을 꺼내놓았다.
잠시 나가떨어졌던 찬열은 툭툭 털고 일어나 똥백, 내놔. 하고 재료들을 뺏어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피를 닦아내고 소독약을 거의 들이 붓듯 쏟아부었다.
백현이 짜증을 냈다. 아 썅. 이따구로 할거야 박간호사? 찬열이 흐흐 하고 웃었다. 똥백 이 엄살쟁잉!
백현이 괜히 받아줬다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찬열아- 하고 말을 걸어오는 백현에 찬열이 고개를 들었다. 왜 불러 임마. 낮은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좀 진지하게 울리는게 듣기 좋았다.
"고마워."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왜 분위기 잡고 말하냐? 고백하는 줄 알았네."
"뭐, 그런 비슷한 거 일수도 있고."
백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리고 베시시 웃었다. 찬열이 치료하던 손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백현을 쳐다봤다.
에? 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 무슨 뜻이야 그거. 똥백. 이 오빠가 좋다는거야?
저 놈의 오빠 타령은, 존나 토나와. 느끼한 새끼. 백현이 잠시 눈을 흘기다가 다 됐으면 어서 가자며 찬열의 손목을 끌었다.
"어- 야! 그런 비슷한게 뭐야!"
"됐어, 빨리와. 애들 기다리겠다."
"말 해줘!! 해주라니까? 뭔 뜻이냐고!"
찬열이 큰 덩치로 안 어울리게 칭얼거리는 것을 백현이 살짝 발을 들어올려 제지했다. 한 번 더 정강이 맞고 천국보고 싶냐? 아니요...
찬열이 고개를 숙이고 터덜터덜 걸었다. 내 비주얼 또 하락세야 씨발. 백현이 앞서가던 찬열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끅끅 대며 웃었다.
*
"뭐야 도경수는 왜 계속 쳐자. 깨워."
"냅 둬. 피곤한가보지."
교실로 돌아온 찬열이 종인에게 기대 자고 있는 경수를 무심코 쳐다보다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건데! 짜증 섞인 말투로 툴툴 거렸다.
백현이 찬열의 팔을 살짝 쳤다. 멀쩡한 경수는 왜 갈궈. 닥치고 나갈 궁리나 해봐. 찬열이 백현의 눈 앞에 주먹을 살짝 쥐고 흔들었다. 오빠한테 까불면 죽는다. 백현이 자기 눈 앞에 흔들거리는 주먹을 세게 쳐내자 찬열이 그대로 자기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강타했다.
백현이 또 한 번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단,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까, 학교 안을 수색해보자."
"형. 단어 선택이 이상해. 수색이 뭐야. 차라리 탐방이라고 그래라."
"박찬열 호구야. 아는 척 하지마. 탐방이 뭐냐? 하여튼간 멍청해서. 그딴 걸로 꼬투리 잡기는-"
"넌 왜 아까부터 나한테 시비야, 똥백새끼야. 아까 보건실에서의 은밀한 일을 까발리고 다니는 수가 있어."
"씨발 그게 왜 은밀한 일이야!! 그런 변태싸이코같은 수식어 가져다 붙이지마."
준면이 티격대는 둘을 조용히 하라며 말렸다. 조용히 해봐. 야. 너네 좀 조용히 하라고. 아 미친! 좀 닥쳐봐!!
짜증을 내며 소리 지르는 준면의 생소한 모습에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아차 싶었던지 준면이 어색하게 웃다가 바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 2학년만 썼었나?"
"어. 본관은 1학년이랑 3학년이 쓰고."
"음... 그럼 어디를 둘러봐야 되는거지?"
"11반까지 있고, 가사실습실, 보건실, 미술실까지 합해서 열 네 개네."
"씨발 숫자도 존나 불길하게 4가 들어가고 지랄이야."
종인과 준면의 대화에 가만히 닥치고 있던 찬열이 끼어들었다. 백현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 먹은 표정으로 입에 검지손가락을 갔다대고 쉿쉿- 했다.
그 모습을 본 찬열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 똥백 이 귀여운 새끼. 김준면한테 겁 먹었냐? 내가 이겨. 형한테 김준면이 뭐야 병신아. 김준면을 김준면이라 하지 뭐라고 하냐?
준면이 그런 찬열을 익숙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머리를 몇 대 휘갈겼다. 개긴다 박찬열.
"와, 형 진짜 표정은 완전 하느님인데 폭력쓰는 거봐. 혹시 이중인격임?"
"닥쳐. 방해되니까. 어쨌든 일단 거기는 다 돌아봐야한다는 거네."
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인은 어깨가 살짝 저려오자 경수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도경수.
경수가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백현이는 좀 괜찮아? 하품을 하며 말하다가 눈을 굴리며 백현을 찾았다.
병신 찬열이가 왠일로 잘 치료해줬나보네- 경수가 백현의 팔을 보고 만족한 듯 끄덕이며 웃었다. 백현도 따라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찬열은 도경수나 김준면이나, 존나 이중인격자들. 하면서 둘을 번갈아가며 째려보다가 궁시렁댔다. 준면이 한 번 더 무표정하게 찬열의 뒤통수를 쳤다.
"이제 나가보자. 돌아다녀봐야지. 나갈 단서라도 찾게."
"이게 무슨 탐정놀이도 아니고. 아. 미친 어떤 싸이코가 지랄인거야. 왜 하필 우리한테!!"
"아, 근데 형. 인질 두 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민석이랑, 또 한 명이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준면이 말 끝을 흐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세훈이 그 말을 듣고 교실 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으음,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 여기가 아니면 다른 곳에 있나?
이 교실 안에서 교탁 밑을 제외한 곳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곳이 없었다. 책상과 의자도 모두 벽 쪽으로 밀어놓은 상태라 그 아래에 있을리도 만무했다.
민석이 갑자기 팔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세훈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왜 그래 민석이 형?
아니 그게, 아 소름돋아. 설마, 아니겠지. 민석이 겁먹은 눈망울로 세훈을 쳐다봤다. 여기서 뭘 넣어둘만한 곳은... 저기. 민석이 떨리는 손으로 가리켰다.
"사물함?"
"응... 뭘 넣어둘 곳이 없잖아. 저기 아니면. 숨겨둘 곳도 없고."
"야, 미쳤다고. 저기 들어가긴 하냐 사람이?"
"뭐, 꼭 사람 몸이 온전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찬열이 중간에 끼어든 준면의 경악스러운 말을 듣고 뭐? 하며 고개를 돌렸다. 준면이 생각 없이 내뱉었던 것인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더듬거렸다.
아, 아니. 그런 뜻으로 한 게 아니라. 미친, 내 주둥아리가 뭐라고 짓껄이는 거야. 근데, 꼭 공포 영화 보면-
종인이 준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사물함으로 향했다.
자물쇠가 잠겨져 있는 것들을 빼면 번호는 1,4,7,13,14,16,18,23,25,26...
경수가 따라 일어나서 종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종인아, 열어보게? 종인이 경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7번 사물함을 열었다.
다행히도, 비어있었다. 경수가 휴-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종인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차례로 천천히 13번과 16번을 열었다. 역시나 비어있었다.
경수는 의아했다. 왜 저렇게 여는 거지? 처음부터 하나씩 다 열어 보면 되는거 아닌가?
"도경수 저리가있어. 야 박찬열, 형이랑 이리와봐."
경수가 아 왜- 하며 짜증을 내자 종인이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도톰한 입술이 생긴 것과 맞지 않게 딱딱하게 움직였다. 빨리. 내 말 들어.
경수는 그 모습에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세훈과 민석의 곁으로 갔다. 백현이 아-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세훈의 눈을 가렸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아, 형 답답해. 눈은 왜 가려! 손 좀 치워."
"닥쳐봐 오세훈. 어린이 관람불가."
"아 뭐. 진짜 사람이라도 튀어나올까봐? 그리고 내가 왜 어린이야! 형보다 한 살 어리거든?"
"따지지 말고 새끼야."
종인이 '1번' 이라고 숫자가 박힌 사물함 앞에 섰다. 찬열과 준면이 옆에서 종인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고있었다.
그리고 종인은 마음 먹은 듯 중압감을 주며 굳게 닫힌 사물함을 열었다.
*
나는 춤 추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땐 부모님의 강요아닌 강요에 발레를 시작했지만, 나도 어느 샌가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됐다.
난 춤을 잘 췄다. 거기에 즐기기까지 했으니, 실력은 더할 나위 없이 상승세를 보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신문에도 많이 났고, TV에서도 자주 비췄다. 항상 달리는 수식어는 발레신동, 발레천재, 최연소 발레리노 따위였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허리 부상으로 발레를 그만 둬야 했고, 계약 중인 여러 공연들도 취소해야 했다.
내 뒤에 따라 붙은 소속사 관계자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갔고, 소속사는 계약금을 물어서까지 나를 쫓아냈다.
그렇게 상승세를 치솟던 전성기 때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떨어졌고, 활발하던 성격도 점점 어두워져갔다.
내 앞에 항상 붙던 수식어들도 눈녹듯 사라졌고,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부모님 또한 크게 낙심하셨고. 우울증에 걸렸는지 항상 쳐져있던 날 안타깝게 여겼다.
그리고 재활치료 겸, 나를 댄스 학원에 보내셨고 거기서 찬열과 준면을 만났다.
찬열은 기럭지만 길었지, 완벽한 몸치 그 자체였고 준면은 찬열에게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는데도 찬열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기본기부터 다시 다지기 시작했다. 방송댄스는 발레와는 또 다른 느낌이였다.
"형, 박찬열 봐봐, 춤 존나 못 춰."
"아나 오징어인줄 알았다. 팔다리만 길어서 허우적거리는 거봐. 아 존나 웃겨."
항상 찬열보다 진도가 빠르던 그들은 먼저 끝내놓고 쉬는 동안 계속되는 찬열의 몸짓을 비웃었다.
찬열은 거울 너머로 째려보다가 옆에 앉아 있던 선생님에게 가서 짜증을 냈다. 아- 이쯤하면 됐잖아요. 뒤에서 놀리는 거 못들었냐? 오징어 같대잖아. 징징댔으니까 열 번 추가. 아 쌤!! 아 미친, 너네 이 개새끼들 일로와. 죽여버릴거야.
찬열은 항상 저런식이였다. 그렇게 우리 셋은 친해졌고, 나중에 준면은 미술쪽으로 나가고 싶다며 학원을 그만 뒀다.
찬열도 나에게는 김종인이 있다며 가는 준면을 막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준면은 삐져있었다. 아씨- 종인이 내껀데. 둘이서 항상 티격대며 싸웠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며 혀를 찼다. 형이나 박찬열이나 좀 꺼져라. 내가 왜 니네꺼야. 니네 둘이 사귀든가. 아 시끄러워- 들러붙지 좀 마.
"김종인. 말해. 김준면이야 나야."
"박찬열 이 새끼 또 개긴다. 말 아주 놓아라? 야 말해 김종인."
"뭘 말해 병신들아. 둘이 놀아."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썩은 표정을 지었고 동시에 뒤를 돌아 헛구역질을 해댔다. 아 형 얼굴 보니까 속이 울렁거려. 오징어 새끼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존나 징그럽게 생겼어. 아, 김종인- 내가 좋다고 말해. 시끄러워 이 게이들아.
나는 다시 웃음을 찾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즐거워했고, 그 둘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춤도 좋았고, 찬열과 준면도 좋았다.
다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분이였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찬열과 다닐 수 없었다.
찬열의 옆에 있던 얼굴이 새하얗고 입은 붕어처럼 귀여워서, 그래. 도경수. 자꾸 눈길이 가고 보다보면 만지고 싶어지는.
가까이 가면 안될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찬열과 떨어져서 혼자 다닐 수 밖에 없었다. 혼란스러웠고, 혐오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니. 상상도 못했고 앞으로도 없을 일 같았다. 게이는 나에게 더럽고 이질적인 단어였다.
도경수, 나 왜 이럴까.
아, 근데 이젠 왜인지 알 거 같아, 경수야.
"좋아해."
*
"악!"
몇 명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종인도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물함을 열자 울컥 하고 검붉은 액체들이 찐득하게 쏟아져내렸고, 사물함 속에는 이상한 덩어리 같은 것들이 뭉게진 채 가득 들어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였다.
이건 꿈이야. 말도 안돼.
"씨발, 저게 뭐야. 설마 사람이야?"
"미친... 종인아. 나머지 것도 열어보자."
찬열과 준면이 빠르게 4번과 14번 사물함을 열었다. 역시 액체가 쏟아져내림과 동시에 이번엔 사람의 형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4번 사물함에는 잔뜩 뭉게진 팔과 다리가, 14번 사물함에는 얼굴.
그리고 피에 엉켜 있는 머리카락은 미친 듯이 역겨웠다.
말도 안돼! 이건 꿈이야!
"...종... 종인아, 설마... 이준석 아니야?"
경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하자 세훈이 눈물을 터뜨렸다. 계속 눈가만 훔치고 있는 것을 보고 준면이 다가가 토닥였다.
백현은 어느새 세훈의 눈 덮고 있던 손을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입으로 계속 이름만 읊조렸다.
백현과 같은 반은 아니였지만, 경수의 앞자리여서 가끔 백현까지 껴서 셋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준석은 경수와 가깝게 지내던 친구 중 하나였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친구가... 참혹하게 난도질당한 채 죽어있었다. 그것도 사물함 안에서. 교실에서. 학교에서.
다들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장난이 아니야 이건, 정말.
저거 그냥 모형 아니야? 그치? 저 새끼가 뭘 잘못했다고 저기있어!! 어? 찬열이 애원하며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민석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만 살았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자신도 저렇게 됐을지도 몰랐다는 그 두려움에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정신이 없었다.
누가 거짓말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번 사물함 문 안쪽에 지퍼백이 핏방울 잔뜩 매단채 붙어있는 것을 후에 발견한 준면이 다가가 굳은 얼굴로 모서리를 살짝 집어서 꺼냈다.
열어보니 또 검은색 종이가 접혀있었다.
종인이 신경질적이게 낚아채서 찢다시피 폈다.
<There may be blue and better blue.>
"이게 무슨 개소리야, 씨발."
"파란색도 있고, 더 나은 파란색도 있다?"
"아니. 그건 직역이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종인이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 그래서 뭐. 우리가 뛰는 놈이고 지가 나는 놈이라 이거야? 잔뜩 성이 난 찬열의 목소리가 바닥까지 깊게 깔렸다.
경수는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진정이 안되는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종인이 다가가 목을 쓰다듬었다. 경수는 초점없는 눈으로 종인을 바라봤다.
사물함을 닫을 수도, 그렇다고 열어 둘 수도 없어 애꿎은 커튼만 찢어 그 위를 덮어 가리고 기도를 했을 뿐이였다.
경수는 두 손을 풀지 않고 계속 모으고 있었다. 종교가 없었지만 누구든지, 어떤 신이든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찬열이 말대로 저게 모형이게 해주세요. 아니면 이게 다 꿈이게 해주세요.
왜, 죄 없는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직접 이 일을 벌인 범인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왜 하필, 1이랑 4,14야. 다 14냐고. 재수없게."
"병신싸이코같은 범인이 저 숫자를 좋아하나 보지."
"근데, 풀어준다는 인질은 두 명이였잖아. 근데 왜..."
"그러게.."
"풀어준다고만 했지, 살려준다고는 안했잖아."
다들 준면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준면이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우리라도 살아나가야 돼. 이렇게 있다가는 다 같이 죽어. 준석이처럼 될 지 모른다고. 질질 짜고 신세 한탄하며 앉아 있을 때가 아니야.
그나마 이성적이였던 준면이 말했다.
경수가 형은 이준석이랑 상관 없으니까 그렇지. 하며 울컥 화를 냈으나 이내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준면이 이해한다는듯 미안하다고 경수를 토닥였다. 감성적으로 행동해서 제대로 될 건 없으니까. 경수가 마음을 다잡았다.
살아남아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해결이 될 거 같았다.
일단은 반만 믿기로 했다. 준석이는 아직 확실하게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라고.
다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야만 했다. 살아나가고 보자. 준면이 평소와 다르게 낮게 읊조렸다.
모두들 동조하는 눈빛이였다. 백현이처럼 또 누가 타겟이 될 지 모르는 거고. 백현이 회상하는 듯 가늘게 떨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어서 나가야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지 않게 만들어야했다.
이게 장난이든 진짜든 우리는 이미 덫에 걸렸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그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했다.
민석을 포함한 7명이 결심한 듯 하나씩 일어났고, 복도로 나갔다.
준석이 죽은 게 아니기를 바랬다. 그리고 저 상황을 잊기로 했다. 우린 죽은 이준석을 본게 아니야. 차라리 저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교실 앞문 위 '2학년 1반' 이라고 써진 팻말이 시작을 뜻하는 것 같아 괴기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복도 깊숙히 소름끼치게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