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온!
(7. 나들이)
w. 감개무량
"아...완전..."
죽을맛이야...
끙끙 앓는소리에 수현이 새벽부터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다. 이불속에 파묻혀있다 물을마시러 침대밑으로 발을 딛는다. 듬성듬성 날아가버린 필름에 물을따르며 어제일을 정리해본다. 1차갔다가..2차는 선배집...부터 기억이가물가물하네..밤길을 걸었던것도, 뒷목을잡혔던것도 기억이 나는데 신발을벗고부터는 완전백지였다. 다시한번 그눈빛이생각나 뒷목을 쓸었다. 별로 다시 만나고싶지않아...
아직 술냄새가 가시지않은것같아 칫솔을 가져왔다. 시원한 해장국생각이 간절하다. 저를따라 칫솔을가져온 수현과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시작한다.
"이거 웃어야돼 말아야돼..!?"
수현이 글자를 꾹꾹 눌러적은 종이를 보던 현우가 어이가 없어서 마냥 웃기만했다. 대칭이되는 글자를 제외하곤 모두 좌우가 뒤집힌채 적혀있는 한글에 처음글을배웠던 때가 생각이난다. 아무래도 이게문제인것같지? 서로 다른손에 쥐고있는 연필때문에 좌우가 헷갈리는듯한 수현이 자꾸부러트려 짧아진 연필을 굴리고있다. 그러다 떨어진 연필을 주워 그의왼손에 다시쥐어준 현우가 오른손에 쥐고있던 연필을 옮겨잡았다.
"너 때문에 왼손글씨연습하게생겼다."
기역부터 히읗까지 새로 쓰기시작해본다. 제가봐도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적힌종이를 수현의것과함께 벽에붙였다.
"이제알겠지? 다시적어보자"
그가 까마득하게 어릴적에 엄마가 가르쳐줬던 방법을 되새기며 조금조금씩 시작한 글자공부가 하루 이틀이지나고 ,벽을 가득채울때쯤 명사들을 이어붙일정도가된 수현을 와락 끌어안았다.
냉장고에 나란히붙은 김수현, 이현우란 글씨는 수없이 떼어지고 붙어지는 벽의종이들과는 달리 그자리에 잘 붙어있을뿐이었다.
덩달아 손때묻은 한글공부 책을 통달한 현우도 제법 왼손글씨에 적응이되어있었다. 하루 한두시간 티비를보던시간에도, 이젠 내내 그의 얼굴만바라보던 수현이 들리는 단어에 반응해 화면으로 시선이 옮겨져있다.
"근데 왜 말을안따라할까..."
오늘도 한창 글자 삼매경에빠진 수현을 바라보다 턱을괸다. 책에있는 단어부터 집에있는 물건의 이름, 티비에 나오는 배웠던 글자까지 여러번 말해줬던것 같은데 그의입에서 온전한 단어가나오는것을 들어보지못한 현우가 고개를갸우뚱했다. 책상에 함께앉아있다가 문득쳐다본 밖은 집안으로 빛이 가득 들어찰만큼 맑다.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책을 탁 덮어버렸다. 짐싸! 벌떡일어선 현우를 멀뚱히 보고만있던 수현이 등떠밀려 방으로향했다. 그동안 신발장에서 먼지가쌓인 수현의 신발을 꺼내어 털기시작했다. 간식같은것도 싸갈까? 돗자리를 꺼내오곤 손을 씻은 현우가 식빵에 쨈을바르고 과일들을 잘랐다. 옷을갈아입고 나온수현이 여전히 손에쥐고있던 연필을 주머니에 넣는다. 오랜만에 현관밖으로나온 그의표정이 묘하게 기분좋아보여 현우가 평소보다 들떴다. 남자둘이 나들이라니 좀 꼴사납기도했지만 손에든 도시락과 돗자리를 들고따라오는 수현의 모습은 충분히 기분좋을만하다. 근처 공원에 도착한 현우가 나무그늘밑에 돗자리를 깔고누웠다.
"나무 진짜 오랜만에보지?"
새파란 잔디까지 어디하나흠잡을곳없는 공원나들이에 기분이좋다. 옆에누워있던 그를 구경하다 휴대폰을 꺼내어들었다. 너도 할머니목소리들을래? 빼곡한 나뭇잎을 비껴 쏟아지는 햇빛에 기분이좋아진 현우가 익숙한 다이얼을 눌렀다.
"할머니! 잘지내? 나지금 수현이하고 소풍나왔어요."
「아이고 내새끼, 더워서 힘들제? 이리청년은 말좀 잘듣는기야?」
"응응, 요즘 글자공부도 잘하고, 옷도혼자잘입고 집도 안어지럽혀요. 할머니 목소리듣고싶어서 전화했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버린다. 그제야 저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현우가 오랜만에 인사드려 하고 휴대폰을 귀에가져다주었다. 익숙한 할머니잔소리가 전화기너머까지 들려온다. 못말린다 우리할머니, 웃고있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풋, 올라가있는 입꼬리가 꿈틀거리다 입을연다.
"감사합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 멋있어서,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트릴뻔한 현우가 급하게 일어나 앉았다. 귀를 의심할정도로 놀란 그와달리 수현이 태연하게 색색 다시 목을긁는 숨소리를 내었다.
크흠..! 하고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은 현우가 도시락뚜껑을 열었다.
"...왜 갑자기 덥지?"
다시 천진하게 샌드위치를 구겨넣는 그의 모습을 보다가 현우도 낼름 과일을 집어먹는다. 꽤나 잘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해버려 머리를 긁적거렸다. 입을벌리면 삐져나오는 이빨과 지금 그의모습이 어울리는듯, 어울리지않는듯. 과일을 집어먹으며 몰래몰래 수현의 옆선을 훔쳐보다가 뛰어놀고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돌렸다.
"이게 뭐라고?"
"..."
"이건 뭐라구?"
"..."
집에오자마자 줄기차게 시작된 질문에 꿋꿋히 대답하던 수현이 지쳤는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벽에붙어있던 종이들을 다떼어낸 현우가 어렸을때봤던 동화책을 꺼내놓았다.
피곤하면 오늘은 자자
거실불을끄고 그의 손끝을 잡아당긴다. 얌전히 따라온 수현과 나란히 누워 눈을감았다.
**
"바깥에 나오니까 좋지?"
"..."
치...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인지 아니면 자꾸 목소리를 듣고싶은 자신의 속셈을 알아차렸는지 이젠 대답도 뜸했다.
그와중에 꼭 챙겨잡은 손이 야무지다.
더이상 물가의 어린애가 아닌 수현의 경계를 푸는것도 해볼만한 일이란걸 느낀다. 막연히 생각만 하다가 기회다 싶어 나온거리가 오랜만에 더위가 가신 밤공기에 북적북적했다. 이런밤엔 꼭 치맥을 먹어야한다며 저보다 작은키로 손을이끄는 모습에 수현이 몰래웃었다. 길게자란 이빨이보일까 금방 웃음을 지워버린다. 앞에서 왔다갔다 거리는 정수리를 구경하다 어느새 가게로 이끌려들어간다.
가득담겨진 500cc 맥주를 홀짝 들이킨 현우가 캬 역시 여름엔 이맛이지! 하고 젓가락을 든다. 좁은테이블, 의자를 조금만 뒤로빼면 뒷사람과 부딫히는 가게안에서도 수현이 바삭하게 튀겨진 치킨을 얌전하게 먹고있을뿐이었다.
첨엔 상상도 못했던일인데~
바보같이 웃던 현우가 김빠진 표정으로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진 맥주잔에 나홀로 건배를 한다.
결국 혼자 맥주잔을 모조리 비워버리고 마지막 치킨조각을 입에넣었다. 축구중계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변엔 두런두런 말을 나누는소리, 치킨이 자글자글 튀겨지는 소리. 듣기만해도 편안한 일상소음. 마주앉아있는 수현을 보다가 혼자웃음이난다. 중학교졸업이후로 꾸준히 혼자살아와 시켜먹는 치킨이 익숙한 현우가 주변을 슥 둘러보다 자리에서일어난다. 계산을끝내고 밖으로 걸어나온둘이 늦은시간, 한적해진 거리를 손을잡고걸었다.
"...넌 왠지 나랑계속 있어줄것같아"
"…"
"나 사실 엄마가 엄청보고싶었는데 요즘은 엄마생각할 새도없어."
"…"
"너랑 노느라고"
"…"
"계속 같이있어줄꺼지 그치?"
"...응"
"내말 다 알아들었어?"
"…"
"에이...뭐야!"
불평하면서도 헤실헤실 비집고나오는 웃음을감추지 못한다.
오래전부터 자리를잡고있던 묘한느낌을 되새겨본다.
뭐야 아침부터...
8시, 초인종소리에 시계를확인한 현우가 벌써 문앞에가있는 수현의 등에 얼굴을 부볐다. 아무래도 밤에 뭐먹어서 얼굴이 부은느낌이야... 덜뜨여진 눈으로 잠금장치를 푼다.
"허...헐"
문틈으로 선우가 마트봉지를 흔드는 상큼한모습을 확인한 그가 문을닫으려다 끼여들어온 발때문에 손을 멈췄다. 오랜만에 형아왔다~ 하고 발로활짝 문을연 그가 수현과 눈이마주치곤 허...헐 하고 놀랐을땐 현우가 그를 재빨리 끌어당겨 문을닫은후였다.
"너만왔지?"
"...어? 어어..."
"그럼 얌전히 밥이나 먹고가"
자신이 사온 재료들을 현우가 손질하는 것을 보고있던 그가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는 수현을 흘끔보았다.
"...어,언제부터 ..."
"할머니집있을때부터.."
"무슨 룸메가..."
"..그렇게 됐어"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다될쯤에 식탁에 세명이 둘러앉았다. 묵묵히 밥을떠먹던 수현을 선우가 빤히 본다.
"형...은 전공이 뭐에요?"
"대학교 안다녀!"
대뜸 소리를치는 현우때문에 놀란 둘이 얼이빠진표정이었다.
"그냥...집에서 공부중이라고..."
"어디살다 오셨어요?"
"...산"
으응!!우리할머니계신 산하고 진짜 가까워! 막 같이 닭장도...고치고...
이젠 너 좀 이상하다? 라는 눈빛으로 선우가 저를 쳐다봐 머리를 긁적인다. 이젠 대놓고 현우를 바라보며 그럼형은 몇살이에요? 묻는 목소리에 입술을 비죽인다.
"25살"
"아..."
밥을깨작이다 놀라 고개를 든 현우가 수현을 빤히 보다가 떨어지려는 숟가락을 고쳐잡았다.
"첨엔 말도안하고 엄청무섭게 생겨서 걱정했는데...되게 괜찮은것같다야!"
"그래!?"
함께길을걷다가 현우가 방긋웃는다.
"아이고! 이제 형님이 한시름덜었다"
"형님은 무슨"
선우를 흘겨보다가 잘가! 인사를한다. 뜨거운햇빛에 얼른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와 소파에 쓰러졌다. 책상에앉아 읽던책을 덮은 수현이 나른한 하품을한다. 다시자라버려 감춰두었던 손톱을 들어본다.
"다행히 그냥 사람으로 보는것같아"
손톱깎이를 가져와 수현과 마주본 현우가 손톱을 깎아주려다 멈춰섰다. 얌전히 손을내밀고있던 그가 왜 깎지않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옛날에...
"옛날에 강아지를 키웠는데..그땐 아파트살았거든?.."
"…"
손톱깎이를 내려놓은 현우가 하는말에 귀를 기울인다.
"근데 막 짖고 벽지뜯고 그러면안돼니까...성대수술도시키고 발톱도 다깎아줬다?"
"…"
"나중에 강아지가 다쳤는데 아프다는 소리도 못내고 나를 멀뚱히 보기만하는거야"
"…"
"그때 강아지한테 너무미안해서 펑펑울었는데 지금 왠지 그 느낌하고 좀 비슷한것같아"
...미안해
금새 시무룩해진 현우가 바닥을 보고앉아있다. 손톱깎이를 그냥 치우려는 그의 손을 수현이 가볍게 잡았다. 우울한표정을 짓는 그를 당겨품에 안는다. 늘상 그가해줬던 같이, 현우의 뒷머리를 쓰다듬던 그가 바짝붙은얼굴에 괜찮아. 하고 말하곤 손톱깎이를 집어 손에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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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세모네모님
두근두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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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편에는 덧글이 많이 늘었더라구요! 기분좋게...♡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글을쓰는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