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사몽한 정신으로 큰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비척비척 걸어나와도 비공식적인 귀국이다보니 사람이 많이 없어 편하게 걸어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부담스럽게 큰 키로 제 뒤를 쫄쫄 따라오면서 앞뒤 양 옆을 막 돌아오며 "우와-우와" 하는 감탄을 연신 내뱉으며 쫓아오는 사내만 아니였다면 말이다. 큰 손으로 제 옷 한 귀퉁이를 잡고 새끼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는게 상당히 신경쓰였다. 무겁게 매달려오는 느낌에 손을 쳐내도 얼마간 혼자 걸어오다가 또 슬금슬금 제 옷자락을 또 잡아온다.
(왜 자꾸 남의 옷을 붙잡고 그래?)
바로 대답하지 않고 흠-크흠-거리면서 우물쭈물 거리더니 또 어물어물 한마디 한다.
"어..쑨양은 한국 모른다. 복잡하다. 꾸불꾸불하다. 그러니까..음...태환은 내 손? 손 잡고 다닌다."
(꾸불꾸불하긴 뭐가 꾸불꾸불해.)
(한국의 길은 복잡하니까. 그리고 난 한국 처음 와본거니까 길은 당연히 모르지.)
(그리고 손은 왜 잡냐?)
눈을 슬쩍 흘기면서 퉁퉁거리면 꼬박꼬박 또 대답한다. 자기보다 두살이나 많은 사람한테 버릇없긴, 츳-혀를 한 번 탁 쳤다.
(저번에 런던에서 술 마시러 갈 떄 길 잃어버린다고 태환이 손 잡았었잖아. 그러니까 나도 손,.)
싱글싱글 웃으면서 남의 쪽팔린 기억을 재잘재잘 잘도 말한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큰 손위에 제 손을 올리고 꽉 쥐었다. 또 비시시 웃으며 자기도 손에 힘을 주고 혼자 폴짝폴짝 공항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 자식이 길도 모른다더니.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같이 푸흐흐 웃으며 도도도 뛰어가는 저도 똑같은 사람이다.
(나, 태환의 집에 가고 싶다.)
(우리 집? 나 자취해서 부모님도 다 안계신데?)
(그..그럼! 더 좋고,.)
(좋긴 뭐가 좋아!)
양 볼은 어울리지도 않게 붉게 물들여 놓고 한다는 말 하고는..결국 머리를 또 쿵 쥐어박으면 머리를 감싸고 우우-하는 칭얼거림을 내뱉는다.
(뭐 ,일단 갈 곳도 없으니 우리집으로 가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 한마디에 또 화색이 되어 환하게 웃는다. 제길, 덩치도 큰게 웃는건 퍽 귀엽다.
공항 앞 도로를 씽씽 지나다니는 차들 중 택시를 불러세워 차에 올라탔다. 저를 알아보는 기사 아저씨에게 슬몃 웃으며 인사했다.
"근데 옆의 키 큰 총각은 누군가?"
살갑게 물어오시는 말에 대답하려 입을 열자마자 쑨양이 다급하게 내뱉았다.
"나..나..!! 쑨양은 태환 애인..우브읍..!!"
다급하게 손을 들어 입을 막고 다시 생글생글 어색하게 웃으며 어리둥절한 눈빛을 띄고 있는 기사 아저씨께 외쳤다.
"같은 수영 선수예요! 중국 국가대푠데..그.400m랑 1500m 금메달 딴!"
또 사람좋게 허허 웃으시고는 다시 운전에 열중하신다.
옆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손만 꼼지락대는 덩치 큰 어린아이가 신경쓰인다. 동글동글한 눈매는 축 쳐져서 입은 비죽 내민 채로 중국말로 연신 꿍얼꿍얼 댄다.
(뭐야, 삐졌어?)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으 채로 작게 한국말로 꿍얼거린다.
"쑨양은 삐뚤어진다. 태환이 나 없는 사람 취급한다. 나 태환 애인 맞다.'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은 문장이 제 뜻은 정확히 전달하는게 퍽 신기하다. 눈은 절 흘겨보면서 볼은 부루퉁하게 탱탱 부은 꼴로 잘도 말한다. 그래도 별수 없지. 삐졌다면 달래주는게 연애의 정석이다.
(잘 들어, 쑨양. 우리는 비밀 연애를 하는겅. 쑨양은 사랑하고 사랑하는 듬직한 내 애인이야.)
고작 몇문장에 고개를 빠끔히 들고 베시시 웃는게 참 귀엽다. 제 입으로 저를 애인이라 칭해주는게 좋은지 비실비실 웃는다.
(난 쑨양이 너무 좋은데 누가 데리고 가면 안되잖아, 그치? 그러니까 우리는 속닥속닥하는 비밀연애를 하는거야.)
얼굴을 마주보고 생글생글 웃어가면서 결국 끝에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고 제가 생각해도 치기 힘든 눈웃음을 살살 취며 쉿하고 귓가에 속삭였다. 기사 아저씨에게 안 보이려고 의자 밑으로 모을 숙여 말하는게 힘들어도 다시 기분을 풀고 비시시 웃어보이는 그가 참 좋다.
(나도..나..나도 태환이 좋다,.그러니까 비밀연애 열심히 할거다.)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결연하게 말해오는 모습이 귀여워 손으로 머리를 흐트려트리려는 찰나에 도착했다는 아저씨의 말에 돈을 지불하고 내렸다.
결국 엘리베이터에서 머리를 슥슥 쓸어주며 집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쇼파에 앉자마자 슬쩍 저를 보며 뽀뽀해도 되? 물어온다. 일일이 허락을 구하는 모습에 피식 웃고는 끄덕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슬금슬금 다가와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황급히 떨어진다. 또 우물쭈물하며 손가락을 꼼지락대다가 키스해도 되? 또 물어온다. 이번에도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볼을 붇잡고 슬쩍 입을 마주댄다. 키스때마다 느껴지는 불규칙한 사내의 치열이 왠지 기분이 좋다. 제 몸을 쇼파에 뉘이며 위로 타고 오르는 모습까지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젠장, 사내가 입에서 입술을 떼고 목을 입술로 지분거리자 몸이 딱딱하게 흠칫 굳었다. 눈치채지 못했는지 남의 목을 빨아들이며 티셔츠로 얇고 평평한 가슴께를 손으로 쓰는 행동에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입술을 덜덜 떨리고 눈가가 확 뜨거워진다.
이 때에 난폭하게 저를 괴롭히던 그 때 모습이 스쳐지나갈 건 뭔가. 실로 젠장맞았다. 사내의 입이 활동 범위를 높힐수록 입은 더 떨리고 손을 꽉 질수 밖에 없었다. 티를 안내려고 입술을 꽉 깨물어도 결국 공포에 섞인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으..으흐으..우윽....*
억눌린 신음소리를 눈치챘는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본다. 눈물이 눈가에서 두세줄기로 갈라져 투두둑 떨어지고 꽉 깨문탓에 핏방울이 맺힌 입술이 더 심하게 떨려온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제게 다가오는 사내를 피해 쇼파 위에서 몸을 슬금슬금 뒤로 움직였다. 분명 걱정스러운 눈빛인데, 그가 그러지 않을 거란걸 아는데 머리 속을 강하게 지배한 공포감이 저를 놔주지 않는다. 앓는 소리는 계속 툭툭 터져나오고 제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도리질치며 오지말라 소리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으..으흑...오..오지마..가까이 오지마...*
(왜..왜 그래?)
당황한 낯빛으로 저를 계속 바라보는 사내에게 미안하게도 제 입은 오지말라. 무섭다를 반복해서 내뱉었다. 이런 순간에 약해진 제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그닥 길지않은 탓에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쇼파 위에 어린아이마냥 주저앉아 오지마. 무서워. 하지마 세 말만 계속해서 내뱉는 저를 보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던 사내가 저를 억세게 품에 안아온다.
(내가..내가 미안하니까..울지마, 제발 울지마. 울지만 말아줘. 태환이 싫다고 하면 절대 안해, 그러니까 제발 울지만 말아...)
부드럽게 저를 다독이려는 사내의 품에서도 눈물만 투두둑 떨구며 "무서워,,,하지마...으흐으으...싫어어...." 하며 입을 틀어막고픈 소리만 계속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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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연재 텀이 자꾸 길어지네요ㅠㅠ죄송해요ㅠㅠㅠ
분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다보니..허허...그럼 전 이만 학원으로 떠납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